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
글/생명강가(2008.10.15)
빠알간 단풍잎이 손짓하는
모악산 초입에 들어서니
군데군데 추수 끝난
허전한 들녘이 어쩐지 낯설고
가을 정취를 듬뿍 담은
용천사 담수호도 붉게 물드니
수면 위 햇살은 바람 따라 조각나
오리들만 한가한 오후를 즐긴다.
아련한 추억들을 되새기며
서둘러 산행을 시작하니
산자락 비탈진 조밭에
탐스런 복슬강아지들 꼬리치네.
앞서 가던 나그네는
금새 보이지 않고
톡톡 떨어지는 도토리 몇 개 주우니
청서가 나를 놀랜다.
정상에 올라서니
여기저기 돌무더기 쌓여
돌 제단 쌓던 선조들 생각나게 해
베개만한 돌 하나 올려놓고
양팔 벌리고 주의 이름 부르니
드릴 제물이 없구나.
스스로 돌 제단에 오르니
하늘의 불 나를 태운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었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때 아브람의 나이 팔십육 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팔십육 세에 육체의 힘으로(갈4:23)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그 후 그가 구십구 세 때에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삭의 출생에 관하여 최종적인 언약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체로 행한 결과, 그는 십삼 년 동안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임재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배워야 할 공과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항목, 즉 씨와 땅에 관한 약속을 가지고
거듭하여 아브라함에게 오셨습니다.
(창12:7, 13:15-16, 15:5, 7, 18)
그러나 그는 팔십오 세가 되기까지 아들이 없자
조급해진 나머지 아들을 얻기 위해
하갈을 첩으로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될 때
아들을 낳을 것을 정하셨으나(롬4:19), 아브라함은
자기의 힘으로 십사 년의 시간을 앞당긴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의 활동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음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두 여자가
두 언약을 상징하는 비유라고 말합니다(갈4:22-26).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사래)는 약속의 언약,
즉 은혜의 언약을 상징합니다(갈4:23).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씨를 갖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그에게 씨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씨(이삭)를 아브라함이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하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이지,
아브라함의 행함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계집종인 하갈은 율법의 언약을 상징합니다(갈4:25).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스스로 만든 종교인데, 종교는 율법을 동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