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을 버림은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야하는 것임


주님누림 2015-01-1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8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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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율법의 모든 면에서 흠이 없다 자부하는 이였습니다.

또한 재산도 많았으니 이땅에서 얻을 것도 부러울 것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얻어야할 것이 있었으니

주님께로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네가 가진 모든 재물을 다 나눠주라

그리하면 네가 온전하여질 것이고 네가 원하는 하늘의 복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고 답하십니다


주님은 스스로 의롭다 온전하다고 믿는 이 청년의 가장 큰 약점이자 거의 모든 사람의 약점인

재물에 대한 욕심 집착 의지함의 문제를 드러내신 것이죠

그러므로 또 제자들의 몰멘 반응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사실 사람의 한계로는 이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건 그 당시 주님을 따랐던 자들이 부자여서가 아니라 물질에 대한 선생의 개념이

이땅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라는 것입니다.


이때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가 장담하여 말하길 우리가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무엇을 얻겠습니까

라고 질문한 것에 대해선 확실한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즉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의 재물을 포함한 모든 버림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란 의미이겠죠


여기서의 핵심은 재물이 아니라 재물을 내어버리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하실 수 있음입니다.

재물을 버림이 내적 혹은 외적인 사람의 강한 의지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라면

접수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재물을 버리냐 버리지 못하냐의 잣대로

구원을 얻는다 못얻는다로 설파한

많은 거짓선지자들의 행태가 기독교역사상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복의 역사에서는

자신의 재물을 내어놓은 어떤 믿는 이의 경우는

그의 헌물을 되돌려 버린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이 재물을 내어놓음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의지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을 한번쯤 걸러봐야 하는 이유


주님누림 2015-01-1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865.html
돈푼께나 있고 권력이 있는 남자들이 가장 빠지게 되기 쉬운 유혹이
성적 문란함인지 모릅니다.
그간은 정욕을 참지못하는? 남자들의 성적인 특성일지 모른다는 변명이 있었지만
최근에 서울시향여대표의 막나갔던 횡포의 폭로로 말미암아

이건 남녀의 성적 취향이나 억제력의 차이가 아니라
지위와 권력을 가진 자의 완악함과 만행의 문제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

성경에서도 이렇게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알려지면 알려질 수록 그 당시의 기득권세력들은 주님을 견제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올무에 걸려들게 할까 궁리를 하게 됩니다.

주님이 유대땅으로 돌아오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가한가란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엔 물을 필요도 없는 명확한 법적 문제이나
당시에는 관례로 남편 맘대로 아내를 버리는 것이 율법적으로 허락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답은 원래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답하십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모든 유대남자들이 걸렸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를 허락하였는데요?라고 반문합니다.
당신이 모세가 허락한 것을 문제있다고 하십니까라는 얘기죠
이에 대해 주님은 모세가 허락한 것은 너희가 워낙 완악하였기 때문이다고 
그들의 완악함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아마도 머쓱해져서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 뿐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 까지도 차라리 장가를 들지 않는게 낫겠다 몰멘 소릴 합니다.
허그.............

오늘날 어떤 종교에서 일부다처를 허락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구약의 관례를 내세우는지 모릅니다.

사실 이 문제를 생각해볼 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들은
여과없이 관례로 받아들여야할 것이 아니라
원래는 어떠했는가를 되집어 봐야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즉 하나님의 경륜과 그분의 영원한 목적외에 깃털과 같은 사소한 것들은
원래는 어떠했는가
우리의 영안에서의 느낌은 어떠한가를 
항상 고려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사함을 확증받는 길 --용서


주님누림 2015-01-1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850.html
이땅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는 일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맘을 상하고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가 굳어서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도 않는 반면
어떤 혼이 약한 이는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일에도 맘이 상하여 실족하기도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근심하여 자신이 쉽게 법하는 잘못을 어떻게 탕감받을 것인가를 애둘러 질문합니다.
만약 누가 내게 잘못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주리까?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어린아이같이 쉽게 맘이 상하는 이가 실족하게 하지 않음이란
엄격한 조건이라면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티켓을 얻을 것인가?란 뜻입니다.

주님은  이를 간파하시고 베드로의 편에서 말씀하십니다.

실족케 하는 일이 발생했다치자
그런 일을 행한 자는 어떻게 구제받을 것인가?

하지만 주님은 실족하게 되는 어린아이를 다루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같은 이가 어떻게 이땅에서 행해야만
천국에 무난하게 들어갈 것인가라는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갚을 수 없는 큰 빚, 죄의 빚을  창조주에게 지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죠
그래서 그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길을 가다 자신에게 약간의 빚을 진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자신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자
그 사람을 끌고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민망한 일에 대하여
주님은 대노하셨습니다.
너도 니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갇혀 있게 될 것이다.
이건 도저히 길이 없게 되는 것이죠.


우리 모두는 다 주님앞에서 죄의 빚이란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탕감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너무나 큰 은혜와 복을 받으면 
그래서 행복이 넘치면
사람의 맘은 주변의 모든 일에 너그러워지는 게 자연스런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신에게 빚진 자에게 박해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건 아마도 나를 넘어지게 한 자
나를 핍박하고 타박한 자
내게 물질적이던 심정적이던 해를 입히고 상처를 준 자에 대해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경우입니다.

주님은 이에 대해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이 예는 아주 합당하며 합리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사함을 받았기에 우리에게 잘못한 자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땅에서 서로 물려있는 존재입니다.

누구도 죄의 빚이란 면에서 다 창조주에게 탕감받은 자이고
한면으로 사람을 실족하게 한 자이며
반대로 실족당한 사람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사함이 확증되어 천국에 무사히 들어가기 위한 길은
우리가 탕감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의 우리에 대한 잘못도 탕감해 줘야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