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형제회


간추린2000년교회사 2015-01-0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3824.html

18세기 웨슬리의 감리교운동은 냉담하고 침체되고 형식화 된종교의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19세기에 하나님은 여러 단체(자유단체.독립교회)에서 사람들을 일으키시어 성경안의 간증과 진리를 회복하셨다. 그러한 단체들은 근대의 성령의 운행하심을 여러방면에서 각각 나타냈다. 20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생명흐름은 하나로 모아져 세차게 흐르는 하나의 조류가 되었다.

형제회는 19세기의 많은 흐름가운데 하나였다. 형제회는 영국의 남단 프리머스에서 시작되었다.그래서 프리머스 형제회라고 부른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시작한 곳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라고 말할수있다.1827년 에드워드 크로닌과 한무리의 형제들이 더블린에서 집회를 시작하였다. 교회가 지나치게 형식화 되고 혼란한 종교상태에 대해 곤혹스러워했던 크로닌과 형제들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만찬집회와 기도집회를 시작하였다.이것이 영국형제회의 시작이었다.

점차적으로 이집회는 더 많은사람들을 매혹시켜 더불린으로 오게하였는데. 그중에는 다비도 포함되어 있었다.존넬슨 다비는 1800년에 태어났다.그는 15살에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들어가 법학을 공부한 수재였다.당시에는 법률을 공부한 학생들은 즉시 아일랜드 법원에서 일할수 있었으나.다비는 성공회 교사의 길을 선택하였다.

1827년 겨울에 다비는 형제회의 집회에 참석하기시작하였으나 여전히 국교회의 직임을 맏고있었다. 당시 다비는 오직 천주교만이 사도 직분을이어받았기 때문에 그들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수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르틴 루터와 칼빈과 그의 추종자들을 교회에서 제명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교회의관한 진리를 보기 시작하였다.1830년에 다비는 성공회를 떠났다.다비의 인도아래 형제들의 모임은 잉글랜드로 확장되어 형제회운동이 되었고 유럽과 아메리카 각지에서 영향을 미쳤다.

잉글랜드에서 다비의 형제회 운동은 브리스톨에서  조지 뮬러와 크레이크를 얻었고. 프리머스에서  벤자민 뉴톤을 얻었다.뉴톤의 부모는 퀘이커의 신도였다.뉴턴은 옥스퍼드에서 공부할때 다비를 만났다. 뉴턴이 형제회 운동에 참가한 후에 프리머스의 그의 집은 잉글랜드에서 처음으로 집회한 곳이 되었다.그들의 집회가 점차적으로 증가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집회장소를 애브린턴가로 옮기게 되었다. 인수가 점점증가하여 1200-1400명 까지 증가하였다.1831년 프리머스형제회는 에브린턴가에서 집회를 시작하였다.

런던에서의 다비의 일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인근에있는 도시들에서도 앞 다투어 그에게서 성경안에 있는 예언에 대한 해설을 들으로 왔다. 그중의 한사람이 나중에 형제회에 가입하여 신구약 성구사전 발행을 도와던 위그램 형제이다. 

그리고 이 모임을 다비와 뉴턴이 함께 주관 했지만. 다비가 런던에 가서 집회를 하고 메세지를 전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을 주관하는 사람은 벤자민뉴톤에게 있었다.  그는 이 집회안에서 주로 주관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후에 다비와 충돌이 생겼다. 다비는 뉴턴이 잘못된 교훈을 가르쳤기 때문에 충돌했다고 말하였고,그가 말한 교훈안에는 이단적인 것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객관적으로 볼때 양쪽모두 지나친 부분이 없지않았 었다. 그때부터 다비파와 뉴턴파로 나뉘기 시작하였다.

1846다비는 사건의 진상을 발표했했는데.그안에는 뉴턴을 질책하는 말이 많았다.그다음해 2월 잉글랜드의 각지형제들이 런던에서 모여 한목소리로 뉴턴의 가르침을 프리머스에서 나온 사악한 가르침이라고 비난하였다.그리하여 그들은 완전히 분열되었다. 다비에게 동조하여 뉴턴파와 교통을 단절한 단체는 후에 폐쇠파 형제회라고 불리게 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완전히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요한 복음 17장에서 믿는이들이 하나가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분열가운데서 사람은 쉽게 진리의 한쪽 방면으로 치우치게 하며. 쉽게 자신의 수완과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 하지 말아야 한다. 이두가지는 모두 잘못된것이다.다비와 뉴턴이 남긴것은 그들이 모두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려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경을 따라 그분께서 명하신 하나 곧 한마음과 한뜻을 실행하는 것이다.


브리스톨에서 형제회 운동은 또 다른 방법으로 발전하였는데 그 중에 인도하는 형제의이름은 죠지 뮬러였다.형제회의 분쟁이 일어났을때 뮬러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기를 원하지않았다. 그는 다비를 지나치게 지지하거나 다비를 반대하는 파를 지나치게 지지하기를원치 않았다.그는 양쪽모두와 교통하기를 원했다.그래서 비교적 엄격한 형제회의 형제들은 그는 종교를 친구삼고 악도친구삼는다 라고 하였다.
뮬러는 프리머스(뉴턴파) 형제들의 가르침이 이단적인 혐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지않으면 차별하지 말고  받아야하며 교리적인 노선때문에 그들을 거절할수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비는뮬러에게 뉴턴파의 사람들과 관게을 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과도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다비의 강한 주장 때문에 형제회는 다비를 주동으로 하는 폐쇠파 형제회와 뮬러 와 크레이크를 주동하는 공개파 형제회로 나뉘게 되었다. 분열된후 형제회는 각각 자신의 노선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들이 이렇게 나누인것은 성경해석에 대한 차이점 때문에 형제들 가운데 점차적으로 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다비는 믿는이들이 대환난전에 전체가 휴거될것으로 여겼고 뉴턴은 믿는 이들이 반드시 대환란을 거쳐야 하고 대환란이 끝나기 전에 모두가 휴거될 것으로 여겼다.

이뿐아니라 그들은 교회본질과 부르심 받음과 교회치리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비는 한지방 교회에 대한 책임과 징벌은 전체교회가 결정해야하는 것으로 여겼고 그로브스는 교회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며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각지교회가 자체적으로 장로를 세우고 각 지방별로 행정적인 사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해외 선교운동이 일어남


간추린2000년교회사 2015-01-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3823.html
감리교운동은 18세기의 영국의 큰부흥을가져왔으며.19세기 복음전파 물결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었다.프리머스는 이러한 물결을 가져오는 첫번째 지방이 되었다. 18-19세기에 중국인들은 200년동안 식민주의의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프리머스에서 나타난 영국제국주의의 영화 와 위엄은 중국인에게는 치욕이었다.이것은 200년동안 외국인들과 외세 열강들이 침략을 생각나게 한다. 이것은 세계사의 각도에서 본것이다.


주님의복음과 그 복음을 확산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세상의 정치적인 흐름을 안배하시고 복음을 이세상 모든곳에 전파한 것이다.물론 복음전파하는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앞잡이가 아니며 그들의 도구도 아니었다.그들의 뜻은 이복음을 전세계의 각나라로 복음을 가져가는 것이었다.그러나 물론 정치가 함께 연루되었을 때에는 하나의 빌미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어찌되었던 이러한 안배로 복음이 전파되었다.19세기는  복음의 큰시대라고 칭해지는데 그 이유는 복음이 가장 강하게 널리전파된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초엽에 영국은 해상권을 장악하였고.그리고 감리교 운동이 가져다준 영적부흥은 모든 민족을 복음화 하는 위대한 위임이 되었다, 그 위임은 바로 왕국복음을 사람들이 거하는 모든 곳에 전파하는 것이었다. 1768년 영국 정부는 제임스 쿡 선장에게 태평양을 항해 하도록 위임하였다. 그는 새로운 지역을 많이 발견하였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항해 체험을 (쿡선장의 최후 여정) 책으로 펴냈다.

이책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는데 그 가운데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캐리가 있었다, 케리가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때의 환경은 매우 열악 하였으나 그는 인도에서 40년동안 거주하면서 한번도 영국으로 돌아간적이 없었다. 그리고 캐리는 1834년에 인도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가 영국에 보낸 보고서는 많은 선교회의 설립을 자극하여 해외 선교운동이 보편적으로 전개 되게 하였다.

캐리의 격려에 힘입어 1795년 런던 선교회가 설립되었다. 영국의 뛰어난 항구와 기후그리고 해질줄 모르는 해군력 게다가 쿡크선장의 자극은 19세기의 영국의 해외개척에 대한 강한 바람을 형성했다. 상선과 군함이 영국의 포탄과 상품 그리고 식민주의 를 싣고 항구를 떠날때 복음도 함께 전세계 각지로 전파되었다.

아일랜드의 더불린 트리니티 대학은케임브리지의 7명의 간증으로 학생해외 전도단을 세웠고 3명의 우수한 학생을 중국으로 보내 복주에서 복주 트리니티대학을 세웠다.1920년에 중국의 젊은 학생 워치만니 이대학에서 구원받았다. 그는 중국에서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신 그릇이 되었다.



오 놀라운 주의 은혜


간추린2000년교회사 2015-01-07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3813.html

"오 놀라운 주의 은혜 나 구원 얻었네 길을 잃고 헤메던나 생명길 찻았네.내 맘 깊이 쌓인근심 멀리 사라지고 처음 주를 만난시간 그 은혜귀하다."


종교개혁 이후로 영국은 매우 많은 시인들을 배출하였다.찰스 웨슬리,아이작 왓츠. 패니 크로스비.등이 있다.이 시인들이 쓴 시는 우리들에게 매우 많은 영적인 풍성을 남겨주었다.그중에서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오놀라운 주의 은혜"는 교회안에서 뿐아니라 교회밖에서도 불리어지는 유명한 노래이다. 그러나 많은사람들은 이 찬송가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잘 모른다.이 찬송가를 지은 사람은 영국의 독립교회 목사인 존 뉴톤 이다.


뉴턴은1725년7월24일 영국런던에서태어났다. 존 뉴톤은 어려서 부터 그리 경건하지는 않았다.그는 젊었을때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며. 흑인노예를 매매하는 상인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는 구원을 받았다. 그의 구원은 매우 철저하고 분명하였다.그래서 그는 나같은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였다.


존 뉴톤의 어머니는 그가 일곱살때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그의 모친은 생전에 경건한 그리스도인 이었다. 뉴톤이 성장한뒤 목사가 되기를 희망했고 항상 이것을 위해 기도하였다. 하지만 뉴톤은 경건하지 않은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흑인 노예를 매매하는 상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1748.3.1일 노예상선 선원으로 항해중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을읽는중 마음의 큰변화가 일어났고 풍성한 긍휼로 주 예수의 보호 하심을 받아 회복되었고 용서 받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반대하고 핍박하던 신앙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다.그는 버킹웜셔 올리 교구에서 16년동안 담임목사를 했다. 존 뉴톤의 어머니의기도는 32년의 세월이 흐른뒤 성취되었다고 말할수있다.그는1807년 12월21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사와계시.2000교회사에 대한 개략


간추린2000년교회사 2015-01-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3808.html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논쟁과 신경의 내력
1세기 말 교회 역사에서 아주 커다란 논쟁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논쟁이 었다. 그리스도는 도대체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어떤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고 어떤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오지 않았으므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단을 반박하기위하여 요한복음을 섰다.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닌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함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시지않았다"라고 말하는 이단을 반박하기 위하여 요한일서를 썼다. 주후 325년 콘스탄틴 황제는 니케아회의를 소집하여 그가 의자으로서 권위를 행사하여 니케아 신조를 정하였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지금도 여전히 이것을 의심치 않고 돈독히 믿으며 신조의 기초가 되는 "사도신경"을 지키고 있다.
처음 6세기 동안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일곱가지 서로 다른 견해
1.첫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는 오직 신성만 있으며 인성은 없다고 말한다.이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2.두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는 인성만 있으며 신성은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는 사람이시고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3.세번째부류는 그리스도의 의 신성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4.네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는 사람이지만 그분의 인성은 불완전하여 오직 사람의몸과 사람의혼만가지고 있고 사람의 영은 없다고 말한다.

5.다섯번째부류는 한사람이 두가지본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기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나뉘어 있으며 합해질수없고 반드시 두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여섯번째부류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융합되어 제 3의 본성을 산출한다고 말한다.
7.일곱번째 부류는 정통파로서 정확하고도 성경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성과인성을 겸하여 가지고 있으고. 이 두본성은 각각완전하며 또 하나로 연합되어 있어 결코 제 3의 다른 본성을 산출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고  하나님-사람.사람-하나님이신 한분임을 의미한다. 그분은  비록 신성과 인성을 다 갖고 계시지만 오히려 여전히 한분이시다.이것이 성경의 계시이다.

로마천주교와 중세 암흑시대
콘스탄틴 황제가 니케아 종교회를 소집하여 신경을 정한때로부터 교회는 정권에 연루되어 로마 천주교가 형성되는 발전 되었다.5세기에 로마의 교구장 레오1세는 자신을 교회 가운데 최고의 권위로 여기고  제 1대 교황이 되었다. 6세기가 되어 로마천주교과 완전히 형성되었으며 교황제도가 확립되었다. 지중해와 유럽을 둘러싸고있던 모든 기독교는 교황의 수하에 있었으며 로마천주교에 속해 있었다.그리고 그들은 10세기 동안 평신도가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하였다.

국교회
루터의 종교개혁후 독일은 국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국교회가 합당치 않음을 알았지만 독일의 보호를 필요로 하였던  그는 이 일에 있어서 강하지 못했다. 이후에 영국. 덴마크. 스웨덴도 계속하여 이를 본받아 국교회를 세웠다. 국교회는 국왕이나 황제가 최고 권위자라고 생각한다.

교파
이때에 주님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으켰는데 그들은 성경으로 부터 많은진리를 발견하여 그들이 본진리를 실행하기 원했다. 그들은 로마 천주교의 통치를 받지 않았고 국교회의 관할 아래 있지도 않았다. 이러므로 17-18세기에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등과 같은 많은 자유단체가 생겼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독립교회 곧 사립교회 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각 교파들이다.

종교조직과 성직자계급
사도들이 죽은 두 세기 후 안디옥교회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라 불리는 성경교사가 일어났는데 그는 주님을 무척 사랑하였으며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커다란 잘못을 범했다.그것은 그가 쓴 글에서 감독과 장로는 서로 다른 두사람이라고 구분하였으며 감독에게 특별한 권위를  부여해 준것이다.

그는 장로를 한지역을 책임지는 자라고 생각했으며 여러지역의 교회가 하나로 합쳐져서 한교구를 형성하고 감독이 이교구를 관리 하므로 감독이 장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이러한 절못으로 인하여 이후에 종교조직이 생겨났다. 이것을 근거로  장로 위에 감독이 있고 감독위에 주교가 있으며 주교위에 대주교가 있고 대주교위에 로마의 홍의 주교 혹은 추기경이 있으며 추기경 가운데서 교황이 산출된다.

이와같은 여러단계의 감독제도가 바로 "성직자 계급제도"이다. 역대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로마 천주교의 성직자 제도를 거절했다.  그러나 격국 국교회 안에 여전히 성직자제도가 있었고 소위 독립교회 안에도 목사제도가 있게 되었다. 이모든것이 중간 계급이다.

사도들이 이 땅에 있었을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준수하였다. 주님은 마태20장26절에서 "누구든지 크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각지에 장로들을 세웠다. 장로는 결코 큰자로서 많은 사람을 주관하지 않는다.(벧전 5:1-3).  장로는 다만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좀더 연장하고 비교적 노련하며 체험이 있고 안목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물론 그들이 반드시 모두 다 나이든  형제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그들을 감독이라고 칭한다.(행 20:28 딤전 3:1-2)

장로는 일반적으로 비교적 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 감독은 장로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인 장로의 직분을 가리킨다.장로와 감독 이둘은 실제로 같은 무리를 가리킨다. 사도행전 20장에서의 바울의 말은 에베소의 감독이 에베소의 장로임을 분명히 가리킨다.(행 20: 17.28절)

모라비아 형제회
16세기에 각종 자유단체들이일어났는데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형제'라 불렀다. 그들은 조직을 원하지 않았으며 성직자 계급도 원하지 않았고 피차 서로 형제라고 불렀다.그래서 천주교와 국교회의 반대와 핍박을 받았다.모라비아에서 핍박을 피해 진젠돌프백작의 영지에 들어와 종전의 교회의 가르침을 회복하여 서로 사랑하며 하나안에 교회생활을 실행하였다. 그들의 집회의 광경이 교회생활을 100펏센트 회복했다고 말할수은 없지만 거기에 최소한 70퍼센트의 교회생활은 있었다.

영국의 형제회
1800년대에 하나님은 영국에서 한무리의 형제들을 일으키셨다.그중에 인도하는 존 넬슨다비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이 본것은  진젠돌프와 모라비아형제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워치만니 형제님은 영국의 형제회를 빌라델피아교회의 실현이라고 말한바있다. 이것은 형제들의 당초의 광경이 교회 생활을 완전히 회복했음을 증명한다. 또한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풍부 했으며  영적인 상태가 아주 좋았다.

형제회의 분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닫힌 성경을 열어놓았지만 결코 성경을 해석하지 못했다.사람들은 여전히 성경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국 형제회 가 일어나서야 비로서 성경은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예언이나 예표 할것 없이 거의 모두 다 해석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전대미문의 인식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교리를 주의 하는 쪽으로 흘러가서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들가운데 가장 심하게 분쟁이 일어난 것은 휴거에 관한 것이었다. 다비는 성도의 휴거가 대환난 전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와 함께 인도했던 벤자민 뉴톤은 성도의 휴거가 대환난 후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두사람은 쟁론이 일어났다. 동시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두사람은 나누어졌으며 베자민 뉴톤은 제명되었다.

그때부터 형제회는 다툼과 분열로 인해 1차 세계대전후에 이미 150여개의 분파로 나누어졌고 지금까지 형제회는 천여개의 분파가 있다고 말할수 있다.형제회는 나누어지고 나누어졌다. 

중국에서의 주의 회복의시작
영국의 형제회가 일어난 후 100년이 지나가고 1920년이 되었을 때 서방에서의 이런혼란한 상황으로인해 주님은 갈길이 없었으므로  중국이라는 이방땅으로 가셔야 했다. 1930년도에 워치만니형제님과 나는 이문제에 대하여  한번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그때 형제님이 하신 말씀이 내게 깊은 인상을주었다.

워치만니는  나에게 "형제님 아십니까.주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셨을때 서방세계에는 정상적인 생활이 이미 훼손되었읍니다. 서방은 천주교. 국교. 사립교회가 이미 너무나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후에 형제회가 일어났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더 심하게 나뉘었읍니다. 그래서 서방은 분열과 혼란의 기독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길이없으셔서 부득이 처녀지인 중국 땅으로 급히 오시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말의 의미는 그때에 중국은 이방땅이고 주님을 믿는 이가 많지 않았지만 교회에 관해서는 아직 그렇게 복잡함이 없으므로 주님께서 그분의 회복을 여기서 시작하실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월절 5.


구약 2015-01-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3801.html
첫날과 일곱째 날에는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함
출:12장16절. "너희는 첫날에 거룩한 모임을 소집하고 칠일째 되는 날에도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한다.이 두날에는 어떤일도 해서는 안된다.단 각 사람이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을 해야한다. 그 일만은 할수있다."

이구절은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날에 어떤일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누림에서는 우리가 일을 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우리는 하는 것을 멈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각종일을 끝내야 한다. 사랑하는 남편이 되거나 복종하는 아내가 되거나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가 되려고 결심하지 말라. 이 모든것은 인간의 일이다.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일은 먹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때 누림을 위한 여지만 있을 뿐 일을 위한 여지는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 말라. 다만 먹고 누리라.

오늘날 기독교의 상황은 이와 반대이다. 먹는것 대신  일하는 것이 있다. 어떤일에 참여하라고 권하는 설교가 끝없이 주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에 반대 된다.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어떤일도 하도록 허용치 않는다. 구원받고 살아난직후 우리는 우리의 뱀 같은 본성으로 인하여 어떤 일을 하려고 결정한다.

어떤이들은 성질을 내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다른이들은 겸손해 지려고 결심한다. 어떤이는 성질을 내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다른이들은 겸손해 지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종류의 일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우리에게는 오직 먹는 것만이 허용된다.

사람의 종교에 관한 저서들과 는 받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절기의 첫날과 마지막 날에 먹는 것 외에는 어떤일도 하지말라고 말한다.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일을 멈추기를 요구하고 먹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기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