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애굽총리가 된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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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애굽총리가 된 요셉(창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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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0장의 관원장들의 꿈에 이어 2년 후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 생명이 충만한 포도나무는

요셉으로 하여금 그에게 생명을 주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새들에게 먹혔기 때문에

그에게는 죽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생명을 얻거나, 죽음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충만한 포도나무에 나가거나

사탄을 상징하는 공중의 새들에게 먹혀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6절에서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요

저런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입니다”

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우리를 접촉하면

그것은 그에게 생명이 되거나 죽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로가 사람을 보내 요셉을 부르니, 드디어 그는 옥에서

나와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 앞에 섰습니다.

이때가 요셉의 나이 삼십 세였습니다.

요셉이 사망의 감옥에서 나온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예표합니다.

사도행전 2장 2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은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부활이시기 때문입니다(요11:25).


요셉은 바로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그 꿈을 해석하므로 애굽 온 땅에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에 바로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니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치고 애굽 백성은 엎드렸습니다.


영광을 얻은 요셉이 받은 세 가지의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셨을 때 받은 선물을 묘사하며

이 선물은 그분께서 교회에게 다시 주셨습니다.

고대 애굽인들은 그들의 반지를 도장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받은 ‘인장 반지’는 성령을 예표하고(엡1:13)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부를 때 그분은 성령으로 인치십니다.

‘세마포’는 구원을 위한 옷이 아니라(눅15:22) 승리,

즉 보상을 위한 옷을 상징합니다(계19:14).

또한 목에 건 ‘금 사슬’은 순종을 위한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십니다(행5:32).


바로는 또한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였으니, 그 뜻은 ‘세상의 구주’, ‘생명을 유지하는 자’,

‘비밀의 계시자’를 의미하는데

이것 또한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행5:31, 요6:50-51).

요셉은 지하 감옥에서 풀려 나온 그날,

애굽 전국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통치자로 즉위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권위를 가지고

즉위하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행2:36).



형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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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사랑

글/생명강가(2009.7.6)





멀리 이국땅에 살면서

본향을 그리던 마음이

오히려 하늘에 속한 소망되어

형제사랑으로 흐릅니다.


주님의 사랑을 품은

각지에 흩어진 나그네들

귀하고 사랑스런 형제들 때문에

우주의 몸을 누립니다.


뉴질랜드서 온 형제들

영광의 지체들에게 문안하고

주님의 사랑 넘쳐

폭포수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애틋하게 전해지는 형제사랑

나를 강하게 세웁니다.




나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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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교회

글/생명강가(2009.6.28)





어머니 같은 교회도 있고

큰 형님 같은 교회가 있으며

작은형님 같은 정겨운 교회도 있습니다.


엉기고 싶은 친근함이 있고

말없이 아우를 돌보아주는

나주교회는 작은형님 같은 교회입니다.


끊임없이 영광교회를 찾아와

말씀과 기도로 격려하였고

우리는 아우처럼 늘 받기만 했습니다.


교회의 얼굴은 봉사자인가?

서글서글한 형제님들 그리워

오늘은 영광교회가 나주교회로 갑니다.


나주 배만큼이나 달콤하고

사랑이 넘치는 형제교회

그 나주교회가 우리들 옆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