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리브가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죽을 쑤었는데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그 죽을 나눠 줄 것을 청하니
평소 형의 장자권을 탐내던 야곱이
그 대가로 장자의 명분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에서가 말하기를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하며
야곱에게 맹세하므로, 떡과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장자권은 좋은 땅에 대한 두 배의 분깃과
제사장 직분과 왕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망령됨으로 장자의 명분이
동생인 야곱의 후손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결과 그 땅의 두 배의 분깃은
요셉에게 주어졌고(창48:22)
제사장 직분은 레위에게 넘어가고(신33:8-10)
왕권은 유다에게 돌아갔습니다(창49:10).
하나님의 장자들인 우리도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히12:23).
그것들은 오는 왕국에서 우리가 받게 될
가장 큰 축복이 될 것이며
에서와 같이 망령되이 세상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오실 때
그것들을 모두 잃을 것입니다.
결국 이 장자의 명분은 천년왕국에서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질 것인데
약간의 세상적인 누림도, 한 그릇의 식물조차도
이 장자의 명분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23. 야곱의 출생(창25:19-26)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이삭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근심하여 이 일을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길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것은
그분은 어린 야곱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엡1:4).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롬9:11).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습니다.
야곱은 ‘속이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것은 야곱의 본성을 말해줍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알았다면
인간의 힘으로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다루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를 물려받고 은혜를 누리기를
좋아하지만, 다룸 받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장차 왕들이 되기 위해
변화의 과정 하에 다룸 받음이 필요합니다.
발뒤꿈치를 잡은 자, 약탈하는 자인 야곱은
결국 하나님의 왕자로 변화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고 변화된 후
‘하나님의 왕자’이스라엘로 성숙 될 것이며
그때는 더 이상 야곱이 아닐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그의 아들 이삭을 위해 늙은 종을 보내어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명하였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전 우주의 절대 통치자이심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언급한 것은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운명, 즉 이삭의 혼사까지도 친히
주관하실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여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성 밖 우물가에 이르러
여호와께 은혜 베푸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므로
그 우물가에서 물 길러 나온 소녀를 만나니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드엘의
소생인 리브가였습니다.
이 장에서 우리는 네 명의 중요한 사람들, 즉
아버지, 아들, 종, 신부를 봅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신약을 볼 때
우리는 삼일(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부를
얻기 위해 함께 일하심을 봅니다(엡3:8-11).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을, 종은 성령을
이삭은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리브가는 신부인 교회를 예표합니다.
종은 리브가와 함께 가서 그녀의 가족을 만나
자기 주인의 뜻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른 길로
인도하신 자초지종을 알리니 그들이 리브가를
그 주인의 아들의 아내로 허락했습니다.
종은 그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녀의 가족에게도 준비해 간 보물을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심히 아름다운 처녀’였고(16절),
순결하고 순수할 뿐만 아니라 또한 친절하고
부지런했습니다(18-20절).
그녀는 아브라함의 종이 물을 청하자
기꺼이 그에게 마시도록 해 주었고, 또한
그의 약대들을 위해 물을 길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삭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주저하지 않고 따르는
절대적인 사람이었습니다(57-58절).
리브가는 또한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들에서 오는 사람이 이삭이라는 것을 알고는
너울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웠습니다(64-65절).
그러므로 신부의 머리를 덮는 면사포는 장식이나
꾸밈으로 쓰는 것이 아닌 남편을 자신의 머리로 삼는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고전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