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회개한 므낫세(대하33장)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그가 환란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10-13절)
히스기야는 자신의 마음이 교만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회개하여 겸손해지자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므낫세는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간
후에야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므낫세가 범한 악한 행위와
그 백성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을 읽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길이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사55:8).
우리에게는 므낫세의 겸비가 많은 의미가 없지만
여호와께서 이 사건으로 모든 상황을 바꾸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므낫세와 같이 악한 왕은 그 즉시로
무서운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하나님은 그렇게 행하지 않으셨나요?
그것은 므낫세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안에 있는 교만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닥쳐올 때까지 회개하는 것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한 시라도 빨리 겸손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므낫세가 그의 열조와 함께 누우매 그의 궁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
하더니(20-23절)
아몬은 부친 므낫세보다 훨씬 더 많은 범죄를 저질러
자기 부친을 훨씬 능가하는 악인이었습니다.
그는 부친의 악한 것만을 본받고 부친의 겸비는 버렸습니다.
그는 므낫세와는 달리 끝까지 회개치 않아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똑같이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지만 회개의 유무 차이는
두 사람의 인생행로를 바꿔 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행위가 완벽한 자를 찾으시지 않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자를 찾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앗수르를 사용해 므낫세를 징계하셨듯이,
아몬의 신복들을 사용하여 아몬의 악행을 심판하셨습니다.
228. 므낫세의 죄악(왕하21장, 대하33장)
므낫세가 왕이 된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왕하21:1-3)
유다 왕 므낫세는 역대 유다 왕들 중 가장 오랫동안
치리했으나 부친 히스기야와 달리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아 아합이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듯이
그도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왕하21:10-16).
또한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기로 하신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기 위한
단들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을
더럽히는 망령된 행위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모리아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왕하21:10-12)
므낫세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유다로 하여금 하나님께
범죄케 하였습니다. 므낫세의 그 큰 죄악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에 임했던 것과 같은 큰 재앙을
예루살렘과 유다에게도 내리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완전히 황폐케 된 것이
유다 왕들, 특히 므낫세에게는 하나님의 큰 경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의 죄악은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켜 유다 왕국을 엄격하게
다루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왕하21:16)
므낫세는 유다로 우상숭배를 하게 한 죄 외에도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하나님의 거룩한 땅을 피로 물들게 하였습니다.
므낫세의 죄악의 심각성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부르신 백성들과
거룩한 땅 모두를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일들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시대들의 끝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전10:11)
므낫세의 잘못을 아는 것은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227. 미가 선지자(미가서)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1:1-5)
‘미가’의 뜻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입니다.
그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사1:1, 호1:1),
아마도 아모스와도 동시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미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성전에서 몸소 백성의 허물과 죄악에
대해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또한
의로운 분이시므로 죄 있는 자를 결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특히 경고 받고 빛 비춤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인애를
악용하여 죄 가운데 머무는 자들을 더욱 심판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직접 삼층천의 보좌에서 나오셔서 땅의 높은 곳을
거니시며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 심판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분의 발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질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백성의 분열을 상징하고,
예루살렘은 우상숭배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길 뿐 우상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백성의 하나 됨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떠한 분열이라도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나오심)은 상고에, 태초에(영원한 때부터)니라.(5:2)
그분의 ‘나오심’이 천사들에게는 그분의 나오심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분의 나타나심입니다. ‘영원한 때부터’라는 말은
땅의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나오실 것을 예비하고 계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나타나심은 영원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원한 때로부터 삼일하나님은 시간 안으로 나오실 것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영원에서 시간 안으로 나오시기 위한 예비였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영원 안에서 그리스도는 신성 안에 감춰져 계셨지만,
성육신을 통하여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나심으로써
시간 안에서 사람이 되셨습니다(눅2:4-7).
그분은 성육신하여 오셨으며, 계속하여 인생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그리스도 자신의 실재인 최종 완결되신
영의 부어짐을 통과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나오심의 위대한 단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