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이사야 선지자(이사야서)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1:1-3)
이사야는 일생동안 사역하면서 그 이름이 지니고 있는
뜻(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을 간증했습니다.
이방 군대가 유다 왕국을 공격할 때(사7:3-9, 37:6),
히스기야 왕이 어려움을 당할 때(사38:5-6), 매번
하나님의 백성에게 경고한 다음,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할 때 그는 항상‘여호와의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성경 해석가들은 흔히 이사야를 선지자 중에서
가장 큰 선지자라고 칭했습니다. 그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가장 상세하고 광범위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버지(사1:2-3, 63:16, 64:8), 양육하는 어머니(사66:13),
남편(사54:5)이라는 삼중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품고 대하셨음으로
그들을 다루신 것도 심판이 아닌 징계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열국을 다루신 것은 심판의 문제로서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민이
거룩해질 수 있도록 사랑으로 그들을 다루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1:18-20)
하나님이 우리 죄들을 사하심은 죄들의 형벌에서
피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 죄를 씻음은
죄들의 흔적을 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과 같이 희게 한 죄 씻음은 우리의 몸 밖으로
부터 온 것으로서 위치적인 죄의 씻음이고,
양털같이 희게 한 죄 씻음은 내적인 성품에서 나온
것으로서 본질적인 죄의 씻음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의 궁극적인
갈망, 즉 이스라엘의 징계와 열국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오시게 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함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인성 안에서 성육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가 타락된 온 우주를 회복하여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224. 어리석은 히스기야(왕하20:12-21, 사39:1-8)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
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사39:1-2)
이것은 히스기야가 사려 깊거나 주의 깊지 않고
급한 사람이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의 기도는 온전하였고 매우 지혜로웠지만
하나님께 치료를 받고서 방문객들이 바벨론에서
그에게 선물을 가져왔을 때, 그는 어리석게도
방문객들에게 왕궁의 보물들과 무기고와
영토 내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이 유다의 원수라는 것과
언제든지 바벨론 군대가 그를 멸하려고 올 것임을 알고
모든 것을 숨기며 주의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주의하거나 기도하지도 않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래로 그의 선조들이 축적한 부를
보여 주었던 것은 바벨론 왕에게 하나의 유혹이 되어
백년이 지난 후 그들은 와서 이러한 부를 탈취해 갔습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은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당신이 이른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하고 또 이르되“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하니라.(사39:5-8)
원래 바벨론 왕은 태양을 신으로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치료하실 때 그 징조로
해 그림자를 십도나 물러가게 하셨으니 이때가 바로
그가 바벨론 왕에게 여호와께서 천지의 주재이시고
해와 달과 만물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간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결코 성전이나 율법서나 선지자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단지 금은 재물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람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에서
유다 왕국은 사실상 땅 위의 하나님의 왕국이었으므로
히스기야는 자신의 왕국으로 여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자기 왕국을 잃어버린 것은 작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잃어버리신 것은 큰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왕국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심지어 자기의 자녀들조차 관심하지 않고 완전히
자신만을 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23. 히스기야의 눈물(왕하20:1-11, 사38:1-8)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1-3)
히스기야는 자기 수명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눈물을 흘렸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 흘리는 기도를 좋아하시며
우리의 눈물 흘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무릇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서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표명하고, 우리에게 장부의 기개가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린다 해도
그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목석과 같이 마비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사38:4-8)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 주님은 자신을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으로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히스기야에 대한 신뢰가 적었음을
가리킵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생애에 더해진 십오 년은
그 당시 그의 나이가 사십 세쯤 되었으니 더 많이 연장할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 눈에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할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더 오래 살도록 허락하셨다면, 그는 바벨론의 방문객들에게
행한 것보다 하나님의 왕국에 더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때에 아하스의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가
십도(40분) 후진한 것과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긴 날,
그때 태양이 거의 종일토록 멈추었던(수10:12-14) 사건 등
우주에서 발생한 대 이변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다스리심을 입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