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나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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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나무의 추억

글/생명강가(2008.11.12)





가시는 길이어서

가을인가요?


을씨년스런 빈 나뭇가지

아쉬움만 남기어서

가을인가요?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 치는 인생들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옵니다.


붙잡아 보려 하지만

싸늘한 찬바람만 남기고

매정하게 가시는군요?


여름내 아름다운 추억

그리움만 가득 남기고

높은 하늘만큼 멀어져 가네요.


훈풍 부는 봄날

배시시 웃으며 오실 것을

왠지 자꾸만 눈물이 나네요.


기다리다 그리움이 사무치는 때면

따뜻이 발 덮어준 낙엽마다

당신 얼굴 그려 보렵니다.


낙엽,아름다운 추억


숨어 계시는 하나님


나의 일기 2011-11-0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dhsk2545/34498.html
나는 오늘 회복역이야기성경 에스더 왕비를 썼다.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회복역이야기성경을 쓰도록
인도 하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쓰는 것은 회복역 성경을 읽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인도에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광대한 제국의 통치자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위에 있은지 3년에
그 제국의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는데
일백팔십 일 동안 무려 반 년 동안이나 영화로운 제국의
부함과 위엄의 뛰어남을 나타내었다.

이때 왕이 잔치 끝무렵 주흥이 일어나 어전 내시에게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면류관을 쓰고 왕 앞에 나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방백과 뭇 백성들에게 보이게 하였다.
왜냐하면 왕후의 용모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후는 왠일인지 왕의 명령 좇기를 싫어하였다.
그 결과 그녀는 폐위되고 왕비의 자리가 비어 있게 되었다.
이것은 에스더를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시키기 위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오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전에 함께 일하던 사람 측과
다시 일하기로 하고 그동안 서로 해결하지 못했던 사무적인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는 조건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 했는데
시기적절하게 그들을 통해 또 부당함이 드러나 원점으로
돌리고 말았다. 나는 그동안 밀린 채무관계를 해결할 것이
큰 고민거리였는데 그들 스스로 다 나에게 와서 갚아 주고
한편으로 그들 스스로 또 부당함을 드러냄으로서 동업관계를
완전히 끝내게 되었다.

나에게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가?
나는 모든 사람들을 너무 신뢰함으로서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리고 나는 잘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의로워서
보전시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 회복의 역사를 위해
특별히 함평 땅의 간증을 위해서 나를 보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만약에 내가 회복역이야기성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숨어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주권을 알 수 있었겠는가?
더욱 겸손하게 주님의 날개깃 아래 숨자. 그리고 순종하자.
함평 땅의 금 등잔대 산출을 위해서 계속 깨어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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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브엘세바


회복이야기성경 2011-11-0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dhsk2545/34470.html
 25. 브엘세바(창26장)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므로 애굽을 향해 내려가다

블레셋 땅 그랄에 이르러 거기 머물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 것을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항상 택하신 백성들에게

세상적인 부요와 하나님을 대치하는 각종우상으로 가득 찬

유혹의 장소입니다(사31:1, 렘42:19, 겔23:3).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택한 백성들이

좋은 땅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백성들은 천연적인 결점이 드러날 때마다

아래로 내려갔습니다(창12:10, 20:1).


하락된 길에서는 이삭이 아내를 대하는데 있어서도

아브라함과 같이 천연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6-7절).

그러나 그와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돌보심을 통해 보호받았습니다.


이삭은 브엘세바로 돌아가기 전에도

백배의 수확을 얻었고, 생수의 우물을 찾았으며,

‘넓은 장소’, ‘넓은 길’(르호봇)에도 갔습니다.

비록 그가 이렇게 풍성한 누림을 가졌지만

그의 위치는 옳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넓은 길에서 돌아서도록 강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합당한 위치인 브엘세바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자라났고(창21:33), 신부를 맞이했던

우물과 에셀나무가 있는 브엘세바로 돌아와

다시 하나님의 축복과 임재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합당한 위치의

간증의 생활을 갖게 되니 블레셋 왕이 찾아와

그에게 친선계약을 맺을 것을 요청했습니다(26-31절).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계심을

블레셋 왕이 보았기 때문입니다(28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생활은 주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쌓으며, 장막에 거하는 생활입니다(25절).

단을 쌓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는 것을 뜻하고, 장막에 거하는 것은

그가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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