거룩한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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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가난

글/생명강가(2008.9.12)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 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삼상2:7-8에서 자식이 없어 가난했던 여인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여호와께 드리며,

성전에서 올리는 기도내용 중 한 토막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혐오하는 죽음에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거룩한 죽음이 있듯이,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가난에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거룩한 가난이 있습니다.


시편 40편 마지막과 41편 서두에서도 보면

다윗은 탄원시를 통해 자신의 처한 역경과 가난을

오히려 하나님께 도움을 얻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성경의 다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가난을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부끄럽고 부정적인 면보다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기회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잠 못 이루며 갈망하는

그 부자는 의외로 부정적인 방면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 이 세대에 어떻게 설명되고 반영해야 하는지
나 자신도 혼란스럽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만이 아니라

영적인 가난, 즉 자아를 비운 상태의 영적인 갈급함을

말하기도합니다.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3)


주님의 영께서 나에게 임하시니, 이것은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눅4:18)


가서, 여러분이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십시오.

눈먼 이가 시력을 얻고, 다리 저는 이가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가 들으며,

죽은 이가 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습니다.(눅7:22)


그러나 대부분 물질적인 가난을 말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누가복음 16장 19부터 31절에서 말하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자가 자주색과 세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기며

호화롭게 생활하고, 나사로는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부자의 문간에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개들과 같은 인생을 살았던 이야기..


누가복음에서 우리가 희년의 사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여전히 부자 되기만을 쫓아 맹목적으로

세상을 향하여 살았을 것입니다.

오! 주 예수님, 당신이 참된 희년의 실제이십니다!!


그대가 점심이나 저녁을 차리거든,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십시오. 그들도 그대를 초대하여

그대에게 보답할지도 모릅니다.

그대가 잔치를 베풀거든, 오히려 가난한 이들과 팔다리 못쓰는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을 초대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그대에게 갚을 것이 없으므로,

그대가 복을 받을 것인데 왜냐하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그대가 그 보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눅14:12-14)


그러나 부자는 안타깝게도 천하고 더러운 거지로만 알고
거룩한 가난에 속해 있는 나사로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한번도 잔치에 초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회원국 중 최고이고
하루에 평균
40여 명씩 자살을 하고 있는데
그 중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부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 몇 군데를 더 더듬어 보아도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 대한

주님과 사도들의 일관된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그대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대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하늘에서 보화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십시오.”(눅18:22)


나의 사랑하는 형제님들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시어 믿음을 부유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왕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

무시하였습니다. 여러분을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은 부자들이 아닙니까?(약2:5-6)


주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속한 분이실 뿐 아니라,
자신이 친히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고후8:9)


여기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가난하게 되심을 통하여,

우리를 부유케 하시고, 또한 우리를 거룩한 가난에 두심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 가심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우리가 어떤 환경에 속하였든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살전5:16-18)이 합당합니다.


슬퍼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고후6:10)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을 우리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서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으로써,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합니다.(고후4:10-12)


심지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에게 닥친 가난까지도
거룩히 분별될 수 있음을 상고해 보면서, 희년을 맞이할
우리의 삶을
재점검 해 봄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영적인 것, 육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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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것, 육적인 것

글/생명강가(2008.9.6)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도

다 똑같은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있다.

이왕 먹는 밥, 영적으로 먹자


산업전선에서 일하기도 하고

가족을 위하여 가사 일도 돌보지만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있다.

이왕 하는 일, 영 안에서 하자


세상에서 우리가 살면서
물질을
쓰거나 관리함에 있어서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있다.

우리의 물질, 영 안에서 합당히 쓰자


사람마다 은사가 있어

각기 은사대로 하나님을 섬겨도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있다.

영적이 아니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영적인 사람이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눅9:23)

주님과 한 영 안에서 교통하며(고전6:17, 1:9)

주님을 살아내는 것이다(빌1:21).



권위아래 놓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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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아래 놓인 사람

글/생명강가(2008.9.2)




“이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 주실 만합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여 우리를 위해

회당까지 지어 주었습니다.”(눅7:4-5)


유대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백부장의 청을

전달하는 고변입니다. 여기에서 그 백부장이

이방인이었지만 평소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주님 더 수고하지 마십시오. 나는 주님을 내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도

주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셔서 나의 종을 낫게 해 주십시오.

나도 권위 아래 놓인 사람이고, 내 아래에도

병사들이 있어, 이 사람에게 ‘가거라’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너라’하면 오고, 나의 노예에게

‘이것을 하여라’하면 합니다.”(눅7:6-8)


이것은 친구들을 통해 예수님께 전하는 권위아래

있는 백부장의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백부장처럼 크건 작건 간에

각각 맡은 권위가 있으며, 또한 권위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백부장이 여러 사람을 통하여 로비

활동을 한 것처럼 여길지 모르겠으나,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백부장은 겸손하여 자신이 주님께

나갈 자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출세를 위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로비를 하며,

특히 군 사회에서는 군단장에게 자기 얼굴을

인식시키려고 군단장이 속한 종교나 예배처소까지

휘하 장병들이 몰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본문의 백부장은 청렴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누가복음은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신

하나님-사람이신 예수님의 삶을 밝혀주는 책입니다.

그 주님께서 가시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합당한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와서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주의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부장은 그 수하의 노예 한 사람까지 매우 아꼈고,

그가 병들어 죽게 되자 최선을 다하여 ‘완전히 고쳐

주시기를 예수님께 간청함’(눅7:3)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놀라운 권위를 알았고 또한 그 권위아래

기꺼이 순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하 사람들에게

‘가거라’, ‘오너라’ 또는 ‘이것을 하여라’ 할 때에도

함부로 행하지 않고 겸손과 사랑으로 했을 것입니다.


백부장의 그러한 삶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복사해

주고 싶었던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의 일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