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 조회수 227
http://blog.chch.kr/Hamm/8357.html
사람에게는 모두 자아가 있다.
자아란 자신이 의식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인간의 발달단계를 보면
사람은 자아를 키우면서 살아간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를 성찰하며, 자아를 통합한다.
그것이 사회가 가르치는 인간의 발달단계이며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발달지체장애에 해당된다.
하지만 우리는 자아를 끊임없이 내려놓으라는 말을 듣는다.
예전에 청지기 집회, 그러니까 전국 중고등부온전케하는 집회에서
벌점이 15점이 넘어서 회개문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내용이 우리의 안에
우리는 너무 크고 하나님은 너무 작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이 우리 안을 채우기를 배운다.
인간에게는 자아 외에도 그림자가 존재한다.
자아가 자신이 의식한, 좋다고 여기는 자신의 모습이라면
그림자는 자신이 의식하지 않는, 좋지 않다고 여기는 자기의 모습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그림자를 인정하고 자아와 균형을 맞추라고 한다.
그것이 건강한 정신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좋은 부분만 내세우고 좋은 부분만 키워나가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성직자의 자녀를 그 예로 들었다.
성직자의 자녀들 중 삐딱선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간혹 자녀에게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만 자녀에게는 나쁜 모습, 못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남에게 화풀이하는 것, 그것이 그림자를 잘못 푸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보았을 때 회복의 2세가 떠올랐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그림자를 해결한다는 대목에서가 아니고
성직자의 자녀부분에서.
글쎄, 책에서는 성직자가 너무 좋은 모습, 자아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 중에 삐딱선을 타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글쎄. 과연 그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회복의 2세가 답답증을 한 번은 느끼고 나가긴 한다.
뭐, 나만 그런가? 아님 말고.
글쎄 그건 아마도 음 나의 추측으로는,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자신이 찾은 주님이 아니어서가 아닐까.
교파에서 있다가 혹은, 무교였다가 회복으로 들어온 청년들이 내게 말한다.
넌 복받은거라고.
글쎄, 복은 복일테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보았을 때 나도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당연시여겨온 것.
의심해볼 여지가 없었던 것.
머리가 커가면서 사회에서 던져주는 지식은 쌓이는데
나의 결론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나와있는 것.
어쩌면 삐딱선을 한 번 타본 회복의 2세들이 돌아와서 주님을 잘 누리는 건
그들에게 그들 스스로가 찾은 답이 있어서가 아닐까.
답을 못찾았다는 것이 아니다.
답은 있다. 확신도 한다.
하지만, 뭘까 . 그건 우리 엄마가 던져준 답이다. 아빠가 알려준 답이다.
뜨겁지도 않다.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다.
주님은 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신다는데 내가 그 짝이다.
엄마가 언젠가 란 형제님인가 암튼 그 형제님의 말씀을 해주셨다.
자신의 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냐고 했을 때
아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그것이 너무나 기뻤다고.
하나님은 경외한다. 하나님은 사랑한다.
어쩌면 그것이 어렸을 때부터 천천히 조금씩 나를 적셨기에
내가 의식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암튼 그렇다고. 그렇다고 다시 엄마 뱃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런, 배가 고프네.
트랙백: 수신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