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어떤 사람들을 얼마 동안 제쳐두셨다가 그들의 삶에서 다시 일하시기도 하십니까?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하지만 우리의 의도가 진정으로 주님을 위한다면, 주님은 우리가 일하지 못하도록 중단시키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넣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관념은 항상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을 담기 위해서 지어진 그릇들이라는 것을 잊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관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없고, 주님의 생각이나 주님의 일을 추구할 갈망이 없습니다. 또한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지만 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관념이 매우 강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릇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모르며, 그리스도를 담는 목적을 위해 거듭났다는 것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니은 우리가 살아 있는 그릇들로서 그분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실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채우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합니다. 어느 날 우리가 이것을 볼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관념 전체가 바뀔 것이고, 우리 온 존재가 변혁될 것이며, 우리의 일과 활동이 절대적으로 다른 영역, 즉 그리스도 자신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활동을 멈추고 매일 "주여,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열려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빈 그릇입니다. 제가 당신을 담을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여, 그러나 저는 당신을 담을 수 있습니다. 오셔서, 저를 채우시고 당신 자신으로 저의 온 존재를 적셔주소서."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올바른 상태와 위치입니다.
만약 우리의 온 일생 가운데 우리가 이러한 것을 보는 날이 없다면 우리는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일찍 볼수록 좋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보기 전에 유대교 안에서 활발하게 행하고 일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그를 땅에 거꾸러뜨리셨고, 그는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그의 온 존재는 행하는 것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그 속에 계시하셨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시고, 그가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었으며,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형상을 이루고 계시고, 그가 그리스도이게서 끊어지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두며, 그리스도께서 그에게서 흘러나와 그 영의 열매를 맺으신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성한 관념이며, 우리는 이것을 볼 때 행하고 일하는 데서 구출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며, 다만 그리스도를 담는 빈 그릇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이것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활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ㅁ많은 것들이 그들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W. Lee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