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요시야의 죽음(대하35:20-27)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대하35:20-21)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앗수르가 멸망(주전 610년)하고
바벨론 제국이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옛 앗수르 영토에는 여전히 앗수르 잔류군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도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애굽은 이때야말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호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요시야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애굽의 지배권이 부활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므깃도’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절대적이며 신실했던 요시야였지만
그는 스스로 죽음을 초래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애굽 왕이 앗수르를 치려고 유다 땅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것은 애굽과 앗수르 사이의 전쟁이었을 뿐
요시야와 유다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시야는 애굽 왕을 막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왕을 통해 그가 이 전쟁에 관여한다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으나
요시야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애굽 왕에게 므깃도 골짜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대하35:24하-25).
전장에서 요시야 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두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훌륭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으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치 못함으로써
대적의 손에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 순간 그분의 음성을 청종할 수 있는
민감한 귀를 주시길 원합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뢰하고 절대로 스스로 결정하지 말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의 음성을 분별해야 합니다.
233. 스바냐 선지자(스바냐서)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1:1-3)
스바냐라는 이름은‘여호와께서 숨겨 주신 자’
혹은‘여호와께서 보배로 여기신 자’라는 의미입니다.
스바냐는 요시야 왕 때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통치 기간 동안 많은 우상들을 제거했지만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는 다시 우상 숭배의 길로 빠지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좇지 않았으며
찾지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6절).
하나님은 이런 유다를 심판하실 때“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창세기 6장의“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유다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것을
땅 위에서 진멸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 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란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습1:14-16)
여호와의 날에 대한 이런 수많은 묘사는
유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보여 주며,
우리의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합니다.
그분의 공의에 의하면,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땅 위의 모든 불의와 범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을 집행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기초(시89:14)이며, 또한 그분은 불의를
지나칠 수 없는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바냐서는 우리에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열국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바로 사랑의 다른 모습임을 보아야 합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4-17)
232. 선지자 나훔(나훔서)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니라.(나1:1-3)
히브리어에서 나훔이라는 말은‘위로’와‘보복’을 의미합니다.
이는 여호와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에게 보복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훔은 큰 성 니느웨를 대상으로 주로 사역하였습니다.
바벨 성과 니느웨 성은 니므롯이 건축한 것으로(창10:8-11)
바벨론과 앗수르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예표인 니므롯은 하나님을 반대한
첫 번째 사람이었으며, 이 두 나라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인류의 강한 예표들이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들을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화있을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나2:13-3:1)
당시 앗수르는 근동지역의 가장 강한 나라이자
가장 강한 침략자였습니다. 그래서 근동의 모든 나라들은
앗수르를 두려워했습니다. 앗수르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했고
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끊임없이 주변의 나라들을 괴롭혔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는 남유다를 공격하면서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왕하18:35)라고
말했고, 앗수르 왕 산헤립도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대하32:17). 이런 그들의 교만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잔혹한 압제로 인해 니느웨는 심판을 받아
폐허더미가 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맙니다.
선지자 나훔이 있기 약 150년 전에 니느웨는
선지자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서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난 이후에도 고의로 배반하고 욕하며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에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는
니느웨에 대한 판결을 선포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니느웨의 멸망은 전적으로 그들의 교만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존하시는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산출되실 한 통로를 소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에 관한한 모든 선지서들은 하나이며, 나훔서는
그것들의 사슬 가운데 하나의 작은 연결고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