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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는 성경의 중대한 요소들이다.
마 16:16, 18, 요 20:31, 7:39, 롬 8:11, 골 3:4, 엡 1:22-23.
여기에서 첫 번째 표어를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스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는 성경의 중대한 요소들이고,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원칙은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이다.
그러므로 한면으로는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가 중대한 요소들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우리의 그 엄청난 과업이요, 위대한 책임인
그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우리가 진리를 발전시킬 때 반드시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를 적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칙으로 적용해야합니다.
A.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는 성경의 내용들이다.
B.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원칙은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이다.
롬 9:5, 8:2, 11, 12:4-5, 16:1, 4-5, 16하.
여기 관련 구절을 보면, 로마서에서 이 노선에 따라 볼 수가 있습니다.
9:5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8:2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을 말하고,
또한 11절에서는 예수님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의 몸에 거하시면 죽을 몸에도 생명을 줄 것입니다.
또한 12:4에서 우리 모두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한 몸의 많은 지체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표현들인 지방 교회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내가 시간 분배를 주의해서 말해야겠는데,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내가 포도나무의 가지이기 때문에 안식하는 가운데서 이러한 말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신약을 읽는 것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에 관해, 교회에 따라서 보는 것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관련 구절을 줄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만 가지고도 이 노선에 따라 보는 것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방면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끝에서 그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오시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그 영을 쏟아부어주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그리스도,
그분은 만유의 주시고, 그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창시자이시고, 그리스도는 신언자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종이시고, 거룩한 종 예수라 불리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거절당하고 배척받은 돌이요, 모퉁이의 머리돌이시오,
그분은 인도자, 영도자시오, 구주이시오,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심판관이십니다.
주 예수님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들은 복음이신 주 예수님을 선포하며.
그분은 다윗의 씨이시고, 약속하신 분이시오, 다윗의 거룩한 것이요,
우리를 의롭다하시는 분이시오, 바울에게 경륜적으로 부어지신 분이십니다.
내가 사도행전을 빨리빨리 읽어볼 때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었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22, 3:6, 4:10, 6:14, 10:38, 22:8, 24:5, 26:9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이 형제님의 각주는 이것이 바로 그분이 종교인들에게
멸시받은 분임을 가리킨다고 말씀해 주시죠. 심한 멸시를 받으셨죠.
주님께서 다소의 사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사울은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물었고, 그분은 “나는 나사렛 예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박해받고 멸시받고 배척받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나사렛 사람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높여지셨고, 만유의 주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경륜적인 영이 쏟아부어지고, 본질적인 영이 우리를 충만케 하고,
그 영께서 빌립에게 병거로 가까이 가라고 말했고,
그 영께서 안디옥의 봉사하는 이들에게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죠.
주님은 바로 생명의 창시자라 불리십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사도행전에서 말하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예정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한 계속 교회가 나옵니다.
그리스도, 그 영, 생명, 교회.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중대한 요소들입니다.
그분의 행정 안의 그리스도로 계시하고,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심판하시는 그리스도, 땅을 차지하시는 그리스도,
왕국 안에서 왕국을 왕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
영원 안에서 중심과 전부이신 그리스도를 계시록에서 말합니다.
신실한 증인이신 그리스도,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분,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작이요 마지막이요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
살아계신 분이신 그리스도, 거룩한 분이신 그리스도, 참된 분이신 그리스도,
신실한 분이신 그리스도, 아멘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신 기원이신 그리스도,
다윗의 뿌리와 가지이신 그리스도, 유다지파의 사자이신 그리스도,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왕 중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 다른 천사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새벽별이신 그리스도,
등이신 그리스도, 남편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바로 계시록의 중대한 요소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곱 등잔이요 보좌 앞에서 빛나는 등잔이요
어린양의 일곱 눈이신 그 영, 완결되신 영, 그 영과 신부가 말씀하시길 오라하는 그 영이 나옵니다.
생명나무, 생명의 면류관, 생명이 나옵니다.
또 교회는 나 예수는 나의 전달자를 보내어 이러한 것들을 교회들 안에서 증언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책이 이 노선에 따라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그 영, 생명, 교회라는 이 중대한 요소를 따라 성경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재료
꽃게 350g 청,홍고추 10g 다진파약간 다진마늘21g
녹말가루 15g 청주 15g 후추.소금조금.
소스:간장 8g 청주 8g 다진마늘15g 설탕 6g 후추가루 2g 미림 24g 물 24g
조리법 1. 꽃게는 손질하여 후추, 소금, 청주로 간을 해 놓고 전분가루를 묻혀 튀겨준 후 기름을 뺀다.
2. 홍,청 고추와 파는 둥근썰기를 하고 다진파와 마늘을 준비한다.
3. 소스를 만든다.
4. 팬에 다진파.마늘,청주를넣고 살짝 볶은 후 만들어 놓은 소스를 부러 같이 끓여준다.
5. 튀겨놓은 꽃게와 홍,청고추를 넣어 골고루 섞어 마무리한다.
아삭아삭하고 코가 찡긋한 어묵냉채
재료 : 어묵125g 숙주나물32g 양파 20g 오이 18g 당근 22g
소스: 연겨자15g 물24g 설탕 39,g
다진마늘 16g 식초 30g 간장9g 깨소금.참기름 조금.
조리법:
1. 직사각 어묵을 가로로 반접어 가늘게 채 썰어 후라이팬에 타지 않게 살짝 볶아준다.
2. 모든 부재료는 채썰기 한다.
숙주나물은 끓는물에 살짝 데처주고,양파는 매운맛을 빼기위해 찬물에, 오이는 소금물에 숨을 죽여놓는다.
3. 냉채 소스를 만든다.
4. 준비해 놓은 재료들을 모두 섞어 소스와 함께 버무려 마무리 한다.
끄읏~~
그러나 믿음에서 난 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라고 하지 마라.
” 이 말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겠다는 뜻입니다. 혹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무저갱으로 내려가겠느냐?’라고 하지도 마라 .”
이 말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모셔 올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의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너에게 가까이, 곧 너의 입에 있으며
또 너의 마음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롬 10:5-8)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 자신을 인성과 연합시키셨음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 자신을 인성과 연합시키셨다.
분명히 여기서 말씀은 그리스도로 인격화되었다. 말씀이 살아 있는 인격이 아니라면 하늘에서 내려와서
구속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인성과 연합시키지 못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신명기 30장 12절을 인용하여
“너는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라고 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그런 후에 바울은 이 말이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겠다는 뜻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
곧 그리스도께서 육체 되심 안에서 하늘들에서 내려오신 것을 가리킨다고 지적한다.
육체 되심 안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셨고,
따라서 삼일 하나님을 세 부분으로 된 사람과, 다시 말하면 신성을 인성과 연합시키셨다(마 1:2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 자신을 인성과 연합시키셨다(요 1:1, 14, 29).
그리스도는 인간 생활을 통과하신 후에, 하나님 사람으로서 십자가로 죽으러 가셔서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께 되돌리셨다(벧전 3:18).
출처 :부산교회
다양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성도들을 도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많다. 대도시의 중심가는 매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많은‘물고기’가 있으므로 한 마리를 낚는 것은 쉬운 일이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물고기를 잡기 위한 준비가 없다거나 잡을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어떻게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지와 좋은 소책자들을 준비하는지 도움을 받고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 형제들은 그 도시를 뒤흔들고 심지어 나라를 뒤흔들기 위해 소책자들을 배포하는 습관과 복음지를 보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미국 국민 중 최소한 오십 퍼센트 이상은 적어도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다. 물론 절반 정도는 천주교이고 절반은 개신교이며, 게다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중 대부분은 거짓 믿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복음을 전해야 할 수백만의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는 필리핀보다 더 많은 수백만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얼마나 큰 밭이 있는지, 나는 극동에서 왔고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나는“미국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미국이 주님의 일을 위한 가장 좋은 밭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편리하며 복음을 전하기가 매우 쉽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행하기만 한다면 주님께 사람을 이끄는 것은 쉬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지 배우도록 성도들 각자를 도와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상세히 말할 수 없지만 많은 방법이 있다. 간호사는 간호사로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교사는 교사로서 전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극동에서 실행한 것이다. 거기서 모든 지체는 복음을 전하는 지체이다. 그들은 항상, 거의 매일 복음을 전하며 성도들 중 아주 많은 이들이 단순히 복음을 위해 산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행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보호를 받을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의 견고한 기초가 우리의 신발이라고 말했다. 신발은 우리를 땅에서 보호한다. 만일 신발이 없다면 우리의 발은 더러워지고 상처를 입는다. 우리의 발을 상처받고 손상받고 더러워지는 데에서 보호하기 위해 좋은 신발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맨발’ 인 것이다. 우리의 발이 세상 때문에 더러워지고 손상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와 이웃과 급우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에게 주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를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는다. 그것은 항상 우리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복음을 전한 사람들과 어떤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단순히 말해서, 우리가 친구들과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주 예수님을 위해 간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친구와 이웃에게 “나는 합당하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해보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보라. 사람들에게 간증이 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고 신실하며 주의 깊고 믿음직스럽게 하며, 다른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발에 가장 좋은 신발이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함께 모이는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습관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 돕자. 한 시점에 이르러 교회의 인도자들이 복음 실행, 복음 집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한 주간은 성도들이 매일 저녁 복음 집회 준비를 위해 기도하도록 모이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성도들이 최소한 일이 주 동안 함께 모여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친척들을 돌보며 어떻게 집회에 사람들을 초청하고 인도하며, 어떻게 동역 안에서 조화로운 방식으로 함께 모여 복음을 전파하는지 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 몇 명은 사람들을 돌보고 몇 명은 복음지를 뿌리며 몇 명은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복음 실행을 위해 해야 할 많은 것이 있다. 우리는 특별히 복음 집회 후에 형제자매들이 사람들을 방문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후에 사람들이 침례 받고 새롭게 회심하여 교회 안으로 인도된 후에는 교회가 그들을 돌봐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실행한다면 수많은 새로운 회심자들 때문에 성도들의 수는 쉽게 두 배가 될 것이며 교회의 교통 안에 새로움과 신선함이 있을 것이다. 매 주마다 동일한 형제들이 함께 모이게 되면 신선함과 새로움이 없이 낡게 된다. 새로운 회심자, 새로운 지체, 새로운 ‘세포’가 필요하다. 출처 : 부산교회 |
다양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성도들을 도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많다. 대도시의 중심가는 매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많은‘물고기’가 있으므로 한 마리를 낚는 것은 쉬운 일이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물고기를 잡기 위한 준비가 없다거나 잡을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어떻게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지와 좋은 소책자들을 준비하는지 도움을 받고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 형제들은 그 도시를 뒤흔들고 심지어 나라를 뒤흔들기 위해 소책자들을 배포하는 습관과 복음지를 보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미국 국민 중 최소한 오십 퍼센트 이상은 적어도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다. 물론 절반 정도는 천주교이고 절반은 개신교이며, 게다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중 대부분은 거짓 믿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복음을 전해야 할 수백만의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는 필리핀보다 더 많은 수백만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얼마나 큰 밭이 있는지, 나는 극동에서 왔고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나는“미국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미국이 주님의 일을 위한 가장 좋은 밭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편리하며 복음을 전하기가 매우 쉽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행하기만 한다면 주님께 사람을 이끄는 것은 쉬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지 배우도록 성도들 각자를 도와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상세히 말할 수 없지만 많은 방법이 있다. 간호사는 간호사로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교사는 교사로서 전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극동에서 실행한 것이다. 거기서 모든 지체는 복음을 전하는 지체이다. 그들은 항상, 거의 매일 복음을 전하며 성도들 중 아주 많은 이들이 단순히 복음을 위해 산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행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보호를 받을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의 견고한 기초가 우리의 신발이라고 말했다. 신발은 우리를 땅에서 보호한다. 만일 신발이 없다면 우리의 발은 더러워지고 상처를 입는다. 우리의 발을 상처받고 손상받고 더러워지는 데에서 보호하기 위해 좋은 신발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맨발’ 인 것이다. 우리의 발이 세상 때문에 더러워지고 손상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와 이웃과 급우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에게 주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를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는다. 그것은 항상 우리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복음을 전한 사람들과 어떤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단순히 말해서, 우리가 친구들과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주 예수님을 위해 간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친구와 이웃에게 “나는 합당하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해보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보라. 사람들에게 간증이 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고 신실하며 주의 깊고 믿음직스럽게 하며, 다른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발에 가장 좋은 신발이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함께 모이는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습관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 돕자. 한 시점에 이르러 교회의 인도자들이 복음 실행, 복음 집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한 주간은 성도들이 매일 저녁 복음 집회 준비를 위해 기도하도록 모이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성도들이 최소한 일이 주 동안 함께 모여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친척들을 돌보며 어떻게 집회에 사람들을 초청하고 인도하며, 어떻게 동역 안에서 조화로운 방식으로 함께 모여 복음을 전파하는지 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 몇 명은 사람들을 돌보고 몇 명은 복음지를 뿌리며 몇 명은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복음 실행을 위해 해야 할 많은 것이 있다. 우리는 특별히 복음 집회 후에 형제자매들이 사람들을 방문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후에 사람들이 침례 받고 새롭게 회심하여 교회 안으로 인도된 후에는 교회가 그들을 돌봐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실행한다면 수많은 새로운 회심자들 때문에 성도들의 수는 쉽게 두 배가 될 것이며 교회의 교통 안에 새로움과 신선함이 있을 것이다. 매 주마다 동일한 형제들이 함께 모이게 되면 신선함과 새로움이 없이 낡게 된다. 새로운 회심자, 새로운 지체, 새로운 ‘세포’가 필요하다. 출처 : 부산교회 |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필요한 예비와 배움
주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서, 억지로라도 사람들을 데려다가 나의 집을 채우도록 하여라.”(눅 14:23)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을 집회로 초대하기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집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복음 친구와 함께 앉아 몇 가지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찬송을 부를 때 우리는 복음 친구가 찬송을 찾도록 도와야 하고 그와 함께 찬송을 불러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가 메시지에 집중하도록 지혜롭고 능숙하게 도와야 한다.
집회 마지막에 주님을 영접하고 침례받도록 권할 때 우리는 그를 격려해서
손을 들거나 일어섬으로 그의 원함을 나타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집회 후에 우리는 그들이 들은 내용에 대해 그들과 대화하기를 배워야 한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린 너무 많이 말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이 말하면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하고 간략하게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복음 친구들을 이끌어서 간단한 기도를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위트리스 리 전집 1963년 3권 376-378쪽)
출처: 부산교회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에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에 달도 너를
헤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1:5~6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아닌 하나님은 사랑이이심이라...
요한일서 4:7~8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무엇을 먹을까 ...아니하면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먹이시리라
무엇을 마실까 ...아니하면
하나님이 넉넉하게 채워
주시리라
무엇을 입을까... 아니하면
하나님이 귀한 것으로
입히시리라
내일을 염려치 아니하면
하나님이 영원한 것까지
책임지시리라
죽음을 무서워 아니하면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지키시리라
자기를 높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우편에
세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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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활
호세아서 14장 5절부터 7절까지를 보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 위의 성경 말씀에서 세 번 레바논을 언급했다. 한 번은 백합화와 레바논이 연결되고, 한 번은 감람나무와 레바논이 연결되었으며, 또 한 번은 포도나무와 레바논이 연결되었다. 여기에서 왜 계속 레바논에 대해 주의하는가? 그것은 레바논 산 위에 키가 크고 뿌리가 아주 깊은 백향목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레바논의 백향목이 세상의 가장 높고 큰 나무를 대표하고, 또한 아래로 깊이 뿌리박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백합화와 레바논이 왜 서로 연결되었는가? 백합화는 매우 깨끗하고 아름답다. 여기의 백합화는 들에서 자라는 것이지 온실에서 자란 것이 아니다. 이 백합화는 원예사의 재배 없이 순전히 햇빛과 이슬에 의해 자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골짜기의 백합화(아 2:1)로서, 하나님의 재배와 보호를 의지하여 자란다. 청결하고 아름다운 영적 생활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왜 감람나무와 레바논이 연결되었는가? 사람들이 볼 때 감람나무는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것 같다. 아름다움이 모란꽃 같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이 감람나무 같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은 겉의 아름다움이 아닌 실제의 열매이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내는 유실수(有實樹)이므로 감람나무의 아름다움은 그 열매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러한 열매는 깊은 곳에 뿌리를 박아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라고 말한 것이다.
왜 포도나무와 레바논이 관계있는가? 여기에서는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라고 말했다. 우리는 포도 꽃을 본 적이 있는가? 포도 꽃은 매우 작다. 꽃이 핀 지 얼마 안 되어 포도로 실과를 맺는다. 여러분은 포도 꽃을 꽃병에 꽂는 사람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왜 복사꽃 같다든지 국화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꽃은 사람들이 감상하기 위한 꽃이 아니라 포도같이 열매를 맺는 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요구는 깊이 뿌리박고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세 번이나 레바논을 언급한 것은 우리에게 깊은 생활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이 깊은 생활은 백합화같이 감추인 산골짜기에서 자라고, 감람나무처럼 외모는 별로 아름답지 않다. 그리고 포도나무같이 꽃 피는 것이 그리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생활은 하나님을 단순히 앙망하고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생활이다. 이러한 생활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생활이다.
이런 생활이 있으려면 반드시 깊이 뿌리를 박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평상시에 훈련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매일 하나님 앞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정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능하면 시간을 내어 온 성도를 위해, 각지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일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매일 아침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조차도 없다면 깊은 생활에 대해 말할 것도 없다. 깊이 뿌리박으라는 말은 우리가 항상 생활 중에 실행해야 한다. 처음 훈련할 때에는 댓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이끄시어 매일 매일 깊은 곳으로 뿌리를 깊이 박도록 이끄시기 원한다.
깊은 생활은 반드시 주님과 직접적인 교통이 있어야 하고 깊고도 긴밀한 교통이 있어야 한다. 아가서 4장 12절에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라고 했다. 성경에서 ‘동산’은 하나님의 최초의 뜻이다. 동산은 보통 땅과 같이 보편적인 것을 재배하기 위한 것도 아니요, 논과 같이 경작(耕作)을 위한 것도 아니다. 동산은 전적으로 아름다움과 누림을 위한 것이다. 동산에 나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목적은 목재(木材)에 있지 않다. 동산에 실과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목적은 열매 맺는 데 있지 않다. 동산에서 주목하는 것은 화초이다. 화초에서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화초를 심는 것은 기쁨을 위한 것이다. 이 동산이 ‘잠근 동산’이라는 것은 이 동산이 누구나 다 들어가서 누릴 수 있는 공원이 아니라 특별히 그리스도만을 위해 잠겼다는 것이다. 안의 아름다움은 오직 그리스도만 보실 수 있고 감상하실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은 사람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기쁨만을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은 ‘덮은 우물’이다. 우물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우물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전히 주님의 제한을 받는다. 이러한 생활은 ‘봉한 샘’이다. 우물은 인공으로 만들어지지만 샘은 전혀 인공적으로 된 것이 아니다. 우물은 사람과 관계되고 샘물은 하나님과 관계된다. 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얻은 기쁨과 만족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봉한 샘이기 때문에 일부러 사람에게 보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아름다움과 추구와 체험을 나타내기를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모든 면에서 조용히 행하고 주님을 위해 봉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한 깊은 생활만이 주님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다. 많은 때 우리의 생활은 너무 얄팍하다. 밖에 나타낸 것이 정말 너무 많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십자가가 우리 속에 더욱 깊이 역사하여, 우리가 깊이 뿌리를 박고 깊은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원한다.
(열두 광주리 가득히 7권 148-151쪽)
Deep Meditation - 하나님의 꿈을 가져라
1847년 중국 선교사로간 허드슨테일러가 영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의 일,
그는 수개월 동안 병중에서도 침대 끝에 중국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그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중국을 복음화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깊은 병중에서도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원하시는 꿈은 무엇입니까?
"이세상을 향한 주님의 일 중에서 제가 감당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병마도 그의 꿈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자랄수록
하나님의 갈망이 우리의 갈망이 될 것입니다.
PC를 사용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단위'가 나온다. 몇 헤르츠(Hz), 몇 메가(MB), 몇 바이트(Byte) 등과 같이 말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단위 때문에, PC와 친해지고 싶어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용자가 적지 않다. 알고 보면 정작 PC 용어 중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위는 몇 개 되지 않는다. PC는 우리 생활에 아주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니 PC 관련 단위 정도는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게 좋겠다.
비트는 'Binary digiT', 즉 '이진 숫자'의 약자이다. PC는 0과 1의 숫자(이진수)로 동작하는 게 기본인데, 여기서 0은 Off를, 1은 On을 의미한다. 0을 입력하여 전기 신호를 끊고, 1을 입력하여 전기 신호를 넣는 작업을 반복함으로써 구동된다.
PC가 표현하는 이러한 2진수의 가장 작은 단위가 바로 '비트'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알파벳 한 문자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총 8개의 비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8개의 비트, 8bit는 1Byte(바이트)로 표기한다. 참고로, 비트는 'b'로, 바이트는 'B'로 표기한다.
이에 따라 데이터의 크기 단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주로 하드디스크의 용량을 표기할 때 사용되며, 페타바이트 이하는 아직 저장장치로 공식 출시되지 않았다. 참고로 1,024는 2진수의 10승을 말하는데, 1,000이 아니라 1,024이기 때문에 용량 표기상의 혼란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80GB(80,000MB)라 해도 1,024MB의 80배하여 81,920MB가 되는 게 아니다. 1,024MB x 75배쯤 하여 76,800MB 정도로 제작한 다음 통상 80GB로 이름 붙여 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 디스크를 연결하면 80GB 보다 부족하게 표시된다. 하여튼 하드디스크 단위에서는 1,024는 그냥 1,000으로 생각해도 무관하다.
한편 '헤르츠(Hertz)'는 0과 1 신호가 한번씩 실행되는 주기(사이클, Cycle)를 의미한다. 즉, 1Hz는 1초에 0, 1 신호를 한 번 실행하는 것이다. 1초에 1,000번의 신호를 실행하면 1KHz(킬로헤르츠), 100만번 실행하면 1MHz(메가헤르츠)가 된다. 마찬가지로 1GHz(기가헤르츠)는 1,000MHz이다(여기서는 1,024가 아니다).
따라서 2.26GHz라 한다면, 1초에 0, 1 신호 처리가 22억 6천만번 수행된다는 의미가 된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헤르츠 단위를 사용하는 컴퓨터 용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클럭(clock)'이다. 이 클럭의 사전적 의미는 1초에 처리하는 횟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클럭이 2.26GHz인 CPU는 '1초에 총 22억 6천만번'의 정보를 처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생활에서 보자면, 2GHz의 CPU와 3GHz의 CPU는 크게 차이나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1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처리 회수에서 10억 번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단, CPU의 데이터 처리 성능이 클럭 하나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이는 낮은 클럭의 코어2 듀오 CPU가 그보다 높은 클럭의 펜티엄4 CPU보다 빠른 성능을 발휘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CPU의 성능은 설계 과정과 제작 공정, 소비 전력, 캐시 메모리 용량 등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이러한 설계 과정, 제작 공정, 소비 전력 등을 묶어 '마이크로아키텍처'라 한다).
CPU에서 '클럭'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는 또 하나의 용어는 FSB(Front Side Bus)다. CPU는 메모리와 통신하기 위해 중간에 '칩셋'이라는 부품을 거치는데, 이때 CPU와 칩셋 사이(또는 칩셋과 메모리 사이)의 통신 경로를 FSB라 하며, 헤르츠 단위와 함께 경로 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된다(경우에 따라 '시스템 버스'라고도 불린다).
통상적으로 메인보드에는 두 개의 메인 칩이 장착되는데, 메인보드의 북쪽에 위치한다 해서 '노스 브릿지', 남쪽에 위치한다 하여 '사우스 브릿지'로 불린다. 노스 브릿지는 CPU와 메모리, 그래픽 카드 등의 통신을 담당하고, 사우스 브릿지는 기타 사운드 카드(또는 칩), 랜 카드(또는 칩) 등의 주변기기와의 통신을 담당한다(이들 칩셋을 거쳐 데이터가 이동하므로 '브릿지(Bridge)'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기본적으로 FSB가 높을수록 성능도 향상된다. 예를 들어, 인텔 코어2 듀오 E6300 CPU는 FSB가 233Mhz인데, 여기에 4배로 뻥튀기 해주는 기술(Quad Pumpling)이 적용되어 1,066MHz로 작동하게 된다. 설명이 어렵다고 해서 너무 머리 아파할 필요는 없다. 그냥 FSB 수치가 높은 제품이 성능이 좋다는 정도만 기억해두면 된다(2010년 초, 인텔 코어2 시리즈 기준에서는 FSB 1,333MHz가 일반적이다).
하드디스크 내부에는 원판의 디스크(플래터)가 들어 있는데, 이 디스크가 1분에 몇 번 회전을 하는지 측정하는 단위가 바로 RPM(Revolution Per Minute)이다. 이 RPM은 데이터 입출력 성능을 직관적으로 나타내주기 때문에 디스크 용량과 함께 하드디스크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드디스크 내부의 디스크는 계속 회전을 하고 있으며, 헤드는 회전하는 디스크 위의 한 지점에서 데이터를 읽어야 한다. 만약 헤드가 데이터의 위치를 놓치면 디스크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 위치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이 때 소요되는 시간이 지연시간이다. 이러한 지연시간은 없을 수도 있으며(지연시간 0), 평균적인 지연시간은 0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의 절반 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즘 판매되는 데스크탑용 하드디스크는 일반적으로 7,200RPM 제품과 5,400RPM 제품이 주류이며, 당연히 7,200RPM 디스크가 5,400RPM 디스크보다 성능이 좋다(하지만 체감할 수준의 차이는 아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SSD(Solid State Disk)는 위 하드디스크처럼 디스크가 회전하는 방식이 아닌, 메모리를 통한 전자식 방식이라 RPM이 적용되지 않는다.
요즘엔 PC가 있는 곳마다 인터넷이 연결돼 있다. 이런 인터넷 속도를 측정하는 단위로 'bps'를 사용한다. bps는 'bit per second'로 1초당 수신하는 비트를 의미한다. 당연히 Kbps는 1,000 bps를 의미하고, Mbps는 1,000 Kbps를 의미한다.
KT 메가패스나 LG파워콤 X-peed, 하나로통신의 하나포스 등의 인터넷 서비스를 보면, 인터넷 전송속도가 '100메가'네 어쩌네 하는 소리들을 한다. 여기서 '100메가'는 '100Mbps'를 말하며, 메가바이트로 환산하면(나누기 8) 약 12MB정도가 된다.
서비스 업체에서 얘기하는 100메가는 인터넷 다운로드 시 1초당 12MB를 전송한다는 의미지만, 이는 이론적 수치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약 8~9MB 내외로, 인터넷 서비스 광고 내용처럼 100% 100Mbps가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만 되도 매우 훌륭한 인터넷 속도라 할 수 있다.
이처럼 PC에 사용되는 용어는 다양하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 또한 하나씩 알아둘수록 유용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접했던 많은 PC 용어 외에도 앞으로 나올 새로운 용어는 더욱 많을 것임이 분명하다. 귀찮더라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어렵더라도 조금만 더 신경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운동 선수가 테크닉을 익히기 전 기본기를 먼저 익히듯이 말이다.
글 / IT동아 이문규(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