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하나님-우리의 누림과 생활과 표현이신 삼일 하나님 (1)


삼일 하나님 2013-02-0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arry1219/43899.html

성경: 계 21:11, 18-21, 23-25, 22:1-2, 5, 14, 19

 

빛은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킨다. 요한 일서 1장 5절은 하나님을 빛이시라고 말하는데, 문맥에 따르면 하나님은 주로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킨다. 사랑이 하나님의 내적 본질의 본성인 반면에 빛은 하나님의 외적 표현의 본성이다. 새 예루살렘에서 빛은 그분의 표현을 위해 성 전체를 비추기 위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요한 계시록 21장 23절은 해나 달이 필요 없음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여전히 해와 달이 있을 것임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에 있는 생명나무가 달마다 실과를 맺는다는 사실은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열 두 달을 나누는 달이 여전히 있음을 가리킨다. 또한 낮과 밤을 각각 열 두 시간으로 나누기 위한 해가 여전히 있을 것이다. 이사야 30장 26절은 오는 시대에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해나 달이 필요 없을 것이다. 성에 있는 빛은 생명의 빛이신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다(요1:4, 8:12). 그런 신성한 빛이 거룩한 성을 비출 것이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셨거나 사람이 만든 다른 빛이 필요 없다(계22:5). 우리는 해와 달보다 훨씬 밝으며 사람이 만든 등불보다 더 밝은 하나님을 가졌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했거나 사람이 만든 빛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성한 빛이시며 생명의 빛이신 하나님은 등이신 어린양 안에 계신다(계21:23下). 전기는 항상 그것을 담을 전구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감전되어 죽을 가능성이 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구속하시는 어린양이 등이시며 하나님은 빛으로 그 안에 계신다. 이것은 신성한 빛을 담은 구속하시는 그리스도가 없을 때 그 신성한 빛이 우리를 「죽일」것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등이신 구속하시는 그리스도가 있으므로 신성한 빛은 우리를 죽이지 않고 비춘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죽임이 비춤이 된다. 디모데 전서 6장 16절은,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가까이 갈 수 있는 분이 된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의 비춤이 죽임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비춤은 비춤이 된다. 구원받은 날로부터 우리는 우리를 항상 비추시는 구속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빛이신 하나님을 누리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이렇게 누려야 한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실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을 우리의 빛으로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사람이 만든 빛인 철학이나 공자의 가르침 같은 윤리적인 가르침이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 자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종교적인 가르침이 필요 없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부모님을 사랑하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가? 당신은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알려 주기 위해서 하루종일 당신 안에서 비추는 신성한 빛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여전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엡6:2).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안에 빛이신 하나님을 가지고 있다면, 왜 신약은 여전히 많은 것들을 가르치는가?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6장 9절에서 바울은 윤리적인 관계가 필요한 일종의 삶을 보여 준다. 그는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과의 관계에 관해 말한다. 이러한 권면은 에베소서의 첫 장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 두 장에서 주어진다.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기 전에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4절에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신약은 먼저 우리에게 가르침을 계시하지 않고 신성한 빛을 계시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옛 창조 안에 있음으로써 여전히 이 가르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거기에는 옛 것이나 가르침이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항상 새 창조와 안의 기름부음을 좋아한다면 가르침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옛 창조 안에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잠자는 데서 일어나도록 우리를 상기시키는 약간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새 창조의 원칙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 안에 빛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요일1:5). 당신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을 때 당신에게는 다른 빛이 필요 없다. 당신이 그분을 소유하고 있는 한 그분이 바로 당신의 빛이시며 당신에게는 어떤 가르침이나 교리가 필요없다. 당신이 그분과의 교통 안에서 당신의 빛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는 한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