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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 없는 예비하심 |
한 영국인이 자기의 50회 생일을 맞이하여 50년 동안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시로 그는 이것을 희사할 방법과 대상을 모색하던 중, 10파운드를 죠지 뮬러가 경영하는 브리스톨 시의 고아원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며칠 후 그는 뮬러의 고아원으로부터 기부금이 접수되었다는 영수증을 받았으며, 연말에는 고아원의 회계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기부금을 우송한 날짜 바로 앞에는 다음과 같은 죠지 뮬러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돈도, 양식도 모두 바닥났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채워주실 것이다.”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죠지 뮬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방법으로 그의 쓸 것을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Listen, my son, to your father's instruction and do not forsake your mother's teaching)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They will be a garland to grace your head and a chain to
adorn your neck) ( 잠언 1장 8절 - 9절)
* 잠언 전체에서 * 아비란 하나님입니다. “아들들아”라고 명명된 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이며,
“내 아들아”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성령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3장 9절에
"또 땅에 있는 그 누구를 여러분의 아버지라 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이시니,
곧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하셨습니다.
스가랴서에 있는 위로와 위안과 격려에 관한 이상은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입니다.
이것은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는
대제사장과 왕 모두로서 하늘에서 사역을 통해 이땅을 다스리고
우리의 상황을 돌보고 계십니다.
특히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중보기도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또한 신성한 제사장직분을 수행하심으로
우리의 "공허, 탄식, 한숨, 썩음, 묶임, 부패, 속박과 같은
죽음의 모든 부산물로 부터 우리를 생명 안에서 "철저히" 구원하십니다.
결국 우리를 변화시켜 아들의 형상과 같게 할 것입니다.
제사장직분은 하나님의 접촉하고 하나님과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같은 형상이 되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인데,
에드막 형제님은 "가장 최고의 높은 일은 하나님을 주입 받으며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을 비추어 내는 것 (고3:18)" 이라고 써 놨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그리스도를 누리는 사람,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 (음식, 의복, 거처),
절대적이고 철저하게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분위기, 흥미),
증거를 지니는 사람,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는 사람" 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건축을 하는 생활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절의 은혜의 보좌에서 은혜가 흘러 나오고,
계시록 22:1절에 하나님과 어린양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이 두구절을 비교해 볼때 밝아졌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만질 때
그 영께서 우리 안에 흐르시는데,
이 생명의 영의 흐름은 때맞추어 얻는 도움이고,
이 도움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견디기 힘든 환경일 지라도
은혜의 보좌를 접촉할 때 우릴 신선하게 하고 적시시어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명수가 우리를 통해 흐르도록 허락한다면
이 "흐름"은 우릴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이끌 것이고,
우리가 그분의 거처, 영적인 집, 거룩하고 왕들인 제사장 체계가 되도록
생명 안에서 건축되게 할 것입니다.
이번 겨울 훈련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이번 훈련 중 가장 기대가 되었던 메시지였습니다.
수년 전 에바그릇의 이상이라는 말씀을 듣고 인상이 깊었었는데,
다시 전진되어 들을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안에 상업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과
상업의 사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형제님깨서 서두에 이 말씀을 끌어 내도록
영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훈련하라고 하였고,
"듣는 사람을 거슬러 대항하지 않고", "함께 공동의 적과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말씀이 해방됐음을 감사하고
우리가 어떻게 수고해서 돈을 벌고, 어떻게 쓰고,
재물을 대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분명졌습니다.
단지 부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부자가 되려는 유혹과 욕심에 대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상업의 악과 사악함" 에 대해 말할 때,
형제님은 "순상업"은 정치보다 더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순상업은 돈을 사용하여 돈을 버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산출하지 않고 어떤 수고도 하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그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술을 터득해서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농사로 산출물을 파는 것,
바울같이 천막을 만들어 파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을 예측하여 그저 미리 사고 5배 비싸게 팔아
무역 그 자체로 돈을 가능한 많이 뺏어 와,
인류 사회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상업을 교란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런 상업은 이제 계시록18장에서 바빌론과 함께 무너질 것이고
이때 두반응하는 무리,
애통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하는 사람의 일부가 될 것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상업의 악함에서 철저히 구출되어야 합니다.
"상업적인 생각" 에 대해 교통할 때 부끄러움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단지 베드로에게 이런 관념이 있는가?
눅19장을 사탄의 상업적인 원칙에 따르면
당연히 늦게 온사람은 적에 받아야 하고
일찍 온사람은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베드로의 이런 상업적 생각은 주님을 만났을 때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가운데 이런저런 헌신을 하고 과정을 통과하고 봉사를 했다고
그에 따른 보상을 주님께 은연중
내가 무엇을 얻게 되겠습니까?" 라고 기대하고요구하는 것 자체가 상업적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왕국 보상을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왕국은 판매용이 아닙니다." 왕국은 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찬355장' 오! 어떤 댓가 들어도 희생이 아닐세!!!
대신 우린 그리스도 더할 수 없는 보내로움과
교회의 지극히 큰 가치를 귀히 여기는 "신성한 가치관" 을 가질수 있기 원합니다.
왜? 예언과 관련하여 사람의 영이 필요한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 시작되는
슥12:1 에 사람의 영이 나와야 하는가? 이것은 예언의 본성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이나 견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말하고 있는 분이 영이십니다.
그리고 영을 가지고 접근해야 영적인 것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훈련집회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test를 할 때
영을 사용하는 것이 훈련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분위기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에 의해서만 보이지 않는 장면들을 이해할 수 있고,
영은 활동적이고 움직이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번집회에서 다니엘과 스가랴서를 영 안에서 대하지 않았다면
다만 이야기에 그쳤을 것입니다.
스가랴서에 여러 방면으로 계시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려야 합니다.지금 인간사회에서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가?
1장~6장은 위로를 위한 이상,
7장~12장은 격려를 위한 예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다만 신언자가 아닌 동반자로 동정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우리를 소유하기 위해 측량하는 줄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를 만지면 그분의 눈동자를 만지는 것으로"
아침부흥시간에 자주 휘파람을 부시는 부르고 모으시는 산비둘기로"
"은총과 묶는 끈들로서 목양하시는 목자로"...
지금 우리도 어떤 상황이든지 이런 방면의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하기 원합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표시로서,
"1. 불법: 테러,사기 2. 사탄의 능력:락뮤직, 힙합, 사탄의 능력과 소통하고 있음
3.박해:종교, 정부, 거룩한생활을 핍박
4. 진리를 던져버림 : 절대주의, 상대주의,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것
5. 인간지식의 증가: 기술적으로 우주과학등 폭발적
6. 마멸: 약, 염려, 자살등 우리를 약한 불로 끓여 버림
7. 혼을 파는 것: 혼적능력, 정신세계, 심리적인 힘으로 혼을 통제, 사로잡음.
그리고 세계정세는 점점 나빠 질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말씀 드려야 합니다.
"주님, 지금은 시대를 완결할 때입니다.
주님, 이러한 때에 당신을 향한 저의 사랑을 다시 불붙여 주소서."
이번 메시지를 통해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등잔대로서 그리스도의 재생산이고 그영의 복사판입니다.
이 용어는 익히 알고 있지만,
출애굽기와 스가랴서와 계시록에서
금등잔대에 대한 진리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보면,
성막에 있는 등잔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스가랴서의 등잔대는 일곱배로 강화되신 생명주시는 영,
계시록의 등잔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앞의 등잔대의 계시가 발전되어 그리스도의 재생산이요
그 영의 복사판인 것입니다.
"이상"이 우리를 죽이고 심판하고 보존한다고 합니다.
교회가 그 영의 복사판으로 금등잔대라는 정도까지 "이상"을 본다면,
우리의 육체를 사용하기를 두려워 할 것입니다.
육체를 처리하기 위해서,영적으로 승리하려고 하고,
그 영으로 죽음에 넣는 실행을 하는 것보다,
교회에 대한 이상이 빛날 때 점검받고 육체를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이상이 빛을 비추어 그런 말과 행동과 태도를 심판할 것입니다.
무엇이 우릴 교회로 만듭니까?
우리는 그영을 계속 마시어 몸 안에서 쏟아 나오게 해야 합니다.
영이 많으면 교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교회라고 말할 때,
우리가 완전히 그 영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등잔대의 일곱눈은 두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심판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
어디서 왔냐? 무엇을 하고 있냐? 그 태도는 무엇이냐? 무슨말을 하고 있느냐?"
우리의 죄악됨, 사상, 이상한 감정, 야망, 자기 높임,
감추어져 있는 것 들을 감찰하시고 살피십니다.
때론 우린 그 눈을 피하고 싶지만
"변화" 되기 위해서 기도안에서 주님께 완전히 열고,
주님의 등이 혼의 모든 방을 살펴서 비추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일곱 눈의 또 다른 주입하는 기능을 체험합니다.
'열린 사람이 변화를 가장 많이 체험하는 사람" 이고,
또한 빛이 희미한 등잔대에
기름을 공급하는 기름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님께서 서두에서 주의 회복의 장래에 대해
Lee형제님의 염려에 대해 무거운 부담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메시지가 우리에게 의미가 되지않고,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 우릴 통제하는 이상,
생명이 되지 않는 다면 우린 기독교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빗나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중심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간교하게 주의 회복의 교회들 안에 들어와 영향을 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수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파수꾼이 되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회복의 본질과 본성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을 성취하도록,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를 이루도록, 우리가 건축물의 일부가 되도록...
성경전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현재시대, 은혜시대, 교회시대의 특징은 건축입니다.
하나님의 건축물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단체적인 표현,
하나님의 확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건축을 추구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그분 자신을 사람과 연합시키는 것이고,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 결혼, 그 직장, 그 상황이나,
그 교회생활, 그 봉사나 이것이 그분자신을 우리와 연합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표현하려면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푸둘이 큰 강아지 흉내를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혼을 적셔서 비추어 나가야 합니다.
"주님, 나와 연합되십시오. 저를 단체적인 표현의 일부가 되게 하소서!!!
슥 3:9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돌에 새길것을 새기시는 것은
구속과 구원과 건축을 위해
돌이신 그리스도에게 공들여 일하신 것임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새겨지며 잘려지고 계셨고,
이 돌이 일곱눈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곱눈의 옮겨부음을 통하여, 아가서에서 술람미가 되게 하고,
요한복음에서 많은 밀알의 재생산이 되게하고,
로마서에서 몸의 지체들이 되게 하고,
히브리서에서 같은 형상으로 형태지우고,
계시록에서 NJ의벽옥이 되게 하게합니다.
주여! 우리를 몸을 위해 신화되게 하소서!
신성한 계시의 고봉을 더 만지게 하소서!
우리에게
다니엘이 더 익숙하지만 스가랴서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다고 합니다.
14장으로 되어 있는 스가랴서는 66장으로 되어 있는 이사야서보다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압축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학개의 신언으로
강화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상을 보고 체험하고 누려서 채워질필요가 있으므로
스가랴의 신언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성전입니다.
사탄은 거듭거듭 성전을 파괴하려하고 있습니다.
이를위해 그리스도를 다른것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회복 안에서도 실제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으뜸과 중심과 전부가 되는것이 낮아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관념, 교리, 가르침으로, 다른방식의 실행, 다양한 활동과 운동,
조직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누리는데서 빗나가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활 섬세한 방면까지 채워지고
우리의 목표요 전부요 일이 되기원합니다.
스가랴는 신언을 통해 성전건축의 일을 계속진행하도록
격려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그의 사역은 항상 주님을 접촉하는 제사장 직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나무들 사이에 서있는 한사람인
그리스도의 이상에 대한 것이 었습니다.
이것은 실망하고 더 이상내려갈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골짜기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그들가운데 함께 서계심을 말하고 있어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12:3).
이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
우리는 살아 있고 신선한 메시지이신 현재의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합니다.
별들은 살아 있는 별, 현재의, 살아있는, 실재의,
귀한 별이신 그리스도의 복사판들이 되어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어 사람들을 잘못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이들입니다.
빛나는 별들이 되기 위한 두가지 길은 비추는 등불같은 예언의 말씀이고,
우리를 생생히 살아 있도록 하고 강렬하게 빛나게 한는 일곱 영 입니다.
그래서 "지금 겨울훈련에서 주시는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하고
샛별이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시게 해야 합니다.
단1장~6장의 6사례에서 우리는 이기는 이들의 승리를 볼 수 있는데,
주님의 회복의 원칙은 "다니엘과 세 친구" 가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사탄의 책략을 이긴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우상들과 하나로 만드는 이름으로 바꾸고
그들을 유혹하였지만, 먼저 귀신들에게 속한 음식 먹기를 거절함으로 승리하였고,
우상숭배의 유혹을 이기며 승리하였고,
하나님의 경배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간교함을 이김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승리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나무, 감추인 만나, 잔치인 그리스도를 취함으로,
또한 자기 유익, 높임, 영광, 아름다움, 힘으로 하는 자아에서
하나님을 높임으로써,
다니엘 같이 하나님의 권익을 위해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습관을 세움으로
승리하는 이기는 이의 대열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진정으로 순교의 영을 가졌다고 합니다.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주님 편에 서서 우상 숭배에 맞섰는데
만약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전환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풀무불에서 건져주시기를 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고통 받고 박해를 받는 동반자로서
세명의 이기는 이들과 함께 하시고
고통의 상황을 즐거운 장소로 만드시는 넷째 사람이신
자격과 역량이 있으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이런 순교의 영이 있는지,
그리고 혹 고통 받는 상황에 있다면 그곳에서 안식하며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누릴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다니엘이 본 통치권에 대한 이상과
'사람의아들'께서 왕국을 받으려 오시는 것에 대한 이상을 보기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보좌"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의와 거룩을 범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승천후의 광경을 잘 묘사해주는
단7장13~14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를 통해
심판과 권력과 권위와 통치권과 왕국이
사람의 아들이신 분께 있다는 것을 보기원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물질적인 장면 배후에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오기 위해 영적전쟁이 필요한데,
마6:9-10 에서 한이름은 모욕받고 있고,
어둠의 사탄적인 왕국과 하나님 왕국 간의 싸움, 세의지가 전쟁의 근거이고,
우리의 의지가 전쟁을 결정하므로
교회의 책임은 이 땅에서 전쟁을 계속수행하고 승리를 계속유지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길"은 우리가 완전히 다스림아래 있어야하며,
승리를 선포하고 유지하며,
몸 안에서, 힘을 얻어 강하게되어, 서서,
그영의 검인 말씀을 붙잡고, 영 안에서 기도하며,
어린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씀을 선포하는것을 잊지말고
염려하지 말고 혼생명을 돌아보지말고 "싸워야" 합니다.
단9:24~27절 까지의 칠십이레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존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이 예언들이 믿는이들의 주제가 되었지만
"왜 예언이 중요한가? " 라는질문이 새로왔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예언 안에서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고,
그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지막에 그사람을 보기위해 앞에 시간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예언의 말씀을 다만 호기심으로, 지식으로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칠십이레는 이 비밀의 시대를 알기 위한
하나의 척추와 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기간의 간격" 이 비밀의 시대이고,
이 간격동안에 주님은 몸과 신부를 은밀하게 비밀스럽게 건축하고 계십니다.
대환난과 휴거와 적그리스도를 포함한 도표가 분명해졌고 새로워졌으니
겨울훈련 기대해도 좋습니다.
지금 이 비밀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것을 확증해줌으로 볼수없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게합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우리로 예언의 말씀에 대한 체험을 회복하기를 요구합니다.
세상조류는 우리로 물질적인 보이는 시대로 돌아가기를 조장하지만
우린 과부로서 체험적으로 경고받고 다시오심을 향하여
합당한 태도로 준비되어 기다리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다니엘서의 통제하는 이상인 거대한 인간정부에 대한 이상과
그 운명을 체험적으로 본다면 필사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정부를 산산히 부서뜨리는 돌의 일부가 되고자 할 것입니다.
돌이 커지고 증가되어 온 땅을 가득채우기 위해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채우셔야합니다.
주님! 채우소서 온 집회 내내 채우소서~ 모든 시간에 나를 채우소서.
우리는 인간정부에 반역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그 근원, 본질을 알아야합니다.
인간정부는 창세기10장 니므롯부터 시작하여
계시록19장 적그리스도의 다스림아래 부흥된 로마제국까지
"하나님께 반역하고, 사람을 높이고, 우상을 숭배하게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범주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운데
아브라함같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메시지3에서 떠오르는 말씀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나를 채우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깨어있고 준비되게하소서~.
주님! 낙심하거나 뒤로 물러나거나 약해지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신실하게 남아있게 하소서.
'항상' 주님을 누리고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어서 오십시오"
우리는 좋은교회그리스도인으로 좋은 교회생활을 위해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의회복의 우리에게 주신 위임은 은혜시대인 교회시대를
왕국시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특별한때로, 특별한일을행하는 특별한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사용하신사람의본입니다.
타락한인류가운데서 하나님의표현은허물어졌고 권위는거절되었지만
주의회복에서 우리는 주님께 으뜸의 위치를드리고,
하나를회복하고,
모든지체들의기능이 회복되고,
하나님께 보배로운사람들이 되어 본을 따르는사람들이되기 원합니다.
다니엘에게는 함께 헌신하고 분별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몸 안에서 함께 격려해서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짝'이 필요합니다.
모세와아론, 바울과소스데네, 다섯명의신언자와교사같은 동반자를 주실때
함께섞일수 있는 사람이 되어
안디바같이 반증거로 서있는사람들이 되기원합니다.
이번 메시지에서 가장인상 깊은 것은 다니엘은 규칙적으로
하나님의말씀을 읽는사람이었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갈망을 자신과 연결시켰다는것입니다.
에레미야서를 읽고 포로기간을 알고 즉시 금식하며 기도했고,
레위기를 읽은후에는더 이상더러운음식을 먹을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성경이 우리생활에 영향을 끼쳐서 말씀에서 갈망을 발견할때마다
"즉시"우리자신을 그 갈망에 연결시키고
통제받아야 합니다.
이럴때 우리가 시대적인 도구가 될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온 부담의 방면들을 보고 알고 배우는
집회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이 우주가 하늘들의 하나님에 의한 하늘들의 다스림아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행정안에서 그분의 의도는 그리스도를 모든것에서 으뜸이 되시는 것이고,
이 의도를 성취하시도록 그분께 열고 사랑하고 분배하시도록
개인적인 우주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으뜸이 되시도록 단순히 허락해드리고
최고의 협력해드려야합니다.
그래서 이집회가 끝날때 이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나타나시도록
그분께 집중하고 하나되기 원합니다.
단4:35에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자기 뜻대로 행하시고 아무도 네가무엇을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없다고하며 느부갓네살은 아무것도아니며,
자신의뜻대로 왕국을누구에든지주시는 분임을알게하셨습니다(17절).
우리가 하늘들의 다스림의 원칙을 안다면
"나쁘게말하지않고, 복종,보호,공급,빛비춤과축복의생활" 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이것을알도록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다니엘같이 중학교때부터 끝까지 이를 위해 살도록 말입니다.
저도 이번집회를통해더 알기원합니다.
우리는 다니엘서에 계시된 하나님의경륜을 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보지만 가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즉 경륜안에서 사는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움직임은 갖지만 그리스도께서 중심과전부가 아니고
또 우리안에 야고보같이 혼합 안에서 기도한다면 빗나간 것이고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서 우린 보기도하고 또한 가고 사는 자 들이 되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