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생활 (그리스도의 피) 1장


정상적인그리스도인의생활 2009-01-30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k505/2104.html

 

정상적인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어떠한것인가. 우리가 처움부터 이질문을 검토해 본다는 것은 지당한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사죄를 위하여 우리대신 죽으셨다.

 

                    우리의 이중문제  범죄와 죄 (Sins and Sin)

    로마서 1장부터 5장11절 까지의 네장반은 전반부로 낱낱이 열거될수있는 범죄의 문제를다루고

     5장12절부터 8장까지는 후반부로 내안에서 작용하는 본질로써의 죄의 문제를 다루고있다.

하나님의 빛이 나의 마음을 비출때 나의 외마디 외침은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앞에 범죄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의 용서를 받았을때 또 새로운 발견을 하게되는데 , 즉 죄의발견이다.

내속에 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죄로이끄는 힘이 발동할때 나는 죄를 범한다. 용서함받고 또 죄를범한다.그래서 삶은 죄를 범하고 용서함을 받고 다시 죄를 범하고 하는 악순환 속에서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는것 뿐아니라 내안에 잘못된 그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시위하여 이중의 문제를 해결하셔야만하고 해결하시기

위하여 사죄를 확보해주시는 십자가상의 대속자,승리를 확보해주시는 내주하시는 대속자를 준비하셨다.

 

   

     롬3장 23절,모든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첫째로;선악과를 먹은후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나눌수없게 되었다.그장애물이 전성경을 통해서                죄라는 것이다.   

둘째로; 이 죄 때문에 죄책감이 생기게되는데 이것은 사탄에게 하나님앞에서 우리를 비난할(참소할)   근거를 주게되고, 그래서 셋째로 네가 죄를 범했다라고 말하는자는 형제들를 참소하던자이다.

        (계,12장10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와 죄책과 사탄을 우리들에 대한 비난의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셔야만하셨다.

 제일먼저 우리의 범죄가 처리되어야만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보혈로 처리되었다.

 그보혈의 가치를 보여줌으로서 이세가지를 해결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과 사람과 사탄을 향한 이세가지에 효능있는 피이다.

 우리는 십자가상 에서의 대속주로서의 주님의 죽음의 사실 의 기본적인지식과 우리의 범죄을 위해

 흘리신 보혈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알아야한다. 이것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길

 을 가기 시작했다고 말할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문제를 더 자세히 상고하여 보자.        

 

    본래 보혈은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신구약 전체를 통해 피는 속죄와 관련되어 있고 피가 하나님을 위해서 있음을 보아야한다.

구약 레16장을 보면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속죄제물에서 취한 피를 지성소에서 7번 뿌렸다.

속죄제물은 성막뜰에서 공공연하게 드려졌으며 모든것이 공개되어 누구나 다볼수있었다.

      그러나 지성소에서는 하나님앞에 속죄를 한 사람은 대제사장 뿐이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상징이었기때문이다. (히;9.11-12.)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거나 접근 할수도 없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오직한일 피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대제사장과 하나님사이에서 그리고 혜택을 입는 사람들의 시야 에서 벗어난 지성소에서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이것을 요구하셨다.

   그러므로 피는 첫째로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것이다.

출:12장 13절에 구속에 대한 좋은 상징이 있다. 그때 피는 집인방과 좌우설주에 바르고 집안에서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피를 볼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실례 또한  피가 하나님께 드려지기위해있다.

    왜냐하면 집안에서 찬치하는 사람들은 볼수없는 집 인방과 좌우설주에 발라져있기때문이다.

               

                       하나님은  만족하셨다.

       사람에게 죄없는 생명이 주어져야함이 하나님의 거룩이며 공의이다.

피에는 생명이있다. 내가 피를 볼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라고말씀하신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피는 완전히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린다.  우리가 죄를 범할때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많은 괴로움에  처하게된다. 이때 우리의 범죄가 그리스도의 보혈보다. 더크게 보이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감각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피는 첮째로  하나님께서 보시기 위한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드려야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느낌을 통해서 어떤 평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얻지못할것이고  흑암에 처하게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가야한다.

 하나님은 피가보배로운것이라고 말씀하기시때문이다.(벧전1:18-19)

만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피를 우리의 범죄에 대한 댓가와 구속에 대한 값으로 받아들이신다면

또 만족하신다면 우리는 만족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를 만족하셨다.

 ( 벧전:1장18-19.너희가 너희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것은 은이나 금같이없어지것으

로한것이아니요.오직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한것이니라.)

       

             -믿는 자들로 하나님께 나아가게하는 보혈- 

    피가하나님을 만족케한고로 우리 또한 만족케한다.(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에 악을 깨닫고,히브리서는 피가우리마음을 씻었다고 말하지않는다

  히10장은 피와 양심의 관계를 말한것이다.

내양심은 깨끗게 되고 죄책감은 제거되며 하나님께나아가게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우리는 꺼리낌없는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었다.

 렘17장 9절 심히부패한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주여 당신의 피로 내마음을 죄에서 씻어주소서라고

기도하는것은 잘못이다.

     우리의 육체는 씻을수없을정도로 부패하다. 육체는 반드시 십자가에 못박혀야한다.

당신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근거가 무엇인가.  당신은 믿을수없는 당신의 느낌이나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다는 느낌을 가지고 나아가는가  그분이 훌린 피를 의지하여 나아가는가.

     두려움없는 담대함은  개인의업적이 아닌 보혈로 말미암는 것이다.

엡2장13절 그리스도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 졌느니라.

히10장2절 다시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롬4장8절 주께서 그죄를 인정치아니하실 사람도 복이 있도다.

 

 

            참소자를 (사탄) 이김

사탄을 향한 보혈의 힘,사탄은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이다.  

보혈은 사탄에 대해 어떻게 역사 하는가.

요일:1.7절   그아들 예수의피가  우리의 낱낱의죄 (every sin)에서 깨끗하게 하실것이요.

큰죄,작은죄,검은죄,하얀죄,용서받을수있는죄,용서받을수없는죄,모든죄는 낱낱의죄 라고하는

말씀가운데 모두 포함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범죄를 빛가운데 보시고 보혈을 기초로 해서 그범죄를 용서하시니

사탄은 무슨이유를 가지고 우리들을 송사하겠는가.

 

롬:8.31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우리를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히:9.11-12절. 그리스도께서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는니라.

히:14.절 하물며 그리스도의 피가 너희양심으로 죽은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께 충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한때 구속주 이셨지만 

 오늘날 그는 이천년동안 대제사장과 대언자의 직무를 수행하고 계신다.

  그러면 사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해야 하겠는가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양심안에서 계속 송사하고 있다.  너는 죄를 범했다.그리고 계속죄를

범하고 있다. 너는 연약하며,하나님은 더이상 너를 어떻게 하실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그의 비난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침하 하게되고 사탄은 성공하게된다.

그리고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본성)이 죄를 범하는자라는  것을 깨닫지못하기

때문에 우리자신에게 신뢰를 두고 있다.그결과 사탄이 우리를 비난할때 사탄의 비난 밑에

빠져들어가게된다. 하나님은 능히 우리의 죄를 처리하여 주실수있지만 그분은 결코 비난때문에

쩔쩔매는 사람을 다루실수가 없다.

       이런사람은 피를 신뢰하지않기때문이다. 

절대로 우리의 선한행실로 사탄에게 응수하지 말고 항상보혈로 사탄에게 응수하라.

하나님은 이피를 보셨고 그아들은 이피로말미암아 사탄의 참소에 응수 하셨기때문에

    사탄에게는 더이상 우리를 공격할근거가 없다.

아 !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보혈의가치를 조금더 본다면

우리는 어떤 해방이되겠는가,

 

시편:51.3절 내가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요:8.44절  너희는 너희아비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진리가 그속에 없으므로 거짓을 말하고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거짓의 아비가 되었느니라.



워치만니가받은고난


워치만니 2009-01-27 / 추천수 0 / 스크랩수 4 http://blog.chch.kr/k505/2088.html

함께 봉사하는 형제들로부터 받은 고통

이제 우리는 그가 받은 고통의 다른 면인 함께 봉사하는 형제들로부터 당한 고통에 대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이런 고통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외부 사람들로부터 온 고통은 우리 밖에서 온 것이고 형제들로부터 받은 고통은 우리 가운데서 온 것이다.

추방

니 형제님이 형제들로부터 받은 첫번째 고통은 바로 그들에 의해 교회로부터 추방된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적이 있듯이 최초의 교회생활의 실행은 1922년 그의 고향에서 시작되었다. 약 2 년의 기간이 지난 후 어떤 일로 인하여 1924년에 그는 추방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형제들에게 거절당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교회생활로부터 추방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가 추방된 것은 교회 중에 선포되었을 뿐 아니라 정식으로 분명한 선언문으로 공포되었으며 거기다가 그 선포는 그가 집에 있지 않고 밖에 나가 있을 때 행해졌다.

그는 자신이 추방당한 전체 과정을 내게 상세히 교통해준 적이 있다. 그당시 그는 복주를 떠나 항주에 사역하러 갔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편지로 그가 추방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가 천사같이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도 사람이다. 그는 나에게, 이 일은 그를 매우 분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묻기를, "앞으로 네가 내 손에 있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네 자신의 손에 있기를 원하느냐?"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항주의 일을 마치자마자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의 형제들은 거의가 그를 통해 구원받은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공포된 사실에 대해 매우 분히 여겼고 받아 들이려 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모두 니 형제님의 편에 서 있었다. 젊은이들은 부두로 그를 맞으러 가서 그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에게 말했다. "니 형제님, 반드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런 추방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말로 그가 또 한 번의 자극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자기편에 서 있겠다는 이들에게 니 형제님은 몸이 불편하고 배멀미가 있으니 그들 중 몇 사람이 밤에 그의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날 밤 적지 않은 사람이 왔다. 그들이 아직 도착하기 전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변명하지 말라는 주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므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 어떠한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 그는 매우 평온함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늘 저녁 짐을 싸서 내일 여기를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잠잠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의 말에 울었고 실망도 많이 했으며 이로 인해 집회에 다시는 참석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이 1924년에 발생한 일이다.

중국어 찬송 468장은 바로 그때 니 형제님이 쓴 것이었다. 나는 영원히 그 찬송을 잊지 못한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에와서도 이 찬송은 여전히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영을 상쾌하게 한다. 여기에 십자가 지기를 배우고 자신을 위해 변명하지 않고 고통을 당해도 입을 열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얼마 안 되어 그는 '기독도보'를 낼 부담을 가졌다. 한동안 지난 후 그는 북쪽의 상해로 올 부담을 가졌다. 거기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바로 그때 상해 교회가 세워졌는데 그것은 바로 1926년 초의 일이다. 그가 십자가의 깊은 역사를 받아들임으로써 주님의 역사는 그로 말미암아 한걸음 더 전진했다.

여기서 당신은 한 가지 원칙을 볼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산출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고통을 거쳐서 산출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경도 교회의 산출이 여자의 해산하는 수고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를 가든 손쉽게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런 일은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산출되지만 또한 사람들의 고난당함으로 산출된다.

이의(異議)

니 형제님이 형제들로부터 받은 두번째 고통은 바로 이의들이었다. 비록 어떤 형제 자매들은 니 형제님을 거절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항상 이의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사역 초기부터 니 형제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많은 한 자매가 있었다. 나는 다소 소극적인 것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누구의 약점을 말할 때에는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녀는 주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니 형제님의 나이는 이십 세였고 그녀는 이십 오륙 세였다. 그녀는 주님을 매우 사랑했고 은사도 있었다. 많은 면에서 사람의 존경도 받았는데 결국 전도여행을 하는 여전도사가 되었다.

내가 그녀에 관해 들었던 것은 전쟁시였는데, 그녀는 중국 수도의 한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기독교계에서 놀라운 인물로 알려졌었다. 그녀는 교회생활 초기부터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녀에게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는가? 그녀는 항상 니 형제님에 대해 이의를 표했다. 니 형제님을 추방한 그 여섯 형제들을 따라 그녀는 항상 니 형제님에 대해 이의를 가진 사람이었다.

1934년 정월, 상해에서 우리가 세번째 이기는 자의 집회를 가질 때 그녀가 집회에 참석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집회에서 이의를 가진 사람이었다. 니 형제님이 말씀을 전할 때 그녀는 항상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은 이것이 일종의 고통임을 아는가? 그녀가 니 형제님보다 연장하고 사람의 존경도 많이 받았지만 니 형제님에 대해서는 이의를 가졌었다.

여러분은 수년 동안 니 형제님에 대해 이의를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한 자매를 예증으로 삼았는데 그녀는 가장 강렬한 이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생활이 중국 온 땅에 퍼지던 기간에 그녀는 그 안에 있지 않았다. 초기에는 그녀가 그 안에 있었지만 나중에는 나갔다. 이런 이의는 니 형제님에게 실로 일종의 고통이었다.

성숙되지 않음과 무능함

니 형제님이 형제들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고통은 바로 사람의 성숙되지 않음과 무능함에서 온 것이었다. 그가 형제들과 함께 일하고 같이 책임을 짊어졌지만 기타 형제들은 그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성숙하고 유능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미숙하고 무능했다. 이것은 그에게 참으로 고통이었다.

오십 년 전 중국에서 니 형제님은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년을 앞섰는지 모른다. 그가 본 많은 것들을 형제들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미숙하고 무능했는데 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고통이었다. 이것은 내가 이 사역에 들어올 때 본 상태였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도 말하기를 좋아했고 결국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 되었다. 여러분이 알듯이 교회생활에서 좋은 일꾼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해내지 못한다. 사람에게 속지 말라.

완악함

이어지는 것은 사람의 완악함이다. 아주 실제적인 한 가지 실례를 들겠다. 내가 이 사역에 들어온 것은 교회생활이 시작된 지 십 일 년 되던 해의 일이었다. 나는 니 형제님의 요청으로 상해를 방문했는데 그는 나더러 거기에 4개월간 머물라고 하였다. 그 기간의 끝무렵에 그는 나를 찾아 와서 "이 형제, 우리 동역자들은 형제가 이곳으로 이사와서 우리와 함께 거하며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고 느끼네.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이 형제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보게."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주님 앞에 나아가서 물었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분명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사역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어떤 책임의 위치에 두었다. 나는 그가 왜 이렇게 하는가에 대해 아주 이상하게 느꼈다. 나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사역한 지 적어도 오륙 년이 되었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니 형제님은 내게 중한 책임을 안배하였고 그와 함께 일하도록 지정하였다. 나는 바빠 자기 일에 수고하는 형제들 중에 한 사람만이 제외인 것을 발견했다. 그 형제는 나보다 연로하고 니 형제님보다도 연로하였다. 그당시 내 나이는 26 세쯤이었고 니 형제님은 28 세였고 그 형제님은 35세였다. 주의 일에 들어오기 전에 우체국 국장을 지낸 경력이 있는 형제였다.

어느 날 미국에 공부하러 가려고 계획하고 있는 아주 총명하고 학문 있는 한 사람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때 그는 구원받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미국으로 가기 전에 침례받기를 바랬다. 그는 한두 번 집회를 참석했었고 또 니 형제님은 그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에 우체국 국장을 지냈던 그 형제는 "안 된다. 그는 너무 생소하고 한두 번밖에 집회에 참석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사람에게 침례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니 형제님이 "형제님, 무엇을 염려하십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그가 아직 구원받지 않았을까봐 염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때 니 형제님은,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만일 이 일이 잘못되었다면 주님 앞에서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니 형제님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그는 견제하고 동의하지 않았다. 이것은 참으로 니 형제님으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했다. 이것은 한 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사역 초기에 니 형제님은 기독교의 실행들에서 많은 것들을 취했었다. 그는 어떤 실행에서 성결을 취했고 어떤 실행에서는 침례를 취했으며 또 어떤 실행에서는 다른 것을 취했다. 우리의 집회 방식에 대하여 그는 대체적으로 형제회의 실행을 취했다. 형제회의 모임에서 자매는 입을 열지 못했다. 찬송은 할 수 있어도 기도는 하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형제회에서는 집회에서 기도를 포함하여 자매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1932년 이후. 내가 사역에 들어온 그 해에 니 형제님은 집회에서 자매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회에게 너무 큰 손실이라고 느꼈다. 그는 자매가 집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절대로 옳은 것임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소위 인도하는 사람들은 집회에서 자매는 말할 수 없고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인상이나 가르침을 받았었다. 니 형제님은 그들에게, "집회에서 우리는 마땅히 자매들을 해방해야 하고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안 된다!"고 말했다. 그후 상해에 갔을 때 나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점점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솔직히 말을 하거니와, 이 일에 대하여 내가 첫번째로 아멘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예이다.

형제들이여,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처음부터 모든 일이 다 어려웠다. 마치 길을 닦을 때 첫무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길이 닦인 후에 다른 사람들은 아주 쉽게 그 위로 차를 몰 수 있는 것과 같다. 니 형제님은 개척자와 같다. 그는 유일하게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었다. 한두 가지 일이 발생한 후에 나는 그가 왜 나를 그런 위치에 두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유는 그가 너무 외로왔기 때문이었다.

형제들만 완고하고 완악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때때로 자매들 가운데서 이런 문제는 더욱 크다. 이런 완고함과 완악함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고통은 매우 큰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면으로 다른 사람의 완고함과 완악함을 견디기를 배워야 하고 다른 면으로는 영원히 어떤 사람을 향하여도 완고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에게 "좋습니다. 형제님이 그렇게 느끼시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를 배우라. 너무 자신을 믿지 말고 다른 사람을 믿고 당신의 형제 자매들을 믿기를 배우라. 이것은 좋은 공과이다.

야심

네째는 지위에 대한 형제들의 야심이다. 자매들에게는 별로 야심이 없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형제들 편에서는 이런 야심의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주의 일에 들어왔을 때 니 형제님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자주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그는 문서의 일을 해야 했고 특별 집회도 돌봐야 했으므로 정규적인 집회는 돌볼 수 없었다. 내가 거기 있었으므로 그는 집회의 책임을 나에게 맡겼다. 그때 아주 진취적이고 모든 면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활달한 한 형제가 있었다. 나는 젊은 사람으로서 그 형제를 매우 감상했었다.

주일날에는 대개 세번의 집회가 있었다. 어느 주일 오후 집회 때 나는 그 형제에게 메시지 전해줄 것을 청했다. 니 형제님은 그 일을 알고서 나를 책망하면서 "형제는 그 형제로 하여금 메시지를 전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 나쁘냐며 이상히 여겼다. 그러나 그때 그는 내게 무엇을 설명해주기를 원치 않았다. 나중에 나는 그 형제가 세번째로 교회생활에 들어온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두번째 사람은 안과의사인 유형제이고 첫번째 사람은 앞에서 내가 말한 그 완고한 형제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상해의 내지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그는 인도자가 될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인도자 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아는가? 그가 교회에 들어온 1927년부터 그는 계속 장로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교회에 들어온 지 21년 되던 해인 1948년에 그는 교회를 떠났고 집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했으며 순회 전도사 한 사람을 고용했다. 이것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집에다 경배할 우상을 세우고 또 제사장을 고용한 것과 같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지난 사십 년 동안 나는 중국의 유명한 전도사들을 보아왔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이 길을 갔었다. 그들은 집회에 와서 어떤 지위를 얻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니 형제님은 항상 교회가 유기체이지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줄 지위가 없다고 말했다. 당신은 치과의사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그들은 의치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한다. 몸에 안착한 것은 다 외부로부터 온 것이고 그 안에 생명이 없다.

나는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 중국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유명한 전도자들이 모두 이 길을 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들은 우리와 한동안 모임을 가진 후에 주의 일에서 어떤 지위를 얻고자 하는데 결국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떠나 이 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야심이다. 니 형제님은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교회생활에서 지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영원히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한 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가식적이고 간교했다. 그는 항상 가장 영적인 체 했다. 왜 그런가? 이는 그의 야심 때문이었다. 초기에 상해 교회의 모든 성도가 그에게 속다시피했다. 그러나 점차 이리의 꼬리가 드러났다.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이나 동역자들은 그의 모든 것이 거짓된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모두 이 일을 처리하는 데 동의했다. 한 번은 교회가 긴급집회를 가졌는데 모든 성도가 다 참석했다. 그 중 한 동역자는 일어나서 대중 앞에서 그의 거짓됨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그를 정죄하러 일어났다. 모든 회중이 다 그를 정죄했다. 그는 떠난 후에 당시 최고의 신학교에 의해 교수로 초빙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기독교이다.

나는 여러분 젊은이들에게 교회 안에 형제들에게 지위를 추구하는 야심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것은 니 형제님으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당케 했다. 그는 나에게 이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지나가게 했다. 그는 자신에게는 누구에게 줄 지위가 없고 다른 사람도 자신에게 지위를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누구든지 남고자 하는 자는 남고 떠나고자 하는 사람은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에 야기된 분열은 바로 이런 야심으로 인한 것이었다.

야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야심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분열을 야기시킨 다음 그들은 항상 핑계를 대며 코트 곧 교리의 코트를 입는다. 그들은 교회가 어떤 교리에서 잘못되었고 주님 앞에서 자신은 이에 대해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이것들은 모두 거짓된 것이고 핑계이며 야심을 덮는 코트에 지나지 않는다.

거역

또 한 가지 내가 발견한 것은 바로 형제들의 거역(때로는 자매들의 거역도 포함된다)이다. 젊었을 때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던 중 그들이 모세를 거역한 것을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을 이상히 여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교회생활 안에 들어온 후 나는 거역을 발견했다. 밖으로부터 온 공격이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속으로부터 나온 거역이 있었다. 결국 거역뿐 아니라 공격도 있게 된다. 이런 공격은 형제들로부터 온 곳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또 한 가지 니 형제님에게 많은 고통을 준 실제적인 일이었던 그의 혼인에 대해 알려주겠다. 1934년까지 그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었다. 그는 아마 32세였을 것이다. 그 모친은 중국식 가정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혼사를 매우 관심했다. 장자인 그가 여태 결혼을 하지 않는 데에는 악간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1934년 10월쯤 항주에서 특별집회가 있었는데 니 형제님은 남쪽으로 동역자인 이연여 자매를 만나러왔다. 그녀는 니 형제님보다 여덟 살이 더 많았고 또한 동역자 중 가장 연장자로서 40 세 정도였었다. 니 형제님의 어머님은 그녀에게 니 형제님이 결혼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장한 자매는 돕기 원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니 형제님의 모친은 니 형제님을 만나러 갔고 그는 결혼할 것을 승락했다. 열흘간이 특별집회를 마친 그 다음날 그는 결혼했다. 나는 니 형제님의 신랑 들러리로 선택되었다. 또한 연장한 빌립 란 형제님은 사회자로 요청되었다.

이 혼인 이전에 큰 풍랑이 일어났었다. 이 풍랑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는 니 자매(니 형제님의 부인)의 고모 때문이었다. 니 자매는 어려서 양친을 잃고 고모의 손 아래서 자랐다. 이 고모는 자기 조카가 가난한 전도사에게 시집가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사오십 년 중국 사람들은, 특히 상류사회에서는 전도사를 거지와 같이 여겼다. 니 자매는 상류사회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특히 고모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어나 반대하기 시작헀고 기독교 인사들이 이 일을 알고서 야합했으며 교회 가운데 육에 속한 사람도 합세하여 이 일에 참여했다. 세 방면에서 일어나 니 형제님을 반대했다.

나는 신랑 들러리를 한 다음 북쪽으로 가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겼다는 전보를 받고서 상해로 다시 돌아왔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큰 풍랑이었다. 어느 날 아침 니 형제님은 나를 찾아와서 결혼으로 인해 이런 풍랑이 발생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보십시오. 우리 모든 사람의 이름이 이 큰 도시의 가장 큰 신문에 실렸습니다."

나는 그 안의 자세한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 결국 니 형제님은 상해를 떠나 차로 천 리 밖에 있는 한 성으로 갔다. 나는 상해에 남아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거기 머물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에는 항상 청명한 하늘이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천사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 그들이 다 천사라 할지라도 사탄은 남몰래 작은 귀신들을 집어넣을 것이다.

내가 또 여러분에게 가장 큰 풍랑을 말해주겠다. 초기에 중국은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 의해 일으켜져 믿음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생활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나의 간증을 말한 적이 있다. 이제 한 가지 더 말해주겠다.

1936년, 나는 이 사역에서 북쪽의 고성 북편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그떄 우리 가운데 사역에서는 사람을 보낼 뿐 누구에게 공급하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이 형제님. 우리에게 형제님이 북편으로가야 한다는 주님의 인도가 있는데 형제님은 어떻게 느끼십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아멘!"하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 간 후의 모든 필요는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앙망해야 했다.

당시 내가 북편에 갔을 때 이 도시가 상당히 큰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자전거 한 대를 살 수 있다면 행동하기가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를 위하여 기도할 때 "가서 사라!"는 주님의 느낌이 있었다. 나는 주님께, 지금 내 주머니 속에 돈이 있으나 이것은 이사 비용으로 족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깊은 속에는 주님이 돈을 주시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것이 금요일 혹은 토요일의 일이었다.

주일 만찬을 마치고서 2 원이 들어 있는 헌금 봉투를 받았다. 주일이 지나고서 월요일에 한 연장한 형제가 나를 찾아와 긴 대화를 가졌다. 그는 떠나면서 티 테이블 위에 한 봉투를 두고 갔는데 그 위에는 "이 형제님, 이것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가 떠난 후 봉투를 뜯어보니 그 안에 10원이 있었다. 또 같은 날 등기 편지를 받았는데 그 안에 20 원짜리 환어음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은 먼곳에서 누군가가 내게 부쳐준 것이었다.

나는 우체국에 그 환어음을 바꾸러 갔을 때 자전거 점포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모든 면에 만족스런 자전거를 발견하여 그것을 사게 되었다. 자전거에다 전호 붙은 세금까지 해서 32원이었다. 내가 자전거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음이 매우 즐거웠다. 그래서 서실로 가서 무릎 꿇고 주님께 감사했다. 기도할 때 주님은 내게, 주일 저녁부터 받은 헌금이 32 원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자연히 나는 주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주의 신실하심에 감사드렸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생활했는가에 대한 하나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주님에 의해 일어난 사람은 많았으나 경제적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고 병든 사람도 많았다. 어느 날 니 형제님은 우리에게 동역자의 삼분지 이가 폐결핵으로 죽었다는 통계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연령도 많지 않았었다. 다 삼십 오세에서 사십 세 사이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니 형제님이 항상 수입의 삼분지 일로 남을 도왔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필요로 하는 금액은 너무나 컸다.

여기서 나는 여러분에게 니 형제님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해주겠다. 1940년, 41년에 약제사인 니 형제님의 둘째 동생은 중국에서 몇 가지 약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영을 잘 하지 못해서 니 형제님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니 형제님은 그 경영을 사역의 필요를 돕기 위한 기회로 삼았다.

얼마 안 되어서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형제들은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야심 때문에 교회 형제들 가운데 오해를 조작해냈다. 이런 오해들은 눈덩이같이 구를수록 더욱 커졌다. 상해 교회 전체가 일어나 니 형제님을 반대할 정도로 커졌다. 그러므로 니 형제님은 할 수 없이 상해를 떠나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상해는 일본의 통치 하에 있었다. 상해에 있는 일본 헌병대는 상해 교회에게 기독교의 위장조직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조직은 일본 당국의 명령을 들었다. 교회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임을 중지당했다.

이러한 혼란 하에 니 형제님은 그의 사역을 중단하고 상해를 떠나 내지로 들어가 중경에서 그의 제약 회사를 계속했다. 그의 사역은 그때의 중단으로 육 년간 중단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너무 바쁘고 사업에 점유되었기 때문에 사역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완전히 유언비어였다. 그가 사역을 중단하게 된 것은 너무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형제들의 거역 때문이었다. 이것이 몇 년 동안 그가 받은 가장 큰 고통이었다.

육 년의 세월이 지난 후 1948년에 우리 가운데 큰 부흥이 일어났다. 그런 부흥을 통하여 거역했던 사람들은 모두 후회하고 니 형제님에게 회개하며 죄를 자복했다. 이렇게 하여 니 형제님은 다시 사역을 하게 되었다. (한 마디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니 형제님을 거역하고 반대했지만 그들은 교회를 반대하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의 간증이다. 교파로 돌아간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고 다 교회 안에 머물렀다.)

내가 또 한 가지 알려 주고 싶은 것은 그때 부흥이 일어났을 때 상해 교회는 집회 장소를 짓기로 했다. 당시 땅을 사는 데에는 십만 오천 달러가 필요했고 동시에 내부에 삼천 명, 외부에 이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집회소를 짓기 위해서는 십만 달러가 필요했다. 이런 액수는 당시로 볼 때 상당히 큰 부담이었다.

어느 날 니 자매님이 나를 찾아와 "이 형제님, 니 형제님이 교통할 것이 있다고 오늘 저녁 저희 집에 오시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그를 찾아갔다. 그는 나에게 37개의 금덩어리를 넘겨주었는데 한 개가 백 돈이나 되었다. 도합 삼천 칠백 돈의 황금이었다. 그때의 싯가로 열 돈이 오십 불이었다. 그는 이것을 땅 사는 데 사용하라고 말했다. 내가 이것이 어디서 생겼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제약회사를 경영하여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놀랐다. 그때 땅을 사서 집회소를 짓기 위해 헌금한 지 육 개월이 지났다. 형제들의 헌금 총액은 삼천 칠백 돈의 황금이었다. 니 형제님이 내게 건네준 것과 똑같은 금액이었다.

이것은 일부분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의 부흥 이후 그는 훈련을 갖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되어 공산당이 쳐들어와 많은 돈을 들여 산 훈련센타를 점유했다. 그 센타는 작은 산에 있었는데 그 위에 지은 작은 집도 다 압수당했다. 그는 1952년에 감금되어 이십 년간 옥살이를 하고 감옥에서 순교했다.

일생 동안 고난을 당한 사람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나의 관점과 그에 대한 나의 지식에 따르면 그는 일생 동안 하루도 안일한 날을 보내지 못하고 계속 고난을 당했다. 이 많은 고난을 거쳐서 그는 천연적인 생명과 혼을 처리하는 것과 자아를 처리하는 것을 배웠다. 한쪽에 제쳐놓음을 당했던 육 년 동안 그가 배운 마지막 공과는 겉사람의 파쇄였다. 천연적인 사람이 파쇄되어야 영이 해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지식이나 교리만을 사람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그의 모든 가르침 안에는 참된 체험이 있었다. 그는 고난으로부터 이 공과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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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진리의말씀 2009-01-2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046.html

성경;시편119편147-148.  요15장7절

; 내가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가 그리하면 이루리라.

 

시편에는 하나님 앞에 살면서 하나님을 찾는 이가 있다

요한복음15장에서 주님의 말씀은 기도가  두가지 근거에서 응답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 읽기가 조화되는 것에 관하여 말한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에게 이 두가지,곧 말씀 읽기와 기도는 그의 생활의 두방면이고,둘 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실지적인 생활에 두방면 말씀읽는것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떤 형제들과자매들은 성경 읽는것만 즐겨하고 기도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리를 성경 속에 파문는다.

그들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맛을 느낀다.그들의 성경의 모든장에는 많은줄이 그어져 있다.

굵은줄 ,가는 줄,홍색 줄,청색 줄, 책 전체가 거의 줄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구원받은지 겨우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두세 권의 성경책에 줄들이 그어져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은 별로 기도하지 않으며 때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때라도 여전히 기도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씀을 읽을때에는 누림이 한량없는 데반하여 기도할때에는 마치 쓴약을 먹는 것과 같다. 이와반대로 오직 기도하는 것만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릎을 꿇자마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고 영적인 노래들을 부를 수 있다. 그들은 기도할때에 아주 놀랍고 힘이 솟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한다면 그들은 즉시  졸 것이다.

그들은 말씀을 읽는 것보다매일 기도하기를 더 좋아한다. 이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기도하는 것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는 다면 문자와 규정들에 빠질 때가많을

거이며, 그결과 영적 상태는 죽게되고 메마를 것이다.

반면에 성경을 읽는 것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쪽으로 치우친다면 그는 영적으로 균형을 잃을 것이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유지하기 원한다면 우리는말씀 읽기와 기도에 동일한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반대로 여러분이 기도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접촉 하지 않는다면,여러분의 기도는 필연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사상과 생각과 견해와 의견과 취향으로부터 나오게 될것이다.

여러분자신이 아닌  그영에게서 기도가 나오게 하려면 여러분에게 주님의 말씀이 있어야한다. 

이제여러분은 요한복음 15장 7절 에서 왜 예수님께서 먼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말씀하신 다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15장7절에있는 주님의 말쓸을 볼때 우리는 먼저 말씀을 읽고,그다음 기도를 햐야하는 것같다, 그러나 시편119편에서는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라고 말한다.

이구절은 기도가 말씀 읽는 것앞에 오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일에 관하여 엄밀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단지 그 둘이 자연스럽게 이어재게 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형제님의 Lessons  on Prayer 중에서----


복음 전파에 대한 간증(워치만니)

『내가 처음 구원받았을 때,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많이 할수록 더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말을 더 많이 하면,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능력이 없다고 느꼈다.

 

후에 나는 여선교사 한 분을 만났는데, 그녀의 이름은 그로브즈였다. 그녀는 내게 구원받은 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얻었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내 동료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않으므로, 그 잘못은 그들에게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마도 잘못이 내게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탐문하며 나와 하나님 사이에 무언가가 놓였있는지―어떤 자백하지 않은 감추인 죄라도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그러한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나에게, 내가 기꺼이 그것들을 즉시 처리하려고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그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였다. 그녀는 더 나아가,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증거했는지에 관해 질문하였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들을 것인지에 관계없이 단순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먼저 하나님께 말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말하기에 앞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데려가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분이 형제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이러한 이름들을 노트에 기록하여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 보라. 그런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실로 바로 그날, 나는 많은 죄들과 불의한 것들을 처리하였다. 나는 주님께 그분의 피로 나를 정결케 하사 나의 죄들을 사해달라고 구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노트에 적혀있는 이름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나는 그것이 비교적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기도할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업 중에도 나는 그들을 위해 은밀히 기도하였다. 이삼 개월 후에 내 동급생들은 나를 웃음거리로 여겼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은 전도사가 온다고 말하곤 했으며, 내가 그들에게 말해주어야 할 것에는 참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그로브즈 여사를 찾아가서 그녀가 내게 가르쳐준 방법을 다 써 보았는데도 여전히 효과가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몇몇 사람이 구원 얻을 때까지 계속 기도하라고 나를 격려해주었다. 주님께 감사한다. 나는 그 노트에 기록된 이름 가운데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그들 모두가 구원받았음을 간증할 수 있다. 그 노트에는 육십 명 내지 칠십 명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공과를 배웠다.



기도 첫째 위치에 놓아야한다.


진리의말씀 2009-01-2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039.html

기도 첫째 위치에 놓아야 한다

기도는 일종의 봉사이므로 응당 기도를
첫째의 위치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의 궤계는 항상 주님과 관계되는
어떤 일을 기도 앞에 두고
기도를 맨 마지막에 두게 한다.

기도의 중요성을 아무리 여러 번 일깨워 준다 하더라도
기도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씀 전하는 집회나 사경회나 교회의 다른 많은 집회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즐거이 참석하고 취미를 가지며 시간을
내서 참석한다.
그러나 기도 집회에는 놀랄 만큼 적은 인수가 참석한다.

우리의 주된 봉사가 기도라는 것을 강단에서 여러 번 말하고
우리의 기도 생활이 실패하면 기타 모든 일들도 잇달아
실패한다고 알려주었건만 여전히 기도는 중요시 되지 않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려움이 쌓여 있을 때 우리 입으로는 기도해야만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말이 기도보다 많고
염려가 기도보다 많으며 방법이 기도보다 많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떤 것도 기도 앞에 놓을 수 있고
다른 것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오직 기도만은 맨 마지막에 놓여지고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주님을 아는 어느 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 기도를 소홀히하는 죄를 범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너는 그런 사람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다 자신에게 『너는 그런 사람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저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 눈이 밝아져서
새로이 기도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또 한면으로 우리는 만약 사단이 우리를 미혹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렇게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깨어서 사단의 각종 전략을 발견하고
사단의 모든 궤계를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기도에 있어서 사단이 우리를 풀어놓게 하고
우리를 가리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워치만 니-


밥따로 국따로


건강코너 2009-01-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026.html

밥 따로 물 따로 식사법의 기본 요령

 

1. 물은 식후 2시간이 지난 후부터 다음 식사 2시간 전까지는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밥 따로 국 따로만 제대로 지켜도 위장병 80%를 고칠 수 있다. 위장 질환 및 암에서 벗어나려면 밥과 물을 따로 먹어야 한다. 또한 일체의 간식을 금한다. 찬물은 좋지 않다. 미지근한 물을 마셔야 한다.

 

2. 식사 때 국을 마시면 음식물을 오래 씹을 수가 없다. 밥과 국이 위에 들어가면 위액을 묽게 만들어 소화력이 떨어진다. 밥 따로 물 따로 하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 체중도 줄어들고 식후에도 졸리지 않는다. 소식을 해도 오래 씹으면 위에 포만감을 주고 위에 무리가 없다. 밤 10시 이후에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찬 음식 찬밥을 먹지 않는다.

 

3. 식후 2시간 후에도 물이 먹고 싶지 않을 때는 의무적으로 마실 필요는 없다. 식후 2시간 후에 물을 마셨는데 기운이 갈아 앉으면 1시간 후에 마셔도 좋다. 식후 2시간 후에 물을 마셨는데 변비가 생기는 경우는 1시간 후에 물을 마신다. 식후 2시간 후에 물을 마시도록 조절할 때는 밤낮으로 잠이 오는 수가 있다. 이럴 때는 잠을 실컷 자도록 한다. 음양 식사법으로 잠이 오는 것은 그동안 피로해 있던 신경세포가 안정되어간다는 증거이다.

 

4. 된 음식을 먹고 수분을 섭취하지 않을 경우 직접적인 효과는 침샘의 작용과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켜 살균력을 강화함으로써 음식의 각종 세균들이 깨끗이 박멸되며 감기바이러스나 기타 나쁜 균이 몸 안에 침입했다 해도 그대로 물리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가축 중에도 염소나 토끼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들은 별다른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들이다.

 

5. 음식은 열(熱:陽) 에너지이고, 물은 음(蔭)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음식을 먹고 2시간을 참게 되면 몸에서는 물을 그리워하는 강력한 힘이 생긴다. 즉 양(陽)의 기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물을 마시면 물은 체내에 들어가자마자 위장에 정체할 시간도 없이, 필요로 하는  장기에 적절히 흡수되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면서 노폐물을 걸러내게 된다.

 

6. 식후 2시간 뒤 물 마시는 시간에는 음료수나 커피, 기타 물 종류는 마음 놓고 마셔도 된다. 다만 암환자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당분 음료를 삼가야 한다. 2시간 후에 물을 마시게 되면 처음에는 많이 마시게 되지만 1개월쯤 지나면 하루 종일 가도 물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2,3일에 한 번씩 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 때 물을 너무 적게 마시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음식에 들어있는 수분만으로도 충분히 되기 때문이다.

 

7. 된 음식만 먹고 식사 중에 물이나 국 또는 물 종류의 반찬을 먹지 않으면, 위장은 튼튼해지고 식후의 포만 상태에서 오는 식곤증이 사라진다. 따라서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상쾌해져 최고의 쾌적 지수를 유지하며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다.

 

8. 저녁 6시 이후 밤 시간은 우리 인체가 음체질이 되어 물 기운이 일어나는 시간이므로 인체의 체질과 물음식이 상생하며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부득이한 경우, 물 종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해도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된밥만 먹는 것이 더 좋다. 음식을 충분히 씹어서 삼키게 되면 입안의 침과 위에서 분비된 소화액에 의해 체내의 열 기운과 함께 섭취된 모든 음식이 완전히 소화 흡수된다. 과일은 식후나 식사 중에 어느 정도 먹을 수 있지만 특히 수박은 절대 금한다.

 

9. 아침 공복에 물 마시는 것을 금한다. 더 나아가 아침에 샤워나 목욕을 하는 것, 수영하는 것, 아침에 매일 머리 감는 것 등을 모두 금한다. 꼭 해야 한다면 저녁 식사 후 물 마시는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 식사할 때는 반찬보다 따뜻한 밥을 먼저 먹고 찬 음식을 절대로 금한다. 찬밥도 먹지 말아야 한다.

 

10. 음식물을 먹으면 위산이 분비되어 위에 들어온 음식물을 녹여서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즉 산(열)을 이용하여 소화하는 것이다. 이때 한참 불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물을 부으면, 피시식~~~ 소화가 중지되고 불이 꺼지게 된다. 또한 물과 음식물이 섞여 있으면 위는 모든 것을 음식물로 인지하고 그 양에 맞는 위산을 분비하게 된다. 물 때문에 위산이 나온다면, 위산을 만드는데 에너지 낭비가 되고, 또한 위산과다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물을 마실 때는 물만 마셔야 한다.

        (“밥 따로 물 따로 음양식사법” 중에서 저자 이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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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따로 물 따로 건강 법칙

 

인체에 물은 매우 중요합니다.

1. 그래서 물은 많이 드시는 게 좋습니다.

2. 그러나 물은 안 드시는 게 좋습니다.

상기 1,2번은 둘 다 맞습니다. 물은 인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물이 부족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최소한 하루에

1.5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마시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식사 때입니다.

물도 우리 몸에 중요하지만 또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음식물을 먹으면 위산이 분비되어

위에 들어온 음식물을 녹여서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듭니다.

즉 산(열)을 이용하여 소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한참 불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물을 부으면, 피시식~~~

소화가 중지되고 불이 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음식을 섭취하기 2시간

전후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물을 마실 때 음식물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좋지 않습니다.

물과 음식물이 섞여 있으면 위는 모든 것을 음식물로 인지하고

그 양에 맞는 위산을 분비하게 됩니다. 물을 먹었는데도 위산이 나온다면,

위산을 만드는데 에너지 낭비가 되고, 또한 위산과다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물을 마실 때는 물만 마셔야 합니다.


 

[밥 따로 물 따로 요약]

1. 물은 식사 2시간 전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

2. 물은 절대로 음식물과 같이 마시지 않는다.

3. 밥 따로 국 따로만 제대로 지켜도 위장병 80%를 고칠 수 있다.

4. 위장 질환 및 암에서 벗어나려면 밥과 물을 따로 먹어야 한다.

5. 식사 때 국을 마시면 음식물을 오래 씹을 수가 없다.

6. 밥과 국이 위에 들어가면 위액을 묽게 만들어 소화력이 떨어진다.

7. 밥 따로 물 따로 실천하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

8. 체중도 줄어들고 식후에도 졸리지 않는다.

9. 소식을 해도 오래 씹으면 위에 포만감을 주고 위에 무리가 없다.

10. 밤 10시 이후에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11. 간식을 먹지 않는다.

12. 찬 음식 찬밥을 먹지 않는다.

13. 샤워는 아침보다 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

    (“밥 따로 물 따로 음양식사법” 저자 이상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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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따로 물 따로”에 의해서 질병이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물의 섭취나 특별한 운동을 통하여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허지만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생명은 세포의 조직으로 이루어지는데 세포는

영양물질과 공기를 먹고 활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어야 하고,

에너지는 먹고 마시는 음식물을 통해서 섭취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영양가 많은 음식물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제아무리 영양가가 많은 음식물을 섭취했을지라도

그것이 완전연소(소화)가 되지 않으면 음식물은 장내에 남게 되고

가스를 발생하여 많은 세포를 질식사하게 합니다.

음식물을 완전연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밥과 물을 한데 섞어 먹고 마시는 식사습관 때문입니다.

밥과 반찬은 고체로서 비유하자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장작과 같습니다.

장작은 마른 장작이라야 화력이 강한 것처럼,

음식도 밥과 물을 따로 먹고 마시므로

마른 장작과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장작에 물을 적시면 잘 타지 않는 것처럼 음식물도

물과 같이 섞어 먹고 마시면 위산이 희석되어

위산의 강력한 화력(火力)이 약화되어 불기운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체에서 음양의 균형과 조화가 깨지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하면 저절로 인체의 균형을 이루게 되고

호흡도 단전까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세포 구석구석까지

신선한 공기가 유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만 하면 누구든지

세포가 활성화되므로 질병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하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밥 따로 물 따로는 특정한 질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체가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세포 속에 들어있는

본래의 생명력을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식이요법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세포에는 본래 한 인간에게 신이 부여한

모든 선물이 온전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뜻대로, 즉 자연의 법대로 공식에 맞춰

생활하기만 한다면 세포에 스며 있는 신의 뜻과 능력이

때에 따라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하면 우선,

세포가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므로 얼굴이 윤택해 지고,

변이 잘 나오고, 밥맛이 좋아지며, 몸이 가뿐해지며

피로증상이 없어지며 피부가 아주 고와집니다.

그것은 몸속에 있던 노폐물이 완전히 연소되어 사라지고

세포가 생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이든지 근원적인 치유가 됩니다.

육체가 건강해지면 정신도 저절로 건강해 지는 법이어서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고, 늙고 병들어 추해진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삶의 희열과 가치를 느낍니다.

  (이상문 저 '밥따로 물 따로 음양 식사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