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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목양 | ………구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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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목양

열매를 맺기 위해 적극적이며 조율되어 봉사함

우리가 교회 봉사에 대해 많이 말할지라도 실지로 사람들을 관심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가축이 없는 농장에 비유할 수 있다. 살아있는 동물이 없다면 그러한 농장은 다만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두 이 한 가지 문제, 곧 불신자들을 돌보고, 어리고 연약한 믿는 이들을 돌보는 이 일에 대해 부담을 갖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은사가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열매를 맺는 은사를 가자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돌보려는 부담을 가져야만 한다. 교회 안의 모든 지체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 한 면에서 우리는 불신자들을 돌보아야 하고, 또 다른 면에서 어린 믿는 이들을 돌보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공식적인 사역자나 목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의 제사장 직분을 실행한다(벧전 2:5). 이러한 제사장 직분에서는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주님께 반드시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고 기도하면서 사람들을 돌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려는 부담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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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핌 - 에베소서 5장 29절 말씀 | ………구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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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자기 육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양하고 보살펴 줍니다.
그리스도도 교회를 이같이 대하십니다.


< 에베소서 5장 29절 말씀 (회복역,한국복음서원) >


 Note 혹은 양육하고. 보양하는 것은 주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보살피는 것은 부드러운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고, 부드럽게 돌보며 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 주어 사람을 부드럽게 하며, 내적으로도 위로를 받고 편안한 안식을 갖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인 교회를 돌보시는 방법입니다. (각주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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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란과 휴거 |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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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환란과 휴거

 

성경은 장차 이 지구상에 천재지변을 포함한 심각한 대환란이 닥칠 것을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믿는 이들의 휴거 시기에 관해서는, 대환란 전 또는 대환란 후로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누가복음 21장은 일부는 대환란을 피하고, 일부는 통과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균형잡힌 성경 학자들은 이 주제가 신앙의 정체성을 좌우할 만한 핵심진리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각자가 자신이 선택한 견해를 신봉할 자유가 있습니다.
물론 그 결과에 책임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은 ‘그 날’ 즉 대환란 전에 일어날 전조로, 처처에 ‘지진, 기근, 온역’

‘일월성신의 징조’ ‘하늘의 권능의 흔들림’‘세상에 임할 일이 무서워 기절함’ 등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또한  바로 ‘그 때’에  ‘인자’께서 이 땅으로 재림하실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27절).

 

이제 본문으로부터 관련 된 몇 구절들(33-36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위 말씀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은 위에 제시된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다가올 대환란을 피할 수  있음을
전제로 경고하고 계십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이란 말씀은 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둘째, 어떤 이유로든지 위 경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 로
마음이 무디어져 있는 사람들은 대환란을 능히 피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환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위에서 본 것처럼 매우 분명합니다. 
즉 성경에 예언된 ‘징벌의 날들’(22절)의 성취인 대환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크고 무서운 환란을 덫과 같이
맞이할 것인지는 우리 각자에게 달렸습니다.

 

이러한 엄중한 말씀을 통해, 저를 포함하여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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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특별집회 메시지#1 |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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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

이번에는 무슨 말씀을 주실 까 하는 기대로 집회를 참석하고

몇 가지 만져진 부분을 적어 봅니다.


A.B 심슨이 지은 찬송 중,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축복과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계4:11),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존재하고 창조 되었다.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가? 

 

조직화된 기독교 안에서는 물론이고

주의 회복의 참된 교회 상황에서도 이 그리스도가 없다.

라오디게아의 교회에서는

주님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계3:20)

가르침과 교리는 가지고 있지만 주님 자신은 갖고 있지 않다.

주님이 없이 말하고 봉사하고,

집회, 아침부흥, PSRP, 사역을 말씀을 위하고, 일곱절기, 어린이, 중고등 부 봉사,

심지어 물질을 드리고, 힌신하고...

이것이 종교적인 것이다.

종교적인 교회생활이란?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

이 일이 필요하고 영적이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지만,

그리스도 없이 한다면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할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리스도안에서, 통해서, 위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계3:20)

모든 교회가 다 문을 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연다면, 교회의 문을 연다면,

주님의 길을 얻으실 것이다.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 함,

열린 그릇은

음성을 듣는 사람, 문을 여는 사람, 주님께 길을 여는 사람...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낸 목표는 광야가 아니라 좋은 땅...

애굽에는 구속주를 상징하는 어린양이 있었다.

광야에는 하늘에 속한 음식인 만나가 있었다.

이를 얻기 위해 전쟁은 필요 없다.

그러나 좋은 땅에 들어가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

우리는 참되게 구속 받고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만족할 지 모르지만,

영 안에 계신 주님은 만족할 수 없으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여기에 있지 않다.

어린양과 만나로는 안되고 좋은 땅에 들어가야 성전을 건축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새사람과 왕국인 교회을 위해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체험하고 누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 전쟁에 참여하는 자가 이기는 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몫,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셨다.

다만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 되지않고,

우리의 영토, 영역, 범위가 되어야 한다.

마치 란 형제님께서 안성에 있는 동양에서 제일 큰 싸우나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모든 방들을 직접 체험한 것 같이...

 

주 예수님!

저는 이말씀이 분명 오늘날 혹여 교회의 문 밖에서,

아니면 열리지 않은 우리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형제님을 통해 주님이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 없이 하고 있는 많은 일들에서,

지식과 교리는 있어도 실재가 없는데서,

이미 라오디게아 상태에 떨어졌는지 모르는 데서,

내 자신만 위하고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회생활에서,

이미 할당된 몫이신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제한되고 빈약하게 체험하는 데서,

돌이킵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입니다.

누군가는 교회의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열어야 합니다.

아멘... 주님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특별 집회 기간 내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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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을 현재 보다 조금만 더 읽으십시오 (br. 란 캔거스) | ………신약성경
2011-06-28 , 0 vote , 0 sc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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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집회 메시지 #1에서  란 형제님이 전한  말씀 중 한 부분을 옮겨 봅니다.

현재 주님의 말씀이 형제님을 통해 부담으로 전달 된 것 같습니다.

성경을 지금 보다 더 읽는 습관이 세위질 뿐 아니라,

형제님 처럼 우리에게도 성경이 한 번도 안읽어 본 것처럼, 

살아있고 신선하고 생생한 말씀이 되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성경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는데, 이 성경은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려분은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 5;39~40]

 

 말씀에서 긍정적인 정수를 요약해 본다면,  

자세히 연구하는 것과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것과 주님께 나오는 것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성경말씀을 세상의 책 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나오지 않으면서 읽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상고해야 되고 공부해야 되고

암기해야 되고 기도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할 때마다 주님 자신께로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주님 자신에 대해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망상적인 헛된 체험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 영을 소중히 여기지만 말씀으로 체현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주님께 오기를 원하다며

성경말씀에 오는 것도다 실제적인 방식은 없습니다.

 

 최근에 나는 어떤 사역의 말씀에 관해서 교통할 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약을 여러분이 현재 읽고 있는 것 보다 조금만 더 읽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주님이 하늘의 사역에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형제이고 어린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증언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추구할 때 성경이 너무나 새로운 책이 되었습니다.

한 번도 안읽어 본 것처럼 너무나 살아있고 신선하고 생생한 말씀이었고

여러면의 기능을 나에게 발휘하였습니다.

 

 그 영께서 원하시는 데로 이 말씀을 위해 준비하기 위해, 

주님, 내가 어떻게 합당하게 말씀을 전할까요? 하고 물었을 때

주님은 다만 주님과 함께 성경을 읽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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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켕거스 특강-형제 온훈 2011년 6월 12일 저녁 |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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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켕거스 형제님 특별 교통-A


몸이냐 ! 자아냐 !


   자아가 있는 곳에는 몸이 있을 수 없고, 몸이 있는 곳이라면 자아가 있을 수 없다. 전에 이것을 말할 때 메시지 가운데 적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이것을 전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전에 어떤 곳에서 교통을 했던 것보다, 오늘 저녁에는 더 충만한 방식으로 교통을 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주시길 원한다. 이 대조를 보는 것은  쉽다. 몸은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이것보다 위대한 것을 없다. 또한 우리는 자아가 적어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자아가 무엇인가와 왜 그것이 몸의 원수가 되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몸을 위해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몸의 원수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자아는 몸의 원수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는 모두 몸이 건축되길 원한다. 심지어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 속에 그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형제 온전케 하는 훈련’에 등록을 한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을 통해서 이것들을 살펴보자. 마태복음 16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라고 하셨다. 그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계시를 주셨다. 16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8-19절에서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들을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여기서‘이 반석 위에’는‘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위에’를 말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건축된 교회, 왕국을 볼 수 있다.‘나의 교회’는 지방 교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주적인 교회,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말한다. 주님은 목표를 계시하셨다. 그것은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다. 이 교회는 왕국과 함께 한다. 영광스런 계시의 한 노선을 보고, 계시를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주님의 가르침의 큰 전환을 볼 수 있다. 그분은 고난 받으시고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22절에서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한쪽으로 가서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일이 결코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며 책망하기 시작하였다. 베드로는 방금 전에 주님을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베드로는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가 동의하지 않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분을 한쪽으로 붙잡고 가서 책망하기 시작했다. 한쪽으로 붙잡고 가는 것은 그를 저지시키는 것이다.‘책망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베드로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책망했다. 이것은 아주 강한 것이었다. 나는 어떤 형제님들이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한 청년이 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책망하고 있다. 베드로는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분명히 거절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분을 책망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대학생 중 한 학생이 교수님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책망하고 거절하였다고 상상해보라. 교수님이 다음 주에  시험 볼 것을 공고했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을 책망했다고 생각해보라. 어떤 합당한 학생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합당한 한국인이 한국 대통령을 책망하는가? 아니다. 대통령을 존경할 것이다. 왜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거절했는가?  그것은 인간적인 것 이상의 것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그 사람 뒤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보여준다. 23절에서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베드로에게“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사탄에게만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 이때 베드로와 사탄은 하나였고, 베드로는 실행적으로 사탄이었고, 사탄을 실지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후에 주님은“너는 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에 두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사탄이었고, 걸림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의 생각에서 그것을 거절했다. 그는 그의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사람의 일에 두었다. 이 사람의 일은 자신의 일을 포함하고, 자아를 방어하고, 자아를 보호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어떤 것에도 고난을 받으려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사탄, 생각, 사람의 일, 자아가 있다.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라고 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사탄을 부인하라거나 너의 생각을 부인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자아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또한 사탄과 생각과 자아가 함께 연루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은 활력그룹이다. 사탄적인 생명 안에서 활력적이다. 주님은 반드시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고 말한다.‘부인하는 것'은‘거절하는 것'이고,‘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자아가 나올 때, 우리는‘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25절에서 주님은 혼 생명을 잃는 것을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혼 생명을 구하기만 하면 잃어버린다. 또한 혼 생명을 원하는 것만으로도 혼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사탄과 생각과 자아와 혼 생명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베드로 안에 활동하고 있었다.


자아에 대한 세 가지 정의


   첫째로, 자아는 사탄의 생각의 체현과 표현이다. 이것은 23절에서 사탄과 생각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에 뉴욕 세계 무역 센터의 테러 공격이 있었다. 그러한 공격을 생각한 것은 어떤 종류의 생각인가? 공격자들은 사람을 미국에 보냈다. 그들은 상업용 비행기 운전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승객으로 가장하여 비행기를 탔고, 승무원을 죽이고 비행기를 강탈해서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비행기는 비행 연료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어떤 생각이 구상을 해낸 것이었다. 다만 사람의 생각으로 그것을 할 수 없고, 사람의 사고 안에 운행하는 사탄의 생각이었다. 자아는 이 사탄적인 생각의 체현이다. 주님께서는 이 자아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사탄과 생각과 자아는 하나이다. 이때 베드로의 인간적인 생각은 사탄과 하나였다.


   두 번째, 자아는 의견으로 표현된 혼 생명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방면에 강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혼이 산 혼이 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자아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사람은 산 혼이다. 사탄의 본성인 죄가 사람 안에 주입되었을 때 사람의 영은 죽게 되었고, 사람의 몸은 오염되어 육체가 되었고, 사람의 혼은 자아가 되었다. 자아는 사탄적인 생각의 표현이다. 이 자아의 본질은 혼 생명이다. 자아는 자신의 의견을 혼 생명으로 표현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있었고, 주님의 말씀을 거절했고,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혼 생명은 의견으로 표현되었다.


   셋째로, 자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는 혼이다. 생명 나무의 원칙은 의존하는 것이다. 혼이 독립을 선포할 때 그것이 자아이다. 여기에 사탄과 생각과 의견과 혼 생명과 자아가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 안에 숨겨져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원수가 되었다. 이것은 다만 기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활동적인 원수이다. 베드로가  실제적으로 "이것은 제가 받기 어려운 말입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그는 영 안에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책망했고, 거절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탄이 그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아가 무엇인지에 대한 빛 비춤이다.


   한 단계 더 전진하여 교통하면, 자아가 어떻게 몸의 원수가 되었는가? 자아는 원수인 사탄에게 교회를 손상시킬 기회를 준다. 자아는 음부가 들어올 수 있는 열린 문이다. 자아가 있을 때 사탄이 활동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의견을 표현할 때, 특히 혼 생명 안에서 강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할 때, 사탄이 그곳에 들어오게 된다. 그것은 형제들을 손상시키고, 상처를 주고, 하나를 깨뜨리고, 교통을 죽이기 위해 들어온다. 자아가 있는 곳에는 교통이 없다. 수년 전에 어떤 형제님이 주님의 상 집회 시간을 바꾸는 것을 교통하는데, 교통의 영으로 고려하면서 이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형제가 너무 강하게 반응했고, 교통을 죽였고, 형제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교통이 끝나게 되었다. 분노가 폭발한 후에 더 이상의 교통이 진행될 수 없었다. 그는 교통의 영 안에서 반응한 것이 아니라 자아 안에서 반응한 것이다. 그것이 교통을 죽였다. 약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직 강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가 있다. 몸과 혼은 다르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혼이 약한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혼이 작은 사람으로 작은 어려움만 준다. 그들은 혼이 쉽게 영향을 받지만,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책망할 수는 없다. 그런데 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 큰 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혼의 역량이 큰 사람들은 혼 생명이 너무 강하다. 그들은 지성을 가지고 있고, 똑똑하여, 강력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그것이 원수이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원수로부터 온 것이다. 사탄이 거기에 있고, 형제들을 손상시키고, 하나를 죽이고, 교통을 정지시키고, 낙심시킨다. 한 사람이 그런 손상을 받으면 축복이 멈추게 된다. 이것이 자아가 몸의 원수가 되는 길이다. 심지어 우리가 의견이 많고, 아이디어가 가득찼고, 강하다 할지라도, 제한을 받으면 유익하다. 그런데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과 자아는 손상을 주고, 혼란을 가져오고, 모든 사람이 좌절을 맛보게 한다.


   자아가 몸의 원수라는 것을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 최근에 나는 심각한 상황에 대한 이메일을 받았다. 어떤 곳에 나이든 봉사자가 있는데, 그는 모든 것은 통제하고자 하는 강력한 자아가 있었다. 자신의 자아를 다루는 것이 자아에 의한 것이다. 십자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또 자신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때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자아 안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자아를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몸의 원수이다. 그런 사람이 움직일 때 실제적으로 머리도 몸도 없다. 이런 사람은 주의 회복의 김정일과 같은 사람이다. 독재자이다. 다른 형제들은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사는 방식이고 자아 안에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실 것을 저지하고, 교통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독재자와 교통을 할 수 있는가? 그 독재자와 달콤한 교통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어떤 형제들은 그런 식으로 한다. 이것이 자아이다. 다른 형제들은 아는데, 그는 눈이 멀어서 알지 못한다. 그에게 무엇을 말하면 그는 분노에 가득찰 것이다.

 (형제 온전케하는 훈련 특강, 6월 12일 저녁 7시 남구 학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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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의 효능 | ………건강,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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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그리스도를사랑하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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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의 효능

 현미의 모습

 

 

껍질은 현미를 보호하고 외부로부터 곰팡이나 해충의 침입을 막는다.
벼에서 껍질을 제거한 것이 현미이며 배, 강층, 전분층으로 구분된다

 

현미의 효능

 

현미와 백미의 차이를 한자로 풀어보면?

찌꺼기를 뜻하는 ‘찌꺼기 박(粕)’자는 쌀 미(米)변에 흰 백(白)을 붙여 표기 했으니, 이는 백미가 곧 찌꺼기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또 쌀겨를 뜻하는 ‘겨 강(糠)’은 쌀 미(米)변에 튼튼할 강(康)을 붙여쓰니 이는 쌀겨가 있는 쌀,즉 현미는 몸을 튼튼히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현미는 살아있는 쌀

벼의 왕겨만 한 번 벗긴 쌀을 현미라 하며 백미는 열 번 이상 벗긴 쌀로 정미소에서 일괄적으로 도정을 한다. 이때, 쌀의 영양분이 모두 사라지고 정작 백미에는 5%정도의 영양분(지방, 단백질, 탄수화물)만이 남아 있다.
나머지는 쌀겨와 쌀눈으로 95%의 영양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모두 버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미는 백미에 비하여 19배나 많은 영양을 가지고 있다

 

1) 현미의 표준적 화학조성

현미의 씨눈 속에는 중금속을 해독시키는 휘친산이 백미의 6배나 들어있으며 풍부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외에 섬유질과 비타민B1, B2, B3, B6, B15, B17, 비타민E, 비타민C, 판토테인산, 콜린, 칼슘, 칼륨, 나트륨, 리놀산 등의 비타민과 미네랄이 균형을 유지함은 물론 항암인자를 억제하는 킬레이트 물질까지 들어 있는 종합 영양보고이다.

2) 현미의 영양학

한방에서는 쌀이 위장의 기운을 편하게 하고 속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영양학자들은 쌀에 탄수화물과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다고 말한다.

현미에는 백미에 들어있지 않는 식이섬유와 비타민B군, 칼슘, 마그네슘 등 성인병 예방에 필수적인 영양소까지 고루 들어 있다. 백미를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 성인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3. 현미와 탈모

1) 인슐린 분비를 늦춰 탈모를 막아주고 당뇨 예방

순수한 쌀밥(흰쌀밥)을 포함하여 감자, 밀가루음식(빵, 파스타 등)은 섭취되면서 곧바로 당분 형태로 흡수되므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비중적으로 너무 높게 섭취하는 것은 호르몬의 균형을 깨서 모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미에 포함된 풍부한 섬유질은 수분의 함량을 높여 변비를 예방하고, 인슐린 분비를 늦춰 탈모를 막아주고 당뇨 예방에도 좋다.

2) 프로페시아나 프로스카 복용자에게 꼭 필요.

또한 한의학에서는 남성의 정액성분은 오곡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특히 프로페시아나 프로스카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분들과 불임남성들은 평소보다 정액의 양이 적어질 수 있으니 이때에는 현미식 잡곡밥이 너무 좋으며 야채위주의 식단을 식생활의 기본으로 하면 탈모 외에도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

3) 여성 탈모의 원인인 갑상선 저하증에 효과

여성 탈모의 원인인 갑상선 저하증에 현미식사가 좋다. 먹기 힘든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며 이왕 치료를 위해 드신다면 왕겨만 벗긴 정확하고 살아 있는 현미(生米:정확하게 왕겨만 벗긴 1분도 인 현미는 묘판에 뿌리면 싹이 납니다)를 드시기 바라며, 이 쌀뜸물로 마사지나 머리를 헹굴때 사용해 보자

4) 피부병치료와 체질개선

한방에서는 현미가 폐와 대장을 보하는 효과가 있으며 대장의 작용을 활발하게 함으로써 노인, 병자, 체력이 약한 사람의 스태미너 증강에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또한 피부병이 잘 낫지 않거나 자주 앓는 사람의 체질 개선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여성의 살결을 곱게 만드는데도 특효가 있다고 한다. 현미가 어렵다면 콩(서목태)이나 팥 등 잡곡을 섞어 섭취하길 당부한다.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밑에 이어진다.)

5) 변비를 예방

반면 현미는 풍부한 섬유질을 포함하고 있어 수분의 함량을 높여 변비를 예방하고, 인슐린 분비를 늦춰 당뇨 예방에도 좋다. 한 예로 최근 일부 고등학교학생의 머리카락을 잘라 성분분석을 한 결과 알루미늄, 수은, 납의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학교 측은 이들 중의 몇 명을 골라 현미와 채식위주의 음식을 제공하였고 5개월 정도 식생활을 바꾸어 재조사 한 결과 알루미늄, 수은, 납의 성분이 기준치 아래를 훨씬 밑돌았다고 한다. 사실 요즘은 강조하지 않더라도 현미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까닭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백미 대신에 현미식을 선택하고 있다.

 

5. 현미의 효능

 

1) 각종 영양소를 공급

현미에는 대량의 비타민과 광물질 칼슘, 미지의 성분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 쌀겨와 배아에 많은 비타민B1은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당질대사에 빠뜨릴 수 없는 물질이며 현대인처럼 정백된 쌀과 빵을 비롯해 당질이 많은 식사를 하는 경우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이다. 비타민B2가 오랫동안 부족하게 되면 발육이 저해되고 구강염과 설염을 일으키거나 눈이 나빠지며, 심할 때는 백내장이 되는 일도 있다. 또 비타민B6가 결핍되면 뇌출혈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동맥경화와 빈혈 등을 일으키기 쉽다. 니코틴산 결핍증은 펠라그라라고 불리는데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설사, 구내염, 식욕 부진등의 소화기 이상과 두통, 불안, 지각마비 등의 신경 장애를 일으킨다. 그리고 빈혈, 간기능 장애도 일어난다. 판토텐산은 스트레스를 이기고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비타민E는 체내의 지방 산화를 방지하고 혈관을 유연하게 유지하게 해준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비타민E를 비롯한 여러 영양소는 굳이 영양제를 먹지 않더라도 현미를 먹으면 해결된다.

 

2) 암을 비롯해서 질병 예방

(1) 혈액을 항상 알카리성을 띠게 만든다.

미국 아이오아 주립대학 생리학교수 "아이뷔이"박사의 실험에 의하면 암세포를 약알카리성 혈액 안에 두면 3 ~ 6 시간 이내에 완전히 용해되지만 산성 혈액 속에서는 암세포가 용해된 것이 그 1/3 밖에 안 된다고 보고했다. 즉 산성 혈액 속에서는 인체의 예방기구가 제대로 작용을 못하여서 암세포 번식의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미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피로를 모르고 무병장수함을 보아도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다.

(2) 현미가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
의학적으로 볼 때 현미의 배아 속에는 암을 예방하는 항암물질인 "베타시스테롤"이 포함되어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또한 경증은 물론 중증의 암 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와 함께 현미를 주식으로 급여해서 암을 완치시킨 사례도 적지 않다.

(3) 성인당뇨병 위험 감소효과

페레이라 박사는 곡물을 정제하기 위해 겉겨를 깎아버리면 섬유, 미네랄 기타 건강에 도움되는 성분이 없어진다고 밝히고 그러나 섬유는 포도당이 혈액 속으로 방출되는 속도를 늦추어 낮은 혈당치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인슐린이 덜 필요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3) 지구력 높이고 동맥경화 예방

현미는 백미보다 맛이 덜하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나 쌀눈에는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B1ㆍB2,광물질, 철, 인, 칼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런데 쌀눈에 포함된 ‘옥타코사놀’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미국 일리노이대 T. K. 큐레턴 박사에 의해 수천㎞를 이동하는 철새의 에너지원으로 밝혀져 주목받기 시작한 이 성분은 근육 내 글리코겐의 저장량을 30% 향상시켜 지구력과 순발력을 높여주는 작용을 한다.

연세대 의대 심장내과 장양수 교수팀은 하루 7.2㎎의 옥타코사놀을 성인에게 8주 간 섭취시킨 결과, 동맥경화지수를 평균 3.44에서 2.96으로 15%정도 개선시켜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을 주었다고 발표했다.

4) 변비예방

현미의 쌀겨층에 들어있는 식물성 섬유가 장벽을 자극해 장의 연동운동을 도와 변비를 해소한다. 변이 장내에 흡수되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5) 임산부 입덧 예방

부인들이 임신을 하면 거의 전부 임신구토라고 해서 입덧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미를 주식으로 하는 부인들 간에는 대다수가 입덧이 없다. 또한 입덧을 하는 부인에게도 현미를 주식으로 하게 되면 입덧이 없어질 뿐 아니라 안산(安産)을 약속하고 산후증이 전연 없으며 유도(乳道)도 충분하여 젖이 잘 나서 한 두가지 득을 보는 것이 아니다. 또한 현미 가운데는 젖을 나게 하는 최유(催乳) 비타민 L 이 대량 있으나 백미에는 전혀 없다.

6) 부인들의 냉증(冷症)치유 효능

현미는 부인들의 냉증(冷症)을 치유하는 효능도 있다. 백미는 몸 안에서 불완전 연소를 하므로 충분한 열을 발산하지 못하여 냉증을 일으키나, 현미는 완전 연소를 하기 때문에 냉증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약간의 의학적인 지식만 있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7) 여드름과 무좀치료 효과

현미를 주식으로 하는 젊은 남녀 사이에는 일체 여드름을 발견할 수 없음이 그 좋은 증거다. 현미는 피부병중에도 고질로 알려진 무좀도 치료한다. 무좀과 여드름의 치유는 현미의 혈액정화 작용이 몸안에 있는 모든 기생충을 박멸시킬 뿐 아니라 체표(體表)에 기생하는 각종 미생물과 세균마저 용이하게 퇴치시키는 까닭이다.

6. 현미의 활용방법

우리식단을 조금씩, 또는 과감히 통곡식의 식사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통곡에는 현미, 현미 찹쌀, 통밀, 차조, 차수수, 기장, 통보리, 율무, 콩, 팥 등을 들 수 있다. 건강 상태와 취향에 맞게 잡곡을 섞어 밥을 해먹을 수 있다.

현미 잡곡밥은 현미 50%에 현미 찹쌀10%, 차조와 차수수, 통밀, 통보리, 율무, 기장 중 3 가지 이상을 섞어 30% 정도를 채우고 팥과 콩을 10% 정도로 섞어 밥을 지으면 맛있게 현미 잡곡밥을 먹을 수 있다.

좀 더 차지게 먹고 싶은 경우에는 현미와 현미 찹쌀을 반반씩하거나 현미40%와 현미 찹쌀20%로 현미 찹쌀의 비중을 늘려 시작을 해도 된다. 잡곡은 구입하는 대로 일정한 비율로 섞어 두고 밥 짓기 전에 현미와 섞어둔 잡곡을 불린다.

1) 현미밥 짓기·먹기

(1) 현미를 물에 24시간 이상 담가 물을 충분히 흡수시킨 뒤 조리한다.
(2) 쌀 중 현미 비율을 점차 늘려간다.
(3) 30회 이상 꼭꼭 씹어 먹으면 소화도 촉진하고 빨리 포만감이 와서 다이어트에 좋다.
(4) 콩. 조와 같은 잡곡을 함께 넣어 밥을 짓는다.

‘기능성 위장병’때문에 잘 체하고 걸핏하면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음식을 가려먹고 적게 먹는 경향이 있는데 위장을 더 약하게 만든다. 이것저것 ‘용감하게’ 먹어야 위가 튼튼해진다.

 

2) 현미오곡밥을 먹는다.

우리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중 물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단백질을 비롯하여 혈액을 조성하고, 뼈를 자라게 하고, 호르몬과 각종 소화액을 만들고, 대사활동을 주관하는 에너지가 생성되도록 하는 필요물질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 곡물이다. 이러한 곡물 역시 각각의 성질이 다르고 약성이 달라서 체질적인 성향에 따라 어떤 식품은 도움이 되는 반면 어떤 식품은 해롭게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미를 비록한 주곡과 잡곡들을 다섯 가지 이상 섞어서 밥을 지어 먹으면 해로운 성분들은 중화되어 상쇄되고 이로운 성분은 상승작용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곡물이라도 어느 한 가지만 편협 되게 섭취하여서는 안되며 콩, 조, 수수, 보리, 통밀, 율무, 깨, 옥수수 등의 곡류를 고르게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미와 콩을 필수로 하고 나머지 곡류는 준비 되는대로 다섯 가지 이상 섞어서 밥을 짓되 현미를 50%로, 나머지 곡류 다섯 가지 이상을 합하여 50%로 해서 밥을 지어 먹도록 하자.

 

3) 현미식을 생활화하는 법

(1) 백미 밥에 현미를 조금씩 섞다가 나중에는 다 현미로 한다.
(2) 볶은 또는 튀긴 모든 곡식(특히 콩과 깨)을 물엿을 버무려 강정을 만들어 주면 아이들이 참 좋아 한다.
(3) 현미 떡이 흰 쌀 떡보다 월등하게 맛이 좋다. 떡가래를 만들어 떡볶이, 떡국을 끓여 드시면 아이들과 어른 모두에게 최고의 건강식이 되는 것이다.

4) 현미 생식법

(1) 현미 1홉(1일분)을 물에 담근다.
(2) 겨울에는 6~7일, 여름에는 2일 정도(중간에 물을 간다.)지나면 싹이 부풀고 직각으로 촉이 나온다. 그리고 현미가 백색으로 변하면서 부드러워지고 촉이 부풀고 직각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 때가 가장 먹기 알맞은 때이다.
(3) 이것을 세 끼로 나누어서 씹어 먹되 한입에 80~90번 또는 100번 이상 천천히 씹는다. 이것은 현미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오래 씹을수록 침샘의 바로틴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되어 소화도 잘 되고 회춘도 된다. (4) 그리고 물에 불린 현미를 180cc의 물을 가하여 믹서로 걸쭉하게 갈아서 두유처럼 해서 먹어도 좋다.
(5) 발아기의 날곡식은 자체가 소화 과정에 있으므로 소화, 흡수가 잘 된다. 날 현미를 생식하면 노화 방지에도 좋고 각종 만성 난치병도 자연 치유된다.

 

5) 현미차

재 료
현미 1홉, 물 8홉
만드는 방법
(1) 현미를 씻어 물기를 뺀 후 기름 두르지 않은 팬에 넣고 갈색이 날 때까지 볶는다. 나무 주걱으로 저으면서 튀지 않도록 한다.
(2) 동시에 냄비에 8홉의 물을 끊여서 볶은 현미를 넣고 바로 불을 끈다.
(3) 5분간 그대로 둔다.
(4) 체에 걸러 그대로 차로 마신다.

2번째 차 마시는 방법
위의 첫 번째 차를 거르고 난 현미를 같은 방법으로 물 8홉을 끓여서 그 속에 현미를 넣고 바로 불을 약하게 하여 약 5분정도 끓인다. 5분후 위와 같이 바로 체에 거른다. 첫 번째 차와 두 번째 차를 섞어서 마셔도 좋다.

현미차는 단백질과 절대로 섞이서 마시지 않도록 해야 한다.

 

6) 현미즙 - 피부병에 효과

한방에서는 현미가 폐와 대장을 보하는 효과가 있으며 대장의 작용을 활발하게 함으로써 노인, 병자, 체력이 약한 사람의 스태미너 증강에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피부병이 잘 낫지 않거나 잘 앓는 사람의 체질 개선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미 5작을 검은색이 나도록 볶은 다음 여기에 물을 넣고 쪄서 스프처럼 만든다. 이것을 하루 두 차례씩 1회에 한 컵 정도씩 먹는다. 이때의 온도는 손을 대어 따뜻함을 느낄 정도로 해서 먹는 것이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조미료를 함께 넣어 먹어도 좋다.

이것은 피부병은 물론 여성의 살결을 곱게 만드는 데에도 특효가 있는 비방이다.

 

7) 현미스프

현미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하면 껍질이 남아있어 소화흡수가 잘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러나 살짝 볶은 현미를 충분히 끓여서 만든 현미스프는 소화 가 잘되는 것은 물론 위장을 활성화시키고 피로회복을 도와주어 체력을 강하 게 해준다. 감기 등으로 쇠약해진 사람에게 특히 좋은 건강식. 또한 몸을 따스하게 해주어 혈행을 촉진하고 혈압을 안정시키며 혈행불순에 의한 어깨결림이나 두통을 해소하고 몸이 차가워 일어나는 빈뇨나 치질도 개선해준다.

재 료
현미 1컵, 물 8컵, 소금 약간
만드는 방법
(1) 현미를 씻지 않은 채 기름기가 없는 후라이팬에 살짝 볶는다.
(2) 현미가 쥐색으로 변하면 물을 넣은 냄비에 부은 후 중불 정도로 끓인 다.
(3) 냄비뚜껑을 덮지 말고 한소끔 끓여낸 후 약한 불로 물의 양이 반이 될 때까지 은근히 익힌다.
(4) 소금으로 간을 한 뒤 헝겊이나 소쿠리로 걸러내면 된다.

 

 

1) 현미식의 두 가지 문제점

현미는 소화에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반드시 무농약으로 재배된 현미를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쥐나 새에게 백미와 현미를 동시에 줄 때 현미부터 먼저 먹는 걸 보면 짐승들도 현미가 좋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현미의 영양 가치는 선진국 학자들을 통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2) 현미 / 백미 농약비교

현미는 알칼리성 식품으로서 정상적인 신진대사 작용으로 즉시 몸 밖으로 배설하나 백미는 산성식품으로서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제때 몸 밖으로 배설하지 못한다.

비 교   현 미   백 미  
섭 취 량   0.09 ppm   0.04 ppm  
섭 취 량   0.0075 ppm   0.001 ppm  
잔 류 량   0.015 ppm   0.039 ppm  
배 설 율   83.8%   2.5%  


3) 뜨겁게 먹는 흰 쌀밥이 췌장암 유발

한편, 먹다 남은 찬밥이나 식은 감자 등은 맛이 없을지는 몰라도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과학자 존 번은 최근 열린 세미나를 통해 “가열하지 않은 찬 쌀밥과 감자 등 탄수화물 식품에 함유된 경정질의 녹말이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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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 | ………성경이야기
2011-06-23 , 0 vote , 0 scrap
http://blog.chch.kr/yoon/30679.html
블로그 > 그리스도를사랑하는사람들
http://blog.chch.kr/loversofx/30425.html

 

지난 글들 가운데서 영국의 위클리프와 체코의 존 후스 등 종교개혁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의 큰 불씨가 된 인물은 독일의 마틴 루터였습니다. 루터는 1483년 독일의 작센주의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광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한스 루터 (Hans Luther)와 어머니 마가레테 린데만 (Margarethe Lindemann)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Erfurt)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 후 1505년 여행 도중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를 만나 친구가 죽는 일을 당한 후 소명을 받아 같은 해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508년 비텐베르크 대학(Wittenberg)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이 대학의 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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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는 것임을 재발견하였습니다. 이 결과 당시 교회의 관습이 되어 있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으로 1517년 루터의 95개가 나왔는데, 이것이 큰 파문을 일으켜 마침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칙령을 받았으나 불태워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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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의회에 소환되어 그의 주장을 취소할 것을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한 후 그로부터 9개월 동안 작센의 영주의 비호 아래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숨어 융거 게오르그라는 이름을 가진 귀공자로 변장해 지내면서 신약성경의 독일어 번역을 완성하였습니다.

이것이 독일어 통일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저술에서 사제직과 수도생활, 공로, 교계제도, 고해성사를 거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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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는 새로운 교회 형성에 힘썼는데, 처음에는 멸시의 뜻으로 불리던 호칭이 마침내 통칭이 되어루터파 교회가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파생된 과격파나 농민의 운동, 농민전쟁에 대해서는 성경 신앙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이들과는 분명한 구분을 지었습니다. 한편 1521년 말부터 사회혁명가이자 종교개혁자인 토마스 뮌처를 비롯, 루터의 영향을 받은 과격한 종교개혁가들이 줄기차게 등장하여 사회적 혼란은 더욱 심화되어만 갔습니다.

특히 1524년과 1525년 사이에 토마스 뮌처등의 지도로 일어난 농민혁명에서 루터는 처음에는 농민들의 편을 들었으나, 제후들의 착취에 대항하는 농민들의 혁명활동이 점점 과격해짐에 따라 결국 태도를 바꾸어 제후들에게 폭력 진압을 촉구함으로써 농민들의 혁명은 잔인한 탄압으로 진압당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루터의 영웅적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주들간의 분쟁 조정을 위하여 고향인 아이슬레벤에 갔다가 그곳에서 병을 얻어 죽었습니다.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은 캘빈이나 다른 종교개혁자와 함께 종교개혁을 르네상스운동과 함께 중세에서 근세로의 전환점으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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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유럽의 신성로마제국은 고대 로마제국의 계승자를 자처하여, 11세기 무렵에는 "로마 제국(R?misches Reich)", 12세기 무렵에는 "신성 제국", 13세기 이후에는 "신성로마제국(Heiliges R?misches Reich)"이라고 칭하였습니다. 16세기에는도이치민족의 신성로마제국(Heiliges R?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이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어의 "Reich"는 라틴어의 "imperium"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제국"을 의미합니다. "신성"이라는 형용사는 1157년에 프리드리히 1세가 제후들에게 발포한 소환장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본래 고대 로마제국이나 프랑크왕국의 후계자를 자처하였으므로, 이 정치체제의 군주는 정식으로 말하자면 초기에는 프랑크 국왕, 후에는 로마 국왕이며, 이 직함을 얻은 사람이 로마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로마 황제로 취임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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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설교의 목회자 찰스 스펄전 | ………성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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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설교의 목회자 찰스 스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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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젼은 1834년 에섹스의 지방도시인 캘버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교도 신앙으로 무장한 복음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성경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신앙심이 투철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자주 무릎을 끓고 스펄젼의 품에 꼭 안아서 자주 기도했다. 아들이 늘 주님안에서만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는 어머니였다. 이러한 가정환경하에서 어릴때부터 성경과 많은 청교도 서적을 읽어나갔다.

1849년 여름에 찰스는 뉴마켓 마을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결정적인 구원을 받게되었다.
그는 정직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눈에 비쳐지는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이 너무 힘든 죄의 짐을 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는 끝없는 율법의 요구로 죄의식은 깊어만갔으며 늘 울부짖는 생화을 하기도 했다.
번민의 밤이 지나고 아침에 깨어 나면 청교도 서적을 집어 들곤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깊은 죄의식으로 차라리 개구리나 두꺼비가 되기를 원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둠과 절망속에서, 그것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날 시골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찬송소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컸으며,그날 눈 때문에 목사가 오지 않아 한 구두 수선공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말씀은 "나를 바라보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이었다. "보는 것은 고통이 따르지 않습니다. 손과 발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지금 현재 예수님은 "나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스펄젼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바라보며 사는 것뿐입니다." 그는 바로 그 순간 구원받았음을 확신하였다.
그는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한량없는 은총이여! 죄인이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영혼은 쇠사슬이 끊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느꼈습니다. 나는 자유로워진 영혼이요, 천국의 상속자이며 용서받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며 더러운 진흙과 끔찍한 지옥으로부터 건져올림을 받았고 나의 발은 단단한 바위위에 서 있으며 나의 앞길도 탄탄히 다져졌다는 것을 " 그는 이러한 고백을 그 자리에서 하나님앞에 하였고, 그동안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씻기었다. 그 즉시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가 격었던 시련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죄의 사악함에 대한 인식은 그의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져서 그로 하여금 경건한 모든 것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한 모습처럼 복음을 가장 진실되고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는 캠브리지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13개 마을을 돌며 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몇명의 순진한 농장 지도자들과 그들의 아내들에게 설교하였다.

1851년 10월 스펄젼은 17세의 나이에 워터비치 마을의 침례교회에서 정식목사가 되었다.
조지 골드라는 사람이 당시 캠브리지 회합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스펄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는 깊은 감명을 받고 런던의 뉴파크 스트릿 침례교회에 그를 추천하였다.
그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동명이인을 초청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지 않으려 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1953년 12월 뉴파크 스트릿 교회의 설교를 위해 런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그 교회의 크기에 압도 당하였고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단에 섰을 때 그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꼈고 그의 설교는 청중의 마음들을 사로잡기 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 워터비치의 시골 청중들에게 했던 설교와 똑 같았다.
그는 단지 말씀을 말씀으로 영접하고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단했다. 예배는 너무나 엄숙했고 그 전의 어떠한 설교가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은 기쁨을느끼기 시작하였고 아침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후 예배에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같이 참석하였다. 그들은 예배가 마쳤음에도 돌아가지 않고 기쁨에 넘쳐 있었다. 저녁 예배때의 회중은 더 많았다. 집사들은 그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스펄젼에게 목사가 되어 달라는 청탁을 하였다.

1854년 2월 19세의 젊은 시골 목사가 런던 강단에 서게 되었다. 스펄젼이 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자 교회는 증축공사를 해야 할만큼 성도의 수가 늘었다. 2천명의 좌석을 만들었지만 군중은 더 늘었다.
이제는 더 넓은 음악회장을 구하여 설교를 하게 되었다. 설교가 있는 날은 그 곳의 교통이 마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무 의미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전심을 쏟았다. 그의 설교는 이러하였다. 그는 예배가 시작되기 전 골방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며 복음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단상앞에 서서는 아주 진실한 기도로 회중을 이끌었다.
"이제 당신의 종은 가장 신실한 모습으로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그의 구세주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다시 한 번 축복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스펄젼에게는 설교중 회중을 웃고 울게 하는 탁월한 기질이 있었다. 그는 모노드라마의 천재처럼 자연스러운 제스츄어와 적절한 예화를 사용하여 그가 전하는 복음의 주제에 회중을 몰입하게 하였다.
그리고 열정과 영혼을 토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죄는 장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가 사단과 같이 검을지라도, 죄와 친구일지라도, 이 밤에 믿기만 한다면 모든 죄가 용서 받을 것이며 모든 악이 없어질 것이며, 모든 불경스러움이 씻어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는 종반부에 가서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의 힘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거의 액센트도 들리지 않았다. " 설교가 끝난 뒤 그는 다시 은밀한 골방에 들어와 산고의 고통과 하나님앞에서 실패감에 한탄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성직수여식도 받지 않았고 대학도 나오지 않은 것에 주위로 부터 비판을 받았다. 특히 그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이룩할 수 없다는 청교도 사상을 절박하게 믿었을 때 그에게 무수한 시련이 다가왔다. 각 기독교 종파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그에게 압박을 가해 왔을 때도 그는 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후의 청교도" 처럼 억척스럽게 싸워나갔다.
1861년 그는 10,000명 이상이 모이는 메트로폴리탄의 테버네클 교회를 세우게 된다. 또 목회자 훈련학교인 페스터즈 칼리지를 세워 순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였다. 스펄젼은 이 대학의 학생 전원을 1:1로 상담하면서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와주었다. 1866년 런던에서만 그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가 18개나 되었다. 그는 또 "The Sword and the Trowel" 월간 잡지와 1,900편 이상의 설교문들과 시편 주석 등도 발간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복음의 설교자였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못박히심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그의 모든 재능을 바쳤다. 그의 기쁨은 구세주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 영혼들을 인도하는 데에서만 존재다. 일찍이 그는 자신을 위한 영욕을 버렸고 그의 기도는 그의 가슴의 최고의 목표를 발견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찰스 스펄젼을 쓰시고 19세기 영국에서 복음이 한낱 도덕이나 윤리 종교의 한 영역으로 추락하는 것에 맞서게 하셨다. 또 그의 순수함과 열정적인 믿음을 받으시고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하셨으며 그를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목회자로 세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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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선구자 진젠 도르프 | ………복음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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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선구자 진젠 도르프
 

1700년 5월 26일에 드레스덴에서 오스트리아 가문 출신인 한 작센 선 제후국 장관의 아들로
태어난 진젠도르프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경건주의자 슈패너와
친밀하였으며, 프랑케와 함께 대중교육과 성경배포 그리고 선교를 장려하였던 외할머니 헨리테
카타리나폰 게르스도르프(Henriette Katharina von Gersdorf)밑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진젠도르프는 10세가 되던 해에 할레대학에 입학하여 17세까지 그곳에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프랑케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그의 경건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상인 순결한 교회와
순결한 영적 생활에 대한 뿌리가 내면에 자리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할레 대학 출신의 선교사 지겐발크와 플뤼차우가 보낸 동 인도 선교에 관한 보고들을 접하게 되었고
1713년에는 플뤼차우가 할레를 방문했을 때 그를 직접 만나기도 하였다.
이처럼 진젠도르프는 할레 재단의 선교적 지원을 보면서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젠도르프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겨자씨 모임(the Order of the Grain of Mustard Seed)'을 결성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거하고 신앙문제로 고민하는 형제들을 도우며 아직까지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해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들 모임의 목적으로 삼고 활동하였다.

그 후 1719년 진젠도르프는 네델란드와 프랑스로 연구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도중에 뒤셀도르프에서 화가인
도메니코페티(Domenico Feti)가 그린 "내가 너를 위하여 이것을 당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라는
각명(刻銘)이 달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를 사로잡게 되었고 진젠도르프는 이 그림으로부터 그의
필생의 사역에 있어서 상당히 주요한 자극을 받게 되었다.

진젠도르프가 이룩한 괄목할만한 업적은 바로 모라비안 교회를 설립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보헤미아 국가 교회의 박해를 피해 헤른후트(Herrnhut)로 피난온 형제단(The Unity of the
Brethren)이라고 불리우던 모라비아의 후스파(Hussites) 개신교도들이 진젠도르프의 지도하에 기독교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이 공동체가 '모라비아파'라고 불리워졌다.

진젠도르프는 모라비안의 형제단을 돌보기 위해 나중에는 드레스덴에서 법정 변호사로 일하던 공직을 버리고
형제단의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으며 루터교회의 신학자로서 인정되는 시험에 합격하고 1727년 모라비안의 감독으로
안수를 받게 된다.

 

진젠도르프에 의한 모라비안 교회는 선교지향적인 교회였다.
그들의 선교지향적인 모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전도하는 것이었다.

진젠도르프는 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기독교의 기사(騎士)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지도 이념으로 삼았다.
특별히 그는 모라비안 교회의 형제들을 작은 그룹으로 구성하여 주의 일을 하게 하였다.
그는 그 자신이 이러한 전도를 실천하였는데 암스테르담, 발틱 국가들, 베를린, 제네바등지에서 집회를 갖고 전도하였다.

그의 접촉은 다양하고 각계 각층에 이르러서 귀족들, 법원의 사람들, 대학생들, 교수들 모두가 그의 전도의 대상들이었다.
다음으로 중보기도를 들 수 있다.

1722년까지 90명이 헤른후트에 정착하고 1726년에 이르러서는 300명의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1727년
서로를 권고하고 부흥을 위한 기도를 위해 작은 그룹들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4명의 형제와 24명의 자매가 자정부터 그 다음날까지 계속 기도하기 위해 각자 1시간씩 맡을 것을
서약하기에 이르렀다.

모라비안 교회의 시간 마다의 중보기도는 그 후 백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중보기도는 그 다음 2백년 이상 수
많은 사람들이 모든 대륙으로 선교를 위해 파송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음으로 모라비안 교회의 타문화권 선교를 들 수 있다.

모라비안 교회는 1732년 레온하르드 도버(Leonhard Dober)와 다비드 니츠만(David Nitschmann)을 서인도제도
(the West Indies)에 파송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그 뒤를 이어 1735년에는 그린랜드로, 1735년에는 수리남(Sirinam)
으로, 1737년에는 아프리카에, 1740년에는 북아메리카의 인디언과 실론(Ceylon)에, 1742년에는 중국에, 1747년에는
페르시아에, 1754년에는 자메이카에, 1756년에는 안티구아(Antigua)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1760년 진젠도르프가 죽기까지 모라비안 교회는 28년간의 활동을 통해 226명의 선교사를 배출해 내었고, 1760년
당시엔 그린랜드의 13개 지역과 중.북부 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에서 49명의 형제와 17명의 자매들이 약 6,125명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었다.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교회의 이러한 선교는 독일 개신교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자발적인 선교운동으로서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세계 각처에서 사명을 완수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교회는 개신교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 공동체의 전적인 지원을 통해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선교로서의 전체 교회" 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아울러 개신교내에서 '선교에 대한 책임은 만일 어떤 주어진 지역내에 적법하게 세워진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를 통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교회의 지역적인 견해(the territorial view)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때 이후로 심지어는 유럽 식민지의 권력자들의 외국 전초기지들도 새로운 선교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곳이 되었다.
선교의 전진은 더 이상 전통적인 교구의 경계에 의해 제한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진젠도르프의 사후에도 모라비안 교회는 다른 교회로서는 이루지 못한 헌신적인 표준을 세워 놓았다.

뿐만 아니라 서인도제도로 건너간 모라비안들이 2백년에 걸쳐 3천명의 선교사를 지원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낳았고
해외 선교구에 속한 신자의 수가 내지 교회의 신자의 수의 3배나 되는 특수한 예를 보여 주었다.

이들 모라비안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개척적인 역할을 감당했을 뿐 아니라 어려움을 참고 이기며, 고난을 달게
받으며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활동하였다.

모라비안들은 그린랜드와 레브로돌(Labrador) 그리고 알라스카와 서인도제도, 동부 및 남부 아프리카와 빅토리아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했으며 국내 전도에도 매우 활동적이었다.

모라비안 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였지만 그들이 다른 종파에게 미친 영향은 특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모라비안 교회의 선교운동이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영향이 지역적으로 유럽의 여러 지역과
세계에 널리 미쳤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로날드 녹스(Ronald Knox)는 모라비안 운동의 그런 점을 가리켜 "유럽 선교에 활력 있는 누룩"이라고 하였으며,
하세(Hasse) 주교는 "모라비안의 영향은 초기 영국 부흥의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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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막통증, 컴퓨터 작업등 원인 주사보다 스트레칭이 더 효과적 | ………건강,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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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우 교수의 新건강학/21]

근막통증, 컴퓨터 작업등 원인 주사보다 스트레칭이 더 효과적


[조선일보]
A씨는 40대 직장인이다. 몇 년 전부터 목덜미가 뻣뻣하고 양 어깨는 천근이 달린 것같이 무겁고 아파왔다. 병원에 가서 약도 먹어보고 어깨 근육에 주사도 맞아 봤지만, 일시적인 효과만 있었다. 용하다는 안마사에게 비싼 돈 주고 이른바 경락치료라는 것을 몇 개월 받아 보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몸이 항상 무거우니, 짜증만 늘고 인생이 왜 이리 고달플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A씨가 앓고 있는 질환은 ‘근막통증증후군’으로, 근육이 지속적으로 뭉쳐 있어 생기는 병이다. 허리가 삔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뻐근한 경우,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어깨가 뻐근하고 목덜미가 당기는 경우, 담이 들었다고 호소하는 경우의 대부분이 바로 이 근막통증증후군이다.


근육이 뭉친 상태가 지속되면 근육결(근섬유) 일부가 띠처럼 단단해지고, 혈액순환이 잘 안 돼 허혈(虛血) 상태가 된다. 이로 인해 통증 신경을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통증이 생기거나 그로 인해 근육이 더 뭉치는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근막통증증후군은 전신 근육에 다 올 수 있는 병이지만, 특히 목덜미, 양 어깻죽지, 등의 근육 등에 잘 생긴다.

근막통증증후군의 원인은 현대인의 반복되는 과도한 긴장과 부적절한 자세이다. 이것은 특정 자세에서 근육의 긴장이 지속되는 컴퓨터 작업과 자동차 운전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난다.

다른 요인은 몸의 예민성인데, 같은 상황에서도 쉽게 과민해지고 긴장을 잘 하는 사람들이 더 잘 걸리게 된다. 몸이 예민한 사람들은 소위 열을 잘 받고 혈압도 쉽게 올라가며, 조금 기다린다든가, 주위가 지저분하다거나, 약속시간에 늦어지면 몸이 매우 불편해진다.




근막통증증후군 치료법에는 뭉친 근육을 풀려고 하는 대증치료(증세를 경감하는 치료)와 아예 뭉치지 않게 하는 원인치료가 있다.

대증치료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통증마취주사, 물리치료, 마사지 등이 있다. 어느 방법이나 뭉친 근육을 푸는 효과는 좋으나 원인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재발하는 단점이 있다.

원인치료법은 ‘치료를 받는다’기보다는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된다. 그 방법으로는 뭉친 근육 스트레칭, 평소에 운동하기, 손수 운전 덜 하기, 컴퓨터 작업시 과도한 긴장 안 하기 및 몸을 둔감하게 하기 등이다.

근육을 뭉치지 않게 하기는 평소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과도한 긴장 속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근막통증증후군은 스트레스가 일으키는 다른 고통스러운 질환과 함께 내 몸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손수 운전을 하지 않고 지하철로 출퇴근만 해도 많은 것을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운전을 하게 되더라도 평소보다 10분 정도 느리게 운전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끼어들기에 양보하고, 가능한 한 추월을 하지 않으며, 미리 스스로 정한 속도를 넘지 않는 연습을 하면 된다. 이런 걸 다 지키더라도 10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도 긴장이 느껴질 경우, 잠시 작업을 쉰다든지 스트레칭을 하면 근육이 뭉치지 않게 하는 데 좋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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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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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루살렘은 장래 우리가 들어가는 성이지만

지금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을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을 살아 냄으로 새 예루살렘이 되고,

새 예루살렘을 이루어 냄으로 새 예루살렘을 건축함으로써 말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새 예루살렘이 매우 주관적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건축의 청사진과, 계시록 21,22장 에서 완성된 건축물이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what we are),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how we work) 에 대한 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새 예루살렘이 우리의 생활과 봉사와 일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10절은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성이라고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그분 자신과 그분의 신화(神化)된 백성을 재료로 하여 건축하신

것으로서, 보배로 된 놀라운 구조물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구조, 설비, 공급은 모두 신성한 삼일성이 기본요인입니다.

삼일성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들 안으로 넣어지고 짜여진

유일하고 신성한 유기적인 조성체입니다.

이것을 볼 때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사람, 새 예루살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금, 진주, 보석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금을 사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진주가 되려면 죽음 안에 거하고, 생명을 분비하는 주님의 부활을 누려야 하고,

보석이 되려면 고난과 압력과 십자가의 죽이는 일로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해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이 되는 재료로 변화되기 위해,

여기에 반드시 대가지불이 있고 우리의 협력이 있고 이기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전쟁이 필요하듯이,

사탄, 세상, 죄, 육체를 이겨야 하지만,

새 예루살렘을 대치하는좋은 것들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가치 있는 재료가 되어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려면,

다소 시간구속, 잠 이김, 습관 형성, 본성 거스림, 육체 파쇄, 정욕 거절,

입맛 변화, 말씀에 배고픔, 생각 거절, 영 훈련 등 여러 방면에서

이기고 정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이시대에서도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한 생활이 요구됩니다.

 

주말에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연로하신 두 부모님을 뵙고 또 혈육들을 만나고 돌아오며

우리가 오늘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how we work)를 깨달았습니다.

가족들을 만나면 그냥 혼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또한 나이드신 부모님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도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선 회복역 보급판을 한권씩 드렸습니다.

성경을 휴대하고 다니며 각주를 읽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부모님과는 함께 주님을 부르며 성경을 몇 구절 읽었습니다.

시간의 제한으로 많은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우리가 삼일하나님으로 짜여졌다면,

그들에게 생명으로 흘러 갔을 것입니다.

삼일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 안으로 공급하여

그들을 변화시킴으로 가치 있는 재료가 되게 하는 일이

우리가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마치 모래 같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줄 때,

우리는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대신 생명즙을 분비함으로...

우리에게 안배된 사람이나 환경이나 일들을

우리를 변화시키는 열과 압력으로 받아들이므로...

 

고린도전서 3장 10절에 "어떻게 건축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라는 말씀을

경고로 두렵고 떨림으로 새 예루살렘 건축에 참여합니다.

가치 없는 재료 "나무, 풀, 짚"으로 건축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하지 않도록 자신을 살펴 봅니다.

가치 있는 재료 "금과 진주와 보석"이 되어 가고,

또한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을 새 예루살렘의 재료가 되게 하는

새 예루살렘을 이루어 내는 일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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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 ………태그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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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성경말씀

마13:45~46

또한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습니다.

그는 아주 귀한 진주 하나를 발견하자,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천국의 비유에서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곧 그리스도는

그분의 왕국을 위하여 교회를 찾고 계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과 18장 17절에서 교회를 발견하신 후

그분은 십자가로 가셔서 그분께서 가지신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왕국을 위해 교회를 사셨습니다.

 

진주는 새예루살렘의 건축을 위한 재료입니다.

진주는 살아있는 조개(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사망의 물(사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작은 모래알(죄인)로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주는 모래알(믿는이) 주위에

생명 즙을 분비함으로 산출되는 것입니다

.

진주는 사탄으로 말미암아 부패된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오기 때문에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주로 이방 세계에서 나온 거듭난 믿는이들로

구성되며 극히 값진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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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음이 모여서 | ………찬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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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1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주의 은혜 나누고

예수님을 따라 사랑 해야지 우리 모두 사랑해

2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후렴

하나님이 가르쳐준 한가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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ㄸㅏ뜻한 차 | ………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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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JPG


 차 한잔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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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 ………구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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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6월 21일] 오늘의 이만나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성경구절
마13:45~46 또한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습니다. 그는 아주 귀한 진주 하나를 발견하자,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오늘의 만나


 

천국의 비유에서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곧 그리스도는 그분의 왕국을 위하여 교회를 찾고 계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과 18장 17절에서 교회를 발견하신 후 그분은 십자가로 가셔서 그분께서 가지신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왕국을 위해 교회를 사셨습니다. 진주는 새예루살렘의 건축을 위한 재료입니다. 진주는 살아있는 조개(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사망의 물(사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작은 모래알(죄인)로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주는 모래알(믿는이) 주위에 생명 즙을 분비함으로 산출되는 것입니다. 진주는 사탄으로 말미암아 부패된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오기 때문에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주로 이방 세계에서 나온 거듭난 믿는이들로 구성되며 극히 값진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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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옥외 설교가 조지 휫필드 | ………복음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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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옥외 설교가 조지 휫필드
 

 

1. 생애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 는 1714년 12월 16일 글로스터에 있는 벨이라는 여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부친을 여의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 자신은 젊은이들이 빠지기 쉬운 거의

모든 죄를 저질렀다고 하였다.

그는 행복하지 못하였고 예민한 양심은 죄책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결국 그가 일하던 술집을 나와 옥스퍼드로 향하였다.
그는 18세에 옥스퍼드의 팸브록 칼리지에 근로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수학함으로서 그의 일생이

변화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두명의 웨슬리, 요한과 그의 동생 찰스를 알게 되었고 엄격한 생활 방식

(method) 때문에 처음으로Methodists로 불렸던 경건한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옥스퍼드에는 신앙적으로 열심이 있는 학생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경 벌레들', '성경꾼들', '성찬 증시자들', '형식주의자들', '홀리 클럽' 등으로 불렸다.

그 모임에 속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긴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을 실천했다.
그 모임 회원의 한 사람인 찰스 웨슬리가 휫필드의 종교적으로 열심히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이것은 그 두 사람이 역사적인 우정을 맺게 되는 발단이 되었다.


홀리 클럽의 영향 아래서 휫필드는 그의 사고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책 한 권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사람 헨리 스쿠걸이 쓴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그때까지 휫필드는 '중생'의 기적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그는 선행으로서 천국의 도상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그는 지금까지의 그런 생각들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1735년에 회심하여 1736년부터 복음을 설교하기 시작했다.

1736년은 그의 부흥운동에서 중요한 해로서 6월 20일 그의 나이 21세에 글로스터의 감독 벤슨으로부터

안수를 받고일주일 후 6월 27일에 성마리아 크립트 교회에서 처음으로 설교하였다.

 

8월에는 런던의 비셥스게이트에서 큰 군중을 모아 놓고 설교집회를 열었고 런던타워 예배당의

대리목사로 봉직하였다.두 달 후 햄프셔에서 교구목사로 일하기 시작하였고 죤 웨슬리의 영향을 받아

 죠지아 선교에 대한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1731년 1월 브리스톨에서 첫설교를 하고 1737년 5월까지 이곳에서의 설교활동은 계속되었다.

휫필드는 광부 등의 가난한 자녀들을 위해 킹스우드 스쿨을 설립했으며, 웨일즈 장로교회로 불리는

웰쉬 칼빈적 메도디스트 교회의 지도자가되었다.

 

그는 1743년에 이 교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의 영향은 스코틀랜드를 거쳐 미국으로 확대되었다.

1740년 이후 휫필드가 미국 교회에 끼친 영향은 1735년 제1차 대각성운동을 능가하는

제2차 대각성운동이었다. 그는 미국을 일곱차례 방문하였으며 대서양을 일곱 번이나 건너는

선교의 열정은 그가 34년간 18,000회 이상의 설교를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2. 휫필드 부흥운동의 특징 -위대한 설교가

 

휫필드의 설교의 주된 내용은 원죄와 중생이었으며, 성령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이고

내적인 영향을 믿었다.그의 설교의 또다른 주제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는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설교는 중생치 못한 자연인의 마음의 부패성과 신생의 필연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신학적인 면에서 웨슬리와 차이를 느끼고 결별하였는데, 웨슬리는 알미니안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하여 휫필드는 칼빈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웨슬리와 휫필드는 다같이 평생 영국성공회 성직자로 남아 있었다.

영국성공회는 오랫동안 청교도와 투쟁하는 동안 극단적인 칼빈주의를 배격하게 되었고,

알미니안 사상을 받아들이게되었다.

웨슬리는 이러한 전통을 따라서 알미니안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브리스톨을 떠나면서 휫필드는 웨슬리가 "예정(predestination) 교리에 관해서는 아무런 논쟁을

하지말기를" 기원했다. 웨슬리는 휫필드가 바로 칼빈주의라는 신학 체계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을 볼 때 예정론에 관해 "논쟁하지 말라"는 휫필드의 권고는

웨슬리로서는 따르기 힘든 권고였다. 결별은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복음적 알미니우스주의와 예정론의 결별이 이뤄진 것이다.

휫필드는 1737년 런던에서 중생에 관한 일곱편으로 이뤄진 설교를 출판했는데,

여기서 "중생은 외적인 고백뿐 아니라 내적인 변화요, 마음의 정결이요, 성령의 내주이고,

그러므로 신비적으로 참되고 생동감 있는 신앙에 의하여 신비적으로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로부터 영적인 덕목을 받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또한 그는 주장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칭의와 중생을 구별하는데, 그러나 이것을 구별하려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라고 못 박는다.

 

휫필드에 의하면 물세례는 결코 참된 신자의 표징이 될 수 없다.
참된 신자의 표시는 외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데에 있다.

그 내면적인 것이란 성령으로 말미암는 중생을 말한다. 휫필드는 물세례가 아니라

성령세례가 참된 신자의 표징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가 말하는 성령세례란 곧 중생을 말한다.

 

3. 공헌

 

죠지 휫필드는 옥스퍼드의 "거룩한 모임"의 회원이었으며,

그의 업적은 신학적인 면에서 웨슬리와 약간 상이했다고 인정할 수 있으나 웨슬리와 병행했다.

휫필드가 기독교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그가 모든 면에서 감리교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

그의 신학은 -자신은 칼빈을 읽은 일이 없다고 강력하게 말하지만-알미니우스주의자라기보다는

견실한 칼빈주의였다는 점이다.

 

그와 동시대 사람들은 그가 웨슬리보다도 더 설득력 있는 설교가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활동은 급기야 웰쉬-칼빈주의-감리교-교회(Welsh Calvinistic Methodist Church)를

 탄생시켰다. 휫필드의 18세기의 위대한 설교가로서의 면모는 당시의 잡지였던 "신사의 잡지

(The Gentleman's Magazine)" 기사를통해서 역설적으로 엿볼 수 있다.

기사에 의하면, "한 사회 내에서 열등한 사람의 근면은 그 부요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휫필드 목사와 같은 사람이 5,6천 명의 대중으로부터 매일의 노동을 그의 설교로

앗아간다면 적은 시간이지만그 사회에 가져오는 손해는 얼마나 큰 것인가!
내 견해로는 만일 이 신사가 킹스우드의 광부들에게 자진해서 설교를 시작한 것처럼 여기서도

 계속 설교를 해 나간다면브리스톨 시 근방에서 얼마만큼의 석탄 가 폭등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은 그의 설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매료되었으며, 그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했는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평일이나 주일이나 그가 전도하는 곳의 교회는 청중이 빽빽이 들어 찼고 굉장한 평판을 낳곤 하였다.

명백한 사실은 참으로 웅변을 잘하고 즉석에서 아무 준비 없이 설교를 하는 전도자가 순수한 복음을

보기 드문 목소리와훌륭한 몸짓으로 전하는 것인데, 그 때 런던에서는 전혀 새로운 체험이었다.

 

그의 청중들은 놀라고 황홀해진 나머지 넋을 잃었다.

1739년부터 1770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31년 동안 그는 오직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었으며,

항상 주 예수의 일만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혼신을 다해 청중들에게 설교했다.

 

휘필드는 웨슬리의 정확한 논리성과 비상한 행정력, 그리고 깊고도 강인한 성품이 결여되었으며,

웨슬리는 그보다 좀 느리기는 하지만 더욱 확고한 편이었다.

휫필드는 보다 신속하고 열렬하였으며 충동적이지만 그러나 웨슬리와 같은 종교적인 심원함을

소유하였으며, 더욱이그는 웨슬리가 알지 못할 정력적인 영역에서 살았다.

 

거기에 첨가하여 그는 웨슬리로서는 당할 수 없는 웅변가였다.
그는 그의 일생에 걸친 설교사역에서 엡 2장 8절의 말씀을 주제로 삼았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개혁자의 신앙을 이어받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진력한 휫필드의 삶은 굳어진 18세기 교회의 문을 부수고 무뎌진 명목상 신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에 감격하였고, 내면적 부흥운동의 큰 줄기로서 그들을 중생의 길로 인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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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설교의 목회자 찰스 스펄전 | ………복음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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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설교의 목회자 찰스 스펄전

기독교 역사에 있어 기억될 만한 훌륭한 목회자들중 설교가로서 명성을 남긴 19세기의 목회자를 대라면 아마 영국인 찰스 스펄젼일 것이다. 그는 불타는 진실성과 굽힐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 열정을 가진 "복음의 전파자"였다. 1837년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면서 영국의 안정과 인구의 증가, 철도의 발달, 해외 식민지의 건설등 국가 발전의 기초를 놓았다. 또 뉴톤식 과학주의, 로크식 합리주의등 신사조가 등장하였고 다윈의 진화론과 성경의 고등비평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인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이 새로운 시대의 물결에 도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1834년 에섹스의 지방도시인 캘버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교도 신앙으로 무장한 복음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성경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신앙심이 투철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자주 무릎을 끓고 스펄젼의 품에 꼭 안아서 자주 기도했다. 아들이 늘 주님안에서만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는 어머니였다. 이러한 가정환경하에서 어릴때부터 성경과 많은 청교도 서적을 읽어나갔다.

1849년 여름에 찰스는 뉴마켓 마을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결정적인 구원을 받게되었다.
그는 정직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눈에 비쳐지는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이 너무 힘든 죄의 짐을 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는 끝없는 율법의 요구로 죄의식은 깊어만갔으며 늘 울부짖는 생화을 하기도 했다.
번민의 밤이 지나고 아침에 깨어 나면 청교도 서적을 집어 들곤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깊은 죄의식으로 차라리 개구리나 두꺼비가 되기를 원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둠과 절망속에서, 그것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날 시골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찬송소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컸으며,그날 눈 때문에 목사가 오지 않아 한 구두 수선공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말씀은 "나를 바라보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이었다. "보는 것은 고통이 따르지 않습니다. 손과 발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지금 현재 예수님은 "나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스펄젼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바라보며 사는 것뿐입니다." 그는 바로 그 순간 구원받았음을 확신하였다.
그는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한량없는 은총이여! 죄인이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영혼은 쇠사슬이 끊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느꼈습니다. 나는 자유로워진 영혼이요, 천국의 상속자이며 용서받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며 더러운 진흙과 끔찍한 지옥으로부터 건져올림을 받았고 나의 발은 단단한 바위위에 서 있으며 나의 앞길도 탄탄히 다져졌다는 것을 " 그는 이러한 고백을 그 자리에서 하나님앞에 하였고, 그동안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씻기었다. 그 즉시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가 격었던 시련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죄의 사악함에 대한 인식은 그의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져서 그로 하여금 경건한 모든 것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한 모습처럼 복음을 가장 진실되고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는 캠브리지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13개 마을을 돌며 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몇명의 순진한 농장 지도자들과 그들의 아내들에게 설교하였다.

1851년 10월 스펄젼은 17세의 나이에 워터비치 마을의 침례교회에서 정식목사가 되었다.
조지 골드라는 사람이 당시 캠브리지 회합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스펄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는 깊은 감명을 받고 런던의 뉴파크 스트릿 침례교회에 그를 추천하였다.
그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동명이인을 초청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지 않으려 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1953년 12월 뉴파크 스트릿 교회의 설교를 위해 런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그 교회의 크기에 압도 당하였고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단에 섰을 때 그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꼈고 그의 설교는 청중의 마음들을 사로잡기 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 워터비치의 시골 청중들에게 했던 설교와 똑 같았다.
그는 단지 말씀을 말씀으로 영접하고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단했다. 예배는 너무나 엄숙했고 그 전의 어떠한 설교가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은 기쁨을느끼기 시작하였고 아침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후 예배에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같이 참석하였다. 그들은 예배가 마쳤음에도 돌아가지 않고 기쁨에 넘쳐 있었다. 저녁 예배때의 회중은 더 많았다. 집사들은 그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스펄젼에게 목사가 되어 달라는 청탁을 하였다.

1854년 2월 19세의 젊은 시골 목사가 런던 강단에 서게 되었다. 스펄젼이 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자 교회는 증축공사를 해야 할만큼 성도의 수가 늘었다. 2천명의 좌석을 만들었지만 군중은 더 늘었다.
이제는 더 넓은 음악회장을 구하여 설교를 하게 되었다. 설교가 있는 날은 그 곳의 교통이 마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무 의미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전심을 쏟았다. 그의 설교는 이러하였다. 그는 예배가 시작되기 전 골방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며 복음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단상앞에 서서는 아주 진실한 기도로 회중을 이끌었다.
"이제 당신의 종은 가장 신실한 모습으로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그의 구세주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다시 한 번 축복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스펄젼에게는 설교중 회중을 웃고 울게 하는 탁월한 기질이 있었다. 그는 모노드라마의 천재처럼 자연스러운 제스츄어와 적절한 예화를 사용하여 그가 전하는 복음의 주제에 회중을 몰입하게 하였다.
그리고 열정과 영혼을 토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죄는 장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가 사단과 같이 검을지라도, 죄와 친구일지라도, 이 밤에 믿기만 한다면 모든 죄가 용서 받을 것이며 모든 악이 없어질 것이며, 모든 불경스러움이 씻어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는 종반부에 가서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의 힘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거의 액센트도 들리지 않았다. " 설교가 끝난 뒤 그는 다시 은밀한 골방에 들어와 산고의 고통과 하나님앞에서 실패감에 한탄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성직수여식도 받지 않았고 대학도 나오지 않은 것에 주위로 부터 비판을 받았다. 특히 그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이룩할 수 없다는 청교도 사상을 절박하게 믿었을 때 그에게 무수한 시련이 다가왔다. 각 기독교 종파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그에게 압박을 가해 왔을 때도 그는 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후의 청교도" 처럼 억척스럽게 싸워나갔다.
1861년 그는 10,000명 이상이 모이는 메트로폴리탄의 테버네클 교회를 세우게 된다. 또 목회자 훈련학교인 페스터즈 칼리지를 세워 순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였다. 스펄젼은 이 대학의 학생 전원을 1:1로 상담하면서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와주었다. 1866년 런던에서만 그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가 18개나 되었다. 그는 또 "The Sword and the Trowel" 월간 잡지와 1,900편 이상의 설교문들과 시편 주석 등도 발간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복음의 설교자였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못박히심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그의 모든 재능을 바쳤다. 그의 기쁨은 구세주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 영혼들을 인도하는 데에서만 존재다. 일찍이 그는 자신을 위한 영욕을 버렸고 그의 기도는 그의 가슴의 최고의 목표를 발견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찰스 스펄젼을 쓰시고 19세기 영국에서 복음이 한낱 도덕이나 윤리 종교의 한 영역으로 추락하는 것에 맞서게 하셨다. 또 그의 순수함과 열정적인 믿음을 받으시고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하셨으며 그를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목회자로 세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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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 ………복음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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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는 1832년  5월 21일에 영국  요크셔주 반슬레에서
태어났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복음적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5살이 되자 두 동생을 앉혀 놓고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웅변이 뛰어난 감리교 지방 설교자이자 약사이며, 그의 어머니는 매우 온화하고
인내심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아버지의 능력과 어머니의 온유한 성품을 물려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멜리아가 허드슨 테일러를 임신했을 때부터 남편 제임스 테일러와 그 아이를 놓고 중국의 사역자로
부르시길 서원 기도하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부모님은 약제사였는데, 항상 그의 약국에는 사람들로 가득찼으며, 그의 친구들은 항상 모이면
감리교회의 발전상황과 선교사역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하였습니다.

특히 중국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말을 곧잘 듣고, 또한 그의 여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한 허드슨 테일러는 막연하나마 어릴 때부터 중국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다른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되면 중국으로 가겠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신앙인이 되도록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허드슨이 11살이 되어  학교에 다니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가  학교에 가서 책상 위에 엎드려 기도하면 "와! 허드슨이 기도한다"하며 아이들이
비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후 그는 학교를 그만 두었고  15살의 나이에 한 은행에 취직하였습니다.
그는 선배 동료들의 나쁜 영향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하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징계로 시력이 나빠져 실직하게 되어 무의미와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 고통하였습니다.

비록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났지만 테일러는 17세가 되어서야 회심하였습니다.
그때는 1849년 여름 그의 어머니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멀리 가고 안 계신 때였습니다.

소년 테일러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이 책 저 책을 뒤져보다가 어떤 종교적인 소책자를 발견했습니다.
영적으로 감동 깊은 것이라기 보다는 재미있게 보여서 읽기 위해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책을 읽어 나가다 그는 엎드렸습니다.

"성령께서 내 영혼에 기쁨과 확신의 빛을 비추셨다....영접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 수밖에 없었다."

2주일 후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자 그는 자신의 회심에 관하여 얘기했으나 어머니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2주일 전 친구 집에서 갑자기 아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강하게 느껴 하나님이
그녀에게 확신을 주실 때까지 친구의 방에서 기도했다는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는 죄를 깊이 깨닫게 되며, 죄에 대한 완전한 구속과 온전한 값을 지불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으로 인해 자신의 빚이 탕감되고,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을 느꼈으며, 자신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중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선교사로 그 나라에 갈 수
있도록 기도했으며, 아주 어린 시절에 W.H. 메드허스트의 (China)를 읽고 테일러의 생각은 그 나라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아서 남부럽지 않게 사느냐 하는데 온 관심을 쏟았던 그가 이제는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주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후 글리너라는 선교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으며 중국협회 (Chinese Association)에 편지하여
사역소개와 자료 요청을 하게 된다.

그후 반즐리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 중국선교를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거기엔 어떻게 가려하지?"

"모릅니다 하지만 옛날 유대 땅에서 열두 제자와 70문도가 지팡이도 전대도 먹을 것도 돈도 없이 자기들을 보내시는
주님이 곧 자기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이시기도 한 것을 믿으며 떠났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오, 얘야. 이제 네가 크면 지금보다 더 현명해 질 거란다 .
그런 생각은 예수님이 이세상에 계시던 시절에는 통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다"라고 일축해 버렸다.

후에 테일러는 이 일을 기억하면서 "나는 그후로 커서 어른이 되었지만 결코 더 현명해 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주님의
방법을 따르려 한다면 그리고 그분께서 그분의 첫 제자들에게 주셨던 확신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때 그들 시대에 적합했던 그것들이 지금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라고 썼다.

또한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고 이어 전에 알지 못했던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위하여 해주신 일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하나님, 제게 저의 사랑과 감사의 표시로써 뭔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있은 다음 허드슨에게는 하나님이 자기의 생애가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시는지
깨달았다는 명백한 확신이 찾아왔다.

"나는 내가 전능자와의 언약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 언약을 철회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음성이 내게 너의 기도는 응답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간 이후로 내가 중국으로 부름 받았다는 확신은 한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허드슨 테일러는의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가득차있었고, 그 중국 영혼들을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하며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게된다

필생의 사업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킬 목적으로, 그는 헐에서 어떤 의사의 조수로 일했으며그후 런던병원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기독교를 향한 대규모운동으로 잘못 추측되었던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하여 중국에 대해 더 큰 관심과, 그리고
중국의 근접성에 관하여 귀츨라프가 기록한 선명하나 과장된 보고서의 결과, [중국복음 전도협회]가 창설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사로  부르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본적인 훈련에 착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올바른 정신자세와 생활태도 그리고 건강한 몸을 위해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잠과 음식을 절제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교회생활과  전도생활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고 의술을 익혔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고자 빈민촌으로 거처를 정하는 장막훈련을 하였습니다.

이 기간동안 테일러는 선교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철저한 자기부인의 훈련을 하였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생활에서도 선교훈련을 받는다라고 생각하고, 영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고생스러운 생활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침대도 없애고 딱딱한 바닥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식사도 가장 값이 싼 청어를 커피와 함께 삼키기도 하며, 감자 대신 콩과 쌀 푸딩을 먹고 양배추를 식초에 절여서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매일 사과 한 덩어리와 빵만 먹어 야위게 되었으며, 그의 조그만 다락방은 옛날에 그가 썼던 좋은 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심지어 밀린 임금을 지불해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중국에 가서 사역한다면 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얻을 수 없다.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러므로 영국을 떠나기 전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만으로 육신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허약하던 몸이 영양실조로 더욱 약해져 갔으며 해부학을 배우는 동안 실수로 병균에 감염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성열병'에 거의 생명을 잃을 뻔했으며, 여러 달 동안 의학공부를 쉬어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이 "당신처럼 헌신적인 사람  처음봐요. 그래서 너무 부담스러워요."하며  청혼을 거절하였습니다.
중국선교냐 결혼이냐 하는 문제 앞에서 그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삶의 방향을 정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시험을
이겼습니다.

허드슨은  물질이 전혀 없는 형편에서 중국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기도만이 이  문제의 해결책임을 믿고, 기도로써
물질을 공급받고자 하였습니다.
한번은 허드슨 테일러가 커다란 병원에 실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중국선교협회로부터 생활비를
부담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을 수락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가 게을러지고, 그만큼 중국선교에 대한 훈련도 안일해질까
두려워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중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중국어 문법책도 없이 만다린어로된 누가복음을 가지고 사촌인 존과
함께 중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영어성경에서 누가복음의 짧은 구절하나를 뽑은 다음 그 절의 한 단어를 놓고 그 단어와 같은 단어가 들어있는
성경 구절을 되는대로 많이 찾습니다.

그 다음 처음의 그 절을 중국어 성경에서 찾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공통된 한자가 나오는데 그것이 최초의 영어단어에 해당하는 중국에 글자가 됩니다.

그 다음 종이 쪽지에 영어 단어와 한자를 같이 쓴 다음 여러 군데에서 쓰임을 정리하다 마침내 확정되면 잉크로 쓰기
시작해 최초의 사전을 만듭니다.

테일러는 이렇게 공부하여 얼마 후엔 웬만한 중국어 한자는 다 알게 됩니다.
그 후 라틴어와 히브리어 헬라어도 공부를 하게 됩니다.

어느날 테일러에게 글리너의 편집국장인 찰스버드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테일러에게 중국선교를 이야기하며, 당신이 의사공부를 중지하고 지금 당장 중국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자네를 파송할것이라고 말합니다.

1년만 공부하면 의사가 되는 터이지만 허드슨 테일러는 고민할 여지도 없이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1853년 9월19일 CES(Chinese Evangelization Society) 중국 선교회라는 단체의 파송을 받아
중국선교의 길로 들어섭니다.

마침내 허드슨이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약 다섯달간의 위험한 항해를 거쳐, 중국 상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가 상해에서  자리잡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와 방불한 곳에서 불안감을 느꼈고  물가가 폭등하여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는 별수없이  누더기만 걸치고 거치처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서는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심한 먼지 때문에 눈병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땅에서 사는 가련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복음밖에는 희망적인 소식이 없다고 생각한 허드슨은
한차례의 전도여행이 끝나면 미처 쉴  사이도 없이 다음  차례의 전도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렇게 강행된 전도여행은 15개월동안  무려 10차례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중국어 신약성경 1천 8백권과 2천권이  넘는 전도 책자들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중국인들은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만큼의 책자를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여러곳을 여행하며 많은 중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는데, 이는 그가 설교를 유창하게 잘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 때문도 아니라 잃은 영혼을 향한 그의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한달에 100만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습니다"는 그의 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많은
선교의 자원자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하여 선교회가 조직된 것입니다.
중국 내지 선교회는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경험과 성격이 반영되어 독특하게 조직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파에 속하지 않았고 노동자 계급에 의존하였습니다.

테일러는 지식인들과 정식 목회자들로서는 중국의 복음화가 요원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영국의 많은 노동자들
중에서 헌신된 남녀 일꾼들을 모집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선교 단체들과의 쓸데없는 경쟁을 피하고, 중국에서의 선교노력을 극대화 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복음화 선교회에서 일해 본 결과 선교본부는 중국에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선교사들의 모든 필요를 제때 채워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6살이 되자 허드슨은 영적으로 스승이나 다름없는 윌리암 번즈 목사와 동역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내륙지방으로
진출하였습니다.  
이때 노예 매매가 성행하는 광동성 산두지방에 위험을 무릎쓰고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 지방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온종일 복음을  전하고 저녁 때 거처로  돌아올 때는 몸이 피곤에 지쳐 다리를 겨우 끌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댓시간 후면 다음날의 전도를 위해서 다시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외국 선교사들은 주로 상해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해의 중국인들은 선교사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내지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테일러는 자신이 신기한 존재로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복음에 대한 메시지보다는 그의 복장과 태도에 호기심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즉 중국인의 옷을 입고 풍습을 따르는 중국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오래 전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런 것을, 전통적 방법을 떠난 파격적인 것으로서 올바른 선교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서양 문화의 옷을 입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푸른 눈에다 회색 머리를 한 요크셔 출신의 테일러에게 중국인이 된다는 것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허리에 걸쳐 있기엔 너무 헐렁한 바지", "갑갑한 비단 옷", "굽 없는 신발" 등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으나
중국인사이에 섞여 살려면 무엇보다 검은 머리털과 변발을 갖춰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 머리털 염색은 큰 소동만 일으키고 실패하였습니다.
머리에 부은 암모니아가 살갗을 태워 하마터면 장님이 될 뻔하였습니다.

다행히 의사인 선교사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잘 치료해 주어 다시 염색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였습니다.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계획을 밀고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이발사에게 맡겼기 때문에 우습지 않게 잘 염색되었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 머리털을 밀고나니 햇볕이 따가워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염색도 5-6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러한 고통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수고는 값진 결실을 나타내었습니다.

비록 중국인들이 보기에는 잘못된 변발을 하였지만 테일러는 이제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서도 중국인들 사이에
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다른 중국인들과 섞여 있을 때 당신이 나를 만나게!
된다면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외국인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변모된 모습을 테일러는 무척 대견하게 생각했지만, 다른 선교사들은 대부분 불쾌감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들은 테일러를 처음에는 골칫덩어리로 여기다가 나중에는 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자 식구들까지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테일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테일러란 존재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중국 옷을 입고 중국식대로 사는 것은 이제 그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 내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생활하기에는 서양 옷보다 중국 옷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테일러와 동행하며 여행을 하던 윌리암 번즈는 테일러가 편리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중국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중국 옷을 입었다고 해서 내지에서 사역하는 모든 어려움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골로 여행하면서 의료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그 지역 의사들과 직접 경쟁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전통적인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지방 의사들이 그를 쫓아낸 적도 있었습니다.

여행 자체도 매우 위험했습니다.
한번은 중국인 짐꾼이 테일러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돈과 물품을 다 가지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상해로 돌아가 개인적인 헌금이 영국으로부터 올 때까지 동료 선교사의 신세를 졌습니다.
그것은 어떤 후원자가 보낸 헌금액수?

자기가 잃어버린 액수와 똑같은 40파운드였습니다.
중국 선교 초기에 이런 개인적인 헌금이 없었더라면 아마 테일러는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선교본부와 불편한 관계를 가져오다가 1857년 테일러는 정식으로 중국 복음화 선교회를 탈퇴하였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는 아무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중국 내지를 돌아다니며, 한 선교사의 말처럼 "열심히 그러나 목적없이"
선교를 하였습니다.

이 후 내륙선교의 Power Station이 된  영파지방에 옮겨온 허드슨은 파커박사를 동역자로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외국인 학살 계획이 세워져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 영파에서 동역자 다이어양을 얻어 결혼하였습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생긴 난민들을 돕고자 무료 급식소를 열었으며 교회를 맡아 시무하였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는 주와 복음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한 결과 현지인 동역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테일러가 예기치 않게 지방의 병원을 맡아야 했는데 그들은 3년 동안 닝포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테일러의 능력을 넘어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중국에서의 사역을 중단하고 떠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의학 공부를 더 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860년 테일러 부부는 장기 휴가를 받아 영국에 도착하였는데 이 휴가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허드슨과 마리아는 모두 결핵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이 기회에 휴식을 취하고 병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또 교육을 더 받을 기회도 되었습니다.
테일러는 런던 병원에 들어가 응용화학 과정과 산부인과 과정을 마치고 왕립 외과 대학의 회원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또한 번역 사역도 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에 중국인 조수를 데리고 갔었는데, 그와 다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닝포 신약전서의 개역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어려운 일을 하루에 13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휴가 기간중 그들이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선교회를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내지선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테일러는 중국 여러 곳을 여행하며 일하면 일할수록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복음 전파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어
강한 의무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수억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 매시간 1000명이 죽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 전역을 복음화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 같이 보였으나, 테일러는 한가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만약에 1000명의 복음 전파자를 확보한다면, 그리고 이들 각 사람이 매일 50명 내지 200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3년 이내에 모든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인 계획이 아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내지 선교회는 중국의 모든 성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선교회가 설립된지 30년이 경과된 1895년에는 640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중국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으로 일한 결과  결핵을 앓게되어 영국에 귀국하였고, 여기에서 '중국의 영적 수요와 요구'라는 논문으로
중국선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중국내륙선교회'를 조직하여 선교역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허드슨이 34살의 나이로 중국에 2차 전도여행을  갈때는 지망선교사 16명이 동행하였습니다.
이들의 헌신으로 1년만에 항주에 세운 교회당에 모이는 신자들의 숫자가 무려 1천 5백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개척지 양주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에서 맏딸, 막내아들 그리고 헌신적인 동역자를  차례로 잃었으며, 이 와중에 천진대학살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는 성경 여백에다 다음을 같은 기도문을  적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앞으로 1백 명의  선교사들을 추가로 더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저로하여금 주님의 큰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소서."

그가 기록한 이 기도문이 기독교 신문에 기사화됨으로 영국인들 안에  중국 선교에 대한 관심의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가까스로 건강이 회복되자 45살의  나이로 다시 중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는 중국선교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자였습니다.

허드슨은 여러 선교지역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놀라운 진리를 깊이 터득하게 되었는데 이는 선교사역을 추진시키는
원동력은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북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호주, 뉴질랜드에 중국선교회 지부가 설립되고, 이렇게 하여
한 때 중국에 모여든 선교사는 1천명을 넘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선교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한 지방에 이르자 성문 위에서 금빛으로 '내륙 은인'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여러 선교 본부를 방문한 후 그는 이전에 배타적인 지방이었던 호남의 지방도시 '장사'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호남성에서 73살의 나이로 열정적인 전도자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허드슨은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고 영혼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였고, 전도의 목표를 위해 언어,
의학, 기도훈련을 철저히 감당하였으며,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감당한 헌신적인 전도생활을 실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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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유일한 목표 | ………신약성경
2011-06-22 , 0 vote , 0 sc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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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달콤한 흐름 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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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루살렘은 바로 위대한 하나님-사람입니다.

계시록21910

우리는 영 안에 이끌리어 높은 산으로 올라 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셨다고 말했는데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남편을 위해서 준비된 신부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아내 안에 거하고 아내는 남편 안에 거합니다.

여기에 서로 안에 거하는 상호내재 하는 부부를 볼 수가 있지요,

아내는 남편 안에 남편은 아내 안에 거합니다.

계시록312절에서 주님은 요한에게 말씀하셨죠,

이기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내가 이기는 이는 내가 나의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도록 하겠다.

여기에 성전이 바로 인격이지요, 새 예루살렘은 계시록21장에 성전입니다.

거기에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성전이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새 예루살렘의 내부구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예루살렘의 기둥이 되는데 그 이기는 이들도 인격이요, 새 예루살렘도 인격입니다.

하나님 자신인 성전의 기둥이 되는 것이지요,

213절 또2122절을 보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장막이요,

또한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성전이라고 말하죠.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거처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해야 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셔야만 합니다.

형제님들 모든 믿는 이는 다 작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다 새 예루살렘을 보아야 합니다.

마치 찬송가에서 이렇게 말하죠,

하나의 강과 한 나무 에덴의 특징이라고 하고 있죠,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사람들이 우리를 접촉할 때 연기가 나고 구름이 낀 시내산으로 보아서는 안 되죠,

우리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이 있어야 하고, 생명나무가 우리로부터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이들은 새 예루살렘이어야만 합니다.

모든 지방교회들은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이어야만 합니다.

계시가 충만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을 살아내야 하고 새 예루살렘의 모든 항목들

계시록22장의 모든 항목들을 살아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고 우리가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한 것이죠.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 예루살렘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새 예루살렘이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새 예루살렘을 살아내어서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은 새 예루살렘을 이루어 내는 것이죠.

그것은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앞당길 수가 있고 우리가 더 건축되기 위한 것이죠.

우리는 새 예루살렘을 살아내어 새 예루살렘이 되어야 하고,

새 예루살렘을 이루어 내어 건축해야만 합니다.

32.jpg [121.3 KB/ 1 hit]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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