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람의 타락(창3장)
창세기 3장에서 여자를 유혹했던 뱀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는 사탄이 되었습니다(계12:9).
그의 첫 마디는 엉뚱하면서도 간교하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엉뚱한 질문은 우리 모두가 대꾸하고 싶어집니다.
간교한 사탄은 그것을 노렸던 것입니다.
여자의 실패는
남자 위에서 머리의 위치를 취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은
“그리스도는 각 사람의 머리이시며,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여자가 뱀으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닌 아담에게 머리의 권위를 행사하게 했더라면
별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만을 탓하는 것은 우매한 일입니다.
여자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우주적인 남자이시며(사54:5),
여성이건 남성이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내의 일부분으로서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남편이시므로,
머리되심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사람은 아내의 위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에게
“왜 그 과실을 먹었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하시며 그의 위치를 물으셨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배역한 것도 사실은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가장 높은 머리의 위치를 취하고자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되자
하나님은 즉시 장차 여자의 씨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사탄이 십자가에서 끝날 것이라는 의미이고,
그리스도는 인성 안에서 여자의 씨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으나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가죽옷이 만들어지려면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해야 했는데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히9:22).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구속하실 분이심을 의미합니다(요1:29).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그 땅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신 목적은
사람으로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신성한 생명은 누구입니까?
골로새서 3장 4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는 신성한 생명이신
주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강이 에덴에서 솟아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생명수 강의 그림입니다.
그 강에서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산출되는 것은
장차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 재료로서
각종 불과 압력의 시련을 통과한 변화된 믿는 이들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으며
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를 주시어 먹게 하셨으나
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금하셨습니다.
사람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셨습니다.
사람이 생명나무를 택하면 살 것이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다면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러한 선택권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높은 인격과 자신감의 표출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분명히 보아야 할 것은
생명나무의 원칙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선악과의 원칙은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는 합당한 근원이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분리된 모든 것과
사탄을 상징합니다.
글/생명강가(2010.8.26)
농어촌 시골지역은 도시와 달리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이고
이웃 사람들의 상황을 빤히 손바닥 들여다보듯 서로 알고 있어서
만약 우리의 집회장소가 구별되지 않으면 금방 이상한 소문이 돌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후에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기란 사후약방문격으로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문장을 오가면서, 길거리에 위치하고
집회소 간판을 달 수 있는 곳, 우리의 집회를 하도록 어느 정도
공공성도 띄고 또한 한 가정 이상 살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건물을 자연스럽게 물색하게 되었는데 시골 좁은 곳에서
그런 장소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는 일이었다.
어느 날 우리 직원들에게도 그런 조건의 장소를 알아보라고
부탁을 했는데 말을 꺼내자마자 사무소 여사무원으로부터
한 건물을 소개받아 가보았더니, 주님께서 예비해 놓은 듯한
정말 도로변의 신축 건물로서 문장 중심가에 적당히 자리한
마음에 쏙 드는 건물이 전세 삼천 만원에 나와 있었다.
등기부상 선순위 근저당이 있으므로 그 부분이 부담은 되지만
전세등기를 하면 별 하자는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함평읍내로 집회소를 옮길 것을 고려해서도
우선 임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므로 누구든지 부담을 갖고
이주만 한다 해도 가볍게 교회간증을 선포할 수 있는 곳이어서
생각할수록 마음에 평강이 있어 그 건물을 잡아두고 싶었다.
당장 누가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선 나부터 움직여서
소그룹을 일으켜 영광교회로 생활하다보면 언젠가 누군가가 와서
함께 간증을 짊어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왔다.
이 일을 영광교회에 교통해 보고 한마음 한뜻이 된다면
장성과 나주교회에도 내 놓아 함께 짐을 지면 좋겠다 싶어
말을 꺼내는데, 주님은 한 번도 쉽게 통과시키지 않으셨다.
내가 염려했던 대로 의견만 난무하고 오히려 소극적인
분위기로 인해 몇 명 안 되는 지체들이 어려워했다.
주요 의견은 내가 가면 영광교회는 어떻게 되느냐였다.
복음절기 전, 장성에서 일주일에 한 번 영광에 나와서
영광교회 간증선포를 위해서 복음집회를 하며 움직일 때도
힘들었는데 다행히 복음절기가 우리를 밀어 주었으므로
모든 소극적인 상황을 통과하고 보니 지금은 영광교회의
간증이 섰을 뿐만 아니라, 주께서 장성교회는 훨씬 더
축복해 주셔서 인수 면에서 더 증가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호남권에서는 이제 안정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나는 주님께 서원한 바가 있어서 언젠가는 호남의 오지
구례 땅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을 거쳐 기회가 주어지면
북한 동포들에게도 들어가고 싶다. 그것은 주님이 아신다.
나에게 어떤 확신이 있다고 해서 교회에 어려움을 주어서는
안 되었으므로 일단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모든 지체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주님보다 또한 지체들보다 앞서가고 싶지 않다.
같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