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나무의 추억
글/생명강가(2008.11.12)
가시는 길이어서
가을인가요?
을씨년스런 빈 나뭇가지
아쉬움만 남기어서
가을인가요?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 치는 인생들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옵니다.
붙잡아 보려 하지만
싸늘한 찬바람만 남기고
매정하게 가시는군요?
여름내 아름다운 추억
그리움만 가득 남기고
높은 하늘만큼 멀어져 가네요.
훈풍 부는 봄날
배시시 웃으며 오실 것을
왠지 자꾸만 눈물이 나네요.
기다리다 그리움이 사무치는 때면
따뜻이 발 덮어준 낙엽마다
당신 얼굴 그려 보렵니다.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므로 애굽을 향해 내려가다
블레셋 땅 그랄에 이르러 거기 머물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 것을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항상 택하신 백성들에게
세상적인 부요와 하나님을 대치하는 각종우상으로 가득 찬
유혹의 장소입니다(사31:1, 렘42:19, 겔23:3).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택한 백성들이
좋은 땅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백성들은 천연적인 결점이 드러날 때마다
아래로 내려갔습니다(창12:10, 20:1).
하락된 길에서는 이삭이 아내를 대하는데 있어서도
아브라함과 같이 천연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6-7절).
그러나 그와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돌보심을 통해 보호받았습니다.
이삭은 브엘세바로 돌아가기 전에도
백배의 수확을 얻었고, 생수의 우물을 찾았으며,
‘넓은 장소’, ‘넓은 길’(르호봇)에도 갔습니다.
비록 그가 이렇게 풍성한 누림을 가졌지만
그의 위치는 옳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넓은 길에서 돌아서도록 강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합당한 위치인 브엘세바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자라났고(창21:33), 신부를 맞이했던
우물과 에셀나무가 있는 브엘세바로 돌아와
다시 하나님의 축복과 임재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합당한 위치의
간증의 생활을 갖게 되니 블레셋 왕이 찾아와
그에게 친선계약을 맺을 것을 요청했습니다(26-31절).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계심을
블레셋 왕이 보았기 때문입니다(28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생활은 주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쌓으며, 장막에 거하는 생활입니다(25절).
단을 쌓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는 것을 뜻하고, 장막에 거하는 것은
그가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