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5/1075 ] |
주님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시는 그 영이심 | |
성경말씀 | |
고후3:17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이신 그 영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골1:27下 ...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 |
오늘의 만나 | |
| |
하나님의 말씀 이만나 / Copyright ⓒ 2011 emanna.or.kr All Right Reserved. |
우리가 그리스도를 밀과 보리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석류로서 체험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올리브나무로 체험할 것이다.
우리는 기름으로 충만할 것이고, 올리브나무가 될 것이다.(신 8:8)
생명으로 충만한 석류. 생명이 풍부한 그러한 석류. 우리는 분명히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실패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약함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현재 상태도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은 하나님께 가능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모두가 다 석류가 될 것입니다.
생명으로 충만한 석류가 될 것입니다.
생명이 풍부한 석류가 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 영으로 충만한 올리브나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가 올리브나무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모든 교회들에게는 올리브나무가 필요합니다.
올리브는 자매들에게 아주 좋은 이름이죠.
아마 중간이름이 나무라면 여기에 올리브를 붙여서 이 올리브나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올리브나무라는 이러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의 봉사에 있어서 올리브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올리브나무가 되셔야 합니다.
동역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정말 올리브나무가 되고 있습니다.
제가 형제님들과 함께 할 때마다 영 안에서 이러한 존귀함이 넘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여, 저를 올리브나무가 되게 하소서.
<!--StartFragment-->우리는 여기의 올리브나무의 땅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올리브나무로서 누리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지들인 작은 올리브나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큰 기쁨의 기름으로 기름 부음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름 부음 받으신 분께 붙여졌습니다.
이제 그분이 우리를 기름 바르고 있습니다.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페인트칠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삼일 하나님으로 부드럽게 페인트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온 땅을 올리브나무로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를 핵심 요점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삼일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들, 영이십니다.
이 셋은 동시에 존재하며 상호 내주하십니다.
아버지는 감추어 계신 분이시오, 아들은 하나님의 나타나심 곧 하나님의 표현이십니다.
또한 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분이십니다.
이제 그분은 하늘에서의 사역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영은 우리의 체험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체험은 사실 그 영에 대한 체험입니다.
이 영은 바로 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용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가나안 땅의 예표를 알지 모릅니다.
‘아, 여기에 좋은 땅이 있다.
이것은 밀의 땅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다.
보리의 땅이다. 역시 그리스도다.
이러한 무화과와 포도의 땅이다. 다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한 분이시다.
오, 얼마나 놀라운 그리스도가 계시는가?’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여전히 객관적인 항목들입니다.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마치 식탁 위에 놓인 음식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의 일부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영,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 그리스도를 우리의 체험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시간이 있다면, 이 구절에서 두 구절과 각주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갈 3:13-14입니다.
여기에 각주가 있는데, 14절만 지금 읽겠습니다. 그 각주에 그 영에 관한 각주의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들에게 이르게 하고,
그 약속하신 그 영을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좋은 땅이었습니다.
좋은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입니다.
이제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 영이십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곧 우리에게 실재화 된 바로 좋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좋은 땅이 있습니다. 여기에 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육체가 되심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이 예표의 성취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포함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체험합니까?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셨고,
이제 모든 것을 포함하신 복합되신 생명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이 땅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이제 그 영이시오, 그러므로 그 영이 이 좋은 땅의 실재인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그 영에 대한 이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신 8장에 보면, 이 땅에서는 우리에게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 모든 것이 다 예표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이 예표를 성취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사람 그리스도가 좋은 땅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그분을 그 영으로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 영이십니다.
이제 그 영이 우리의 영 안에 오셨습니다.
이제 그 영은 좋은 땅으로서 그리스도의 실재이시며, 이제 그 영은 우리의 영과 연합되셨습니다.
이것은 좋은 땅이 이제 우리의 영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쇠입니다. 이 모든 체험은 영 안에서, 영을 통해,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영은 실재의 영이시오, 이 영은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시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한 분이시며, 그분은 바로 좋은 땅이요,
그러나 이제 우리가 그 좋은 땅을 체험할 때, 우리는 그 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함이 이제 그 영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이 그 영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도달하시고, 성취하신 모든 것이 그 영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물질적인 방면은 좋은 땅이었으며,
그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리스도는 결국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주시는 영으로 실재화 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영의 복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복과 일치한다.
이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단락을 읽겠습니다.
사실상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체험 가운데 실재화 되신 분으로서 좋은 땅이시다.
이 좋은 땅은 다만 객관적인 그리스도가 아니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조절해야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 그분 자신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죠.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영역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좋은 땅이시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체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물이 컵 안에 있다면 저는 체험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체험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이제 지금 이 물이 제가 주관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좋은 땅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객관적이시죠.
우리가 이제 이분을 우리의 땅으로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우리의 체험이 되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위해 그분은 모든 것을 포함한 영이 되셔야만 합니다.
이 좋은 땅은 우리가 누리기 위한 하나님의 풍성의 공급이시다.
이제 여러분 모두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제 좋은 땅이 어디에 있습니까?”이제 좋은 땅은 우리 안에 들어오신, 우리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것을 인식할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이상으로 계시를 가질 수 있고, 이상으로 체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1954년 8월에 그리스도는 내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에게 인식은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후에야 제게 영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영이 나의 영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죠. 바로 그때 저의 관점은 여전히 좁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갈 3:14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복이 하나의 예표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예표의 성취이십니다. 또한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재화요 실재이십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실재화이신 그 영이 우리의 체험에서 볼 때 그 좋은 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한 가지를 볼 수 있다면, 우리의 봉사, 우리의 생활이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신명기에서 말하기는 이 땅에서는 여러분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 영 안에서 우리에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머물러야 하고,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서 그 영께서 우리의 영과 연합되셔서 그리스도의 실재화가 되심으로
우리의 체험 안에서 좋은 땅이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체험 안에서 좋은 땅, 그 영이십니다.
이 땅은 바로 시내의 땅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땅은 샘의 땅이다.
원천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어디에 가나 물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생수가 필요합니까? 여기에 원천이 있다.
여기에 강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삼일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시내와 샘과 원천의 체험 안에서 섬겨야만 합니다.
<요즘은 껍질없이 곱게 갈아놓은것 방앗간에서 살수 있어서 편리해요 >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넣으면 고소하고 맛은 있는 반면 쫄깃한 맛이 떨어지더라구요 ~
골3:16상上 온갖 지혜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 ...
요6:63下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분깃이요,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영광이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만질 수 있습니까?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라고 말합니다.
여기의 ‘거하다(dwell=거주하다)’는 헬라어에서 ‘거하다(abide)'보다 더 견고한 단어입니다.
그 어근이 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 그분을 누리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추상적이고, 비밀하며, 만질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질 수 있고, 견고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주는 영으로서 성경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양식으로 체현되십니다.
여러분은 이제 매일 말씀 안에 들어가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반드시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을 그냥 읽지만 말고, 당신의 영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당신 안에 거처를 정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체현되시고 말씀이 당신 안에 체현되심으로써 당신이 그분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소화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분을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으로 적셔질 때 곧 그분 자신으로 적셔질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치매예방 10계명*♧
치매만큼 잔인한 병은 없다.
겉은 멀쩡한데
기억과 성격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방만한 좋은 치료제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여기 치매 예방 10계명을 소개합니다.
▶첫째,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자.
교통사고나 낙상 같은 충격은 물론 권투의 잔 펀치나 박치기
그리고 족구나 축구 시합 때 헤딩과 같은
작은 충격이 만성적으로 가해져도 해롭다.
가족 중 치매환자가 있는 경우 더욱 조심해야 한다.
레이건도 퇴임 후 낙마로 인해 머리를 다친 뒤 치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그의 친형과 모친이 모두 치매로 숨진 가족력이 있었다.
▶둘째, 손을 많이 움직이자.
손은 제2의 뇌이다.
수저나 포크보다는 젓가락 사용이나
종이 학 접기 등 무엇이든 좋다.
혹자는 말하기를 손가락을 사용하는데는
2개의 근육신경이 필요한 반면 젓가락을
사용하는데는
60여 개의 근육신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젓가락 문화를 가진 민족이 그렇지
않은 민족보다 머리가 뛰어나다고 한다.
그리고 손바닥을 치거나 박수를 치는 것이 좋다.
손바닥은 인체의 축소판이다.
손바닥을 치면 뇌와 함께 전신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혈액 순환이 잘 된다.
▶셋째, 부정적인 생각 대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부정적인 생각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므로
기억회로를 닫는 반면,
긍정적인 생각은 도파민, 엔돌핀 등을 분비하므로
기억회로를 열어 두뇌를 활성화시킨다.
▶넷째, 발품을 많이 팔자.
사람의 기억력이 가장 좋을 때는 걸을 때라고 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산책에 대한 강의를 즐겨한 것 같다.
걷기 혹은 산책은 뇌혈관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명언을 기억하자
▶다섯째, 물을 자주 마시자
우리 인체의 60∼70퍼센트는 물로 구성되어 있다.
두뇌의 약 85퍼센트가 물이다.
그러므로 뇌의 주 에너지원 인 물을 적당히 공급하면
뇌의 혈액순화을 돕는다.
물은 반드시 공복에 마실 것을 명심하자.
▶여섯째, 담배와 중독성 물질을 피하자.
술, 담배, 등은 전두엽을 크게 손상시킨다.
특히 흡연은 기억중추 마비의 주범이다.
▶일곱째, 기름진 음식이나 육류를 피하자.
콜레스테롤이나 지방은
뇌혈관 장애를 가져오므로
치매의 원인이 된다.
육식이나 지방 대신 올리브유를 사용하거나 채식을 한다.
▶여덟째, 과식을 피하자.
위가 막히면 뇌가 막힌다.
과식은 두뇌의 혈액순환을 막아 치매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소식(小食)하자.
소식은 건강과 행복의 비결이다.
▶아홉째, 스트레스를 피하자.
트레스는 질병 원인 1순위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치매 원인 1순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는 No,
스마일은 Yes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
▶열째, 성경의 말씀을 암송하라.
치매의 가장 큰 예방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의 샘이 솟아날 것이다.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
메시지 3(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땅
고린도후서 1장 24절에서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성경 구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섬기는 것은 여러분이 기쁨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를 포도나무로서 누리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다른 사람들은 그들로 인하여 행복해 진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은 파선되는 상황 가운데 있었다. 그 배 안에는 25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이 거센 바람이 계속 몰아치는 그 갑판에 서서 “기운을 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고, 배만 잃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바울은 두려움과 소망이 없는 이들에게 포도주를 가져 왔다. 바울과 함께 했던 그들 모두는 폭풍우가 진행되는 과정에 기운이 북돋아졌다.
그런데 내가 아주 슬픈 사실을 말하겠다. 주님의 빛이 우리를 관통하시기 원한다. 부정적인 면에서, 우리가 봉사 가운데 있을 때, 어떤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들이 있는 곳마다 논쟁이 벌어지고, 서로 말다툼이 있고, 시비가 있다. 서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좌절감을 맛본다. 그것은 바로 봉사 가운데 나타난 강력한 자아의 표현이다. 어느 날, 이 형제가 혹은 그 자매가 그 자리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너무나 기쁘다는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이 없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 강력한 자아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형제나 자매의 자아는 우리의 기쁨을 모두 말살시킨다. 긍정적인 면에서, 어떤 형제나 어떤 자매가 그곳에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아주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오, 이 사람이 우리
와 함께 있었을 때는 우리가 주님을 참 잘 누렸는데..” 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딕 테일러 형제님과 같이 귀한 형제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형제님이 여기 계시면, 모두 찬송하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정말 주님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젠가 딕 형제님에게 “내가 만약 주님을 위해서 감옥에 갇힌다면, 형제님과 같은 방에 갇히고 싶습니다. 형제님께서 제가 주님을 누리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은 아주 커다란 포도나무이시다. 곧, 희생하는 삶을 사시는 포도나무이시다. 새 포도주를 산출하시는 분이시다.
영어에는 아주 흔하지 않는 단어가 있는데, ‘kill joy’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누림을 죽인다는 의미이다. 성도들이 주님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죽이는 형제가 나타나서 “여러분의 누림은 너무나 얕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누림 가운데 십자가의 고통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성령의 징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 때 모든 사람의 기쁨이 죽임을 당한다. 사실 그 사람은 십자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사실 성령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다. 그가 성령의 징계를 받았다면, 포도주로 충만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좋은 포도주를 공급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봉사에 있어서 커다란 효과이다. 주님은 참포도나무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가지들이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일부로서 이러한 종류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에게서 포도주가 흘러나올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은 타고난 방식이나 천연적인 방식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기쁘게 하는 사람은 기질적으로 즐거워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질적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은 항상 소리 내어 웃는다. 지진이 일어나도 항상 웃는다. 쓰나미가 몰려오는 데도 모든 것에 있어서 웃어버린다. 나는 그것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영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이다. 나는 그 영의 열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주님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들에게 “오늘 네가 나를 기쁘게 했구나!”라고 말씀하실 때 기쁘지 않겠는가? 주님이 “너 때문에 내가 너무나 기쁘단다. 자, 이제 너는 잠을 자도 좋다. 네가 오늘 나를 기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잠자리에 들어도 좋다. 그리고 너는 다른 많은 성도들을 기쁘게 하는 자였구나!” 라고 칭찬하신다면 누가 주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주님을 접촉한다면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힘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만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고, 포도주를 산출할 수 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교회들을 방문했다. 그 기간 동안에 내가 본 것은 그 교회가 그렇게 기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마 또 갈 수 있겠지만 여전히 기쁜 곳이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섬길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을 책망해야 하는가? 내가 그들을 권고해야 하는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포도나무인 내가 필요하다. 그들을 기쁘게 하는 뭔가를 산출해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열려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열려 있다. 그리고 그들이 포도주를 누리게 된다. 그럴 때 그들의 누림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기쁘게 될 것이다. 멀지 않아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그 마음 상하게 했던 것을 모두 용서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이 포도주가 나에게 모두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나는 교회 안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모든 인도하는 자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모든 동역자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교회들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섬기는 것이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접촉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희생하시는 포도나무로 체험할 수 있다. 그럴 때 포도주가 산출되고 우리는 누리게 된다. 또 그 포도주는 우리에게서 흘러 다른 사람을 누리게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집회소를 거만하게 걸어다니지 않을 것이다. 어떤 형제가 집회소를 걸어 들어오면서 “자, 포도나무가 왔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활기 있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아주 거대한 자아이다. 교회를 자기 자아를 진열하는 장소로 만들어 버린다.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를 안다면 그것 자체가 실재로서 포도주를 산출하게 된다. 누가 이 말씀에 반응하여 올 해 말까지 기꺼이 한국 땅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서 포도주를 산출할 수 있는가? 자신의 교회 안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가족들 가운데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 가장 탁월한 가정생활의 열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 열쇠는 아내이자 엄마인 그 자매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가정의 분위기를 바꿔놓을 것이다. 그럴 때 자녀들은 안전을 느끼게 된다. 가정에 행복한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포도나무가 되자. 워치만 니 형제님은 포도나무이셨다. 워치만 니 형제님은 우리 모두가 포도나무가 되자라는 찬송가를 지었다. 나는 그 찬송가에 나 자신이 완전히 일치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조만간에 우리는 포도나무가 될 것이다. 이름이 영어로 vine(포도나무)이라는 자매가 있다면, 얼마나 사랑스런 이름인가? 우리 모두가 포도나무, vine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이름은 장 포도나무, 박 포도나무, 이 포도나무, you 포도나무, me 포도나무가 어떠한가?
나는 형제자매님들을 점검해 보겠다. 이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주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나는 이 말씀을 받았다. 이제 여러분이 받을 기회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은 이기적인 생명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긴다면, 우리는 봉사에 있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떤 형제님은 “아닙니다. 저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저는 훈련 안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일 안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제님은 그렇게 자신의 이기적인 생명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이기적인 생명으로 섬기다가 어느 순간 자아가 모든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자매들이라면 울 것이다. 형제라면 화를 낼 것이다. 다른 형제님들이 자신의 그 생각을 이해 못할 때는 그것을 속에서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 안에서는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희생하는 생명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포도나무이다. 오직 그분의 생명만이 희생하는 생명이다. 제발 여러분의 그 타고난 생명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려고 하지 말라. 여러분이 그렇게 하려한다면, 여러분의 자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 이르면 반응을 하게 된다. 그 형제는 “나는 모든 것을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만큼 이뤘다. 나는 이만큼 섬겼다. 나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 때 그 말은 모든 것을 폭로시켜 버리는 것이다. 여러분이 희생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이기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희생하는 생명이다.
포도나무가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땅에서 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포도나무의 땅에 살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희생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단체적인 희생하는 삶의 표현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아마 사도행전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 부분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타났다. 그럴 때 그 영께서 그들을 제거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이 방면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주님을 포도나무로서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그분은 우리 안에 사신다. 희생하시는 분으로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 그분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계신다고 단정할 수 있다. 우리에겐 어떤 에너지도 어떤 역량도 없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안에서 힘을 주신다. 우리에게 포도주를 주신다. 이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그분과 하나 된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희생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힘을 얻는, 힘을 부여받는 가지들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포도주로서 섬기고 그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봉사이다.
우리는 주님을 접촉하여 그분의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주여, 저는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를 하지 않을 지라도 다만 그분을 접촉할 수 있다. 그러한 접촉은 우리로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주님은 “너는 나를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할 필요가 있다.” “너는 지금까지 시내의 땅을 누려왔다. 이제 너로 하여금 밀이 되도록 하겠다. 또는 너는 보리의 땅을 누려왔구나. 이제 나를 포도나무로 알 필요가 있다.” “너는 이 예표를 모두 알고 있다. 이제 너는 예표를 모두 알고 있지만, 나를 알 필요가 있다. 희생하는 생명인 나를 체험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내가 너에게 힘을 주고 싶다. 너를 강화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시며 더 전진된 방식으로 각 사람을 인도 하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또 다른 생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님을 단순하게 접촉할 때, 이 포도나무로부터 산출된 포도주는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게 한다. 우리는 힘을 얻게 된다. 즉, 우리 안에서 운행하고 있는 능력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무런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희생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를 악 물거나 결심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노력 없이 이루어진다. 우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포도주가 흘러나온다. 어떤 의도도 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 안에 어느 정도의 포도주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영께서 근심한다면 우리는 결코 기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영께서 기뻐하시면 좋은 땅이신 그 영은 포도나무의 땅이 된다. 이제 우리는 그분과 하나 되고, 그분께 힘을 얻고, 그분의 포도주를 생산하여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다른 사람도 기뻐한다. 우리 자신도 기뻐한다. 심지어 우리의 고양이와 강아지들도 기뻐할 것이다. 중심적인 요점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땅은 무화과나무의 땅이다. 달콤함과 좋은 열매를 나타내는 무화과나무는 우리의 공급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달콤함과 만족케 함을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밀과 보리와 포도나무로 체험하고 누릴수록 우리는 우리의 공급이신 그리스도의 달콤함과 만족케 함을 더욱더 체험하고 누릴 것이다. 무화과나무이신 그리스도의 내적인 달콤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무화과나무를 체험할 때, 우리는 “주여, 저는 완전히 만족합니다. 주여, 저는 당신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님, 어떤 것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여, 어떤 것도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너무나 만족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화과나무이다.
여러분의 집은 어떠한가? 남편과 아내가 함께, 또 자녀들과 고양이나 강아지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여러분의 집에 갈 때, 무화과를 볼 수 있겠는가? 그 무화과나무가 자라나는 것을 볼 수 가 있겠는가? 남편과 아내에게 모두 책임이 있다. 만약 자매가 그리스도를 무화과나무로 체험한다면, 그 남편은 정말 복된 사람이다. 그 자매는 틀림없이 남편을 도와서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게 할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 이것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하겠다. 또한 그 자매는 남편을 도와서 십자가를 체험하도록 할 수 있다. 그 남편을 도와서 계속해서 십자가를 체험하도록 도울 수 있다. 결국 남편은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자매들은 어떠한 달콤함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들이 고통을 당한다. 그 자매는 모든 죽임을 가져온다. 모든 반대되는 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자매는 깊은 영에서 자신에게 더 이상 무화과나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랑스런 아내가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형제님들! 그것이 여러분의 상황인가? 그러면 여러분이 자매님에게 무화과나무가 되면 된다. 여러분의 가정생활에서 어떠한 만족을 기대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아주 많은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더 이상의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의 그런 만족을 기대하지 말라. 여러분이 앞장서서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 말라. 다만 주님께 돌이킨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무화과나무가 되실 것이다. 주님이 공급을 하실 것이고, 우리를 만족하게 하실 것이다. 주님은 실망스러운 상황이나 우리를 좌절시키는 상황 속에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실 것이다. 여러분의 결혼생활이 감옥일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감옥을 지키는 간수이고, 이것이 주님의 안배이다. 여러분의 감옥 안에서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무화과나무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무화과를 산출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이 우리가 그 무화과를 체험한 것에서 공급을 얻게 될 것이다.
형제자매님들! 나는 여러분들이 체험하고 누린 그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땅이 되시기 바란다. (2011년 6월 전국 봉사자 온전케하는 훈련 메시지 3 R. K 교통 중에서)
유럽 소식(2011.7월)
사역의 확산
지난 10년 이상 그 사역을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 확산했다. 우리는 주로 레마 무료 대량 배포, 라디오 방송, 사역 출판물 판매를 통해 확산했다. 이것은 수천의 추구하는 자들을 접촉하게 했고 상당한 수가 교회생활에 더해지게 했다. 1999년 이래 유럽에서의 증가는 사역의 확산에서 나온 결과이다.
유럽의 추구하는 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최근에 런던 중심에 2층건물을 구입했다. 이 건물은 서점과 카페로 이용하려고 리모델링 중이며 올 여름 끝날시점에 개점할 예정이다. 편안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로 사역의 말씀을 분배하는 것이 우리의 부담이다. 런던 인구의 50만명 이상이 다른 유럽 출신이고 10만명 이상이 중동 출신이다. 우리는 가능한 아랍어 뿐 아니라 21개의 유럽언어로 사역의 출판물을 배포하려고 한다. 새로운 건물은 몇몇의 중심적인 기차역에서 가깝다. 이 기차역들을 통한 인구이동은 히드로 공항(유럽에서 가장 큰 공항) 보다 많고 2012년 런던 올림픽 동안
50%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인근에 많은 대학들, 해외 체류자들의 숙소가 있으며 열린 성도들의 집이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서점이 학생들에게 약속장소와 모이는 곳이 되어 매일 사역의 말씀의 씨앗이 영국과 유럽 각 처로 뿌려지는 것이다. 이 건물이 그 사역의 일을 위해 완전히 사용되어져서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이르도록 기도하고 있다.
런던의 일주일 훈련
바우어하우스에서 2010년 11월과 2011년 5월에 열린 일주일 훈련은 말할 수 없는 도움이 되었다. 성도들과 돌보는 자들이 진리들 안으로 더 깊이 잠겨졌으며, 진리를 말하는 것을 배웠다. 많은 수의 참석자들이 라디오 청취자들 이었다. 다른 분들은 최근에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신 성도들이 모셔온 분들이었다. 훈련을 받고자 하는 열린마음과 자원함으로 주님께서 많은 섞임과 건축을 이루는 길을 얻으셨다.
유럽의 청년들은 그들 자신이 훈련되도록 계속 헌신했다. 우리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랜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스페인, 영국의 청년들이 런던전시간훈련에 2011년 가을학기때 들어오도록 기도하고 있다
구 역 |
주 일 |
기 도 |
소그룹 |
어린이 |
중고 |
대학 |
청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계 |
|
|
|
|
|
|
|
■ 성도들 소식
1. #1
① 침례 - 장호기, 남정욱, 남시온, 김주은 형제와 남주현, 양혜미, 김현정, 한다정 자매가 8/7(주일) 침례 받았습니다.
② 입원 - 차분임 자매님(윤갑채 형제님 모친)께서 한가족 요양병원(광안동 소재)에 입원중이십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③ 전입 - 미국에서 생활하시던 박길용 형제님께서 수영구 광안1동 529번지 비치그린아파트로 이사오셨습니다.
오직 십자가 아래 있는 사람만
교회를 인식할 수 있고,
오직 십자가의 파쇄를 통과한 사람만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으며,
오직 십자가로 하여금 자신을 파쇄하고
자신을 잘라내도록 허락한 사람에게만,
교회를 심사하고 판단할 자격이 주어진다.
십자가에 의해
자신이 끝나고 육체가 제거되며
감정이 십자가에 의해 파쇄되고
의견과 주장이 거부되고
능력이 십자가에 의해 허물어지고
수완이 사라지며
그의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파쇄된 사람만이
교회의 실재 안에 있으며
교회가 무엇인지 알며 교회의 성질과 실질을 만지고 알게 된다.
그는 정확하게 교회를 측량할 수 있고,
교회에 대한 그의 안목과 관점이 비로소 성경에 부합하고
생명에 부합할 수 있다.
십자가와 생명,
십자가와 교회, 십자가와 그리스도,
이 삼자는 영원히 나뉠 수 없다.
십자가가 있으므로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교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관련된 것이다.
- 생명과 교회를 인식함 제14장 -
출처 : www.lordsmove.org
유럽과 이스라엘 소식(2011.7월)
유럽에서의 증가와 확산
이형제님은 1991년에 새길안에서 유럽에 가도록 성도들을 격려했습니다(세계정세와 주님의 움직이심의 방향 46쪽). 이 새길은 하나님의 신약경륜에 따라 섬기고 맞추는 하나님 정하신 길 입니다. 많은 해 동안 성도들은 유럽에서 이 새길을 실행하는 시도를 해 왔습니다. 이것이 아래 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최근 유럽에서 주의 회복의 괄목할 만한 증가와 확산을 이끌어 왔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축복하심을 기대하며 새로운 등대들이 계속 세워져서 이 숫자가 증가하기를 고대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유럽에서 주님의 움직이심의 축복이 성도들의 동심합의에 기인하고 신성한 진리 확산과 성도들의 이주와 하나님 정하신 길을 작은 활력그룹들에서 실행하는데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새로운 도시에 성도들이 이주했을때 특별히 많은 대학생들이 교회생활안에 들어왔습니다. 4월의 유럽대학생 집회동안 반수 이상의 새로운 처음온 학생들은 새로운 도시의 대학에서 얻어진 이들이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많은 유럽의 도시들에 주님의 간증을 확산할 부담을 붙잡았습니다. 많은 수의 집을 대학근처에 구입하거나 세를 내었고 이러한 도시들에서 주님의 움직이심에 중요한 장소가 되어 왔습니다. 이 도시들은 잉글랜드의 리딩과 컨벤트리, 독일의 뒤셀도르프, 프랑스의 파리를 포함합니다. 우리의 부담은 이형제님이 우리에게 주신 청사진을 따라 더 많은 가정이 이 노선안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청사진은 최소한 한팀에 4명의 성도가 30대에서 50대 사이의 한 가정을 포함해서 대학근처에서 일하는 것입니다(세계정세와 주님의 움직이심의 방향 48쪽).
사역의 확산
지난 10년 이상 그 사역을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 확산했고 주요인으로 레마 무료 대량 배포이고 라디오 방송, 사역 출판물 판매를 통해 확산했습니다. 이것이 수천의 추구하는 자들을 접촉하게 했고 상당한 수가 교회생활에 더해지게 했습니다. 1999년 이래 유럽에서의 증가는 사역의 확산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유럽의 추구하는 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최근에 런던 중심에 2층건물을 구입했습니다. 이 건물은 서점과 카페로 이용하려고 리모델링 중이며 여름 끝날때에 개점할 것입니다. 편안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로 사역의 말씀을 분배하는 것이 우리의 부담입니다. 런던 인구의 50만명 이상이 다른 유럽 출신이고 10만명 이상이 중동 출신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능한 아랍어 뿐 아니라 21개의 유럽언어로 사역의 출판물을 배포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건물은 몇몇의 중심적인 기차역에서 가깝습니다. 이 기차역들을 통한 인구이동은 히드로 공항(유럽에서 가장큰 공항) 보다 많고 2012년 런던 올림픽 동안 50%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가까이에 많은 대학들이 근접해 있고 가까이에 해외 체류자들의 방이 많이 있으며 가까이에 열린 성도들 집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서점이 학생들에게 약속장소와 모이는 곳이 되어 매일 사역의 말씀의 씨앗이 영국, 유럽, 그 넘어까지 뿌려지는 것입니다. 이 건물이 그 사역의 일을 위해 완전히 사용되어져서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런던의 일주일 훈련
바우어하우스에서 2010년 11월과 2011년 5월에 열린 일주일 훈련은 말할 수 없는 도움이 되어 성도들과 돌보는 자들이 진리들 안으로 더 깊이 잠겨지고 진리를 말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수의 참석자들이 라디오 청취자들 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최근에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신 성도들이 모셔온 분들이었습니다. 훈련을 받고자 하는 열린마음과 자원함으로 주님께서 많은 섞임과 건축을 이루는 길을 얻으셨습니다.
유럽의 청년들은 그들 자신이 훈련되도록 계속 헌신했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랜드, 노르웨이, 폴랜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스페인, 영국에서 런던전시간훈련에 2011년 가을학기때 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유럽 나라들과 이스라엘로 부터의 보고
벨기에: 주의상에 약 40명의 성도들이 부뤼셀에서 모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세개의 도시에서 수고하고 있는데 그 도시는 나뮈르(프랑스어), 루벵(네덜란드어), 앤트워프(네덜란드어) 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성도들이 두 캠퍼스 주위에서 수고하고 있습니다. 두 아파트가 전략적으로 두 대학의 정문앞에 위해 있는데 낭테르대학과 소르본대학 근처 센트럴 파리 입니다. 소르본 앞 아파트에서 걸어서 7분거리에 학생들이 250,000명이 있습니다. 파리에 1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두 지역에서 모입니다. 리옹과 보르도에도 교회들이 있는데 앞으로 디에프(노르망디), 롤, 반느, 스트라스브르그에도 교회들이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2008년 가을에 캠퍼스 근처에 살기위해 이주했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몇몇의 젊은 성도들이 더해지며 기존 성도들의 가족들과 다른 도시에서 이주한 런던에서 훈련한 성도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평균 15명이 주일날에 모이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곧 떡 떼기를 시작하리라고 기대 합니다. 대학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네명의 가정주부가 있으며 캠퍼스 바로 앞에 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학생들을 접촉하는 것은 학생들과 가족들의 동역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특별히 부담이 있는 것은 전통적인 독일사람들이 그룹 간증을 통해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예수의 간증을 같이 짊어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독일 사람은 단지 종교적인 관습을 알고 있습니다.
스페인: 최근에 약 45명의 성도들이 마드리드에서 모였습니다. 2011년이 시작될때부터 스페인에 세빌랴와 히로나 이렇게 두 군데에 간증이 세워졌습니다. 두 지방에서는 약 10 ~ 15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4월에 처음 레마 수신자들을 위해 세미나가 마드리드에서 열렸는데 새로운 사람이 29명 이었고 13명이 앞으로 교통을 위해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스페인의 다른 두 도시 살라망카와 레리다에 성도들의 그룹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사역안에서 주님을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회복의 분명한 이상이 있는 몇몇의 형제들을 일으키신다면 간증이 두 도시들에 신속히 세워질수 있습니다. 가장 큰 필요는 이베리아 반도에 이주할 두개 언어가 가능한 전시간 봉사자, 부부, 혼자있는 성도들 입니다.
네덜랜드: 최근까지 네덜랜드에 6개의 등대가 있습니다. 추가로 위트레흐트와 아인트호벤에 홈미팅이 있습니다. 두도시 모두에 대학생들을 돌보고 영접하는 열린가정 부부가 있습니다. 최근에 성도들이 아인트호벤에서 회복에 열려있는 한 자유그룹을 접촉했는데 함께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인도자들과 함께 매주 모이기를 제안했습니다.
폴랜드: 주의회복은 폴랜드에 1991년에 왔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10 개 지방에서 모입니다. 폴랜드 성도들의 부담은 더 많은 주요 도시에 교회생활을 일으키는 것인데 남부의 크라코우와 북부의 그단스크를 포함하고 뿐만아니라 기존의 교회들의 증가를 갖는 것입니다. 이 부담들은 나라 전체의 많은 레마 독자들을 접촉하여 이루어질수 있고 성도들이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카톨릭교회는 폴랜드 전역에서 국민들의 생각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폴랜드의 영적인 분위기가 바뀌도록 기도해 주셔서 많은 추구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양무리를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폴랜드어 회복역 번역을 위한 부담도 있습니다. 주님이 한 팀의 성도들을 얻으시어 이 영광스런 일을 수행하시고 이 일을 완성할 재정을 포함한 모든 필요자원을 공급하시기를 바랍니다.
루마니아: 주의 회복은 루마니아 1994년에 시작됬습니다. 이제는 9개의 지방교회가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참석하고 있고 런던 전시간훈련을 받았습니다. 과서 몇 년동안 96개 공과 훈련을 매년 모든 성도들을 위해 해 왔습니다. 루마니아에서 회복은 런던의 일주일 훈련을 참석한 성도들로부터 커다란 유익이 있었습니다. 최근 그 성도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활력그룹 안에서 하나님 정하신 길 안으로 들어갈 부담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실행은 몸안에서 가질 것입니다.
헝가리: 1994년 LSM 과 레마를 통하여 수 천의 헝가리 사람들이 사역의 말씀을 받은았지만 아직 헝가리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부다페스트에 8명의 성도들이 모이고 있고 그중 6명은 헝가리 본토인 입니다. 추가로 부다페스트 인근 도시에 한가족 4명과 북서쪽 끝에 있는 한 형제가 사역의 말씀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성도들은 제법 주님의 움직이심에 대하여 분명하고 그들의 지방에 주님이 더 많은 사람을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다른 도시들에 간증이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에서 주님은 그분의 움직이심을 위해 젊은 그릇들을 얻으시고 온전케 하고 계십니다. 고등학교때 얻어져서 지금은 대학생인 두 자매가 브라티슬라바에서 계속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사역의 책을 읽고있는 것과 성도들의 목양으로 또 다른 핵심적인 대학생을 얻었습니다. 이 형제를 통하여 몇몇의 그리스도인 대학생들을 접촉하고 있습니다. 이 형제는 런던 전시간 훈련에 가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2001년 이래도 4 지방교회가 일어났는데 바트얌, 하이파, 네타냐, 텔아비브 입니다. 최근 약 120 명의 성도들이 이스라엘에 모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의 주요 부담은 1) 한 새사람의 간증을 위해 지방교회들을 일으키고, 2) 대학에서 그곳의 청년들을 얻고, 3) 그 청년들을 목양하고, 4) 갈릴리바다 근처 북쪽에서 사역의 말씀을 누리고 있는 몇 가정을 돌보는 것입니다. 소망하는 것은 곧 디베랴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스라엘의 추구하는 이들에게 사역의 출판물을 배포하는 것에 분투하고 있고 소책자 배포되는 모든 곳에 복음전파하는 것을 분투하고 있습니다.
끝.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닮는 삶입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 의의 도구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영 께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주신 책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 (딤후
3:16)이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다.(벧후 1:21)
예수님도 성경을 인용하시고 가르치셨다(눅 24:27, 요 7:42, 마5:17)
2. 구세주에 관한 예언의 책이다.
구약성경 전체는 오실 메시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예수님에 관계된 예언만 350여회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야의 활동과 그를 전하기 위한 사도행전과 서신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수재림 대한 예언은 1518번이
나온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롬6:23).
그러므로 그를 믿고 (요3:16), 회개하며 (막1:15), 그의 규례를 지켜야 한다 (눅13:24, 마28:20).
3. 성경속의 3대사건
(세상 어디에도 기록이 없는 성경속에서만 발견되는 유일한 세상의 신비를 밝혀주는 책이다.)
1) 우주만물과 인간창조에 관한
책이다(창 1:1-31, 창2:1-25).
2) 구주 예수의 인간 구원을 위한 초림과
죽으심(십자가)사건이다(요 3:16).
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는것(계 22:20)
4.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책이다(구원 3단계).
1)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시고(살후2;13)
2)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고(고전1:30)
3) 성령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고전6:11).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
성경 의 핵심 요약
1. 자존하신 하나님(창
1:1)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존재해 오셨다.
2. 천지와 인간 창조(창
1:2-2:)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을 자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서
만드셨다.
3. 인간의 타락(창 3:, 롬 5:12, 6:23)
그러나 인간은 사단의 미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만을 사랑하게 되었다.
4.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우리의 의를 위해 율법을 지킴으로 완전한 의를 이루셨고,
우리의 죄 값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죄인으로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고후
5:14-21).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모든 사람은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5.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오심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신 후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 나셨다.
주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첫 번째 부활하신 분)가 되셨다.
그 후에 주님은 승천하여 하나님이 계신 보좌의 우편으로 가셨으며, 이곳에서 지금까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
주님은 이 땅에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성령을 통해 성도들을 의와 진리로 인도하고 계신다.
6. 재림과 완성(계 5:11-14)
언젠가 주님께서는 약속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하여 심판 받을 자들은 심판하시고,
믿는 성도들은 왕국으로 이끄실 것이며,새예루살렘이 완성될
것이다.
성경의 증인들
사도 바울은 (딤후
3:16)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감동"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의 영,또는 "하나님의 호흡"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 성경의 경우에는 "영감"이란 말을 "Inspiration"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은 "in"과 "spirit"의 합성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 역시 하나님의 영, 또는 하나님의 호흡이 불어넣어졌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이란
말은 '하나님의 호흡이나 숨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그의 몸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게해서 그 뼈를 큰 군대로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호흡이나
숨결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손을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그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에 오류없이 하나님의 뜻을 기록할 수 있도록 돕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이 기록했지만, 그 근원은 하나님(성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은 언제든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벧전 1:21).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인간 저자들의 인격과 특성, 그리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자의 특성이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성령을 통해 그들을 인도하심으로 그들이 오류 없이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영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성경의 대한
증거들
1) 성경
성경의 목적과 프로그램은
놀랄 정도로 하나의 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라는 것을 입증함.
2) 하나님에 대해 논리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인식론을 제공함
성경은 인간(과학이나 기타 종교)이 제공할 수 없는 독특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주고 있음.
이것은 성경을 계시한 분이 성령임을 입증.
3) 성경적인 증거들
가. 주님의 증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
나. 바울의 증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다.
히브리서 기자의 증거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히 1:1)
라. 베드로
사도의 증거
"구약의 선지자들이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을 상고하니라."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벧전 1:21).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한복음 3:16)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구원을 위해 스스로 어떤 행위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빈 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