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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야외집회를 다녀왔습니다.
총 35명이 참석하셨고
6명의 새신자 분께서 참석 하셨습니다.
날씨도 좋았지만
자매님들의 정성스런 맛깔스런 음식들 아주 맜있게 잘 먹었습니다,
자매님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지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
6명의 새로 연결되신 분들, 교회의 지체가 되게하여 주시며.
남아있는 열매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캄보디아에서의 최근의 움직임
캄보디아에서는 지난 5월 1일부터 8일까지 복음전파를 실행하였습니다.
홍콩과 태국에서 온 훈련생들(각 12명씩 총 24명)과
캄보디아의 5개지방 교회 성도들이 함께 6개의 그룹으로 편성하여
미개척지 6곳(반티 미엔쩌이, 뽀삿, 캄폿, 캄풍짬, 캄풍톰, 따케오)에 함께 나가
수천 장의 복음지를 뿌렸고, 수백 명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으며, 지금까지 216명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번 움직임에 참여한 형제 자매님들의 간증을 통하여 알수 있는 것은
캄보디아 사람들, 특히 대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주님께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캄풍짬이라는 도시는 미개척 도시인데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그 도시의 여관에 숙소를 정한 후
인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찾아가서 복음지를 나눠주며 저녁 복음집회에 초대하자,
한 대학생은 우리들을 그의 교실로 안내하여 복음지를 나눠 주는 것을 도왔고, 그 다음날 저녁 복음집회에 와서
주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프놈펜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전에 주 예수님에 대하여 들어보았느냐고 묻자,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었을뿐 그리스도인을 직접 만나기는 우리가 처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증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번 복음의 움직임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를 일깨워 주시는 것은 지금 캄보디아에 복음을 위한 황금의 기회가 열렸다는 것이며,
우릴 다시 한번 이런 움직임에 헌신하도록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신성하고 인간적이며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포도나무 가지가 처음에 한국 형제들에 의해 담장을 넘어
이곳 캄보디아 땅으로 뻗어 나온 이래 이제 동남아의 여러 교회들이 함께 동참하면서
우주적인 몸의 공급과 부축,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신속하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곳 캄보디아 땅을 위해서 더욱 중보기도 해주시고 공급해주시며 함께 수고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기를 갈망합니다.
출처:카페 →부산교회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당기는 양배추무침
재료: 양배추80g,당근 12g, 앙파 18g,
양념장 : 고춧가루 15g,고추장 8g,식초 3g
설탕 5g,다진마늘 7g,참기름,통깨조금
조리법 : 1. 양배추,당근,양파는 채를 썰어 준비한다.
2. 양념장을 만든다(참기름은 마지막에 첨가한다)
3. 끓는물에 소면을 삶은후 바로 찬물에 씻어주어 면을 탱탱하게 만든다.
4. 같이 버무려주고 홍,청 고추로 마무리 한다
맛나게 드세용~~
우유에 쥐포를 5분간 담궈두면 잡내를 잡아주고,
쥐포를 연하게 먹을수 있다.
재료 :쥐포35g 아몬드 20g, 다진파2g,간정 8g
다진마늘 14g 물 24g
조리법 1. 쥐포는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 준비하고,중간불에 노릇하게 구워준다.
2.물,간장,마늘,파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3.양념장에 쥐포와 아몬드를 넣고 볶아준다.
끝~~
매콤한게 먹고 싶을땐 바지락 젓갈~
재료 : 바지락 500g, 두부 150g
청,홍고추 8g
양념장: 고추가루 10g 다진마늘 8g
식초2g참기름 소량
조리법: 1.바지락을 끓는물에 데쳐준다.
2. 홍고추 청고추는 어슷 썰기하고, 쪽파는 소량만 채를 썬다.
3. 양념장에 바지락을 넣고 고추, 쪽파,깨소금을 넣어 버무려준다.
하나님의 역사의 전진은 젊은이들을 사용하시어 새 그릇을 만들어
새로운 성질을 가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시대적인 경륜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
“우리의 겉사람은 썩어 가고 있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겉사람은 옛 존재, 타고난 사람이며, 타고난 모든 능력과 힘과 언변과 재능을 포함한다.
속사람은 영적인 존재, 새 창조물이다.
우리가 거듭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셔서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새 영을 주셔서 그분을 접촉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영을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새 영을 접촉해서 영을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또한 새 마음을 훈련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마음을 주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옛 존재에 속한 것은
그 무엇도 교회생활 안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십자가를 지고, 자아를 부인하고, 혼 생명을 잃어버리며, 그리스도를 사는 문제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회복 안에는 자아를 위한 여지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질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십자가 위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십자가 위에 머물러야 한다..
갈 2:20, 롬 8:13.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교회이다.
타고난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없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 들어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거듭나야함..
롬 14:17, 요 3:3, 5.
요한복음 3장3절과 5절에 볼 때, 우리는 다시 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도 없고, 물과 그 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왕국은 교회요, 우리가 거듭나야 이 교회 안에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증언하는 것은 타고난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바로 교회로서 이것은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요,
바로 의와 평강과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 안에 머물 수 있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서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라고 부를 때, 우리는 의와 평강과 그리고 성령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교회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은 채로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마다
우리는 자아 안에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에게서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돌아서시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거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6:22-23상.
우리는 주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몸, 곧 형제자매들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형제자매들에게서 독립하여 단절될 때, 우리는 주님에게서 독립하여 단절되는 것이다.
빌립보서1장19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성도들의 간구를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급이 그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가 감옥에 있었을 지라도 그의 의식은 결코 몸에서 분리되지 않고
그의 의식은 항상 그리스도의 몸의 공급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도들의 간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급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몸의 공급이 없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죠,
고린도후서11장30절부터33절을 보면 그가 사도의 직분을 변호 할 때
그가 사도 직분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그 당시에 그의 사도직분을 의심했죠,
그가 사도직분을 자랑 할 때 그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자랑 할 때 우리의 힘을 자랑하지만 그는 그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사도직분의 표를 말할 때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사실 다마스쿠스에서 아레다 왕 수하에 있는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켰지만,
사람들이 나는 줄 달린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창문을 통해 내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사도가 광주리를 타고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 광주리 사건은, 광주리를 탄다는 것은 내가 아주 할 수 없다는 뜻이죠,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광주리를 타거나 광주리 밖에 있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광주리 안에 있을 때 한 성도들이 우리를 내려주겠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형제를 내려주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떨 땐 우리가 자랑 합니다.
나는 내려줄 필요가 없다 나는 뛰어내리겠다.
이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것은 자아 안에 있는 것이요 그렇게 한다면
아마 다리가 부러지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겠죠,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형제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는 형제를 의지했고, 그러한 의지함 안에서 다마스쿠스의 총독의 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천을 쫒고 두 사람이 만을 쫒는 다는 성경 말씀이 있죠,
한 사람이 천을 쫒는다면, 두 사람이 이천을 쫒아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두 사람이 형제가 함께 주님 안에서 모인다면
그들이 원래 쫒을 수 있는 숫자의 다섯 배는 더 쫒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천을 쫒고 둘은 만을 쫒습니다.
그러므로 팔천을 더 많이 쫒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한다면 이천이지만,
여러분들 그렇지 않습니까? 팔천이나 더 많이 쫒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하늘에 속한 부르심♣
성경말씀 빌3:13~14 형제님들, 나는 아직 내가 붙잡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일만을 합니다. 즉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나에게 주실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위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가장 충만한 정도까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유대교에서의 체험들을 버렸을 뿐 아니라 그가 과거에 그리스도를 체험한 일 속에서도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과거를 잊어버렸습니다.
우리의 과거 체험을 잊지 않고 그 속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그 체험들이 아무리 진정한 것이라 해도 그리스도를 더 추구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상을 위하여’는 하나님이 위에서 즉 하늘에서 그 상을 얻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하늘에 속한 부르심은 부르심은 빌립보서 3장 20절에 있는 하늘에 속한 시민권과 일치합니다. 그것은 육신에 속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것과 같은 땅에 속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이렇게 위로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하려는 것인 반면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땅에 속한 부르심은 물질적인 땅을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상’은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는 것으로서, 신약의 경주에서 승리한 경주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입과
우리의 마음에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이시다..고전 15:45하, 롬 10:8.
이 문맥에 따르면 사람들의 입과 마음에 이미 이 말씀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호흡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분은 호흡이시고 바로 공기이십니다.
그분은 바로 그 영이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습니다.
1.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그 영과 말씀, 곧 우리가 접촉하기 위한
그 영과 우리가 이해하기 위한 말씀 모두이시다..엡 6:17.
복음을 전파는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을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전파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바로 거기에 말씀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생명주는 영이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말씀으로서 생명주는 영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이미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영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그 영이고 그 영이 말씀인데 사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그 영이 말씀이고, 이 말씀이 그 영입니다.
2. 우리는 생명 주시는 영과 살아 있는 말씀 모두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전 15:45하, 요 6:63, 68.
너무나 놀랍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가 주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할 때,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할 때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그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주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 생명 주시는 영이 우리의 영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입과 마음 안에 계실 뿐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영안에 계시게 됩니다.
다만 우리의 영 안에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 안에 계심으로 인해서
그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로마서 10장 5절부터 8절까지에서 말씀은 사실상 복음이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복음을 듣는 것이고,
말씀을 영접할 때 복음과 그리스도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다..
엡 1:13, 골 1:5, 롬 1:1, 9, 15-16.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육체가 되셨고 또 음부로 올라오심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영이 되심으로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호흡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존재 안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분은 그렇게 우리에게 가깝고 유용하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 그분의 자녀들이 되고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독생자는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항상 계시면서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시고
정의하시고 표현하시며 계시하심.
아들께서 말씀하시면 하실수록
아버지는 더욱더 나타나 보이신다?요 1:18.
저는 영원과거에 태초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품 안에 계셨고,
그리고 이 땅에 육체 되심을 통해서 오셨을 때 아버지의 품 안을 떠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품속에 주님께서 항상 계셨 습니다.
삼일 하나님은 한분이심으로 그분이 오셨을 때 그분이 붙어 오신 것이 아니라 함께 오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셨을 때 아버지도 함께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계신 곳에 그 영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어디 계셨던 삼일 하나님 전체로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품속에 항상 계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말씀하시면 하실수록 아버지는 더욱더 나타나 보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분명 그 많은 일들을 행하셨죠,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가르치시고 말씀하시고 복음 전하는 것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알리고, 아버지를 선포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A. 말씀은 하나님의 정의와 설명과 표현이시다.
따라서 말씀은 정의되시고 설명되시고 표현되신 하나님
B. 말씀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는 것은 말씀이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요 1:1.
C. 말씀은 영원하시고 스스로 존재하신다. 이 영원한 말씀은 살아 있는 인격,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다.요1
D.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은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생명나무의 생명이다.
생명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분은 생명이시며,
그분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가 생명을 얻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요 1:4
E.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요 1:4
F. 삼일 하나님의 정의인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위한 것이다.
말씀이 하나님 전체라는 사실은 말씀이 삼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골 2:9, 히 1:2
G.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이시다.요일 1:1.
요 1:1-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일 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롬 10:5-8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출 25:1-4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실행 훈련 ⑷
(행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베다니는 그분의 죽음 및 승천과 관련이 있다.
주님의 이 땅에서의 일주일간 세 번의 잔치에 참석하셨다.
한 번은 베다니에서,
두 번째는 죽으시기 전날 저녁 유월절 잔치를 하시고,
잔치 후 제자들 발을 씻어주고 주의 상을 세우시고. 세 번의 잔치이다.
라이프-스터디에서 베다니 집에서의 잔치는 주님의 누림과 안식을 얻는 곳이라고 했다.
베다니라는 말은 ‘고난의 집’, ‘가난한 집’을 말한다.
외적으로 볼 때 그 집은 가난한 집이었다. 형제들과 함께 베다니에 갔을 때 지금도 가난한 곳이었다.
모든 종교적인 중심은 예루살렘에 있다. 베다니는 가난한 곳이다.
그곳에 갔을 때 아랍인이 먹는 빵 같은 것으로 점심을 먹었다. 주님 당시도 가난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곳에서 안식할 곳을 얻으셨다.
외적으로는 가난했지만.. 회복역 각주에 보면 잔치집이라고 했다.
그들의 마음을 열고 집을 열었다. 이 가난한 집이 잔치집이 되었다.
회복역을 보면 교회생활의 축소판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명의 결과이다.
요한복음 2~11장까지 주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기적들의 결과는, 생명의 표현의 결과는
단지 한 개인 얻는 것이 아니라 잔치집을 얻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 개인을 얻을 뿐 아니라 우리 집이 잔치집이 되기를 원하시고,
그분이 안식할 집이 되기를 원하시고, 그분이 누림을 갖는 곳이 되기를 원하신다.
집은 우리 누림과 안식을 위한 것이다.
바깥에서 일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고 분투하나 집에 돌아올 때 안식과 누림을 가진다.
주님은 우리의 집을 그분의 안식처로 얻기를 원하신다.
오늘 우리는 개인이 주님께 헌신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안식하고 누리는 장소를 주님께 헌신해야한다.
하나님 정하신 길은 우리 집에 있어야 한다.
열린 가정이 있을 때 주님은 이 땅에서 움직임을 가질 수 있다.
이주, 캠퍼스, 해외개척. 주님 움직임을 갖고자 하실 때 더 많은 베다니 집을 얻기 원하신다.
베다니는 두 집이 있다. 하나는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의 집이다.
하나는 죄 많은 시몬의 집이다. 이 가정을 연 것은 마리아의 헌신이다.
두 번째는, 가정은 부활 생명을 나타냄이다.
사람들이 와서 나사로를 보고 부활의 주님을 믿었다.
가정을 열고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 가정을 열면 집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을 열고 집회를 적게 할수록 더 좋다. 가정을 여는 것은 부활 생명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말씀을 교통하고 섬기고 있다. 이것이 부활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 번째 자신을 헌신하는 희생이 있어야 하고, 부활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 번째, 사람들을 섬김이다.
마르다는 사람을 섬기고 있었다.
마르다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하지만, 마르다 봉사가 중요하다.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을 여는 것이었다. 그는 요리를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마르다 봉사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에게 많은 가정이 필요하다.
주님 사랑하는 자매들이 필요하다. 자매들은 묵묵히 애찬 봉사를 한다. 작은 일이 아닌 중요한 일이다.
지난달에 한 무리 기독교 인도자와 중국대륙을 방문했다.
홍콩에 갔을 때 중국 대륙에서 온 형제들을 만났다.
기독교인들에게 여러분에게 교회를 소개한다고 했다. 4천명 모이지만 집회소가 없다.
목사들은 이 말을 듣고 궁금해 했다. 4천명 성도가 있는데 예배당이 없냐고 물었다.
2003년도에 300명이었는데 지금 4천명이 넘지만 다 집에서 모인다고 했다.
한 가정에서 모이다가 인수가 증가되면 두 가정에서 모이고. 한 가정 한 가정 가정에 모인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이다. 초기 교회생활의 길이다.
예배당은 유대인의 관념이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집회를 가진다.
신약이 시작되었을 때 타고난 관념에 따르면 장소를 선택해서 모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방식이나 생각으로 모이지 않고 이집 저집에서 모였다.
교회역사상 3백년간 그렇게 했다. 그 후 교회가 타락하여 예배당이 생겼다.
오늘날 로마에 가보면 큰 예배당이 있는데 콘스탄틴 대제 이후 생겨난 것이다.
베들레헴의 주님 출생하신 곳에 기독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있다.
콘스탄틴 대제 어머니가 베들레헴에 왔을 때 건설한 것이다. 처음에 예배당이 없었다.
교회의 정상적인 집회장소는 가정이었다.
집회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역적인 집회, 하나는 교회에 속한 집회이다.
집회로부터 사람으로,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으로, 오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가는 것으로.’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 정하신 길을 가게 될 것이다.
40세 미만 청년, 직장인들을 위한 사역의 말씀
강사: 앤드류 형제님
주님 위해 살날이 많지 않다. 내 일생 오직 주님만 위해 살기 원한다.
남은 일생 주님께 모두 헌신하길 원한다. 주님 오실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 일본 열도는 온통 지진과 해일로 막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전쟁의 소식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주님 오시기 전의 상황이다(마24:6-7).
마태복음 22장에서 어떤 왕이 왕국의 결혼 잔치에 사람들을 불렀으나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는 밭을 샀다. 나는 사업을 해야 한다. 나는 결혼한 아내가 있다.
그들은 들은 척도 않고 오히려 사람을 붙잡고 모욕하고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로 갔다.
지금은 복음이 강화될 시기이다.
사거리에 나가서 마구 끌고 오라.
이 왕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야 끝이 온다(마24:14).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이다.
근래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1967년 6일 전쟁 때 예루살렘이 회복되었다. 무화과 나무에 싹이 났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웠다.
우리는 복음이 강화되는 셋째 시기 단계에 있다. 신약 전체가 복음의 시기이다.
이사야서 40장에서 66장까지 27장은 복음 전파로 시작된다.
침례자 요한은 왕국 복음을 선포했다. 이것은 구속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리고 왕국을 위해서다.
천년 왕국 시대에는 복음이 필요하지 않다.
주님께서는 교회 시대 안에 있는 교회에게 복음을 맡기셨다.
주님께서는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사탄의 포로 된 자들을 해방하시기 위해서
희년을 선포하고 이 희년의 선포가 모든 귀에 응했다.
희년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잃어버린 기업인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셨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세상 향략에 도취되고 흑암 가운데 있고 컴퓨터에 자신을 소비하고 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다. 복음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가 죄 많은 세상 가운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주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희년이 선포되었다. 참된 희년은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실 때이다.
우리는 신약 시대를 미리 맛보고 있다. 오늘 교회 생활은 천년 왕국 생활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 그리고 생명 안에 있는 기쁨이다(롬14:17).
우리는 희년을 미리 맛보고 있다.
구약에서 희년은 50년째이다. 49년이 지나고 또 6개월이 지나고 속죄일인 칠월 십일 즉 49년 6개월 하고 10일이 지나면 구속의 나팔, 은 나팔, 양각 나팔을 불기 시작 하였다(레25장).
천년 왕국을 복음 전파로 앞당겨야 한다.
왕국 복음을 전파하는 한 무리를 얻고자 하신다. 이 땅 곳곳에 전파되어야 한다. 그럴 때 주님은 다시 오신다.
교회 시대는 복음 전파 시대이다. 모두가 불경기고 정치가 어둡다고들 한다.
일본에 지진과 해일이 발생했다. 흰말 검은말이 세계정세 속에서도 함께 달리고 있다(계6:2-8).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복음은 더욱 흥왕 되어야 한다.
말씀은 더 일어나야 한다. 갈수록 주변 정세는 어두워 진다.
최근 이스라엘 여리고에 다녀왔다.
출 애급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첫 번째 성이다. 우리가 전투하여 정복할 성이다.
이 성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이다. BC 8000년이다.
영적 의미로는 좋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반드시 대적과 싸워야 한다. 반드시 적진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복음도 반드시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포로로 잡아서 생, 양, 교, 건의 훈련을 통해서 좋은 땅 안으로 인도해야 한다.
여호수아 대장의 지휘 아래서 무너진 여리고 성은 우리의 복음의 성이다.
여리고가 함락된 다섯 가지 요인이 있다.
1.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이 땅들을 너희에게 주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너희에게 주셨다(마28:18).
우리의 힘으로 전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 아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승천에서부터 재림 시까지이다.
나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중국, 한국에 가져왔다.
온 땅 먼 곳 까지 이 약속의 말씀을 전하려는 부담 있는 지체들이 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2. 여리고 성을 점령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었다.
아무도 반대하는 일 없이 묵묵히 그 성을 돌았다. 생명 자신인 주님을 신뢰하고 복음을 회복하라.
자신은 죽어야 한다. 주님을 위해 자신은 죽고 복음을 위해 살아나야 한다.
세상 안에서는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살고 교회의 인도를 따르고 나가야 한다.
3. 7일 동안 인내가 필요하다.
칠일 동안 묵묵히 함께 그 성을 돌았다.
함께 회복역 성경을 읽고 실행하는 일에 있어서 인내가 필요하다.
활력그룹으로 실행하라. 기도와 나눔과 돌봄이 필요하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게 된다.
상대를 위해 기도가 필요하고, 상대의 필요한 사정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고
인내심을 갖고 상대를 돌보아야 한다,
4. 외치고 선포하라.
나 역시 처음에는 복음 전파가 귀찮았다.
여리고 성을 칠 일간 돈 후에는 여호와를 함께
선포했다. 누구나 말슴을 추구한 후에는 복음 전파의 마음이 생겨나야 한다.
우리의 약함 거절하라. 몸이 아프다. 감기가 걸렸다.
이 핑개 저 핑계 대면서 거절하지 말라.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다만 말하고 산포하라. 약 할수록 선포하라. 강함이 된다. 약하다고 말 할수록 더욱 약해진다.
모든 사람 주 예수가 필요하다고 선포하라.
<다만 주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당신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라고 선포하라.
젊은이들의 일생이 사탄의 포로 아래에 있다. 여리고 성을 돌 때 함께 나가라.
칠 일 동안 계속 나팔을 불었다.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이것이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가난한 지역에 가라.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문을 두드리라. 그럴 때 기쁨이 충만해진다.
5. 중도 하차 하지 말라.
주님 이름 부르며 성벽을 뚫고 전진하라. 반드시 철저히 뚫고 나가라. 가족들 모두를 얻으라.
일망타진 하라. 첫 번 전투에서 포로를 사로잡아야 한다.
위와 같이 복음 전파를 여리고 성 정복과 비유해 보았다.
사로잡은 포로들을 모든 것을 포함한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 한다. 모두가 헌신이 부족하다.
주 예수님! 우리 모두에게 헌신의 영을 부어주옵소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길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라. 주님 오실 날이 점점 가까워 지고 있다.
나안 땅 좋은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요단강에 자신을 묻고 부활 생명으로 나와야 한다. 길갈에서 자아, 육체를 십자가로 처리해야 한다.
서울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여리고 성이 그 안에 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교회에게 주셨다.
교회의 실행에 순종하고 묵묵히 칠일 간 여리고 성을 돌아야 한다.
중도 하차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다만 주님의 말씀을 외치고 선포하라. 여리고 성은 무너진다.
포로들을 사로잡아서 생, 양, 교, 건의 실행을 가지라. 주변 환경을 보지 말라.
다만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라.
세상 향락 가운데 처해 있다. 예수님의 복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주님께서 가나안 혼인 잔치에 오셔서 여섯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
엘리사의 기적이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 쓴 것들을 단 것으로 바꾸셨다.
세상에 쓴 것들은 해결 방법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치료하실 수 있다.
나는 올해 63세이고 내 딸은 25세이다. 우리는 매일 새벽 이슬을 맞는다.
매일 소금뿌리고, 복음을 뿌리고, 은혜의 말씀을 뿌린다. 세상 모든 쓴 것들이 달게 된다.
젊은이들은 매일 새벽 이슬을 맞아야 한다. 엘리야는 다만 기도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서의 첫 기적은 항아리의 죽음의 물을 신선한 포도주로 바꾸신 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병자들을 치료하셨다. 누가복음 4장에서 주님께서는 다만 희년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런 후 말씀을 가르치셨고 귀신을 좇아내셨고 병을 고치시고 말씀을 전파하셨다.
여러분도 RSG에 전력투구 하십시오.
회복의 진영 안에는 금과 은과 아름다운 옷들이 있다.
회복역 성경 말씀이 있다.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에서 한 목사를 만났다. 일주일에 5일간 금식기도 한다고 했다.
2년 전에 회복의 보물을 발견하고 목사 지위 다 버리고 애나하임 중년 훈련에 올 계획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태복음 13장 44-46절의 자기 소유를 팔아 밭과 진주를 산 어 떤 사람과 같은 경우이다.
또한 예는 이스라엘 나사렛에서 중동 출신의 한 사람이 목수 일을 하고 있었다.
회복의 말씀을 발견하고 인터넷에서 각종 회복의 보화를 캐면서 사역의 말씀을 공급받고 있는 중이다.
온 땅에 추수할 곡식들이 풍성히 있다.
친척, 이웃, 동료들에게 풍성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새겨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만을 위해 누리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들은 원망할 것이다.
왜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느냐? 고 원망할 것이다.
모두 일어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신 말씀을 전하는 부담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삭개오의 역동적인 구원은 식개오로 하여금 4배 이상 복음의 부담을 안겨주었다(눅19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복음이 여리고에 임했다. 주변 환경 탓하지 말라.
복음은 여리고 낮은 곳에서 시작 되었다.
은혜가 여리고 낮은 지역에서 시작 되었다. 낮은 지역을 두루 찾으라.
그때에야 주님을 다시 모셔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