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와 들사슴으로`
공급과누림
2010-03-26 , 조회 (63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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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와 들사슴은 쉽게 놀라는 동물입니다.
그들이 안식을 취하려 할 때
작은 나뭇잎소리만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약한 자들을 대표합니다.

주님의 인도에 있어 항상 어린 믿는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강렬하지만
여전히 육과 혼적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 안에 주님의 사랑이 부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추구하는 자가 되었고
주님이 원하시는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이때 어려움이 발생하는데
주님 안의 많은 경험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관점에서는
그들이 주님 자신의 안식을 누리고
그 가운데 만족을 얻기 원하시지만
경험 많은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러가지 이슈로 그들을 깨우려 들지 모릅니다.

많은 경우 영적으로 선배들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어린 믿는이들을
깨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비록 이것 저것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들의 안식의 시간이 지나가면
그들은 다시 주님의 임재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오기 전에 그들은 주님의 달콤한 사랑에 의해
안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많은 영적 경험이
어린 지체의 참견자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말했지만
결국 한 것은 그들의 안식을 깨운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누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들이 심히 부족하므로 자던 그들을 깨웠습니다.
그들은 노루와 들사슴 같기 때문에
결국 안식에서 깨어 났고,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2:7)

많은 경우 우리의 많은 경험과 진리가
지체의 공급이 되지 못하고 그들을 삶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신14:21).
우리의 때에 맞지 않은 말이
어미 젖이 되어 어린 염소를 삶아버릴 수 있습니다.
어미 젖은 가장 좋은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그 어린 염소는 결국 삶아지게 됩니다.
여기에 "때"의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을 한가지 할 때 주님의 눈빛을 바라고
그분의 시간과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모든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큰 공과입니다.
우리는 옳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진리로도 충분하지 않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때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분의 때를 따라 공급할 때
그분이 원하시는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마24:45)

이런 말씀 앞에 제 자신이 가장 자격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긍휼이 있기를.. 

이 영빈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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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2:7)..아멘!

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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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궁금햇었는데 명쾌한 답변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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