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회
작사/생명강가(2008.6.12)
곡/찬송 1073장
겉모습 까칠하여 아름다움 없으나
투명한 바닷속서 밤하늘 바라보며
빛나는 별님들 사모하던 진주조개
어느 날 품었다네 영롱한 새 생명!
남강의 생명젖줄 굽이쳐 흐르더니
한반도 중남부에 진주 한 알 낳았네.
해산하던 산모 역경 어이다 헤아리랴!
옥동자 산출되니 모든 시름 잊혀 지네
구속된 믿는 이들 진주 보석 되는 날
교회는 장성하여 신부단장 되겠네.
하나님과 사람의 영광스런 합병체!
새 예루살렘 안에서 참 하나 이루리라
촉석루의 절개가 숨 쉬고 있는 곳
죽기까지 자기들의 혼 생명을 사랑 않고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거 하는 말로
원수를 이기리라 왕국 가져오리라!
요즘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기도가 함평을 위한 기도이다.
30복음 확산 움직임 후 한 동안 소강상태에 들어간 함평 움직임은
이래저래 우선은 누가 이주해 올 때까지 내가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부담스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서울교회 4대지역과
동역이 있기 때문이고, 나 개인적으로 조금은 성숙했기 때문이다.
나는 베드로 같은 성격상 먼저 몰아붙이기식으로 간증 선포를
할 수도 있겠지만 두려워서가 아니라 함평을 위해서 참으로
온 지체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보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서울교회 4대지역의 봉사형제님에게서 간간이 연락이 온다.
오늘도 사역의 인도를 따라 우리에게 분깃으로 주어진 함평을
언제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형제님과 많은 교통을 가졌다.
우리의 인수가 많다고 해서 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지나 아이 성을 치는
과정에서 이미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우리가 함평에 교회
깃발을 꽂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꽂느냐가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우리의 관심을 함평에 쏟는
만큼이 함평교회의 역량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도 형제님과의 교통 가운데 더 분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미 한국교회 5개년 계획에 의해서 함평을 비롯하여 나머지
24-5개의 지역을 회복시켜야 하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교회와 사역은 하나가 되어 이 일을 믿음으로 성취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갈망에 부응하는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사탄까지도 이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러나’가 아직 우리 가운데 방해 요인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회복의 무리들 중에는
주변의 방해와 많은 상황들이 발생하자 ‘아직은 성전 건축할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자기 집을 짓는데 바빴다.
이 ‘그러나’가 우리 회복 안에 상당히 만연되어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함부로 섣불리
움직이다가는 오히려 악한 자의 궤계에 말려드는 경우가
있으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마도 이 일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분명히 이 시대의 학개와 스가랴 같은
형제들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인내하면서 기다리자.
물을 통과한 방주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
사망의 바다를 통과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방주 안에는 노아와 그의 세 아들들 그리고 아내와
세 며느리들, 도합 여덟 명이 홍수를 통과했습니다.
여덟(8)이라는 수는 부활을 의미하는 숫자이고
홍수 가운데서도 노아의 가족은 부활 안에
즉 새로운 삶 속에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니 물이 줄어들었고
칠월 곧 그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로서
교회는 바로 옛 공동체가 아닌 부활 안에 있는
새로운 공동체임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를 주의 깊게 읽어본다면
애굽에서의 칠월이 성력의 첫 번째 달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출12:2).
이 달은 히브리어로 아빕 월이라 부르며(출13:4)
그것은 싹틈, 발아, 생명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아빕 월 십사 일, 즉 유월절에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출12:6, 요18:28),
사흘 후인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던 날인
열이렛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새 잎사귀를 물고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 심판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평화의 메시지로서,
곧 새 생명과 새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 물이 걷히고,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그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나오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말씀
하시길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나타냅니다.
이 무지개는 성경의 처음과 끝에서 모두
발견되듯이(계4:3),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하심에
대해 미쁘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말씀이 곧
성약(成約)이며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 생활 또한
절대적으로 언약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떤 실패나 연약함, 그리고
어떠한 소극적인 것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 아래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