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6) 교회 역사를 주의 깊게 연구한다면,수세대를 거쳐 항상 성령의 한 흐름만이 흐르고 있었음을 발견할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일했지만 그들 모두가 이 하나의 흐름 안에 있었던..


기도와 주님의움직임 2013-05-2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arry1219/48306.html

겔 47: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마 11:30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오순절날 시작되어 수세대를 거쳐 바로 이 순간까지 흘러온 이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오직 하나이다. 이것이 가는 곳마다, 이것이 흐르는 곳마다 많은 흐름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흐름만이 있게 된다. … 이 흐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안디옥으로 흘렀고, 안디옥에서 아시아로 돌이켜 그곳에서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주님은 이 흐름이 유럽으로, 마케도니아로 향하길 원하셨는데, 이 흐름 안에서 일하고 있던 사도 바울은 그 점에 관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 흐름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져서 그도 그 흐름과 함께 가야 했다. … 마케도니아에서 이 흐름은 고린도로, 로마로, 스페인으로, 유럽 각 지역으로 거쳐 갔다. 역사는 이 흐름이 유럽에서 서방의 미국으로 흘러갔고, 서방에서 동방으로 그리고 남방으로 흘러갔음을 말해 준다. 교회 역사를 읽을 때 우리는 이 흐름이 결코 멈춘 적이 없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흐름이 흐르는 곳마다 오직 하나의 흐름만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하나였고, 안디옥에서,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이 흐름이 흐르는 모든 곳에서 하나였다. 결코 두 흐름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우리는 분명해야 한다. 오직 하나의 흐름이 있는 것이며, 여러분은 이 한 흐름 안에 자신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신성한 흐름(소책자), 40-42쪽)

 

여러분이 교회 역사를 주의 깊게 연구한다면, 수세대를 거쳐 항상 성령의 한 흐름만이 흐르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일했지만 그들 모두가 이 하나의 흐름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이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얻는다면, 여러분은 오늘날에도 흐르고 있는 바로 이 한 흐름 안으로 인도될 것이다.

 

니 형제님은 한 번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느 곳에 성령의 흐름이 있는지 형제님이 깨달았다면, 그 후에는 다만 그 흐름과 함께 가십시오. 그곳에서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형제님에게 안식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쉴 수 있는 침대일 것입니다. 성령의 흐름 안에 있는 일은 짐이 아니라 안식입니다.” 그러한 말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때로부터 나는 반드시 성령의 흐름과 함께 가야 한다는 공과를 배우기 시작했다. 성령의 흐름이 없이는, 나는 주님을 위해 어떤 곳으로 일하러 가거나 또는 어떤 일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성령의 흐름이 없는 일에 관한 한, 나는 그런 일에 관여할 수 없고, 그 일을 할 자격도 없으며, 그 일을 하라고 하는 주님의 어떠한 명령도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은 단지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 이러한 찬송시가 있다. “내 맘대로 안 가고 / 주의 인도 좇으면 / 생수 넘쳐 흐르고 / 맘에 빛이 비취네(내가 선택한 곳으로 가지 않고 /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가리 / 그곳에 생수 흐르고 / 우리 어둠 낮 되네(한국복음서원 찬송가 650장 1절 영어 가사 직역))” (신성한 흐름(소책자), 43-44, 49-52쪽)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신성한 흐름, 신성한 조류를 보여 준다. 이 흐름은 하늘의 보좌로부터 흐른다(계 22:1). 사도행전에서 있었던 일들은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그림과 동일하다. 하나님과 보좌에 앉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흐름이 시작되었고, 사도행전에서 이 흐름은 땅으로 흘러왔으며, 첫 번째 정류장인 새 예루살렘에서부터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은 이 흐름 안에 있었다. 이 흐름이 진행되면서 그들은 다만 이러한 흐름이 흐르는 대로 움직였다.

 

사도행전에 있는 흐름의 중심적인 의미는 부활과 승천의 의미를 아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 의해 살지 않고 그들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살며, 어떤 방식이나 방법에 따라 행하지 않고 그들의 힘과 능력과 방법과 방식이 되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행한다. … 그들은 자신들이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항상 신성한 한 흐름 안에서 몸 안에서, 몸을 위하여 행동한다. 우리 모두가 … 부활 안에서 살고 승천 안에서 행하며,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흐름 안에서 몸 안에서, 몸을 위하여 살고 행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빛 안에서 본 신약 개관, 155-158쪽)

추가로 읽을 말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빛 안에서 본 신약 개관, 6-8장; 세계정세와 하나님의 움직이심, 5, 7장

 

출처: 한국복음서원<아침부흥 거룩한 말씀>

http://www.kgbr.co.kr/mediazone_manna.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