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글/생명강가(2009.7.19)
눈은 마음의 창으로서
어떤 이는 좁은 공간에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며
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웃과 더불어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최선을 다해 인정받아 가며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적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우주를 가진 듯 여유롭고
별 가진 것이 없어도 부요하여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큰 사람입니다.
'명 수'
글/생명강가(2008.8.13)
내가 명수를 처음 알게 된 때가 작년 11월 경
전 시간 훈련생 여섯 명이 영광 땅에 복음개척 실행을
나온 때였습니다. 훈련생 형제자매들이 로고스 무료책자를
배포하며 영광터미널 앞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연결된
고등학생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180cm의 훤칠한 키에 교복이 잘 어울리는 핸섬한
얼굴 모습으로 복음성가를 즐겨 부르며, 교내 음악회에
빠짐없이 참여할 정도로 가창력이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명수는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겸한 현재 고3입니다.
환경미화원인 듯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남동생 등 네 식구가 영광읍내 모아파트에서 사는데
특별한 종교적 배경이 없는 집안에서 명수 혼자만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기독교예배당 몇 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관심받기를 좋아한 명수는
기독교예배당 서너 곳에 등록이 되어, 주일만 되면
그 중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에 빠지는 순수한 학생입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그날 예배에 빠진 곳에서 전화가 오면,
변명하고 이리저리 둘러대느라 진땀을 빼기도 합니다.
전 시간 훈련생 형제자매들이 3주간의 복음개척 실행을 마치고
떠나가던 날 유난히 한쪽 구석에서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웠던 듯
눈물을 많이 보이던 명수가 지난 2월경 그 훈련생들 졸업하던 날,
용인 전시간사역원까지 홀로 다녀오기도 했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실행한 가두 복음전파에 참여하기도 하고
주일집회 때는 만찬 기도에도 동참하는 등
서서히 기능발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연결되고 눈에 띄게 달라진 명수의 모습에
아버지가 몰래 탐문 조사까지 해 보시고 아무래도 요즈음
잘못된 이단들의 모임도 많으니 전에 다니던 제일 큰(?)예배당
한 군데만 다니라고 각별히 주의를 시키시기도 하셨답니다.
나도 일단은 부모님이 이해하실 때까지는 순종하길 권하였고,
그런저런 고민과 친구들의 게임 방 유혹 등
여러 어려움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결국 어머니를 설득시켜
다시 영광교회에 나오게 되므로 그동안 생명공과를 비롯하여
소책자 여러 권을 마치기까지 잘 생활해 오고 있습니다.
명수는 큰 글씨는 눈에 바짝 붙이면 겨우 볼 수 있으나
작은 글씨는 볼 수 없었으므로 함께 공과를 나가는 방식은,
내가 큰소리로 읽고 내 음성을 듣고 따라 읽는 방식이었는데..
얼마나 집중력이 좋은지 같은 내용을 중복해서 또 읽으면
금방 알아차려 나를 지적하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동안 명수 덕에 오히려 내가
진리로 상당히 조성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명수와 성경공과만 나가는 것이 아니고
공과가 끝나면 명수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닷트게임을 해,
집회소 벽에 걸린 칠판에 연속 5승 챔피언 벨트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재미도 대단하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성경 공과를 나가는데,
명수가 거의 매일 와서 공과 책을 들이 미는 바람에
요즘 같은 방학 때는 물론이고, 개학 시에도 학교 수업만 끝나면
어김없이 집회소로 모이게 됩니다.
언젠가 심방 중 조금 늦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명수는 아예 학교에서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미리 전화로 예약까지 한답니다.*^^*
명수는 주일날 한 시간 집회 보는 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은 학생인가 봅니다. 거의 매일 자신을 관심해 주는
가족 같은 친구나 선생님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아! 우리도 명수처럼 형식적인 집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매일 그리스도를 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상에 소망이 없는 그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크게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러한 일들을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는
계시하셨으니, 아버지를 높이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매우 기쁜 일이었습니다.(눅10:21)
명수와 같이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허비가 아니었고,
연약하므로 주만 바라봐야 하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
닮은꼴이었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명수와 나는 무슨 연유이건, 세상에서는
이미 바보 같은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전 시간 훈련을 마친 그 형제자매들 중
대전의 K형제가 방학기간을 틈타 어제 영광에 왔다가
명수와 여러 학생들을 격려하고 많은 교제를 나누고
이제는 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젯밤, K형제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간신히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던 명수가 오늘 아침에는
아침밥도 먹지 않고 잠시만이라도 형(K형제)과 더
있고 싶어서, 아침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내 컴퓨터 정리 좀 해주고, 찬송 몇 곡 부르니
계획에는 점심 먹고 바로 대전으로 출발하겠다는 K형제가
명수의 성화에 못 이겨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짐을 꾸려나오니
명수는 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우리를 외면하고 자판만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으나 헤어지기가
참으로 싫었던지 명수는 K형제의 쓰다듬는 손길조차 거절하며
떠나는 모습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가는 길이 어렵다며 등떠미는
나로 인하여 할 수 없이 떠나야 하는 K형제는,
그렇게 우리와 아쉬운 이별을 하였습니다.
기타를 유난히도 잘 치는 K형제와 나의 만남은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 막내 동생 같기도 하고 친구 같은
형제는 열흘 전쯤에 갑자기 방문 약속을 하고 단지 왔다가
하루 밤 자고 떠나는 것뿐인데, 나와 명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정과 사랑과 그리움을 남기고 갔습니다.
교차로를 돌아가는 차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환송하고 돌아서 집회소로 오르니 황급히 계단을 뛰어오르는
불안전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명수였습니다.
나는 모르는 척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명수의 등을 쓰다듬고
나도 옆 책상에 앉아 괜스레 서랍만 여닫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공허감 때문에 멋쩍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흔들리는 나의 감정을 감추려다보니 점점 소리가 높아져
고함치듯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명수가 내 눈 위로 흐르는 눈물은 볼 수 없었으나..
그는 보는 것 대신 소리 즉 사람의 음성에는 예민하기 때문에
나의 우는 것을 뻔히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명수도 나처럼 모르는 척 가만히 있습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와! 날씨 정말 죽인다!”하고서
흐르는 눈물을 씻어내고서야 다시 명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거니 그때서야 마지못해 빙긋이 웃습니다.
이렇게 명수와 나는 서로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포도꽃송이
글/생명강가(2008.7.12)
영광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네 시간쯤 달려가면
경기도 화성시 남양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화성교회 간증이 선포된 지 5년,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오늘은 이곳의 혼인잔치이야기 좀 하렵니다.
어젯밤부터 단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요즘 들어 산업화 도시가 되어 버린 화성 땅을
촉촉이 적셔 놓는 것이 두 처녀총각 결혼시기가 늦었으니
속히 새 생명을 싹틔우라는 하늘의 전령과 같습니다.
남양에서 바다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대부도 못미처
사강이라는 곳에 포도농사를 하시며 교회생활을 하시는
형제자매님이 계십니다.
십오 육년 전 아직 화성에 교회간증이 없던 시절
수원까지 버스를 서너 번씩 갈아타며 어렵게 교회생활을 하시던
두 분을 위하여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심방하고
가끔 포도농사도 도와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시골이란 곳은 마을단위로 한 가족처럼 살아가기 마련인데
그런 곳에서 아무리 생명의 말씀을 깨달았다고는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엮어진 마을의 기독교회와 그 모든 관계를 끊고
회복교회 생활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터인데..
착하고 순박한 분들이 주위의 비방과 회유를 극복하고
기꺼이 좁은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당시
둘이서 군대에 가고오고 하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심방하다가 어쩌다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꾸벅 인사만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갈 때까지 나타나지 않고
피해 있던 그 아들들이었는데..
지난해 11월 영광교회 간증선포 후 전시간 훈련생 6명이
졸업을 앞두고 영광으로 복음실행을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형제가 그 둘째아들이었습니다.
그 가정을 방문했을 때 우리의 기도도 있었지만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주님의 길을 잘 따르시던 부모님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만 멀리 떨어져있어 몰랐지.. 큰 아들은 몇 년 전
그것도 전시간 훈련을 마친 좋은 자매와 결혼을 해서
오늘 결혼식에 포도꽃송이처럼 아기까지 안고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둘째도 그 형수님의 권유로 훈련 과정을 마치고
안산교회에서 봉사를 배우던 중 이번에도 전시간 훈련을 마친
인천교회의 신실한 자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포도원의 농부이신 하나님이 보실 때,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붙어서 온갖 역경을 잘 견디더니만
건실한 가지로서 저절로 풍성히 열매 맺는
사랑하는 사강 형제자매님을 얼마나 대견스러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에 이것보다 더 큰 복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서 주를 위하여 이런 저런 고난이 있는
형제자매님들에게 작은 격려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또 한 넝쿨의 포도에서 꽃이 피었는데..
가을이 오면 탱탱하게 영글어서 모든 이들을 기쁘게 할
풍성한 포도송이를 보았으면 합니다.
공평하시고 신실하신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제 막 피어오르는 포도꽃송이오니
기도 많이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