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표현적인 속성이다. 계시록 21장 23절은 말하기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한다. 천년왕국에서 해와 달의 빛은 더 강렬해진다(사 30:26).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는 해도 불필요하고 달도 불필요하다. 해와 달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것이지만,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 곧 신성한 빛이 훨씬 더 밝게 비췰 것이므로 해와 달이 필요 없을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등이신 어린양이 신성한 빛의 표현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성을 조명(照明)하기 위해 빛이신 하나님으로 비출 것이다. 그러한 신성한 빛이 거룩한 성을 밝게 비추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이든 사람이 만든 빛이든 다른 어느 빛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자연적인 빛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해와 달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거하는 처소가 그 어느 것보다 훨씬 밝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필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만든 인공빛도 역시 필요 없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그 거룩한 성 안에서 빛이 되실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표현적인 속성인 신성한 빛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에 적용된다. 요한일서 1장 5절부터 7절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빛이시므로 만일 우리가 그분과 교통한다면 우리는 신성한 빛 안에서 행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오기 전일지라도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이 표현적인 속성을 누릴 수 있음을 가리킨다.
거룩은 우리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들 중 하나이다. 계시록 4장 8절은 이르기를, “네 생물이 …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한다. ‘거룩하다’는 말이 세 번 쓰인 것은 이사야 6장 3절에서처럼 하나님이 삼일(triune)이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는 세 가지 시제가 하나님의 실존하심을 언급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되 삼중으로 거룩하시다는 것인데,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의 질(質), 즉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 자신의 현재 어떠하심은 거룩하다.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는 것은(히 12:10) 그분의 본성의 질(質) 즉 그분의 현재 어떠하심의 질에 참여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 16절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 거룩한 분은 삼일 하나님 곧 선택하시는 아버지, 구속하시는 아들, 거룩게 하시는 영(벧전 1:1-2)이시다.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본성을 그분이 택하신 자들 안으로 분배하심으로 그들을 거듭나게 하셨고(벧전 1:3), 아들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피로써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하셨고(벧전 1:18-19), 그 영께서는 아버지의 거룩한 본성에 따라 그들을 거룩게 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들을 분별하셨는데, 이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자처럼 아버지의 거룩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활 방식에서 거룩하게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속성은 의(義)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실 뿐 아니라 의로우시기도 하다. 거룩은 하나님의 내적인 본성에 관계 있는 반면에 의는 하나님의 외적인 행동, 방법, 행위, 활동과 관계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이 의롭다.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는 정의와 의에 관하여, 그분의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어떠하심이다. 하나님은 공정하시고 옳으시다. 그분의 정의와 의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어떠하심은 무엇이든지 그분의 의를 구성한다.
계시록 15장 3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은 그분의 행동들인 반면에 하나님의 길들은 그분의 다스리는 원칙들이다. 하나님의 길들(방법들)은 그분의 원칙들에 있어서 의롭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길들을 안다면 그분의 행사들을 본 다음에야 그분을 찬미하려고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록 그분의 행사들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해도 당신은 하나님이 어떤 것들을 행하실 때의 통제하는 원칙들을 알기 때문에 그것들이 도래할 것임을 알 것이다. 하나님의 길들은 그분의 원칙들에 따라 의롭다.
로마서 1장 16절, 17절에서 바울은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의 근원과 동기이다. 에베소서 2장 5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본 요소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다. 법률적으로 말해서 사랑과 은혜는 요동할 수 있으나 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 안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복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심으로써 그분의 의를 내보이셨다. 그분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죄들을 용서하셔야만 한다는 것을 온 우주에게 선포하신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그분에 의해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셔야 하는 법적인 의무를 갖게 되셨다. 우리를 기뻐하시든 기뻐하지 않으시든 하나님은 그분의 의에 따라 반드시 우리를 용서하셔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죄에 대한 영수증으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지적할 때마다 반드시 그 사람을 용서하여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선택의 여지가 없으시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하나님의 의(義)의 기초 위에 놓여 있다. 그 기초는 우리의 열심이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의 흔들릴 수 없는 기초인 하나님의 의이다(시 89:14).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심으로써 그분의 의를 내보이셨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그분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견고한 기초이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께로 분별되는 것이다. 또 그것은 하나님 아닌 모든 것과 다르고 구별되는 것을 뜻한다. 이같이 우리는 일반적이지 않고 다르게 된다. 우주 안에서 하나님 홀로 거룩하시다. 그분은 모든 것과 다르시며 구별되신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그분의 구별되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죄가 없고 온전할지라도 하나님과 하나가 아니라면 거룩하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때 우리는 거룩하다.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더욱 거룩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안에 가짐으로써 거룩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으로써 더 거룩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되고 하나님으로 침투되고 흠뻑 적셔질 때 가장 거룩하게 된다. 결국 이것은 거룩한 성이라 불리는 새 예루살렘(계 21:2, 10)을 산출할 것인데, 그 성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위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 충만되고 하나님으로 흠뻑 적셔지고 하나님과 하나 된 성 곧 하나님으로 거룩하게 된 거룩한 존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