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회 주일저녁 온전케하는 훈련이 점점 무르익어가는 것 같아요.
형제님들 두분씩 준비를 해오시는데(50대,40대 동역), 진리와 영과 생명
그리고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자료준비를 보면, 연구와 추구와 기도를 많이 하시는 것이
전에는 보기 쉽지 않던 광경들이네요.
교회사 전체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든지(천주교, 국교회, 속생명, 형제회, 세대주의,
개혁신학..)
성경번역본들 (구약 70인역, 흠정역(KJV), 개정역, 미국표준역, 그외 카톨릭이 인정하고 동방정교는 불인정한 외경, 또는 이단들의 이슬람 코란, 몰몬경, 여호와증인의 신세계번역.....
그리고... 회복역)
여러 번역본들의 특징, 또 이단적 성경이 왜, 무엇이 틀렸는지 한두개 꼭집어내어 분별하는
것도 듣고요. 또는 헬라어 히브리어로 성경을 맛보는 것도 있습니다.
모두가 주님을 깊이 추구하도록 다양한 접근 방법이 교회가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거기에 더하여 전체요리가 아주 맛있는데요, 집회전에 새로운 찬송 1~2곡을
살아있는 방식으로 배우는데 아주 신선한 충격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누구도 자신안에 갇혀있을 수가 없어요.
이번에 시편 마지막 메시지처럼 찬송으로 전쟁합니다.^^
이런 주제 어떠세요?
『주님의 회복의 관점에서 성경을 다룸』
내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경을 볼때, 사실 -> 계시 -> 이상 을 갖게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본문의 사실 -> 영안에서 영을 통하여 계시받음 -> 움직임을 갖는 이상이 됨
도표를 사용하여 보기 쉽게 정리하면요,
* 사실 - 생각 - 이해 - 객관적
* 계시 - 영 - 접촉 - 주관적
* 이상 - 몸 - 헌신 - 실천적
첫번째로, 성경 본문의 사실은 주로 훈련받은 냉철한 생각에 의해 확인되어지며
단어들, 문법적 구조들의 설명, 참고자료 또는 원어의 해석들로 합당하게 장비합니다.
두번째로, 저도 늘 성경본문을 읽을때마다 내적 목마름으로 인해 계시를 얻기위해 기도를
하지요. 말씀이신 주님을 접촉하여 빛비춤을 얻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사실과 달리 그 실재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말을 그만 멈추라하면 멈추는 영향력이 있지요. 그 옷 입지 말라하면 멈추는 영향력이요...
그러나 지식은 변명하며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합니다.
계시 곧 빛은 두 종류로 체험되는데, 하나는 심판의 빛으로,
또하나는 축복의 빛으로 비추십니다.
먼저 이 심판의 빛으로 처리되고, 파쇄되지 않는다면 두번째 축복의 빛은 없습니다.
아, 이것이 제게 얼마나 공급이 되던지요!!
이런 순환의 과정이 누가 신선하고 살아있고 생명과 빛가운데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주님과의 교통 -> 빛 -> 피 -> 생명.
많은 경우 빛이 올때 자백하고 피를 필요로하는 시간들이 적었음이 제 안에 낡아짐의
원인인것을 보게 되는군요. 계속 이러한 교통과 빛과 피의 씻음으로 아닌 것들을
헐어내고 파쇄되는 체험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이 시간낭비같고, 아프고, 괴로운것 같지만 이때가 바로 주님이 더해지는 시기!!
세번째로, 이렇게 신성한 계시들이 반복해서 올때, 이 신성한 빛은 우리로 영적 시력을 갖게하여
이상이 되게합니다. 이상은 우리에게서 '움직임'을 갖게합니다.
이상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자연스럽게 헌신하게 됩니다.
시간과 물질과 자녀와...교회의 길.....고난을 피하는 길은 아마도 헌신하지 않는 길일것입니다.
물질에 어려움이 없고, 자녀들이 다 잘되고....그것은 가짜다라고... Lee 형제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 주의의 회복은 바로 하나님의 집,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인데,
제가 얼마만큼 건축에 대한 계시와 이상이 있는지 제 현재 상태의 헌신에 대한 열매로
저를 알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건축은 내안에 그리스도가 자라고 온전케 될 뿐아니라, 모든 사람이 건축되어
주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부숴지고 파쇄되었는지 그 만큼 건축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상이 있는만큼 수고하며, 자신을 버리고 그 길을 가게합니다.
어떤 지체가 주일날 혹은 다른 집회에 보이지 않을때, 이상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동과 태도와 그 부담은 다르게 나타나지요...
하나님의 건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되는것도 아니고,
신성한 계시가 주관적으로 비춰지고, 계시가 반복되어 이상이될 때
어떤 존재의 헌신의 움직임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군요.
이땅에 가장 아름다운 건축의 길, 그것은 바로 "사랑"이며
가장 깊은 십자가는 바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