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제단 (2)


창세기 2014-06-2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heeha/52394.html

혹시 내가 늦어지게 되더라도,  그대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기반입니다.(딤전3:15) 
 
But if I delay, I write that you may know how one ought to conduct himself in the house of Go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base of the truth.(1 Tim. 3:15) 

저는 창문을 열고 싶어하지만 제 아내는 닫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조화하기 위해 제게는 헌신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헌신은 새롭고 색다르다. 후에, 당신에게 자녀들이 생기면 더 진보된 헌신을 필요로 한다. 당신은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올 때 하나의 말썽꾸러기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말썽꾸러기를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아나하임 교회가 너무 크고 여기의 장로들이 매우 강하고 직선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나하임에 오기를 꺼려한다. 그들은 더 작은 지방으로 가기를 선호한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올 때 더 크나큰 헌신이 필요함을 가리킨다. 결혼할 때 당신은 헌신을 필요로 한다. 당신에게 자녀들이 생길 때 당신은 더 큰 헌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당신이 교회 생활, 특히 아나하임에 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가장 큰 헌신을 필요로 한다.

최상의 헌신이 없이는 아나하임 교회 생활을 지탱할 수 없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오, 여기 아나하임에서는 얼마나 어려운가! 도처에 「경찰관들」이 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간단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당신이 그것에 순응할 수 없는 까닭에 당신은 그것과 조화할 수 있도록 제단을 쌓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성전 앞에는 제단이 있었으며 먼저 제단에서 머물지 않고는 누구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제단에 멈추어 서서 당신 자신이 죽임을 당하도록 자신을 제단 위에 얹어 놓음으로 당신 자신을 드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당신이 부활된 후 당신은 자유롭게 성전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제단의 의미는 무엇인가? 제단은 도살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생활은 좋지만, 나는 저 앞선 형제들을 참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는 교회 생활을 소중히 여기지만 저 앞선 자매들을 견딜 수 없다. 그들은 너무나 거룩하다. 그들의 거룩함은 나를 죽인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당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세겜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밧단 아람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당신에게는 벧엘에 있는 제단 위로 올라가 죽임을 당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겜의 제단은 개인적인 제단이지만 엘 벧엘의 제단은 단체적인 제단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의 제단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그 위에 당신 자신을 드려야 한다. 나는 이것을 여러 차례 행하였으며 여러 해 전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제 누구도 나를 마음 상하게 할 수 없다. 죽임을 당한 사람은 마음 상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이 말을 받아들여 엘 벧엘에서 제단을 쌓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히 교회 안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당신은 딴 곳으로 가거나 냉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기분 좋을 때에는 집회에 올 것이고 기분 나쁠 때에는 집회에 오지 않을 것이다. 마치 교회는 교회이고 당신은 당신이며 교회와 당신은 서로 무관한 것 같다. 당신이 냉담하게 되지 않는다면 마음이 상하여 떠날 것이다. 교회는 마음 상하게 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나는 오래 전에 중국 본토에서 교회 생활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 누구도 나를 더 이상 죽일 수 없다. 나는 여러분으로 인해 마음 상할 수 없다. 이것은 벧엘에서 쌓은 제단의 체험이다. 여러분이 여전히 마음 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세겜에서는 제단을 쌓았는지 모르지만 벧엘에서 제단을 쌓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벧엘에서 제단을 쌓는 것은 교회 생활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목적을 가지고 특별히 교회 생활을 위하여 주님께 자신을 드려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결코 마음 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당신은 시련들과 시험들과 고난들에 대비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러한 제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벧엘에서의 체험이요, 교회 생활의 체험이다. 이 제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28장부터 35장까지를 다시 읽을 때, 당신은 제단이 없는 상태에서 최고의 제단인 엘 벧엘의 제단에 이르기까지의 진보를 주목할 것이다. 교회 생활을 위하여 우리에게는 명확하고도 특별한 헌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여, 지금 저는 제가 거룩하고 영적이고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집을 체험하고 그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당신께 철저하고 특별한 헌신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분의 집 안에서 하나님을 체험해야 하며 하나님의 집 안에서 행하여야 한다. 이것은 명확한 헌신과 특별한 제단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과거에 체험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제단은 이것에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벧엘의 제단에서의 최상의 헌신이 필요하다. 과거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헌신을 주제로 많은 책들을 펴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들 중 누구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한나 스미스 여사(Mrs. Hannah W. Smith)의 유명한 책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비결」은 헌신의 문제에 큰 강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녀는 심지어 헌신을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비결로까지 여기지만 교회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스미스 여사와 많은 연관이 있었던 케스윅집회(The Keswick Convention)도 또한 헌신을 강조하였다. 사실상 초창기 케스윅 집회의 메시지들은 헌신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교회 생활을 위한 헌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기독교 안의 거의 모든 부흥회에서 헌신이 강조되지만 하나님의 집을 위한 헌신에 관해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생활을 보지 못하였고 그들의 모든 제단들이 기껏해야 「세겜」에 쌓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벧엘에 우리의 제단을 쌓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고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교회 생활을 위한 최상의 헌신을 해야 한다. (창 LS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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