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건축에 있어서 모든 것이신 그리스도 (겨울훈련#7)
우리에게 다니엘이 더 익숙하지만 스가랴서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다고 합니다.
14장으로 되어 있는 스가랴서는 66장으로 되어 있는 이사야서보다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압축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학개의 신언으로
강화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상을 보고 체험하고 누려서 채워질필요가 있으므로
스가랴의 신언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성전입니다.
사탄은 거듭거듭 성전을 파괴하려하고 있습니다.
이를위해 그리스도를 다른것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회복 안에서도 실제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으뜸과 중심과 전부가 되는것이 낮아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관념, 교리, 가르침으로, 다른방식의 실행, 다양한 활동과 운동,
조직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누리는데서 빗나가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활 섬세한 방면까지 채워지고
우리의 목표요 전부요 일이 되기원합니다.
스가랴는 신언을 통해 성전건축의 일을 계속진행하도록
격려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그의 사역은 항상 주님을 접촉하는 제사장 직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나무들 사이에 서있는 한사람인
그리스도의 이상에 대한 것이 었습니다.
이것은 실망하고 더 이상내려갈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골짜기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그들가운데 함께 서계심을 말하고 있어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 결혼, 그 직장, 그 상황에서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겨울훈련#8)
형제님께서 서두에서 주의 회복의 장래에 대해
Lee형제님의 염려에 대해 무거운 부담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메시지가 우리에게 의미가 되지않고,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 우릴 통제하는 이상,
생명이 되지 않는 다면 우린 기독교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빗나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중심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간교하게 주의 회복의 교회들 안에 들어와 영향을 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수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파수꾼이 되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회복의 본질과 본성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을 성취하도록,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를 이루도록, 우리가 건축물의 일부가 되도록...
성경전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현재시대, 은혜시대, 교회시대의 특징은 건축입니다.
하나님의 건축물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단체적인 표현,
하나님의 확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건축을 추구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그분 자신을 사람과 연합시키는 것이고,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 결혼, 그 직장, 그 상황이나,
그 교회생활, 그 봉사나 이것이 그분자신을 우리와 연합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표현하려면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푸둘이 큰 강아지 흉내를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혼을 적셔서 비추어 나가야 합니다.
"주님, 나와 연합되십시오. 저를 단체적인 표현의 일부가 되게 하소서!!!
슥 3:9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돌에 새길것을 새기시는 것은
구속과 구원과 건축을 위해
돌이신 그리스도에게 공들여 일하신 것임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새겨지며 잘려지고 계셨고,
이 돌이 일곱눈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곱눈의 옮겨부음을 통하여, 아가서에서 술람미가 되게 하고,
요한복음에서 많은 밀알의 재생산이 되게하고,
로마서에서 몸의 지체들이 되게 하고,
히브리서에서 같은 형상으로 형태지우고,
계시록에서 NJ의벽옥이 되게 하게합니다.
주여! 우리를 몸을 위해 신화되게 하소서!
신성한 계시의 고봉을 더 만지게 하소서!
이상이 심판하고 보존합니다 (겨울훈련#9)
이번 메시지를 통해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등잔대로서 그리스도의 재생산이고 그영의 복사판입니다.
이 용어는 익히 알고 있지만,
출애굽기와 스가랴서와 계시록에서
금등잔대에 대한 진리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보면,
성막에 있는 등잔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스가랴서의 등잔대는 일곱배로 강화되신 생명주시는 영,
계시록의 등잔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앞의 등잔대의 계시가 발전되어 그리스도의 재생산이요
그 영의 복사판인 것입니다.
"이상"이 우리를 죽이고 심판하고 보존한다고 합니다.
교회가 그 영의 복사판으로 금등잔대라는 정도까지 "이상"을 본다면,
우리의 육체를 사용하기를 두려워 할 것입니다.
육체를 처리하기 위해서,영적으로 승리하려고 하고,
그 영으로 죽음에 넣는 실행을 하는 것보다,
교회에 대한 이상이 빛날 때 점검받고 육체를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이상이 빛을 비추어 그런 말과 행동과 태도를 심판할 것입니다.
무엇이 우릴 교회로 만듭니까?
우리는 그영을 계속 마시어 몸 안에서 쏟아 나오게 해야 합니다.
영이 많으면 교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교회라고 말할 때,
우리가 완전히 그 영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등잔대의 일곱눈은 두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심판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
어디서 왔냐? 무엇을 하고 있냐? 그 태도는 무엇이냐? 무슨말을 하고 있느냐?"
우리의 죄악됨, 사상, 이상한 감정, 야망, 자기 높임,
감추어져 있는 것 들을 감찰하시고 살피십니다.
때론 우린 그 눈을 피하고 싶지만
"변화" 되기 위해서 기도안에서 주님께 완전히 열고,
주님의 등이 혼의 모든 방을 살펴서 비추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일곱 눈의 또 다른 주입하는 기능을 체험합니다.
'열린 사람이 변화를 가장 많이 체험하는 사람" 이고,
또한 빛이 희미한 등잔대에
기름을 공급하는 기름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간사회에서는... (겨울훈련#10)
왜? 예언과 관련하여 사람의 영이 필요한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 시작되는
슥12:1 에 사람의 영이 나와야 하는가? 이것은 예언의 본성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이나 견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말하고 있는 분이 영이십니다.
그리고 영을 가지고 접근해야 영적인 것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훈련집회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test를 할 때
영을 사용하는 것이 훈련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분위기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에 의해서만 보이지 않는 장면들을 이해할 수 있고,
영은 활동적이고 움직이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번집회에서 다니엘과 스가랴서를 영 안에서 대하지 않았다면
다만 이야기에 그쳤을 것입니다.
스가랴서에 여러 방면으로 계시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려야 합니다.
1장~6장은 위로를 위한 이상,
7장~12장은 격려를 위한 예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다만 신언자가 아닌 동반자로 동정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우리를 소유하기 위해 측량하는 줄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를 만지면 그분의 눈동자를 만지는 것으로"
아침부흥시간에 자주 휘파람을 부시는 부르고 모으시는 산비둘기로"
"은총과 묶는 끈들로서 목양하시는 목자로"...
지금 우리도 어떤 상황이든지 이런 방면의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하기 원합니다.
지금 인간사회에서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가?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표시로서,
"1. 불법: 테러,사기 2. 사탄의 능력:락뮤직, 힙합, 사탄의 능력과 소통하고 있음
3.박해:종교, 정부, 거룩한생활을 핍박
4. 진리를 던져버림 : 절대주의, 상대주의,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것
5. 인간지식의 증가: 기술적으로 우주과학등 폭발적
6. 마멸: 약, 염려, 자살등 우리를 약한 불로 끓여 버림
7. 혼을 파는 것: 혼적능력, 정신세계, 심리적인 힘으로 혼을 통제, 사로잡음.
그리고 세계정세는 점점 나빠 질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말씀 드려야 합니다.
"주님, 지금은 시대를 완결할 때입니다.
주님, 이러한 때에 당신을 향한 저의 사랑을 다시 불붙여 주소서."
순상업의 사악함 대 신성한 가치관(겨울훈련#11)
이번 훈련 중 가장 기대가 되었던 메시지였습니다.
수년 전 에바그릇의 이상이라는 말씀을 듣고 인상이 깊었었는데,
다시 전진되어 들을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안에 상업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과
상업의 사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형제님깨서 서두에 이 말씀을 끌어 내도록
영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훈련하라고 하였고,
"듣는 사람을 거슬러 대항하지 않고", "함께 공동의 적과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말씀이 해방됐음을 감사하고
우리가 어떻게 수고해서 돈을 벌고, 어떻게 쓰고,
재물을 대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분명졌습니다.
단지 부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부자가 되려는 유혹과 욕심에 대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상업의 악과 사악함" 에 대해 말할 때,
형제님은 "순상업"은 정치보다 더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순상업은 돈을 사용하여 돈을 버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산출하지 않고 어떤 수고도 하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그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술을 터득해서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농사로 산출물을 파는 것,
바울같이 천막을 만들어 파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을 예측하여 그저 미리 사고 5배 비싸게 팔아
무역 그 자체로 돈을 가능한 많이 뺏어 와,
인류 사회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상업을 교란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런 상업은 이제 계시록18장에서 바빌론과 함께 무너질 것이고
이때 두반응하는 무리,
애통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하는 사람의 일부가 될 것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상업의 악함에서 철저히 구출되어야 합니다.
"상업적인 생각" 에 대해 교통할 때 부끄러움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단지 베드로에게 이런 관념이 있는가?
눅19장을 사탄의 상업적인 원칙에 따르면
당연히 늦게 온사람은 적에 받아야 하고
일찍 온사람은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베드로의 이런 상업적 생각은 주님을 만났을 때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가운데 이런저런 헌신을 하고 과정을 통과하고 봉사를 했다고
그에 따른 보상을 주님께 은연중
내가 무엇을 얻게 되겠습니까?" 라고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상업적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왕국 보상을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왕국은 판매용이 아닙니다." 왕국은 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찬355장' 오! 어떤 댓가 들어도 희생이 아닐세!!!
대신 우린 그리스도 더할 수 없는 보내로움과
교회의 지극히 큰 가치를 귀히 여기는 "신성한 가치관" 을 가질수 있기 원합니다.
제사장직분과 왕의 직분으로 은혜를... (겨울훈련#12)
스랴서에 있는 위로와 위안과 격려에 관한 이상은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입니다.
이것은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는
대제사장과 왕 모두로서 하늘에서 사역을 통해 이땅을 다스리고
우리의 상황을 돌보고 계십니다.
특히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중보기도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또한 신성한 제사장직분을 수행하심으로
우리의 "공허, 탄식, 한숨, 썩음, 묶임, 부패, 속박과 같은
죽음의 모든 부산물로 부터 우리를 생명 안에서 "철저히" 구원하십니다.
결국 우리를 변화시켜 아들의 형상과 같게 할 것입니다.
제사장직분은 하나님의 접촉하고 하나님과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같은 형상이 되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인데,
에드막 형제님은 "가장 최고의 높은 일은 하나님을 주입 받으며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을 비추어 내는 것 (고3:18)" 이라고 써 놨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그리스도를 누리는 사람,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 (음식, 의복, 거처),
절대적이고 철저하게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분위기, 흥미),
증거를 지니는 사람,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는 사람" 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건축을 하는 생활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절의 은혜의 보좌에서 은혜가 흘러 나오고,
계시록 22:1절에 하나님과 어린양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이 두구절을 비교해 볼때 밝아졌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만질 때
그 영께서 우리 안에 흐르시는데,
이 생명의 영의 흐름은 때맞추어 얻는 도움이고,
이 도움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견디기 힘든 환경일 지라도
은혜의 보좌를 접촉할 때 우릴 신선하게 하고 적시시어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명수가 우리를 통해 흐르도록 허락한다면
이 "흐름"은 우릴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이끌 것이고,
우리가 그분의 거처, 영적인 집, 거룩하고 왕들인 제사장 체계가 되도록
생명 안에서 건축되게 할 것입니다.
이번 겨울 훈련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2012년 겨울 훈련집회를 마치고...
변함없이 2012년 한 해를 마감 하는 시점에 겨울 훈련집회를 마쳤습니다.
집회 전에 좀 망설임이 있었지만,
습관처럼 집회 등록을 하고 이번에는 그냥 외적인 것 만 관심하지 않으리라...
결심과 일련의 환경을 통하여 제 마음이 낮아지고 피폐해져서 인지
동역자 형제님들의 말씀이 꿀송이 처럼 달았고,
6일 동안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마감을 했습니다.
이번 집회는 그 동안 훈련집회중 최고로 좋은 집회였습니다.
특히 다이엘과 스가랴서에 계시된 예언의 말씀들이 우리를 깨웠습니다.
좀 느슨하게 하였던 교회생활에 정신이 번쩍나게 하는 말씀였고
잠자고 있었던 헌신의 영을 깨워주었습니다.
좀 타협하려 했던 불순한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고,
세상을 사랑하려 하였던 마음에 다시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을 붙였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특히 인상이 깊었던 몇 가지 항목을 말씀드리면,
1. 이상을 보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
이상을 보지만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체험된 이상이 필요하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존재 안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 이상, 생명이 된 이상,
그래서 우리 생활을 통제하는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를 죽이고 심판하고 보존하는 이상,
거대한 인간정부에 대한 이상, 금등잔대의 이상, 상업의 악함에 대한 이상...
2. 절대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다니엘 같이 중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80세 노인일 될 때까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이스라엘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
세상 음식의 유혹을 이기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순교의 영을 가지고
우상 숭배의 유혹을 이기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그분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것만을 두려워 하는 사람
3. 하나님의 갈망과 자신을 즉시 연결시켜야 한다.
다니엘은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갈망을 만지자 마자 즉시 자신을 그 갈망에 연결시켰다.
에레미야에서 포로기간이 70년으로 정해졌다는 것을 읽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의 복원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고,
레위기를 읽은 후에 더 이상 더러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4. 교회의 책임은 영적 전쟁에 참여하고 계속 수행해야 한다.
- 교회가 이 일에 실패하면 이기는 이가 이 일을 받아 수행해야 한다.
왕국은 기도 없이 자동적으로 올 수 없다. 참된 기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수고하는 것이다.
기도는 영적전쟁이다. 3주간의 기도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단계의 힘과 강도와 깊이에 있어서 높아져야 하고
만약 교회가 이 일에 실패하면 이기는 이가 일어나서 그 일을 받아야 한다.
5. 다음 시대를 이끌어 오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본이 있어야 한다.
- "짝"(동반자) 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지속적일 수 없다.
다니엘과 세 친구 같이 특별한 때에 특별한 일을 행하는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안디바 같이 반대 증거로 서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함께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이런 생활을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안배에 의해서 결정되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6. 상업의 악함과 사악함을 보아야 한다.
-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가치를 감상하는 신성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마몬과 하나님을 절대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일하고 수고하여 생계를 꾸려나가는 하나님의 원칙을 보고,
수고하지 않고 아무것도 산출하지 않고 돈이 돈을 벌게하고
다른 사람을 손해보게 하여 내 주머니에 넣는 "순상업"을 본질을 보고,
부자가 되려는 유혹과 욕심을 처리 받고,
뭔가 보상을 기대하고 하는 상업적인 생각에서 구출받아야 한다.
재물에 대한 태도는 "우리는 다만 수고하고, 주는 것" 이다.
사역의 말씀이 점점 더 실제적이고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 수록 우리는 마음이 더 순수해지고 영 안에서 가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멘! 아멘! 하고 받아들이고 존재에 새겨서 이 말씀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벌써 부터 겨울 훈련 말씀을 기다려 봅니다.
이 말씀을 안다 보았다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고,
통제 받는 이상이 되기 원합니다~
(교회들 사이트 믹담블로그에서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