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의 말씀에서 중점을 잘 잡아야하는 예


회복자취 2014-11-2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520.html



교회집회가운데 엑기스같은 개요만을 선포하면 그저 딱딱하기 때문에

신언을 할 때 예를 들기도 하고 비유를 들기도 합니다.


주님 자신의 말씀도 주로 비유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유는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윗트니스 리 형제님도 많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청중을 휘어잡은 뛰어난 전파자였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회복의 여름겨울의 훈련메시지에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주로 비유로 말씀하신 것들 혹은 이형제님의 생활중에 일어난 일들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것등 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중

주님이 말씀하신 많은 비유들 중에 가장 뛰어난 것중의 하나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비유는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의 영향을 받기에

즉 주님시대는 농사가 그 시대의 주 산업이었기 때문에

주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드셨을 것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건 무엇일까요?


아래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씨뿌리는 자라는 그림입니다.

아마도 그 모티브는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비유의 말씀이지만

모델은 아마도 19세기말  당시의 농부들이 들판에서 씨를 뿌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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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도 화가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씨를 뿌리는 농부가 석양을 배경으로 열심히

뿌리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말씀안의 뜻을 제대로 파악을 하였다면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은

씨와 그 씨를  뿌리는 자가 아닌

그씨가 심기워지는 땅의 각각의 상태입니다.


땅의 상태에 따라 뿌려진 씨의 수확때의 결과가 각각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로 볼 때는

말씀을 잘 깨달을 것과

환란이나 박해에도 넘어지지 않고

세상의 염려나 재물의 유혹으로 인해 말씀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땅같은 마음의 상태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념의 변화는 혼의 변화중의 하나


주님누림 2014-11-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509.html

내 세대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반공포스터를 그렸습니다.

그릴 때마다 북한 사람들은 빨갛고 징그럽고 뿔달린 동물로 표현되곤 했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총칼을 들이댄 공비에게 극한 두려움가운데서도 토로한 한 어린이의 비참한 죽음은

한때 꽤 오랫동안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어린아이가 뭘 알았을까요.

그게 조작된 이야기란 말이 있었지만

정말 사실이었다하더라도  단지 어린이다운 순진함과 단순함으로

주입된 혐오감을 당차게 들이댄 것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란 극심한 공포가운데 던져져 죽음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상황에 있던

윗세대는 북한이란 존재자체가 혐오과 증오의 대상일지 모릅니다.

북한이란 카테고리가 쫌 애매하긴 하지만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 땅에 사는 사람들까지를 포함하여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실일테죠


하지만

사람을 압제하고 착취하는 북한의 정권은 분명 증오스럽고 혐오할만한 체제이나

그 안에서 살고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야하는 사람들까지 몽땅 포함시켜야할까요?

심지어는 그 안에서 철저히 쇄뇌되어 남한을 철저히 적대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실 시대적인 상황이 북한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꿔야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종교적인 관념은 어떨까요

 말을 하다보면 교회안에서도 이런 관념을 가진 성도를 보게 됩니다.


회복안에 있지 않은 믿는 이들은 구원을 받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도 하고

구원을 받았어도 유기적인 구원의 체험을 하지 못했다고 단정하는 것등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어느정도 우리가 회복안에서 갖고 있던 관념들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과

유기적인 구원에 대한 지표도나 원칙을 아는 것이 마치 유기적 구원의 실제인 것으로

혼돈하던 것도 우리의 관념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회복안에 있다면 그리고 회복되어 있는 중에 있다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사물과  사람 세상 그리고 진리와 그 실제에 대한

경직된 관념들에서 매번 새로워지고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관념의 변화는 사실상 혼의 변화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두 남자의 얼굴


일상누림 2014-11-1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499.html
이즘 우리는 단체적인 침몰의 위기속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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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쩌다가 우린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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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가지 아는 것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되리란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