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주교회와 함께 저녁에 기도집회를 하고나서
광주교회 L형제님 부친의 장례식장에 조문하기로 하였다.
늦은 밤에나 돌아오겠다 싶어 하던 일을 마치고 가려다보니
기도집회 시간에 30분이나 늦었다.
매주 각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기도집회를 하는 나주교회,
오늘은 처음 가보는 지체의 가정이어서 조금 미안하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반부의 추구하는 공과는 끝나고
바로 기도집회를 시작하고 있었다.
모인 숫자는 몇 명 안 되었지만 우리는 마음을 열고
주님의 임재와 공급과 살아나타냄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나주와 영광교회, 각 가정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리고 복음의 확산과 함평을 비롯한 전남의 아홉 군데의
미개척지를 위해서 주께서 움직여 달라고 기도했다.
끊길듯 끊길듯 하면서도 기도의 부담을 거의 다 쏟아 냈다
싶었을 때 우리는 기도를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에는 또 다른 M형제님이 우리와 함께 들어가려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오랜만에 만나는 M형제님이
나에게 네 사람 대표로 향을 피우라고 해서 응했더니만
돌아와서 기도하려는데 옆구리를 치며 대표기도까지
시키는 것이 아닌가?
상주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사양할 수도 없고 난처했다.
평소 고인을 한 번도 뵌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분이 어떤 분
이었는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주님께서 이 가족들을
위로하시고 모든 장례절차를 무사히 치루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형식적인 기도였다.
나는 고인을 잘 알지 못하였지만 L형제님의 부친이어서
참석하였고, 나주교회와 기도집회도 할겸, 또한 오랜만에 광주교회
형제자매들도 만날 수 있겠다 싶어 형식적인 인사치레 정도로
참석하였기 때문에 형식적인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L형제님은 눈치채지 못했을지라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
왜 미리 전화로라도 L형제님에게 진심으로 위로하며 상황을 묻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나의 거의 모든 삶은 이처럼 체면치레의 형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그런 겉치레의 삶은
성도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죽은 삶일 뿐"이라고..
요즘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기도가 함평을 위한 기도이다.
30복음 확산 움직임 후 한 동안 소강상태에 들어간 함평 움직임은
이래저래 우선은 누가 이주해 올 때까지 내가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부담스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서울교회 4대지역과
동역이 있기 때문이고, 나 개인적으로 조금은 성숙했기 때문이다.
나는 베드로 같은 성격상 먼저 몰아붙이기식으로 간증 선포를
할 수도 있겠지만 두려워서가 아니라 함평을 위해서 참으로
온 지체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보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서울교회 4대지역의 봉사형제님에게서 간간이 연락이 온다.
오늘도 사역의 인도를 따라 우리에게 분깃으로 주어진 함평을
언제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형제님과 많은 교통을 가졌다.
우리의 인수가 많다고 해서 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지나 아이 성을 치는
과정에서 이미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우리가 함평에 교회
깃발을 꽂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꽂느냐가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우리의 관심을 함평에 쏟는
만큼이 함평교회의 역량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도 형제님과의 교통 가운데 더 분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미 한국교회 5개년 계획에 의해서 함평을 비롯하여 나머지
24-5개의 지역을 회복시켜야 하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교회와 사역은 하나가 되어 이 일을 믿음으로 성취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갈망에 부응하는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사탄까지도 이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러나’가 아직 우리 가운데 방해 요인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회복의 무리들 중에는
주변의 방해와 많은 상황들이 발생하자 ‘아직은 성전 건축할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자기 집을 짓는데 바빴다.
이 ‘그러나’가 우리 회복 안에 상당히 만연되어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함부로 섣불리
움직이다가는 오히려 악한 자의 궤계에 말려드는 경우가
있으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마도 이 일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분명히 이 시대의 학개와 스가랴 같은
형제들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인내하면서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