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꿈꾸는 자 요셉(창37:1-11)
요셉이 17세 때 그의 형제와 함께 양을 치더니
그가 그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아버지의 양 떼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들도 목양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역시 목자로 오셨습니다(요10:11).
우리는 누구도 목양할 수 없지만 우리 안으로 조성되신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을 목양하는 목자이십니다.
요셉은 또한 그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이었듯이
그리스도도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셨고(마3:7, 17:5),
이런 점에 있어서 요셉은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하니
그의 형들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하고 그 꿈과 그의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단은 추수 후에 묶는
밀 다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이
온 땅에 있는 그분의 농작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과 아버지께 말하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라고 하니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으나 그의 말은
마음에 두었습니다. 요셉의 가족 구성원은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들로 상징됩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빛나는 환한 빛들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에 따르면 그들은 악하고 더러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하늘에 속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간적인 본성은 추하고 부정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고 구속받고 사함 받아,
거듭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농장이요, 하나님의 농작물이며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수확물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늘에 속한 빛들입니다.
이 어떠한 이상입니까? 야곱의 꿈들은 땅 위에 있는
하나님 사람들의 본성과 위치와 기능과 목표를 계시하므로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요셉에게 이러한 꿈들을 준 것입니다.
농작물인 그들에게는 생명이 있으며, 해와 달과 별들인
그들에게는 빛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빛은
하나님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곱 일행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려고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 혼이 떠나 죽음에 이르러 득남하고
라헬이 죽으니,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그 묘비를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컬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잃은 대신 베냐민을 얻었습니다.
이 체험은 사망과 출생에 연관된 문제요, 잃음과 얻음에
연관된 문제였습니다. 사망 없이는 출생이 있을 수 없고,
사망을 떠난 부활이 있을 수 없으므로 라헬이 죽지 않았다면
베냐민은 결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헬이 죽기 전에 낳은 아들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각각 두 개의 이름을 받았습니다.‘베노니’는‘슬픔의 아들’을
뜻하고, 라헬은 그녀가 고통을 당하고 슬픔 속에 있었던 까닭에
그에게 이러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의 이름을‘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베냐민’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온 우주 가운데 슬픔의 아들이면서, 오른손의 아들이신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십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는 베노니이시며, 다른 한편으로
그분은 베냐민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이 두 방면을 가진
기이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만큼 많은 슬픔을 당한
사람이 없으며, 그리스도만큼 높여진 사람이 없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은 그분을‘슬픔의 사람’으로 묘사하며,
사도행전 2장 33절은 그분께서“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1장 3절도 그분께서“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슬픔의 아들이요, 고통의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일생동안 세 기둥을 세웠는데
첫째, 갈르엣에서 세운 기둥은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간증이요(창31:45),
둘째, 벧엘에서 세운 기둥은 하나님의 집의 간증이며(창35:14),
마지막,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있는 라헬의 묘에 세운 기둥은
자신의 천연적인 선택을 다루심에 대한 간증과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위한 것입니다.
가족이야기-아내
글/생명강가(2007.6.27)
1986년 7월경 나는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전라선 기차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사연인즉 어머니 마음에 꼭 드시는 색시감이 고향에 있으니
선을 보아야 한다구요...^^
3일전 무슨 일 때문에 어머니께서 서울에 올라 오셨다가
하시는 말씀이 ‘네 나이 벌써 스물일곱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하니 궁합이야 좋건 나쁘건 자식 홀 애비귀신
만든 것 보다야 낫것재, 네놈이 사귄다는 처자하고라도
결혼하자”하시기에
“어머니 양가에서 다 사행궁합이라고 하니 그 여자 지금
초죽음상태에 빠지니 부모님들의 뜻을 따르기로 했어요.
그 여자 곧 다른 사람하고 약혼할지도 몰라요” 하고
힘없이 말씀드리니
“뭐야?.. 아이고~ 잘 됐다야 이제 좀 내가 살 것 같구나.
그럼... 저번에 선봤던 그 처녀는 어떠냐?
아직도 그쪽에서는 네 소식을 가끔씩 물어 온다더라”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저의 결혼문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인도해 주실 거예요”
“그래도 나는 갸가 참 좋던디.. 그러지 말고 한번만 더 만나보자
그래도 네가 싫으면 내가 그때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마”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어머니를 통해서 말씀하실 수도
있겠고 또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해 드려서는 안 되겠기에..
“그럼 어머니 말씀대로 그쪽에서 원한다면 만나볼 수는
있는데요, 억지로는 하지 마세요. 정말 저의 결혼은
이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시골로 내려가신 어머니께서는 전화만 하셔도
내가 어련히 알아서 내려갈 터인데 삼일 만에 수원까지
다시 오셔서 부득불 내 손을 붙잡고 데리고 가시는 겁니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남녀가 결혼 적령기가 되면
각기 자기 짝을 찾아 선을 보는 것은 여전합니다. 그 중
어떤 사람은 첫 선에 상대방을 선택하여 결혼을 하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선을 보고서야
겨우 자기 짝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처럼 그해 1월에 선을 보고 아니다 싶어
잠적하여 지내다 이렇게 같은 사람과 두 번째 선을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 같은 사람을 똑 같은 장소에서
두 번씩 선을 보게 되면 좀 복잡해집니다. 이번에도 No!
했다가는 중매쟁이가 아니라 그 어떤 신랑감이라도 뺨을
석 대쯤 맞을 각오를 해야 하구요,
Yes! 한다 해도 왜 지난번에는 머무적거렸느냐?..
시력이 나쁘냐?..등 따가운 눈총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렁각시가 나타날 것도 아닐 테고
보나마나 똑같은 사람을 또 봐야 하는 처지가 되면
불안하다기보다 ‘공포스럽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입니다.
"어휴!~ 이 세상에 드센 어머니 두신 분들께 알려드리니,
참고하셔서 미리미리 커트라인을 좀 낮추더라도
어휴!~ 나처럼 두 번씩 끌려 다니지 말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나의 선호나 이상형 등을 따지지 말고 결혼문제를 전적으로
교회에 일임해 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리석은 일인지..
차라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면 좋지 않을까요?
고린도전서 2장 11절에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라고 합니다.
즉 육신에 속하여 천연적인 관점으로 배우자를 택하는 것보다
영에 속하여 배우자를 선택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자신의 결혼문제를 교회에 위임할 정도로만 영적이라면
자신이 직접 어떤 상대를 두고 기도하며 결정을 한다 해도
교회의 결정과 동일할 것입니다.
아무튼 결혼에 대하여 그 당시 나에게 지도해 줄 사람이나
또 지도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렇게 그녀와
두 번째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과 똑같은 장소에서
나는 상대방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꾸벅 인사만 하고 가시방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곳 식당 중매쟁이 아주머니(우리는 이모라 불렀음)가
이렇게 같은 사람이 두 번씩이나 선을 보는 것도 인연인데
두 처녀 총각이 양가 어머니께 시원한 동동주 한 잔씩
대접해 드리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때서야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힐끔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초록색 투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가 바로 평소에 내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던
그 여인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1월에 본 그 여자는 분명한데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는 눈이 많이 왔던 겨울이었고 지금은 후덥지근한
여름이라는 것과 그때는 내가 그냥 기독교인이었고
지금은 주님을 영접한 것뿐이었습니다.
그 해 1986년 4월 24일 주일 새벽에 나는 주님을
영접하고 임마누엘이신 그분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나에게 복음을 전하던 안집 형제님의
기도가 있었고 나는 그 영에 이끌리어 그 새벽 4시경
처음으로 안집 거실에서 드리는 새벽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날 나에게는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믿음이 왔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결혼문제였습니다.
이제 나는 그 배우자가 누구든지 간에 순종하고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의 억지스러움까지도
나는 다 주님께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부모 없는 고아나 장애인을 배필로 주신다 해도
감당하리라고 생각하던 터라 나에게 나타난 그녀는
오히려 나에게는 과분한 처녀였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로부터
마치 내 눈에서 비늘이 한 꺼풀 벗겨져 나간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귀하여 보였습니다.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여자 측에서 거절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나도 “아멘”하기로...
한참 후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모두 자리를 피해주었고
우리는 예의를 갖췄으나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내가 그동안 연락주지 못한 점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쪽만 좋다면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므로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학벌, 취미, 가족관계, 재산정도, 건강상태 등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두 가지, 내가 질문했던 것은
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가 부부가 되어 함께 주를 믿고 생활을 할 수 있는지와
우리 인생길에는 살다보면 우여곡절이 많을 텐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그녀는 다행히 두 가지 다 선뜻 약속을 하였으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함께 감당하겠노라고 오히려 그녀가
더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했습니다.
아마 그녀와 나는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하는 주님의 길의
험난함을 추호도 생각지 못하고서 서로 정신없는 말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우리는 다음날 읍내 사진관에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약혼식을 대신하고
내가 어릴 적 뛰놀았던 섬진강 가를 거닐며 두 손을 잡고
우리의 장래를 꿈꾸었습니다.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은 희미
하지만 나는 들꽃 몇 송이를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고서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의지보다는 주님의 의지로, 우리만의 세계를 꿈꾸기
보다는 주님의 세계에 참여해감으로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이
주관이 없고 모든 것이 피동적인.. 재미없는 삶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정말 큰 모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바로알지 못하는 종교인들까지도
사후에나 얻을 것으로 생각하는 그 천국을,
우리는 영 안에서 실제로 체험해 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는
오히려 더 스릴 있고 주권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주권자인 주님께서 그날 영 안에서 또 인도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따지지 않고 “아멘”했습니다.
나의 약함은 1월 첫선 보던 상태처럼 주님을 떠나서는
형편없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그리고 천연적인 나는
언제든지 돌아설 기질이 다분하기에.. 신부를 보호하고
혹시 모를 허탄한 생각에 쐐기를 박으시려는
주님의 분명하고 사랑스런 마음임을 알았습니다.
내 말에 영문도 모르고 다음날 부모님의 도장을 챙겨온
그녀 또한 왜 그러는지 묻지도 않고 함께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혼인신고를 마치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창세기 24장 리브가 이야기를 보면서 나중에서야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잘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고하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이와 같이 성도는 결혼식 준비나 양가 답례품 등 인사치레나
외형적인 것들로 인하여 무리하게 마음을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예쁜 신부화장,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기념할만한 폐물,
화려한 결혼식, 추억에 남을 신혼여행, 삶의 보금자리.. 등등
어느 것 하나 신부가 면박을 취하는 것보다 중요하거나 우선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그 후 8월이 되어 한 달 만에 신부인 아내는 수원에서
작은 점포를 하고 있는 나에게로 이불과 간단한 살림도구
몇 가지만 챙겨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교회 형제님의 세 평 남짓한 작은 가게 방에서
냉장고 대신 아이스박스에 얼음 한 덩이를 채우고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석유곤로에다 밥을 해 먹으며
그렇게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부가 온 지 채 일주일도 못 되어서
예비군훈련을 받느라 한 주간 집을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혼자 남은 아내는 천둥과 번개가 치던 장마철 속에
그날부터 꼭꼭 안집에서 보던 새벽집회에 참석하더니
내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토요일 새벽에 드디어
아내도 주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여쁜 아내가
하나님의 평강 속에서 기뻐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나는 아내를 축하해 주며 내 마음도 흐ANT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신혼 생활 3개월 쯤 되었을 무렵에
우리는 성경에서 부부가 한 몸임을 배웠습니다.
그때 또 주님의 인도하심이 나에게 있었습니다.
나는 늦은 밤 잠자리에서 아직 잠들지 않은 아내에게
내가 주님을 영접했던 계기와 아내가 모르는
나의 과거를 한 몸으로서 교통해야 할 부담이 있었고
성령께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사로잡았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결혼과 상관없는 과거 이야기는
나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허락하심이 없는 과거를
들추어내 보았자 잘못하면 자신의 공치사가 되어
하등에 유익이 없을 것이므로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의 축복 속에서 과거의 사귀었던 여자와
그로 말미암아 기도하다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음을
교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밤에 아내로부터
놀라운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날 밤에
아내는 내일이면 남편이 오겠구나 하고서 잠도 오지 않아
책장에서 대학시절에 남편이 공부하였을 두꺼운 책을
한 권 뽑아 펼치는데 그 속에서 남편과 그 여자가
여행 중에 찍은 사진 한 뭉치가 곱게 싼 종이 속에서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법한
일이지만, 소위 부부라고 하고서 남편을 의지하여 올라 온
자신을 두고서 이렇게 과거를 끊지 못하고 형편없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배신감과 수치심으로
도저히 남편 얼굴을 다시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여기서 쉽게 일찌감치 끝내고 가 버리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혼인신고가 되어있으니 이혼 통보나 하고서
가야 할 것 같아 밤새도록 한숨도 못자고 있었는데
새벽 4시가 되어 안집에서 집회준비로 불이 켜지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고 다음 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떠나려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좋은 형제자매님들을 생각해서라도 지금은 모르는 척하고
아들 둘 낳을 때까지 이 모든 사실을 덮어두고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답니다.
아내가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보니 그런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남편이 오히려 가여워지고 이제부터 아내는
좋은 남편으로서만 그를 사랑할 뿐 아니라 부끄러운 남편도
내가 선택한 이상 그를 사랑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서로 인자하게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 32)
그날 새벽집회에서 아내는 밤새도록 남편을 미워했던 것을
통곡하면서 회개하고서 성령의 충만을 얻게 되었다 했습니다.
오!~ 주 예수여, 당신은 아십니다. 아내가 올라오기 전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며 그 사진을 얼마나 찾았던가를..
책장서랍 밑바닥까지 다 찾아보았으나 내 눈과 기억에서
감추시고 결국 또 그 여자의 사진을 통해서 당신은 아내까지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아멘.
그래서 가끔 나는 “멋진 분 예수!” 라고 소리칩니다.
우린 그 밤에 참으로 한 몸의 교통과 은혜를 체험하므로
서로의 약함이 비난의 대상이 아니고 서로 공유하면서
감싸 안아야 할 사랑의 대상인 것을 배웠습니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 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2~26)
그런 체험을 함께 나누며 서로 동역해 오던 아내가
어느덧 45세의 중년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게
수원, 광주, 장성으로 옮기며 봉사해 오던 아내는
이곳 영광에까지 와서도 매주 목요일 침술 및 복음집회를
30회 가량 하는 동안 한 번도 힘들다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어려운 살림에도 매주 2~30명의 애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현지인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는 있지만
오신 분들 중 아무도 김 형제의 교통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매의 수고는 잊지 않습니다.
요즈음 서울에서 형님네 가정이 내려오시고 갑작스런
생활의 변화로 나름대로 가정의 필요가 더 많아지면서
우리의 생활이 빠듯한 것을 아는 아내가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하여 친 오빠가 하는 일을 도우며 몇 주씩
타지에 나가있게 되므로 벌써 몇 주째 집회를 참석하지
못하니 모든 분들이 아우성입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는 고린도전서 4장 20절 말씀이 생각나며
아! ‘봉사가 바로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돕는 배필인 아내가 아니면.. 또 주께서 그 아내를 나에게
붙여주시지 않았다면.. 우린 서로가 복음사역은커녕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들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다행히 우선은 장성교회의 자매님들이
대신 수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주님은 또 어떤 계획을
수행하고 계시는지.. 그 주님을 신뢰는 하지만,
아무튼 지금 우리는 잠시 암흑 속을 걷는 기분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주께서 허락하시면
우리의 여생을 주님만 의지하므로 이 길을 가고자합니다.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주님을 바라보고 있을 아내에게
사랑과 격려를 보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내가 먼저
전화를 할까 합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아 달라”고..
“주안에서 당신을 만남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그리고 “정말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