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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콩밭에 넘 많아서 뽑아 한곳에 버려 두어도 잘 죽지도 않았던
말썽꾸러기 잡초 쇠비름을 키우게 되었당~;; 전도사님이 강력 추천하셔서..
함께 추천하신 비단풀은 텃밭 주변에 넘 많아서 따로 키우진 않구...쬐금씩 녹즙할 때..섞어줌.
몇년전 oo에 통증이 심해서 여성병원에서 검사 했을 때..탁구공 만한 이상 증상이 보이는데
6개월 후 다시 찍어 보자고 하셨다.
친정엄마에게 조용히 말씀 드렸더니...해주신 것이 비단풀을 베어 말려주셔서
감초랑 함께 끓어 한동안 마시구...통증이 더이상 없어서
1년이상 지난후에야 병원에 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결과가 나왔었다.
엄마가 주신 비단풀은 키가 컸던 것 같은데..
주변엔 키가 작은 (땅빈대.애기땅빈대) 밖에 안 보인다.
어떤분들은 땅빈대와 비단풀이 전혀 다른것이라고 하시는데..
아마도...엄마가 해주신것이 진짜 비단풀일지도..
<쇠비름 효능-퍼온 자료>
초록빛 잎, 붉은 줄기, 노란 꽃, 흰 뿌리, 까만 씨의 다섯 가지 색을 다 갖추었다고 해서
오행초(五行草)라 부른다고 한다.
쇠비름에는 타닌과 사포닌, 베타카로틴, 글루틴, 칼륨, 비타민 C, D, E를 비롯해 필수지방산인 오메가3
지방산이 쇠비름100g에 300 ~ 400 mg이나 될 정도로 풍부하다.
등푸른 생선을 비롯해 일반 약초나 녹색 채소, 견과류와 동백기름 등에도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 있지만
쇠비름은 이들 식물 가운데에서도 으뜸이다.
오메가3 지방산은 뇌를 구성하고 있는 필수성분이며 망막에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세포막의 전기적 자극을
빠르게 다음 세포로 전달해 주는 작용을 한다.
쇠비듬100그램에는 300-400밀리그램의 오메가-3 지방산인 알파 리놀렌산이 들어 있는데 이는 상추에
들어 있는것보다 15배나 많은 것이라고 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오메가3 지방산을 공급해 주면 놀랄 만큼 효과가 있고 스트레스와 알츠하이머병,
우울증, 치매 등을 예방해 주기도 하며,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을 몸 밖으로 내보내
혈압을 낮춰 주기도 한다.
쇠비름을 데쳐 반찬으로 먹으면 피부가 깨끗해지고, 옴, 습진, 종기 등에 바르면 신기하게 잘 낫고,
심한 여드름, 주근깨도, 아토피성피부도 깨끗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쇠비름은 이질이나 만성 장염을 치료하는 약으로 옛날부터 이름이 높았다, 장이 깨끗해지면 혈액이 맑아지고
살결이 고와지며 몸속에 있는 독소들이 빠져나가서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한다. 비름은 장을 튼튼하게 뿐만
아니라 대변과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작용도 있다.
쇠비름의 잎이나 줄기가 매끄럽고 윤이 반짝반짝 나는 것은 그 속에 수은성분이 들어있 때문이라고 한다.
유기화수은은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부정맥, 관상동맥경화증,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콜레스테롤, 종기나
염증, 암과 같은 독소 염증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 연구에서는 위암세포에 쇠비름 추출물을 투여하고 만 하루 결과, 약 90 %의 암세포가 죽었다고 한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 또한 쇠비름을 말려 두었다가 나물로 먹거나 죽을 쑤어 먹고 약으로도 활용했다 하는데
덧붙여 전해 내려오는 얘기는 늘 쇠비름을 먹으면 피가 맑아지고 장이 깨끗해져 무병장수하는
건강장수먹거리 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쇠비름 전체에는 사람의 몸에 가장 유익한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쇠비름 만들어먹는 방법은, 부드러운 잎과 줄기를 소금물로 살짝 데쳐 햇볕에 바싹 말려 묵나물로 저장해 두었
다가 물에 불려 양념을 넣고 무치든지 참기름에 약간 볶아서 먹으면 맛이 좋다. 반드시 말려서 정월대보름날
호박나물이나 피마자나물처럼 만들어 먹는 요리법이 있다.
쇠비름 발효는 쇠비듬 채취,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말리고, 항아리에 쇠비름50%, 설탕 50%로 절여서
한 달 정도 발효해서 약으로 쓰면 된다. 일 년 정도 발효하면 효과가 좋다.
쇠비듬과 은행나무 잎을 잘 배합하여 농약을 만들면 무공해 농약을 만들 수 있다.
몇개월 복용하니 혈기가 조금씩 낳아지고 있답니다
그 물을 하루에 컵으로 세번 음용하였드니 효과가 있드람니다.
물론 쇠비름이 많으면은 큰항아리에 일년정도 발효하면 효과가 많다고 하네요
가족중에 암환자가 있으시면....
이방법도 괜찮다..싶어서 이글을 올려봅니다
흔하고 흔해빠진 풀, 쇠비름의 뛰어난 가치
토끼나 소도 좋아하지 않는 잡초, 뿌리째 캐 버려도 시들시들한 척 하다가
비만 내리면 생글생글 팔팔하게 살아나는 풀
한여! 름 뙤약볕 아래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캐내고
또 캐내도 며칠만 지나면 여기저기 파릇하게 자라나 있는 풀, 쇠비름.....
쇠비름은 그 쓰임새만큼 이름도 다양합니다.
잎이 말의 이를 닮았다 해서 마치채(馬齒菜)라고 하며
쇠비름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해서 장명채(長命菜), 음양오행설을 말하는 다섯 가지 기운
즉 초록빛 잎과 붉은 줄기, 노란 꽃, 흰 뿌리, 까만 씨의 다섯 가지 색을 다 갖췄다 해서 오행초(五行草)라 부르며 말비름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봄부터 여름까지 나는
쇠비름 새순을 뜯어 나물로 먹고 서양에서는 샐러드로 먹습니다
동의학사전을 보면 맛은 시고 성질은 차며 독은 없다 했는데
그냥 생 줄기와 잎을 씹어 보면 향도 그저 그런 풀냄새 뿐이고
맛도 밋밋해 나물로서는 매력 없는 편입니다
그러나 쇠비름에는 타닌과 사포닌, 베타카로틴, 글루틴, 칼륨, 비타민 C, D, E를 비롯해
생명체 유지에 꼭 필요한 필수지방산인 오메가3 지방산이
쇠비름 100g에 300 ~ 400 mg이나 될 정도로 풍부하다
등푸른 생선을 비롯해 일반 약초나 녹색 채소, 견과류와 동백기름(생강나무 열매 기름), 등에도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 있지만 쇠비름은 이들 식물 가운데에서도 단연 으뜸 격입니다
오메가3 지방산은 뇌를 구성하고 있는 필수성분이며 망막에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세포막의 전기적 자극을 빠르게 다음 세포로 전달해 줍니다.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오메가3 지방산을 공급해 주면 놀랄 만큼 효과가 있고
스트레스와 알츠하이머병, 우울증, 치매 등을 예방해 주기도 하며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을 몸 밖으 로 내보내
혈압을 낮춰 주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장애에도 좋고
태아나 신생아의 정상적인 조직발달에 필수적이며
알콜 중독자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수험생들에게도 좋습니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전래된 쇠비름의 한방, 민간요법,
새롭게 연구해 알려진 쓰임새 등을 알아 봅니다
쇠비름을 데쳐 반찬으로 먹으면 피부가 깨끗해진다고 합니다
심장을 강하게 하고 자궁을 수축해주거나 피를 멎게 합니다
균을 죽이는 성분이 있어 이질과 만성 대장염에는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으면 잘 낫는다
불로초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죽여 없애려고 애를 써도 결코 죽지 않는 쇠비름이야말로 진정한 불사초가 아닐까...
모두 건강하시길.........
딤전 1:3-4, 6 … 그것은 그대가 어떤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다른 것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 그런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목표에서 빗나감으로써 헛된 이야기에 빠져 딤후 2: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잘라 내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으로 자신을 드리도록 힘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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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아침의 누림
우리의 타고난 존재에 따르면 우리는 나라가 서로 다르고 인종이 서로 다르다. 우리는 심지어 문화적 배경이나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서로 적대적인 관계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생활 안에서 모든 적대적인 관계는 해결되었다. … 우리는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한 생명과 한 인격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이다. 이것이 교회의 특징이다. 교회 안에는 피부색이나 인종 간의 차별이 없고 언어나 문화로 인한 어떤 분리도 없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고, 한 영, 한 주님, 한 하나님 아버지를 소유하고 있다(고전 12:13, 엡 4:4-6). 이제 우리는 각 지방에서 하나라는 터 위에 서서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증거가 되고 실지적인 교회생활을 해야 한다. (성경의 네 가지 중점―그리스도, 그 영, 생명, 교회, 14-15쪽)
오늘의 읽을 말씀
어떤 복음 전파자들은 말씀을 전할 때 비유를 유창하게 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후에 사람들에게 남겨진 것은 좋은 이야기뿐이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는 거의 없이 단지 유창하게 말할 뿐이다. 이러한 원칙에 근거하여 우리는 오늘날 전파되는 말씀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전파되는 말씀에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가 얼마나 있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오늘날 전파되는 가르침이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러분은 성경 안에 있는 진리를 그렇게 공허한 방식으로 발전시켜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성경의 어떤 진리든 반드시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의 노선 안에서 발전시켜야 한다. 비록 여러분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좋은 사상이 있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가 자신의 메시지의 내용인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만일 여러분의 메시지가 이 내용으로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그 메시지에 관해 잊어버려야 한다. 어떤 것도 이 통제하는 원칙에서 벗어나서 발전시키려고 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분은 안전장치를 잃어버리고 미혹될 것이다. 모든 이단은 성경 안의 진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 네 항목에서 벗어나서 발전된 교리는 어떤 것이든지 필경 이단이나 분열을 낳을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에서 벗어나 거룩함에 대한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위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함의 교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거룩함은 그리스도 자신이며, 이 그리스도는 오늘날 생명 주시는 영(고전 15:45)이시라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그분의 영은 …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 안으로 신성한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생명 주시는 영이시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이며 생명과 관계된다.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면, 거룩함인 하나님의 본성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여러분 안에서 증가되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본성에 따라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또한 거룩한 생명이 우리의 개인적인 생활을 위해 있을 뿐 아니라 교회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로 거룩함의 교리를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놀라운 계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룩함이라는 종파가 생겨날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들이 성결 교회를 세운 이유이다. 이것들은 사실상 몸을 산산조각 내는 성결 분파이다.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를 떠나서 성경의 어떤 교리를 발전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 여러분의 교리는 잘못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 여러분의 실행의 결과로 분열이 산출될 것이다. 성경에 있는 어떤 교리든지 그것을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로 발전시킨다면, 그것은 항상 안전하다. … 결코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를 떠나서 어떤 것도 발전시키지 말라 |
하나님의 왕국과 영광 안으로 부르심받음 | |
성경말씀 | |
살전2:12 그것은 그분 자신의 왕국과 영광 안으로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께 여러분이 합당하게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엡4:1 그러므로 주님 안에 갇힌 사람인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름을 받았으니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 |
오늘의 만나 | |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의 문맥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과 영광 안으로 부르심 받은 것이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히 행할 때 우리에게는 어떤 특별한 분위기가 있게 되며, 이 분위기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왕국이 있는 곳에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형제와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살 때 그들은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의 결혼생활에는 어떤 종류의 분위기가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분위기 안으로 들어올 때 그들은 즉시 존경스럽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만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합당히 행한다면, 그분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행한다면 그 왕국은 임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왕국은 이 땅에 나타날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 안으로부터 주님이 표현될 때, 우리는 영광스럽다고 묘사할 수 있는 상황 안에 있게 됩니다. 만일 어떤 형제가 아내와 다툴 때 누군가가 집에 들어왔다면, 거기에는 어떤 영광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어떤 형제의 집을 방문하여 그와 그의 아내가 불타오르고 빛나고 넘쳐흐르는 것을 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표현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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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ed into God's Kingdom and Glory | |
Bible Verses | |
1 Thessalonians 2:12 So that you might walk in a manner worthy of God, who calls you into His own kingdom and glory. Ephesians 4:1 I beseech you therefore, I, the prisoner in the Lord, to walk worthily of the calling with which you were called. | |
Words of Ministry | |
From the context of [1 Thes.] 2:12 we can see that being called into God's kingdom and glory is related to walking worthily of God. When we walk worthily of God, there is with us a particular kind of atmosphere, and this atmosphere is God's kingdom. Furthermore, where the kingdom of God is, there the glory of God is also. It is possible for the kingdom of God and the glory of God to be manifested in our married life. If a brother and his wife live God, they will walk worthily of God. Then in their married life there will be a certain kind of atmosphere. When others come into this atmosphere, they will spontaneously have a sense of respect. This is the kingdom of God with God's glory. If today's Christians would walk worthily of God, would walk in a way that expresses Him, the kingdom would come. God's kingdom would then be seen on earth. Whenever the Lord is expressed from within us, we are in a situation that can be described as glorious. If someone would walk into a brother's home when he is arguing with his wife, there would not be any glory. However, if you visit a brother's house and find him and his wife glowing, shining, and flowing, you would see the expression of God, God's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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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바삭한 두부과자 만들어 보았어요.
요거요거~그냥 먹어도 고소한게 맛난데~
뽕이가 들깨가루를 넣으면 더 고소하지 않을까 싶어서 넣어봤더니~
들깨향이~퐈~
두부향이~퐈~퐈퐈퐈~^^
고소함이 대만족스러운 완소! 두부과자가 되었네요~
그럼 조금은 색다른 두부과자*
-*재료*- (계량:그람g,밥숟가락) 아래 용량대로 만들면 두부과자 약 80개~90개 나와요^^~
강력분-120(꼭 강력분을 사용-바삭함을 살리기 위해-슈퍼,마트가서 밀가루중 강력분 달라고 하면되요) 두부-50(물기 짜기전 용량) 설탕 -40 소금-3 계란-30 참깨-2술(밥술) 들깨가루-2술(밥술-10그람)*(없다면 생략하고 밀가루강력분으로 더 채워주어요) 베이킹소다-3 포도씨유 2술(밥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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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1.도마에 면보나 삼베보자기를 놓고 그 위에 두부를 올려 칼등으로 곱게 으깬후
~주물주물하면서 물기를 꼭 짜준다.
2.믹싱볼에 먼저 계란을 깨넣어 계란을 휘휘 저어준뒤,으깨어 물기를 뺀 두부,들깨가루 넣고
잘 섞어준다.
3.섞어 놓은 것에 계량된 (밀가루와 소다,소금,설탕)을 체에 쳐서 넣는다.
4.반죽을 해주는데 처음은 주걱이나 손가락으로 긋듯이 섞어주다가,
날가루가 보이면서 부슬부슬 섞이는 정도가 되면 포도씨유 2술을 믹싱볼 바깥부분으로 휘~돌려준뒤
사진처럼 꼭꼭 뭉쳐준다.
<처음엔 이 대로 반죽이 될까 싶을 정도로 반죽이 되요.
반죽이 질면 바삭하게 되지가 않아요-**
꼭꼭 다지면서 반죽하다보면 날가루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답니다.
5.날가루가 안보이게 동그랗게 반죽덩이가 만들어 지면
랩으로 감싸서 냉장고에 넣어 30분간 휴지(쉼)를 해줘요.
<<휴지기를 두는 것은 반죽의 각각의 재료들이 서로 잘 어울어지게 만들고
또 밀대로 밀어 작업하기 좋게금 적당한 굳기로 만들기 위함이에요.
6.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도마 한켠에 날밀가루 한줌을 준비해놓고
도마바닥에 얇게 밀가루를 깔고 덩어리 위에도 밀가루를 얇게 묻혀준뒤
밀대로 밀어 ~최대한 얇게 해줘요.
<<얇을 수록 더 바삭해져요 0.1센티,1mm 정도로 얇게! 참깨가 갈릴정도로~^^
7.얇게 민 반죽은 칼로 마름모 보양으로 자르거나
또는 사진처럼 직사강형의 반죽에 안쪽에 길게 칼집을 내어 한쪽을 잡고 뒤집어 타래과처럼 모양을 잡아줘도 좋아요.
8.180도의 식용유에 겉만 노릊해지게 재빠르게 튀겨줘요
<<요렇게 바삭바삭한 들깨가루 두부과자 완성!
가운데를 포크로 한번씩 찔러주면 부풀어 오르지 않아 모양이 좋구요.
*쭈쭈뽕의 팁(두부과자 실패하지 않는 방법) 1.밀가루 종류가 중요해요 박력분-no! 중력분-soso! 강력분-good!
2.반죽의 되기가 중요해요 -첨엔 반죽이 될까 싶을 정도로 된 반죽 레시피대로 하면 반죽이 맞춰져요. <혹시 반죽이 넘 되다 싶으시면 요기서 물로 되지 맞추지 말고 포도씨 한술더 넣어서 맞춰주어용~
3.베이킹소다가 바삭함의 비밀! 요거를 넣어 더 바삭하게 만든답니당~
4.얇게 ~최대한 얇게 밀어줘요 속이 비칠정도로,참깨가 으스러질 정도로^^~ 전 타래과 모양 ~마름모 모양~두가지로 했는데 타래과쪽이 더 얇게 했는데 ~와웃 대박이에용.시간이 가도 눅눅해지지 않네요. 얇을수록 바삭바삭! |
요건 타래과 모양으로 만들 것!
요것도!~
요거에 설탕시럽 발라서 타래과 만들어도 되요.
->설탕시럽->잣가루~요런식으로 하면 되지용^^*
그럼 이상 두부만으로도 고소한데
볶은 참깨,들깨가루까지 넣어 더 바삭한 두부과자 보여 드렸어용^^*
그럼 또 맛난거,잼난것 데리고 어여 올께용^^*
기도는 기적을 준비 합니다.
기도는 기적을 잉태 합니다.
기도는 기적을 낳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생깁니다.
기도한 자 에게 일어 납니다.
하나님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먼저 그 사람을 준비 시킨 후에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주시기 위하여 기도를 시킵니다.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 마음을 먼저 가난하게 하십니다.
참된 축복은 주님 자신입니다.
아멘
살롬!
금요일 아침 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삶이란,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있을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하루입니다.
날마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생명 성숙에 이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모습만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님안에서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하루 이기를...
요즘 날씨가 많이 덥다고 합니다.
지체님들 더운여름 건강에 주의 하시고
적당한 운동으로 여름 건강 유지하시고
더욱 건강해야 더 많은 복음도 전하고
교회 생활과, 주님을 위해 봉사도 할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ㅡ고벨화ㅡ
우리의 인생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우리의 교회 생활,
우리의 봉사하는 생활은 제한 아래 있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함께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 제한 받고 우리는 이러한 제한을 결코 뚫고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밀의 땅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니 형제님이 감옥에서 계셨고 그러나 사실 영적으로 말하면
그분은 밀과 보리의 땅에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또 다른 영역 안에 살고 계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교회생활은 자아에게 매우 제한 받는 생활입니다.
특별히 봉사할 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밀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보리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보리로 말미암아 우리는 밀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의 생활이 이와 같다 해 봅시다.
여러분의 결혼 생활, 여러분의 가정 생활, 여러분의 직장 생활, 여러분의 재정 문제,
여러분의 건강 문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이렇게 제한 받고 있습니다.
결코 거기서 나올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앞에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주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거기서 끄집어 내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죠.
주님은 우리가 그 제한 된 환경 안에서 주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여러분은 너무나 놀라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그때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온 일생 주님과 함께 여기에 머무르는 것을 인해 감사합니다.
당신 안에서는 만족 합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변화를 시도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결코 변화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을 더 얻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체험이 이러하다면 여러분은 단체적인 보리떡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먹일 양식이 풍성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 많은 무리를 보리떡으로 먹이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오셔서 화장실을 청소한다고 할 때,
그런데 어떤 자매님들이 매우 굶주려 있습니다.
우리의 그들의 인간생활 안에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리떡을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또한 밀을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보리를 공급하는 것이죠.
밀과 보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밀은 육체가 되시고 제한 받으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제한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그분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 신격 안에서 아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지속적인 제한 아래 사셨습니다.
그분은 공간 안에 제한 받으셨고 그분은 시간에 의해 제한 받으셨으며
그의 가족은 아주 궁핍한 가운데 살았습니다.
현재 주님에게는 네 형제들이 있었고 자매들이 있었는데, 몇이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그 가족에는 일곱 자녀가 있었죠. 그는 목수로 일했습니다.
아주 제한 받으신 것입니다.
그분의 생활은 마치 한 알의 밀알과 같았습니다.
사실 밀알 안에는 생명이 담겨 있죠.
이 한 알의 밀은 제한 받으신 그리스도, 제한 받으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에 따라 말하자면, 그분께는 이 제한을 벗어나는 길이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야말로 제한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우리의 체험 안에서 모든 것을 포함한 그리스도의 실재화이신 그분은 좋은 땅이십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볼 수 있도록 저는 기도합니다.
이 그 영은 우리의 체험이 되신 삼일 하나님이십니다.
이 좋은 땅의 실재이신 그 영은 지금 우리의 영 안에 계십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의 영과 연합되었고, 우리가 이 연합된 영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좋은 땅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연합된 영이 있다는 사실에 인상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 안에 머물 때, 우리는 또한 그 영 안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영이 체험적으로 바로 우리의 좋은 땅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연합된 영 안에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점차적으로 또 다른 영역 안에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남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있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 있습니다. 또 다른 우주 안에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라는 우주입니다.
어제 우리는 이 땅이 시내와 또한 샘과 원천의 땅임을 보았습니다.
이 시내는 바로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이 물은 물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여러분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이렇게 샘이신 그리스도를 누렸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땅은 원천의 땅입니다.
이 원천은 바로 샘의 근원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원천은 아버지이시오, 샘은 아들이시며, 시내는 그 영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흐르는 그 흐름을 누릴 뿐만 아니라 또한 솟구쳐 오르는 샘을 누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봉사 안에는 또한 원천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은 땅으로 예표 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릴수록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을 살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존재인가를 다만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 안에서 함께 섬기기 위해 모일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아내고 분배함으로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함께 섬길 때 이제 봉사라서 당신을 섬기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냥 모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것입니다.
어제 자매님이 화장실 청소하는 것에 관해 간증하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사실 모든 자매님들이 청소하는 법을 알고 있죠.
그런데 자매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청소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봉사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님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방식을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마땅히 우리는 실재적인 일들을 관심해야 합니다.
많은 인간적인 인간사의 일들을 관심해야 하죠.
그러나 만일 우리가 타고난 생명으로 그러한 일을 행한다면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그리스도 없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라면 우리는 믿지 않은 이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봉사가 아닙니다.
참된 봉사는 우리가 체험하고 누린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것입니다.
밀과 보리의 땅
성경: 신 8:8상, 요 12:24-26, 고전 15:20, 요 6:9-13, 48
찬송: 382
(신 8:8상)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요 12:24-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25) 자기 혼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혼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혼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십시오.
내가 있는 그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요 6:9-13)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앉게 하십시오.” 마침 그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거기 앉은 사람은 남자만 오천 명 가량이었다. (11)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감사드리신 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시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조각을 모으고 버리는 것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래서 제자들이 모았더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요 6:48) 나는 생명의 떡입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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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
메시지 1(상)
시내와 샘과 원천의 땅
훈련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타고난 방식으로 하지 않는 것을 배우도록 돕는 좋은 길이다. 우리에게는 타고난 인간 생명이 있다. 그래서 이 생명으로 모든 일을 타고난 방식으로 행한다. 그러나 교회생활 안에서, 또 어떤 봉사 안에서 결코 우리의 타고난 방식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 어떻게 타고난 방식으로 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은 항상 우리의 타고난 존재를 만진다. 예를 들어, 골프를 배우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데 한 번도 쳐본 일이 없다. 골프 클럽을 가지고 골프채 가운데를 붙잡고 공을 치려고 한번 해 보라. 아마 그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골프를 치는 법을 아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골프채를 잡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서 있는 방식도 옳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또 골프채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것이 훈련이다. 그것은 골프에 관한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우리가 경기하는 방식으로 훈련을 받는 것이다. 내가 만약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형제에게 “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부탁한다고 해보자. 그 형제는 몇 마디를 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이렇게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감사합니다.”이런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한국어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매우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한국어를 말하는 것을 교정해주면, 마음을 상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아마 어떤 자매는 그 소리를 듣고 울지도 모른다. “어떤 남자분이 저를 때리려고 했습니다.”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훈련이기 때문에 또한 주님의 영이 우리를 훈련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존재의 어느 부분을 만지시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것은 참된 축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먼저 이것을 깨닫고 주님께서 우리의 교사시요, 우리의 주이심을 시인해야 한다. 우리는 배우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기꺼이 주님께 만져지기를 원해야 한다. 베드로도 훈련받을 필요가 없었겠는가? 베드로는 아버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계시를 받았다. 또한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도 들었다. 그러나 그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사람들이 와서 베드로에게 질문을 했다. “그대의 선생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내십니다.”이렇게 대답했다. 그때 주님께서 다시 베드로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시몬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땅의 왕들이 누구에게 관세나 인두세를 받습니까? 자기 아들들입니까, 남들에게서입니까?” 베드로는 말하기를 “남들에게서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면 아들들은 면제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들이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세를 바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마음 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너는 먼저 낚시를 하러가서 먼저 잡는 고기 입속에 동전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 동전을 가져다가 너와 나를 위해 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어떠한 훈련인지 보았는가? 주님은 다만 베드로에게 가르치실 수만 없었다.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이 계시를 기억하라”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산에서 본 계시가 무엇인지를 기억해라.”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내가 아들이기 때문에 나는 세를 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베드로야, 너는 대답을 잘못 했다.”그것은 가르침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교정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낚시하러 보내셨을 때에는 그가 첫 고기를 잡을 때까지 얼마나 기다렸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훈련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우리 모두에게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태복음 25장에 따르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는 몇 가지 주된 방면이 있다. 첫 번째,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처녀들이다. 우리는 마리아와 같이 그분의 발 앞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 또한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노예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주님을 섬기는 마르다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선택이 없다. 하나님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미 결정지어 놓으셨다. 주님께서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때 그분은 우리를 이미 소유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노예이다. 바울은 이것을 완전히 인식했다. 노예의 방면은 우리의 봉사를 위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 그의 봉사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우주적인 교회의 방면이 아니라 지방교회의 방면에서 언급하는 것이다. 지방교회 안에서 모든 일은 매우 실재적인 것들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일들은 물질적인 영역의 일들이다. 이 모든 물질적이고 실재적인 일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우리는 모든 실재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모임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합당한 교회생활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이 요점에서 인상을 받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항목이 있다.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지방교회는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필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지방교회 안에서 우리에게는 실재적인 봉사가 있다. 대다수는 물질적인 봉사이다.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를 돌보는 봉사는 실재적이고도 물질적인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봉사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모든 것들로 섬기겠지만, 이 봉사 안에 봉사의 본질이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자매님이 유리창을 닦는 봉사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이 하는 것은 유리창을 닦는 일이다. 그 일을 모두 마치면 그냥 집으로 간다. 예를 들어, 다른 두 자매님이 동일한 일을 하기 위해 유리창을 닦기 위해 왔다고 생각해 보자. 외적으로 볼 때 동일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자매님들은 매일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분들이다. 그 결과 그분들이 함께 섬기기 위해 모였을 때, 또한 그들이 섬기는 과정 중에 함께 그리스도를 누린다. 그들이 아마 찬송을 부를 수도 있고, 기도를 함께 할 수도 있고, 또한 교통을 나눌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실재적인 봉사들이 이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유리창을 닦겠는가? 혹은 카펫에 진공청소기로 청소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겠는가? 피아노를 치는 봉사, 의자를 놓는 봉사, 애찬을 준비하는 봉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에게 선택이 놓여있다.
북미주에 어떤 한 지방에 아주 귀한 한 부부가 있다. 그 남편은 적어도 공식적으로 장로직분 안에 있는 형제이다. 또한 그 아내는 봉사에 있어서 매우 신실하고 활동적인 자매님이다. 그분들은 모두 약 70세 정도 되셨다. 아마 적어도 두 분 모두 43년 이상 교회생활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매님의 봉사는 완전히 타고난 것이다. 그 자매님은 다른 자매님을 결코 참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과 동역하지도 못하고, 다른 자매들에게 자기가 일을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말을 한다. 그리스도 없이 40여년을 섬겨오셨다. 이러한 봉사는 종교적인 단체에서의 봉사와 다르지 않다. 세상에서의 봉사와 동일한 것이다. 이 자매님에게 주님께서 긍휼을 주시기 바란다. 나는 그 자매님을 크게 염려하고 있다. 하나님의 목표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것을 통해 건축되기 때문에, 우리가 실재적인 봉사를 행할 때마다 우리의 존재의 본질이 되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섬기는 많은 자매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매우 실재적인 일, 아주 중요한 섬세한 일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분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청소년처럼 그렇게 날아다니는 분들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인간적인 분들이다. 그들의 실지적이고 물질적인 봉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자매님이 점심식사를 준비한다고 하자. 그러한 과정 중에 자매님은 주님과 함께 그 일을 한다. 그럴 때 봉사 안에서 자매님은 주님과 함께 섬기시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실재적이고 물질적인 봉사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 사람들을 고용해서 유리창을 닦게 하지 않는가? 우리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청소하게 하면 된다. 또한 다른 가정부를 고용해서 아이들을 돌보게 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방식은 그런 일이 아니다. 우리는 노예로서 섬겨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으로 섬기고 있는가? 어떤 형제님들은 함께 책임을 지는 형제들로서 동역하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모일 때 육체 안에 모인다. 사실 육체 안에 그냥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그들은 모일 때 그리스도 없이 모인다. 마치 육체 안에 있는 사람들과 같다. 부도덕하다는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육체 안에서 머무는 것이다. 육체 안에서 생각하고, 사고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이것은 엄중한 문제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화를 낸 형제님은 집에 가서 그냥 머무는 것이 낫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집에 가서 머물라’ 이렇게 말을 할 수 없다. ‘아, 자매님, 그냥 집에 가시죠.’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함께 가정 안에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의 봉사의 특징이 무엇이었는지는 오직 주님만이 알고 계신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실제적인 봉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기회라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주님께서는 “내가 너의 발을 씻기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서로의 발을 씻겨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발을 씻는 것의 영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신선하게 해야 한다. 서로를 돌봐주어야 한다. 서로를 목양해야 한다. 서로를 격려해주어야 한다. 서로를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요소가 되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봉사의 본질이다.
우리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예표인 좋은 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의 부담은 그 사역의 말씀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체험과 누림에 있다.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하기 위해 체험하고 누리는 것이다. 다만 영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하고 누린 그리스도가 우리를 봉사 안으로 인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36년 전, 1974년 봄에 있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의 막내아들이 아직 유아로서 애나하임 교회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집회가 끝난 후에 그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 때 얼굴이 환하게 밝고 기뻐하는 한 자매님이 막내아들을 데리고 오셨다. 나는 지금도 그 자매님의 얼굴에 있던 은혜를 기억하고 있다. 그 자매님이 가졌던 그 기쁨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자매님은 위트리스 리 형제님의 자매님이었다. 아마 오늘날 가장 체험 있고 가장 영적인 주님 앞에서의 한 자매님이실 것이다. 그런데 이 자매님이 어린아이를 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젊은 아버지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하고 계셨다. 주님께서 그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아마 주님은 우리가 아이를 위해 갈아주는 기저귀는 기억하지 않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 몇 병의 우유를 주었는지 주님이 기억하지 않으실지 몰라도, 적어도 이러한 것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한 것을 주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분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 또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삼일(아버지, 아들, 영)이신 것을 알고 있다. 이 셋은 동시에 존재하며 상호 내주하신다. 아버지는 감추어 계신 분이시오, 아들은 하나님의 나타나심 곧 하나님의 표현이시다. 또한 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분이시다. 이제 그분은 하늘에서의 사역을 수행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 영은 우리의 체험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체험은 사실 그 영에 대한 체험이다. 이 영은 바로 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용되신 것이다. 우리는 그 가나안 땅의 예표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 여기에 좋은 땅이 있다. 이것
은 밀의 땅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다. 보리의 땅이다. 역시 그리스도다. 이러한 무화과와 포도의 땅이다. 모두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한 분이시다. 오, 얼마나 놀라운 그리스도가 계시는가?’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여전히 객관적인 항목들이다.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마치 식탁 위에 놓인 음식과도 같다. 이 영,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 그리스도를 우리의 체험이 되시게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13~14절의 그 영에 관한 각주가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들에게 이르게 하고, 그 약속하신 그 영을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좋은 땅이었다. 좋은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다. 이제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 영이시다. 이 말은 그리스도 곧 우리에게 실재화된 바로 좋은 땅이라는 뜻이다.
여기 가나안 좋은 땅이 있다. 여기에 풍성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심으로 오셨다. 그분은 이 예표의 성취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을 포함한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체험하는가?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셨고, 이제 모든 것을 포함하신 복합되신 생명주시는 영이 되셨다. 이 땅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이제 그 영이시오, 그러므로 그 영이 이 좋은 땅의 실재인 것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그 영에 대한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명기 8장에서 좋은 땅에서는 우리에게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고 말한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예표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이 예표를 성취하셨다. 바로 하나님-사람 그리스도가 좋은 땅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그분을 그 영으로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 영이시다. 이제 그 영이 우리의 영 안에 오셨다. 그 영은 좋은 땅으로서 그리스도의 실재이시며, 이제 그 영은 우리의 영과 연합되셨다. 이것은 좋은 땅이 지금 우리의 영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열쇠이다. 이 모든 체험은 영 안에서, 영을 통해,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영은 실재의 영이시오, 이 영은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시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한 분이시며, 그분은 바로 좋은 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좋은 땅을 체험할 때, 그 영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함과 그분이 소유하신 모든 것, 그리스도께서 도달하시고, 성취하신 모든 것이 지금 그 영 안에 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의 2번 각주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물질적인 방면은 좋은 땅이었으며, 그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리스도는 결국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주시는 영으로 실재화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영의 복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복과 일치한다. 사실상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체험 가운데 실재화되신 분으로서 좋은 땅이시다.”라고 말한다. 이 좋은 땅은 다만 객관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 그분 자신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영역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분명히 좋은 땅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체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물이 컵 안에 있다면 체험할 길이 없다. 우리의 체험은 주관적인 것이다. 물을 마실 때 이 물이 주관적이 된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좋은 땅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객관적이시다. 우리가 이분을 우리의 땅으로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의 체험이 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위해 주님은 모든 것을 포함한 영이 되셔야만 한다. 이 좋은 땅은 우리가 누리기 위한 하나님의 풍성의 공급이시다. 이제 여러분 모두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이제 좋은 땅이 어디에 있는가?” 좋은 땅은 우리 안에 들어오신 우리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이것을 인식할 때에만 그것을 이상으로 계시를 가질 수 있고, 이상으로 체험을 가질 수 있다. 1954년 8월에 그리스도는 내 안에 들어오셨다. 그러나 나의 인식은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후에야 나에게 영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주님의 영이 나의 영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때 나의 관점은 여전히 좁았다. 이제 우리는 갈라디아서 3:14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복이 하나의 예표인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그 예표의 성취이시다. 또한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재화요 실재이시다. 이제 그리스도의 실재화이신 그 영이 우리의 체험에서 볼 때 그 좋은 땅이 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한 가지를 볼 수 있다면, 우리의 봉사, 우리의 생활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신명기에서 좋은 땅에서는 여러분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 그 영 안에서 우리에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머물러야 하고,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서 그 영께서 우리의 영과 연합되셔서 그리스도의 실재화가 되심으로 우리의 체험 안에서 좋은 땅이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보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매우 단순해질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체험 안에서 좋은 땅, 그 영이시다.
신명기에서 ‘여기 시내가 있다, 이 땅에는 그냥 샘이 몇 개 있다. 여기에 원천이 좀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땅은 바로 시내의 땅이다’라고 말한다. ‘이 땅은 샘의 땅이다. 원천의 땅이다.’ 라고 말한다. 어디에 가나 물이 있다고 말한다. 여러분에게 생수가 필요한가? 여기에 원천이 있다.
샘이 여기 있다. 여기에 강이 있다고 말을 한다. 삼일 하나님이 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시내와 샘과 원천의 체험 안에서 섬겨야만 한다. 이 자매님이 막내아들을 돌려주셨을 때, 그 자매님은 흘러넘치고 계셨다. 생수의 샘이 흘러넘치고 있었고, 자매님의 영을 통해 내가 마실 수 있었고, 그 자매님은 그때 시내와 샘과 원천으로 섬기고 계셨다. 그때 함께 섬겼던 모든 자매님들이 축복을 받고 있었고, 공급을 받고 있었고, 만족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매님은 거기서 어떤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아, 나를 보시오. 내게 원천이 있다. 내게 샘이 있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곳에서 아이를 돌보고 계셨다. 다만 그분 안에서 계속해서 생수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매님이 좋은 땅 안에 계셨기 때문이다. 이제 좋은 땅은 우리의 영 안에 오신 그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그 영 안에 있다. (2011년 6월 전국 봉사자 온전케하는 훈련 메시지 1 R. K 교통 중에서)
복음의 내용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2)
성경말씀 행2:18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나의 남녀 노예들 위에 부어 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
(행21~24)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사렛 사람 예수님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능력의 일들과 기이한 일들과 표적들을 베푸시어 여러분에게 그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결대로, 미리 아신 바에 따라 넘겨지신 이분을 여러분은 불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제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심과, 그 사람이 타락해서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지금 그 영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려고 우리를 찾고 있다는 짧은 복음 메시지를 전할지 모릅니다.
그런 짧은 메시지에서조차도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그 영 하나님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합당한 복음의 내용 즉 삼일 하나님이 체현된 거룩한 말씀임을 알려주고, 아버지는 무엇을 했고 아들은 무엇을 했고, 그 영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복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믿고 영접할 때 그것이 그 사람 안에서 믿음이 됩니다. 당신은 삼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어떤 사람에게 공급되고, 그 사람이 그 말씀을 영접하여 그것이 그 사람 안에서 믿음이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고 있습니까? .그 순간 그 사람은 새로운 출생을 경험합니다. 그는 하나님께로서 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출생을 체험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복음을 전파하든지, 억지로 믿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삼일 하나님을 가장 사랑스럽고 귀하고 가치 있는 분으로 제시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매력적인 분에 대한 제시를 들을 때,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알고 여러분의 말씀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이 받아들인 말씀이 그들의 믿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의미입니다. 시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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