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종류의 인생


유향의 동산 2013-09-2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7777/50475.html

                                                   네 종류의 인생

 

오래 전부터 인생의 참된 의미를 추구해 왔습니다. 지금은 거의 해답을 얻었다고 말씀드릴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이끌어 나침판 혹은 지도를 가진 셈입니다.

 

현재 세계 인구인 71 8 백만 (http://www.worldometers.info/kr/   ) 다음 어디 쯤에 속해 있습니다.

 

  1. 사람

  2. 하나님이 속에 계신 사람

  3. 하나님이 속에서부터 밖으로 표현되는 사람

  4. 하나님이 속에서부터 밖으로 단체적으로 표현되는 사람

 

먼저  일단 사람으로 태어나기만  했으면  모두 1번에 해당됩니다. 저도 주일 학교 때부터 소위 교회나가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 초반까지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주님이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의 생명 외에 다른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3:6). 그후 다른 인격이 안에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통 거듭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2번에 해당됩니다. 이들끼리는 서로를 알아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듭난 사람 모두가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3단계가 따로 분류됩니다. 오직  주관적인 십자가의 체험과 자기 부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3 단계의 삶을 살게 됩니다(16:24). 사실 부류의 원조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람 이시지만 자신 안에 내주하시는 아버지의 생명과 인격을 사셨습니다(6:57). 또한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말한 사도 바울도 단계에 해당됩니다.

 

마지막인 네번 단계는 3번인 사람이 하나님의 표현을 표현하는 것이 신령한 개인에 그치지 않고 단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 동역, 건축 이런 영적인 개념이 이해되어야 체험할 있는 단계입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육신을 입으신 시절에는 예수님 자신도이 단계에 이르지 못하셨습니다.  소위 안의 생활은 부활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영성을 추구하는 분들이 놓치고 있는 단계입니다. 에베소서 4 13절이 성취되는 단계입니다.

 

저는 현재 2번째 단계를 토대로 3번과  4번째 단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상은 제게 너무나 투명합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떠신지요?



회복역 성경번역의 우수성-지옥, 게헨나, 음부, 불못(2)


진리의 언덕 2013-08-1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7777/49839.html

  

 

회복역 성경번역의 우수성-지옥, 게헨나, 음부, 불못(2)

 

이번 후속 글에서는  <신약성경 회복역>에서 지옥관련 구절들이 언급된 본문과 관련 각주들을 소개하고, 필요시 간략한 평가를 겻들일 것입니다.  신약에서 지옥과  간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언급된 용어로는 게헨나(1067), 하데스(86), 무저갱(12), 타르타로스 (5020), 복합어인 (4442+3041) 있습니다(괄호 숫자는 스트롱 번호임).

 

1. 신약성경 회복역 지옥관련 본문 각주 내용

 

 1) 회복역[i][1]에서 쓰인 게헨나(1067) : 게헨나는 신약에서 12(5:22, 29-30, 10:28, 18:9, 23:15, 33, 9:43, 45, 47, 12:5, 3:6) 사용되었고, 회복역 성경에서는 단어가 12 모두 게헨나 음역되었습니다. 중에 참고가 만한  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형제에게…’모레라고 하면 게헨나 들어가게 것입니다(5:22).

 

각주 6 (게헨나 ): 게헨나(헨나 골짜기) 히브리어 게힌놈(힌놈 골짜기) 해당되며, 도벳 또는 도베스라고도 불리었다(왕하 23:10, 30:33, 19:13).그것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깊은 골짜기인데, 성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서 온갖 더러운 것과 범죄자들의 시체가 버려져 태워졌다. 그곳에서는 계속 타는 불이 있었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의 장소, (20: 15) 상징이 되었다(후략).

 

만일 그대의 손이 그대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십시오. 불구의 몸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손을 가지고 게헨나, 꺼지지 않는 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낫습니다(9:43).

 

각주5 (꺼지지 않는 ): 게헨나 동격이며, 문맥에 따르면 여기서는 패배한 믿는 이들에 대한(2:11 언급된 둘째 죽음의 해를 받는 것과 같은) 시대적 형벌을 나타낸다. 그것은 영원한 멸망이 아니다. 9 49절의 각주 2 참조)

 

9:49 각주2(불에)- 이것은 정련하는 (3:2), 고전 313, 15(비교사33:14) 있는 것과 같은 순수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불이며, 왕국 시대에 있을 시대적인 형벌로서, 시대에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는 믿는 이들을 깨끗하게 것이다(후략).

 

위에서 보듯이 성경이 게헨나, 꺼지지 않는 불속[ii][2]( unquenchable fire)이라고 했으면 그대로 믿어야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그럴듯한 논리로 성경을 뒤짚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3:1-3).

 

 

2) 회복역에서 쓰인 하데스(86): 하데스 신약에서 11(고전15:55(죽음), 11:23, 16:18, 10:15, 16:23, 2:27,31,1:18,6:8, 20:13, 14 , 음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11:23).

 

각주1(음부): 음부는 구약의 스올(37:35, 6:5) 같은 곳으로서, 죽은 사람들의 혼과 영이 보존되는 곳이다(16:22-23, 2:27).

 

살아 있는 이이다. 내가 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보아라, 영원토록 살아 있으며, 죽음과 음부 열쇠를 가지고 있다(1:18).

 

각주2(음부) :사람의 타락과 때문에 죽음이 땅에 들어와, 지금은 위에서 일하면서 있는 모든 사람을 음부(陰府) 모으고 있다. 따라서 죽음은 모으는 것이고, 음부는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음부를 주관하는 열쇠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우리 구주 안에 있다.

 

녹황색 말과 위에 이가 있는데, 이름은 죽음이고, 음부 뒤를 따랐습니다(6:8 ).

 

 각주2(음부): 음부는 아래에 있는 장소이며,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크고 보좌의 심판(20:11-15) 받기 위해 부활할 때가지 보존되는 곳이다. 심판 후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불속에 던져질 것이다. 음부는 일시적인 구치소에 비유될 있고, 못은 영원한 감옥에 비유될 있다(후략).

 

위에서 보듯이 회복역은 하데스 모두 음부 번역 했습니다(고전15:55 죽음으로 번역).  또한 음부는 죽은 부활 전까지 임시로 머무는 장소이며 영원한 감옥인 못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비판자들이 다윗이나 야곱이 음부에 간다는 기록(42:38, 30:3)으로 이들이 지옥가느냐고 공격하는 일은  회복역의 바른 번역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맙니다.

 

 

3) 회복역에서 쓰인 무저갱(12): 신약에서 9(8:31, 9:1, 2, 11,11:7, 17:8, 20:1, 3, 10:7) 사용되었습니다.

 

천사는 , 마귀요 사탄인 뱀을 잡아 결박하여서 동안 무저갱 던져 넣고 가둔 다음에 위에 봉인하여(20:2-3).

 

혹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무저갱으로 내려가겠느냐?라고 하지도 마라. 말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모셔 올리겠다는 입니다(10:7).

 

각주1 (무저갱): 여기 7절에서는 단어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부활하시기 전에 가셨던 장소를 가리키는데, 사도행전 2 24절과 27절에 따르면 장소는 음부(Hades)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24, 27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음부로 가셨다가 부활하실 그곳에서 일어나셨다는 것을 계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용법에 따르면 무저갱(abyss)이라는 단어는 항상 죽음의 영역과 사탄의 어둠의 세력의 영역을 가리킨다. 그곳은 아래 있는 부분이며(4:9 아래 낮은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내려가셨다가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 안에서 올라오신 곳이다.

 

무저갱 역시 흔히 말하는 지옥 아닙니다.  사탄은 이곳에 천년동안 갖혀있다 다시 풀려난 최종적으로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어떤 분은 무저갱이 지구라고 하나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4) 회복역에서 쓰인 타르타로스(5020): 신약에서 한번 쓰였습니다(벧후 2:4).

 

하나님은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타르타로스에 던지시어 어두운 구덩이에 내버려 두심으로써, 심판 때까지 갇혀 있게 하셨습니다(벧후 2:4).

 

각주2(타르타로스): 감옥과도 같이 타락한 천사들을 감금하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이다. 베드로 전서 3 19 각주 2 참조.

 

벧전3:19 각주2(감옥, 5438)-이것은 타르타로스(Tartarus), 타락한 천사들이 갇혀 있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들 (pits, 벧후2:4, 6) 의미한다.

 

6 각주 4(어둠, 2217)-타르타로스의 어두운 구덩이 안에(벧후2:4).

 

타르타로스는 타락한 천사들을 가두는 곳으로써, 사람과는 무관한 장소이며 지옥도 아닙니다.

 

 

5) 회복역에서 쓰인 (the lake of fire) : 단어는 +으로 이뤄진 복합어이며, 최소한 19:20, 20:10, 14, 15, 21:8, 25:41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짐승, 거짓 신언자) 유황으로 불타는 못에 채로 던져졌고(19:20).

 

각주1(던져졌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번째로 못에 던져질 것이다(비교 20:10, 15). 그들은 멸망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죽음과 부활을 거치지 않고 채로 못에 던져질 것이다.(후략)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는 불과 유황의 못에 던져졌는데, 거기에는 짐승과 거짓 신언자도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20:10).

 

각주1(불과 유황의 ): 불과 유황의 못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에게 예비된 것이다(25:41). 그러나 짐승과 거짓 신언자와 마태복음 25 32, 33, 41절에 있는 염소들 마귀보다 일찍 못에 던져진다 (19:20). 년이 지난 후에는 마귀도 역시 그곳에 던져진다.

 

죽음과 음부[iii][3] 던져졌습니다. 이것이 둘째 죽음, 입니다(20:14).

 

각주 1( ): 우주를 위한 쓰레기통으로서, 죽음과 음부를 포함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안으로 던져질 것이다.(후략)

 

각주2(둘째 죽음): 첫째 죽음에서 타락한 사람들의 혼과 영은 몸에서 분리되어 음부에 있는 고통받는 구역에서 멸망했다(16:22-24). 둘쨰 죽음에서 그들의 혼과 영은 부활한 몸과 재결합한 몸과 함께 못에 던져진다. 이것은 믿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 , - 못에서 영원한 고통가운데 멸망한다는 의미이다.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던져졌습니다(20:15).

 

각주 1(누구든지): 멸망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는 두루마리들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20:12-13). 그러나 그들은 생명책에 따라 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악한 행위 때문에 주님께 유죄 판결을 받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iv][4]멸망한다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멸망하는 유일한 죄이다(16:9).

 

각주3( ): 못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에게 예비되어 있다(25:41). 믿지 않는 이들은 마귀를 따랐기 때문에, 마귀와 함께 심판받고(16:11), 마귀가 받는 영원한 고통을 함께 받게 것이다. 또한 마귀를 따른 귀신들도 역시 동일한 운명이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만이 통상적인 지옥 개념에 가장 부합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음으로 당연히  통상적인 지옥 또한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이 안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 했으면 당연히 영원히 고통받는다 믿어야 합니다.

 

 

2. 결론

위에서 보았듯이 성경은 (통상의 지옥개념) 있음을 엄숙히 증언합니다. 못은 하나님의 뜻인 창조 (6:15), 사람(4:24), 예루살렘(21:2) 완성된 , 이것들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으로 쓰였던 사탄, 짐승, 거짓 신언자, 죽음, 음부, 염소들, 쭉정이, 가라지, 생명책에 기록이 없는 불신자들이 던져질 일종의 우주적인 쓰레기통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주님을 믿어 영접하고, 변화받고,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장차 예루살렘이 것인지, 아니면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을 것인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것입니다.

 



[i][1]  회복역 본문과 각주내용은http://rv.or.kr/include/flex2/viewer2/recovery_low.php 에서 직접 확인이 가능하다.

 

[ii][2] 마태복음312절은 쭉정이,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들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질 것을, 1340-42절은 가라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 불구덩(the furnace of fire) 속에 던져질 것을 각각 말씀한다.

 

[iii][3] 킹제임스 성경 (한킹, 흠정역) 단어를 지옥으로 번역함.

 

[iv][4]여기서의 멸망 개념은 장두만 박사가 영혼멸절설을 반박한 소논문( http://blog.daum.net/rltnrxodnd/8864575  )에서 언급한 언어적 논거의 비판 부분을 참고하라.



회복역 성경번역의 우수성-지옥, 게헨나, 음부, 불못(1)


진리의 언덕 2013-08-1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7777/49838.html

회복역 성경번역의 우수성-지옥, 게헨나, 음부, 불못(1)

 

 

우연한 기회에 지옥 존재 여부에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과정에서 알게 것은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옥을 부인하는 주장들

 

1) 여호와의 증인들: 지옥, 게헨나’(Gehenna) 시체 등을 태우던 쓰레기 소각장이던 이스라엘 서쪽에 있던 힌놈 골짜기를 가리킬 뿐이다(지금은 관광지로 변했음).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영혼은 멸절 하고)[1] 불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일은 없다. 

 

2) 생애의 (강병국목사): 지옥은 현재는 없다. 다만 장차 천년기 이후 하늘에서 지구 상으로 불이 떨어지게 되는데(20:9), 그때  불구덩이로 변한 지상(地上) 자체가 지옥이다.  또한 지옥 불도 영원히 불타지 않으며, 악인들이 받는 형벌만큼 지속되다가 그들의 벌이 끝나서 몸과 생명이 영원히 사라질 지옥불과 지옥도 따라서 사라진다. [2]

 

3) 스토트: 그는 지옥이 있고 불신자가 지옥가서 고통 당하는 것까지는 인정한다. 그러나 생존시 지은 죄만큼 벌을 받은 그것이 끝나면 영혼도 멸절하고, 지옥도 사라진다 한다.[3] 견해는 2) 주장과 유사하다. 1)-3) 모두 최종적으로는 영혼 멸절설 (annihilationism)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혼 멸절설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4]

 

4) (Rob Bell): 최근에 논란을 가져온  <사랑은 이긴다>(Love Wins)라는 책에서 그는 전통적인 지옥 개념을 부인하고 땅에서 겪는 지옥을 주장한다. 그에게 지옥은 하나님이 주신 선함과 자비를 거절하는 데서 오는 현실적인 경험과 결과를 묘사하는 이미지, 그림, 메타포의 집합체이다. 동족살해, 성폭행, 마약중독, 아동학대가 있는 현실 자체가 지옥이라고 한다. [5]

 

-지옥을 부인하는 주장이 나오게 배경들

 

지옥을 포함한  모든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것입니다(딤후3: 16).  따라서 말씀은 본질이 영이며, 안에는 생명과 빛이 담겨 있습니다(1:4, 6:63).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자 때에는 과학 , 소설,  수학 문제를 대할  때와는 다른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를 통해 영의 눈으로 읽어야 말씀의 실재를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영의 세계의 것들을 인간 이성 만으로 분석하려다 보니 성경의 엄연한 사실도 의심하고 결국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에도 지옥 부인 사상의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거나 오해함

 

성경은 만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고 존재한다고 말합니다(4:11).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압축해서 말하자면, 거듭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 (휘오데시아)(1:5), 사람 (4:24), 창조(6:15), 어린양의 신부인 예루살렘(21:2-3)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라는 가지 실재(15:5) 여러 표현들입니다. 따라서 종말론에서 다뤄지는 천국 또는 지옥 개념은 예루살렘(믿는 우리들)이라는 주인공에 비교하면 무대 장치 내지는 소품에 불과한  지극히 부수적인 개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블러그에 보수 신학교 출신임을 밝힌 어떤 분은, ‘ 지옥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다보니 결국 목사직도 내려놓고 심지어 무신론자가 되었노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6]

 

2)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간과함

 

최근의 세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분의 공의에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뿐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우리 하나님은 태워 버리는 이시라고 말합니다(12:29). 따라서 그분의 본성에 부합 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결국엔 불태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불못과 연관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아는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합니다 (2: 12, 벧전 2:17-18, 1:17). 이단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통이라는 스토트나 목사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3) 영원한 불못(지옥) 존재 목적을 모름

 

영원한 불못 원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입니다 (25:41). 그럼에도 사람이 마귀의 자녀(요일3:10) 되어 마귀의 조종아래 살다가(2:2) 결과로 불못에 떨어져 마귀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자신의 선택일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4) 지옥관련 용어에 대한  성경 번역상의 문제들

 

지옥 관련 설교를 가장 많이 한다는 분들이 보는 한글 킹제임스와  흠정역에는  사망과 지옥도 못에 던져지니...”(20:14)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지옥이 언젠가는 불못에 던져진다고 말하는 성경을 근거로, 지옥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모순입니다.  또한 구약에서 65 나오는 쉬올’(sheol) 제임스 성경이 무덤’ (31), ‘지옥’(31), ‘구덩이’ (3) 각각 번역 함으로 일관성을 잃었다고 반대자들은 비판합니다. 이처럼  성경 번역상의 오류가 지옥을 부인하는 쪽에게 일부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7]

 

참고로 지옥 관련 성경 용어로는 구약의 쉬올’(Sheol)( 65 ). 신약의 하데스(Hades(86) 11), 게엔나(Gehenna(1067) 12), 타르타루스 (5020) 1), 무저갱(abyss(12), 9), (lake of fire (4442+3041), 8) 있습니다. 후속 글에서는 제대로 번역된 회복역 성경으로부터 관련 성경본문과 각주들을 인용소개하는 식으로 주제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계속).

 





현대종교 6월호 기사 중 지방 교회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에 관한 항의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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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지방 교회측 진리변증위원회(DCP Korea)                   2013. 6. 17.

서울 도봉구 4 은혜빌딩 101

전화: 02-908-3412

 

수신인: 월간 현대종교 탁지원 대표

조믿음기자 jogogo@hanmail.net

서울시 중랑구 용마산로 122 12 (망우동 354-43)

전화: 02-439-4391

 

제목: 현대종교 6월호 기사 지방 교회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에 관한 항의서한

 

 

안녕하십니까? 발신인인 DCP Korea(진리변증위원회) 전세계 지방 교회들 한국어권을 대표하여 진리를 변증하는 기관입니다. 우리는 한국 지방 교회 인도자들과 더불어 월간 현대종교 2013 6월호 “동방번개를 경계하라” 포커스 기사(48-55)에서 지방 교회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을 발견하고 경악과 분노를 금할 없습니다.

 

최근에 중국 사교(邪敎) 소위 ‘동방번개’(전능신 교회)라는 이단이 성경을 왜곡할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 아니라 대만과 홍콩 등에서도 일간신문 전면광고 등을 통해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공격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점을 우리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비성경적, 반사회적, 비상식적인 행태를 엄중 경계하고, 주님 안의 참된 성도들을 이들의 마수로부터 지켜내도록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성에 대해서는 우리도 현대종교 측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3 3 21일에 대만의 지방교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작성한 <대만 전체 기독교인들의 연합성명서> 대만의 주요 일간지 여섯 곳에 전면광고로 발표하여 ‘동방 번개’의 문제점을 널리 알린 있습니다. 또한 지난 3 27일에는 ‘중국이단 동방번개’라는 책을 동방번개에 대한 최고 전문가인 김종구 선교사님을 만나서 지방 교회와 동방번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종교 측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동방번개에 대해서 싸우고 있는 지방 교회에 대하여 마치 동방번개파의 배후 혹은 뿌리라도 되는 것처럼 잘못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지방 교회는 이단 동방번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위트니스 리를 끌어들이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으로 지방 교회 성도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고 귀측의 잘못된 판단으로 독자들에게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귀측이 책임져야 것입니다.

 

 

월간 현대종교 조믿음 기자는 2013 6월호 49쪽에서, 동방번개의 창교자는 한국에서 이단으로 결의하고 있는 지방 교회 윗트니스 , 호함파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조유산 짜오웨이산으로 알려졌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부당하며, 빠른 시일 내에 바로 잡혀져야 심각한 사실왜곡이 아닐 없습니다.

 

1. 동방번개 창교자 조유산이지방 교회 출신이라는 말에 대하여

 

우리가 파악한 자료에 의하면, 조유산은 지방 교회 출신이 아니고, 중국 자생 이단 하나인 상수주파’(常受主派) 출신입니다. 중국 중앙 TV 방송국 王在華(Wang Tsai-hwa)기자가 2012 12 21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조유산은 1989 초에 다른 명과 함께 진리를 찾는 여행 중에 허난성에 있는 <상수주파>(지방 교회가 아님) 회심한 , 그들을 통하여 침례받고 각각능력’ ‘봉사’ ‘견고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상수주파 중국 농촌지역을 무대로 자생 이단입니다. 그런데 상수주파는 위트니스 또는 지방 교회측과 무관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2010 9월호 현대종교에 의해 ‘호함파’와 관련된 거짓사실 유포에 대하여 기사화 되었을 , 귀측에게 사실왜곡에 대한 항의 서신을 2010 11 4 발송한 있습니다(첨부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기사를 내보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귀측이 기사에서 지적한 조유산 또는 동방번개의 교리(성경부인, 구속사역의 불완전성 주장, 삼위일체 부정, 동방번개 교주에게 순종해야 구원이 있음) 실행(사전 공작, 납치, 폭력성, 돈으로 회유, 미인계 등을 통한 포교) 지방 교회 측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세계 지방 교회 성도들은 성경 66 계시의 완전성을 믿고,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완전한 구속의 성취를 믿으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상호 내재(페리코레시스) 하심으로 영원히 구별되시지만 분리되지 않으심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구주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2. 조유산이지방 교회의 열렬한 추종자라는 말에 대하여

 

중국 중앙 TV 보도에 의하면, 조유산은 1989 () 상수주파를 접촉한 같은 () 고향인 안성(安城)으로 돌아갔음으로 그가 상수주파’(지방 교회가 아님) 접촉한 기간은 불과 개월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가 고향에 돌아간 후에도이상수가 말세의 그리스도라느니 왕중의 이라는 상수주파 이단교리를 전파했을 , 위트니스 혹은 지방 교회와는 전혀 무관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조유산은 자신의 영향권아래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성경과 상수주파 라이프 스터디를 내다버리라지시했다고 중국 중앙 TV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상수주파의 열렬한 추종자 모습과는 거리가 행태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조믿음기자가 마치 조유산이 위트니스 또는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에 영향 받아서 현재와 같은 진리를 유포하는 듯한 아주 나쁜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3. ‘한국에서 이단으로 결의하고 있는 지방 교회라는 말에 대하여

 

점은 <재평가 지방 교회>(DCP Korea 출판사, 2011) 책자에서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방 교회들은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1980년에 미국에서 지방 교회를 이단시 했던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 6년간의 연구 끝에, 2010 초에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은 정통이고 그리스도의 안의 참된 지체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현대종교측은 1982 창간호부터 3차례걸처 CRI 발행한 ‘신흥이단들’중 지방 교회에 대한 내용을 특집으로 번역 게재했으면서도 2010 10월호에서는 미국CRI 결정한 내용을 한국의 현대종교가 따를 필요가 없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종교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지방 교회를 동방번개와 억지로 연관짓고 있는데 저의가 무엇인지 밝혀야 것입니다.

 

과거 예장 통합측 총회에서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를 이단시 있지만 (일부 다른 단체들의 결의는 대부분 통합측 자료에 의존한 것임),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불법적이고 원인 무효임을 알려 드립니다.

 

1. 예장 통합측 헌법 3 권징 3조와 4항의이단적인 행위와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행위 대한 최종 판단은 재판국원 15인으로 구성된 총회 재판국소관입니다. 이대위 임무는 조사 연구에만 국한됩니다. 따라서 총회 재판국 판결이 없이 이대위 보고서를 총회에서 일방적으로 채택하여 행해진 이단 정죄는 불법이요 원인무효입니다. (2013, 기독교 리서치 연구소 발간, 이단 최삼경 목사 연구 , 205)

 

2. 예장 통합 측의 이단결의는 절대기준인 성경이 아니라 상대기준인 통합교단 헌법 또는 장로 교단 교리에 따른 판단일 뿐입니다.

 

3. 예장 통합측 이단 상담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지방 교회 연구보고서, 1992> 작성하여 총회에 제출 최삼경목사 자신이 삼신론과 월경잉태론을 주장하는 이단으로 정죄된 있습니다(통합교단 이대위, 한기총, 합동교단, 예장해외 합동총회). 이처럼 최삼경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된 사실은 원래의 이단 판단 기준 자체에 심각한 흠결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유로, 조믿음 기자가 현대종교 6월호에서 지방 교회 또는 위트니스 리를 중국 이단인 동방번개 혹은 창교자인 조유산과 억지로 연결시킨 것은 엄청난 사실 왜곡이자 심각한 명예 훼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귀측에게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1.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사실 왜곡에 대해 사과하고 시정하는 조취를 취하여 주십시오.

 

2. 동방번개 조유산과 위트니스 또는 지방 교회 측을 연결짓는 근거가 무엇인지 밝혀주십시오.

 

3. 지방 교회 인도자들과 DCP <country-region>Korea</country-region>(진리변증위원회) 요구사항에 대해 현대종교 측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요구과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지방 교회 측은 적극적인 방법으로 지방 교회측의 명예를 지켜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쌍방 간에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조속히 해결됨으로써 한국내에 동방번개 이단을 퇴치하는데 상호 협조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지방 교회측 진리변증위원회 (DCP Korea)

 

첨부파일 추가 :130617_중국 지방 교회들에게 동방번개 이단을 경계하라는 서한



회복역 성경 번역의 우수성-고후5:9(큰 뜻을 품었습니다)


진리의 언덕 2013-06-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7777/48504.html

회복역 성경 번역의 우수성-고후5:9(큰 뜻을 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큰 뜻을 품었다는 말이 대권 도전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뜻은 과연 어떤 경우에 쓸수 있을까 하는 것에 답을 주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큰 뜻>임을 말하는 고린도 후서 5:9(회복역 번역 참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입고 살든지 몸을 떠나서 살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큰 뜻을 품고 있습니다’(신약성경 회복역)

 

고린도 후서를 쓴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큰뜻을 품었습니다. 여기서 큰뜻을 품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러한 중대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을 내어 진지하게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회복역, 한국복음서원, 고후5:9 각주 2).

 

이하에서는 신약성경 회복역이 헬라어φιλοτιμ?ομαι(휠로티메오마이)(5389)큰 뜻을 품었습니다라고 번역한 배경을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 단어는 사랑또는 친구의 의미를 갖는 휠로스’(5384)또는 존귀를 뜻하는 티메’(5092)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이 단어를 킹제임스 성경은 ‘labour’(받아주시는 자가 되고자 수고하노니(흠정역),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바라는 것이라(한킹)’, 개역, 개역개정, 공동번역, 새번역 등은 모두 기쁘시게 하는자 되기를 힘쓰노라,  NIV  ‘make it our goal’(그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다), 현대인의 성경은  ‘…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新改譯은 念願とするところは 로 각각  번역했습니다

 

한편Amplified(확대역)we are constantly ambitious  we are constantly ambitious and strive”, Young's LiteralWherefore also we are ambitious, <stockticker>NASB</stockticker>have as our ambition’(우리의 야망으로 갖는다) ,  <stockticker>NET</stockticker> Bible, NJB, Weymouthwe make it our ambition” Amplified:라고 번역함으로써 회복역 성경의 큰 뜻을 품다와 매우 유사한 개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위 다양한 번역적 표현들에서 보듯이 휠로티메오마이’(5389)(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를)  힘쓰다’ ‘수고한다’ ‘목표로 한다또는 큰 뜻을 품다로 번역하는 것이 다 가능하다고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복음서원이 출간한 <신약성경 회복역>(RcV)이 이 단어를 큰 뜻을 품다로 번역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1.       권위있는 성경원어 학자인 빈센트의 아래 지적에 따르면, 킹제임스 성경을 비롯한 대다수 번역본이 채택한 힘쓰다’ (labour) 라는 표현은 그 수고하는 동기를 나타내지 못한 미약한 번역”(feeble translation)입니다.

 

Labour is a feeble translation, not bring out the idea of the end contemplated, as the motive of the toil” (Vincent, the Word Studies in the New Testament, p. 319).

 

2.        R.C.H. 렌스키도 킹제임스 성경(A.V.)우리는 수고한다라는 번역은 좋지 않고, (헬라어 원문에 좀 더 충실하다고 평가받는) 개정 흠정역(R.V.)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한다’, 혹은 난하주의 야심이 있는’(are ambitious)이라는 설명은 조금 더 낫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The A.V.’s “we labor,” margin “endeavor” is not good; the R.V.’s “we make it our aim,” margin “are ambitious” is only a little better.”(Lenski, Interpretation of Second Corinthians, p.1013)

 

3.       존 칼빈은 고후 5:9의 관련 단어 주석에서 그들은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자신들의 주된 갈망으로 여겨야 한다”(they must, by all means, make it their main desire

   to please God)(칼빈주석, p. 225)라고 설명합니다.

 

4.       헨리 매튜도 자신의 관련 구절 주석에서 이 단어가 목적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야망있는 사람으로서 수고하는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9. Philotimoumetha?We are ambitious, and labour as industriously as the most ambitious men do to obtain what they aim at. Here observe, 1. What it was that the apostle was thus ambitious of?acceptance with God.”(Matthew Henry, 1995, p. 2284)

 

5.       따라서 <신약성경 회복역> 한국어 번역본은 위와 같은 다양한 참고할 만한 관점들 그리고 영문 회복역  ‘to gain the honor’ 와 중국어 회복역의 雄心大志라는 표현을 참고하여, ‘큰 뜻을 품었습니다로 이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번역이 위에서 언급된 모든 개념들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합당한 국어적 표현이라고 확신합니다.

 

 

참고로 사도 바울이 위 구절에서 품었던 큰 뜻의 의미는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을 관심하고 추구했던 그의 삶을 통해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3:17)만을 중심삼는 것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는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이 아닌 그 아들 그리스도를 살고(2:20), 아들 하나님을 확대하고(1:20),그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3:9) 과정을 통해서, 그 아들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입니다(1:23, 4:13).

 

이러한 이상과 삶이 우리 모두가 품은 큰 뜻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