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불타는 기시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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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불타는 가시떨기(출3장)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

모세가 돌이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떨기나무가 어찌

타지 아니하는가 하여 다가가 보려하니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시므로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나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야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불타는 가시 떨기의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2-4절). 타오르는 불을 지닌 가시 떨기는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는 죄인(창3:17-18)을 의미하며

창세기 3장에서의 추방하는 불꽃은 출애굽기 3장에서는 방문하여

내주하는 불꽃이 되었습니다. 이 불은 하나님 자신으로

부활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며(신33:16, 막12:26),

타락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린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여(창4:4)

저주는 제거되고, 불은 가시와 하나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가시떨기가 소멸되지 않고 불타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을 연료로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오직 그분 자신만을 연료로 태우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롬12:11, 딤후1:7, 골1:29).

불타는 가시떨기의 표징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그릇이며, 통로라는 것을

그의 마음에 새겨 주셨습니다(고후4:7, 빌1:20, 25).


이 이상은 개인적으로 우리가 가시떨기 일뿐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가 부활의 하나님으로 불타오르는

단체적인 가시 떨기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모세가 신명기 33장 16절에서 하나님을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는 자”라고 언급한 데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인들의 학정과 속박의 땅 애굽에서 구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예표에 있어서 이는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가진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안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을

표징합니다(엡3:8, 골1:12).

애굽은 흑암의 왕국을 예표하고, 바로는 사탄 마귀를

예표합니다(골1:13, 요12:31).



51. 도망자가 된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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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도망자가 된 모세(출2:11-25)


 




모세가 바로 궁에서 장성한 후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서 모세가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췄습니다. 이튿날 다시 나가니

이번에는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네가 어찌하여 동료를 치느냐?”하니

그가 대꾸하길“누가 너로 우리의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하므로

모세는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고 두려워하여, 자신을 죽이고자 찾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7절의‘모세는 믿음으로,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라는 말씀과‘모세가 두려워했다’는 이 말씀이

마치 외견상 모순이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모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외적으로 두려워하여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러나 내적으로 그는 대가를 지불할 생각을 했으며,

자원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루는 미디안 땅 어느 우물곁에 앉았다가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들을 도와줌으로서 그 일로 인하여

그 제사장의 집에서 동거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 제사장의 딸 중 십보라와 결혼을 하였으며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사십 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동족을 위하여

무언가 스스로 역할을 느끼고서 헌신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천연적인 힘을 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분은 그의 천연적인 힘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를 미디안 땅에서 목자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광야에서 사십 년 간 양을 치며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생애 중 처음 사십 년은

애굽에서 교육을 통해 천연적인 생명 안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세우는데 사용하셨으며, 두 번째 사십 년은

이 사람의 모든 천연적인 능력을 벗겨내는데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십 년은 비로소 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드려지도록 계획하셨던 것입니다(행7:22-36).


하나님의 의도하심은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와

학문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이러한 천연적인 것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에서 많은 학문과 경험을 쌓지만

그러나 한편 그러한 천연적인 것이 모두 제해진 후에야

주님의 손에 유용한 사람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함평개척 봉사자 섞임


함평행전 2011-11-26 / 추천수 0 / 스크랩수 2 http://blog.chch.kr/mdhsk2545/35104.html

2011년 11월 26일 오후
30복음확산 이후 함평을 위해 두 번째 봉사자 집회를 가졌다.


서울 4대지역 형제님들과 함평 인근의 형제님들
오늘 봉사자 섞임은
지난 2주 전 모임에서 교통한 내용을 토대로
좀 더 구체적이고 이주와 봉사에 있어서 실제적인 교통을 나누었다.
주님의 교회가 함평 땅에 속히 선포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