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골로새서) (2)


골로새서 2014-06-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heeha/52344.html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사로잡아 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인 교훈을 따른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닙니다.(골 2:8)
Beware that no one carries you off as spoil through his philosophy and empty deceit, according to the tradition of men, according to the elements of the world, and not according to Christ; (Col. 2:8)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상의 초보적인 교훈에서 떠났는데, 왜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례에 복종합니까? (골 2:20)  
If you died with Christ from the elements of the world, why, as living in the world, do you subject yourselves to ordinances: (Col. 2:20)
 

그들은 자신이 너무나 낮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섬길 수 없다고 여기고, 중재자(仲裁者)를 통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이 천주교 안으로 흡수되어,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접하려면 중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천주교는 원칙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중재자를 사용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것이 문화의 요소를 가지고 교회 안에 흘러들어온 적(敵)의 간사함이다. 이것이 바로 골로새서가 쓰이던 당시 적(敵)이 하고 있던 짓이다. 적의 계략은 유대의 종교와 이방의 철학을 혼합시켜 교회 안으로 보내서 그 혼합된 문화로 교회를 물들게 하려는 것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문화, 특히 금욕주의는 매우 좋은 것이었다.

금욕주의는 좋은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정욕을 다스릴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문화를 가지고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사탄의 계략은, 가장 발달된 문화의 양상을 그리스도에 대치(代置)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주후(主後) 1세기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그리스도는 다른 것, 특히 좋은 것들에 의해 대치되어 왔다. 기독교 안에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찾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실제는 찾을 수 없다. 많은 것들이 그리스도의 대치물(代置物)이 되었다. 예를 들면, 성경을 가르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적에 의해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대치물로 이용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접촉함이 없이 성경을 연구한다. 사탄의 간교함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어떠한 일도 그리스도 자신과 대치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일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관계 없이 그들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한다. 오늘날 종교 안에 있는 어떤 목사나 교역자들은 그들 자신의 개성을 그리스도에 대치시킨다. 어떤 사역자들은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개성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끌어들인다.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목사를 칭찬하는 이유이다. 그러한 강한 개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장점이나 겸손으로 사람을 매혹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친절하고 인정(人情) 많은 사역자가 있는 특별한 교회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도 우리의 성격과 행위의 좋은 것으로 그리스도를 대치할 수 있다. 만약 주님을 섬기는 어떤 형제가 죄를 지었다거나 교만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주께로 나아오는 것을 막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 형제의 타고난 온유와 겸손은 죄나 교만보다 더 막고 손상시킨다. 죄가 없어야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좋은 행위나 성격과, 그리스도 자신과의 차이를 분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행위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가 없으면, 우리도 우리의 좋은 행위를 그리스도에 대치시킬 수 있다. 

교회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므로, 교회를 문화로 구성된 사회로부터 분리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이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분별되어 있다. 우리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또 사회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승려들이나 수녀들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교회 생활을 하려면 정상적인 사람의 생활을 해야 한다. 이제 문제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회에서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문화적 배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는 주 안의 성도로서 서로를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형제자매에게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교회 생활에서 작용하는 그러한 영향을 통해 그리스도가 문화로 대치되는 것이다. 바울이 골로새의 성도들에게 서신을 쓸 때에는 수많은 주의(主義), 즉 유대교와 금욕주의와 신비주의와 그노시스교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주의(主義)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화의 수준 높은 산물(産物)이었다. 그것들은 좋은 것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대치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를 쓴 바울의 목적은, 교회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대치물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교회 생활은 오직 그리스도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성분과 본질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 짧은 서신에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수많은 고상한 표현들이 쓰인 이유이다. (골 L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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