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3:19
에베소서누림
2013-01-21 , 조회 (57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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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 19절
[또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여러분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to know the knowledge-surpassing love of Christ, that you may be filled unto
all the fullness of God.)

3장 1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너희가 충만케 되기를 구하노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가 능히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차원을
깨닫게 되고 체험으로 지식을 초월하는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기까지 충만케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성분을 우리 존재 안으로 계속 넣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분량까지 하나님으로 충만케 될 수 있고, 그러한 수준에 달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합니다.

하나님의 풍성이 하나님 자신 안에 있을 때, 그것들은 그분의 풍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풍성이 표현될 때, 그것들은 그분의 충만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을 말할 때 그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어떠하신의 모든 풍성이 그분의 표현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3장 19절의 깊은 속에 들어간다면, 하나님의 충만이 교회임을 보게 됩니다.
교회란 조직되거나 설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풍성들을 체험하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신진대사로 조성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교회가 조성되게 하려면, 우리는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셔야 합니다.
즉 그분이 우리 내적 존재의 모든 부분들을 차지하셔야 하며, 또한 그분의 풍성으로 적시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하는데, 뿌리가 박히는 것은 성장을 
위함이요 터가 굳어짐은 건축을 위함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차원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그분의 우주적인 차원 안에서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 안에서 알게 됩니다.
이런 모든 체험들의 결과로,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기까지 충만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충만케 된다는 것은 에베소서 3장에 묘사된 그리스도를
더 깊이, 더 높이, 더 풍성하게 체험한 체험으로부터 나오는 귀결이자 결과입니다.

교회에 대한 최고의 정의는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이라는 것입니다.
충만은 풍성의 완성입니다.
헬라어로 [충만]이라는 단어는 완성을 뜻합니다.
신약에서, 충만이란 풍성의 완전함을 통한 표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풍성이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여러 측면들이며, 
그리스도의 충만은 이런 풍성을 우리가 누린 결과이자 산물입니다.

그러한 이상의 빛 안에서 교회를 [예배 의식]이 행해지는 물질적인 건물로 여기는 것은 전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교회는 단지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의 모임 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실질적인 충만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계시를 보아야 합니다.
이 이상을 본다면 우리 존재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이상으로 충만되고 나서 하나님을 위해 말하려고 나간다면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의 보내신 자들이 될 것이고 그분의 대변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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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예수님! 사랑해요.

지난 토요일에 혜경이와 한국에선 두사람중 하나가 봤을정도로 인기인 `레미제라블` 이란 영화를 봤어요.

세계적 고전인` 빅토르 위고` 원작인데,원래 장발장으로 더 유명하죠.

`레미제라블`의뜻은 불쌍한그들(불쌍한 사람들) 이예요.

오페라형식으로된 이영화는 우리가 잘아는대로 배경은 프랑스의 혁명전의 어려움속에서,

배고파하는 조카를 위해 빵하나를 훔치다,잡혀서 감옥에서19년을 살고 가석방된 정발장이

나와서도 갈곳이 없어 방황하다가 우연히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다행히도 신부가 잠자리를 제공해주자, 거기서 나가면 살길이 막막한 자신의처지와 내일의 염려로,

촛대를 훔쳐 나오다,또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됩니다.

신부앞으로 끌려온 죄인 장발장에게 신부는 그촛대들을 자기가 준것이라고 하며,

은촛대도 주었는데 그것은 왜 안가져 갔느냐?고물어 경찰들을 당황케하고 장발장은 풀려납니다.

그후 장발장은 뉘우치고,성공하여 어려운사람을 돕는데,앞장섭니다.~

가난한이들의 서러움과 어려움속에서도,그가운데 빛을 발하는 한사람 장발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마치 우리가 영화속에서,예수님을 만난 착각을 불러올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사랑으로 모든사람을 대하고,자기를 잡으려고 늘 쫒아다니는 `베르네` 형사를 세번씩이나 위기에서 구해주어

그사람으로 하여금 선과악에대한 분별력에,착각을 불러오게 만들어 결국에는 물에빠져 자살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소설을 쓸때 다분히 성경의 배경에서 인물들과 스토리만을 바꾸어 각색한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풍성을 작가가 그려낸 장발장은 그분의 풍성을 누리고,죄사함 받아

자기안에서 그 충만함을 실제로 표현해내는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나는 이영화를 통해 ,정말 세상을 주님편에서서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는 삶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더라구요.

주님곁으로 갈때까지 주님의원하시는 뜻과 연합해서 살아야 마지막에가서 후회가 없을것을 다짐해봅니다.

갑자기 웬 영화얘기냐? 하겠지만.시간이 허락하시면 다들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는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시청각 교육도 필요한것 같아요.

영숙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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