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8일 수요일
오, 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주님을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마르다-나사로-마리아로서 주님의 부활생명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봉사하고 간증하고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요한복음 12장 2절- 3절 *** 마르다-나사로-마리아
2절 : 사람들이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마르다는 시중을 들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상에 앉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
3절 : 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일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바르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리니,
그 집이 향유의 향기로 가득 찼다.
교회생활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그 임재와 더불어 잔치를 누리는 생활입니다.
주님께서 그 집으로 오셨으므로 그분의 임재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는 그러한 위치 안에
있어야 하며 또 그러한 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없다면 교회생활은 빈 껍데기입니다.
주님의 임재와 함께 하는 교회생활은 잔치가 있습니다.
주께서 안식과 만족을 갖게 되시는 곳이 교회이며, 주님과 그분의 백성은
함께 잔치를 누립니다
교회 생활 안에는 서로 다른 기능들이 있습니다.
(1) 섬김,봉사 ---- 마르다의 기능 : 주님을 위한 근면한 봉사
(2) 간증함 -------- 나사로의 기능 : 주님의 부활 생명에 대한 살아있는 간증
(3) 사랑함 -------- 마리아의 기능 : 주님께 쏟아 부어진 절대적인 사랑
만일 우리가 진실로 교회 생활을 실행하고 있다면, 반드시 봉사와 간증과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는 <마르다>이고, 누구는 <나사로>이며, 또 다른 누구는 <마리아>인 것이 아닙니다.
나 한 사람이 마르다이며, 나사로이며 동시에 마리아의 3가지의 기능을 다 가져야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 따로, 간증하는 사람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마르다-나사로-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교회는 주님이 우리에게 부활 생명이 되신 결과요 산물입니다.
참된 교회생활 안에는 주님께 드리는 봉사가 있고, 주님에 대한 간증이 보여지며,
주님을 향한 사랑이 쏟아부어진 바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누릴 수 있고, 주님 자신은 만족함 속에 거하시고 안식하시고
잔치를 누리실 수 있으십니다.
잔치집과 같은 교회생활이 바로 주님을 담아서 나타내는
주님의 몸의 표현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잔치집 교회생활 안에 있습니다.
주님의 몸의 표현 안에서 마르다-나사로-마리아로 살며,
주님의 부활 생명으로 인하여
섬기고 봉사하며, 주님의 간증이 되는 삶을 살며, 절대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교회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2012년 8월 6일 월요일
오, 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고,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사탄으로 오염된 우리를 구원하셔서, 주님의 신부로 삼으시려고
사람이 되셔서 오셨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이 사망에 처하고 오염된 우리를 생명으로 살리시고,
깨끗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생명이시고 영이신 말씀을 먹고 주님 안으로 자라기 원합니다.
요한복음 12장 1절 *** 생명의 결과와 번성(1)---잔치집
11장 까지 주님은 아홉가지 사례를 통해서, 생명의 원칙과 생명의 목적으로
사망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11장에서 주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사로를 일으키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은 사람(나사로)들이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부활시키신 후에 우리는 교회(잔치집)가 되었습니다.
11장에서는 부활한 나사로를 볼 수 있고, 12장에서는 부활한 그 사람이 주님께서
안식과 만족을 찾으실 수 있는 바로 그 장소가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잔치집으로서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1절 : 유월절 육 일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가셨는데, 그곳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었다.
2절 : 사람들이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
이 잔치집은 베다니의 작은 집 안에서 베풀어 졌습니다.
유대 종교이 본거지인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이나 거룩한 성전이 아닌
베다니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종교는 생명이신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11장에서 유대 종교인들은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회의까지 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종교는 생명이신 주님을 부인하고 배척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경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심지어는
성경도 가르치기 때문에, 종교에 어떤 잘못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생명 안에서 영의 눈을 열어 주심으로 우주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 의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을 경배하거나 섬기게 하는 것만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갈망과 의도는 사람이 그분에 의해서 살 수 있도록,
그 분이 아들 안에서, 그분의 영에 의해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 안으로 들어와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죽었던 우리를 주님의 생명으로 살리시고,
주님의 안식과 만족을 위한 거처로 삼으심을 감사합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은 우리의 안식과 만족이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2012년 8월 2일 목요일
갈라디아서 2장 19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는데,
이것은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For I through law have died to law that I might live to God.)
오, 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율법에 대하여는 잘려져나가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께 접붙혀져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과 접붙임의 생명의 흐름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 오시고, 또한 흘러나가기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흘러나가심은 나의 주변에 있는 주님의 선택한 백성안으로 흘러들어가기를 원하시는
생명의 흐르심입니다.
그 생명의 흐르심으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갈망을 보게 하셨습니다.(요15:5)
나를 통해 흐르시도록 나를 열어 드려야 하는데....자꾸만 이전의 내가 나와서
주님의 흐르심을 막는 것을 봅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는가?를 점검하면서 주님을 막고 있기도 하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주님이 하시는 것임을 자꾸 잊어버리고...
내가 잘 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아니 염려하면서....
부활 생명이신 주님을 방해하고 지체시키는 마르다와 마리아(요한복음 11장 : 사람의 의견들)가 되는
나를 보게 됩니다.
주님이 늦게 오셔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은근히 불평하고....
무덤의 돌을 굴려 내라는 주님의 말씀에
죽은지 4일이나 되어 썩어서 냄새가 난다고 알려드리고....주님이 그걸 모르시겠습니까?
나면서 부터 눈먼이의 눈도 뜨게 하는 분이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으셨느냐고
비웃는 유대인들 처럼....
참으로 나의 의견이 나의 자아가 주님의 일을 방해하면서 살고 있는 나를 봅니다.
나는 다만 나를 열어서... 주님이 마음대로 흘러 들어오시고, 나를 통해 흘러나가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자신 안에서는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거나 하나님에 대해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귀함이 우리 안으로 주입되어 그를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의 안으로 접붙여졌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잘려졌고 다른 편으로는 그의 부활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와 합쳐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만 이 유기적인 연합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유기적으로 연합되기 위하여 더욱 주님을 앙망합니다.
관념과 생각과 지식으로 주님과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자신 안에서
주님을 외적으로 흉내내고 주님 닮은 삶을 살려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버리고,
주님과의 유기적인 연합, 접붙임의 하나 안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향해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빛비춤조차도 나의 관념과 지식으로 되어,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눈만 밝아져서 남을 판단하는데 사용되지 않도록....
쉴새 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주님이신 말씀을 기도로 읽으며....
지체들과 함께 사랑으로 모이기를 힘쓰며,
삶의 상황 안에서 실제로 주님을 살기를 원합니다.
실제 상황 안에서 잘려지고, 부서져서 아프지만,
주님과 연합되는 과정의 아픔이라는 것을 봄으로
기쁨으로 충만하고
주님과 또한 지체들과 사랑으로 연합되게 하소서.
나 자신을 가지고는 절대로 주님과 연합될 수 없기에 나는 잘려지기를 원합니다.
나는 병들어 고쳐지기를 기다리며 살아있는 나사로가 아니라,
죽은 나사로가 되기를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
나의 자아와 의견은
완전히 죽고 썩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는 나사로가 된 것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주님이 부활생명으로 잘려진 나를 주님께 접붙이시고
소생시키는 생명의 적셔짐으로 들어오실 때입니다.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연합이라는 말조차 잊어버리고, 다만 연합된 영을 따라 살게 하소서.
생명으로 적셔지고 자라남으로써
어제와 다른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