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다만 하나님의 창조와 위인들의 전기를 말하는책으로 이해 해서는 안된다.
모든 성경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또한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볼수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 묘사된 타락을 배경으로 하여 그분의 타락한 인류에게 행하신 일에 관한 적극적인
그림을 보여주신다.
창세기가 기록된 주된목적은 타락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수 있는 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타락은 우리로 하여금 하얀 그림을 잘볼수있도록 돕는 검은 배경이다.
창세게 3장에서 우리는 사람의 첫번째 타락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해 행하신 일을 보았다.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사람의 두번째 타락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해 행하신 더 전진된일으로보았다.
우리는 사람의 세번째 타락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 지를 보자.
노아가 어그러지고 비뚤어지고 음란한 세대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할수 있었던것은 (창6:9)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은혜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생명공급과 우리의 힘과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다.
그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노아는 육체를 이길수 있었고 의로운 삶을 살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건조하라고 명하셨다. 노아가 방주를 건조하기전에도 노아는 이미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의 눈에 당대의 의인이었다.(창 6:9)
이미 구원받았는데 왜 방주를 건조하라고 하나님은 명하셨는가. 그는 타락한 세상으로부터의
더 전진된 구원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12절에서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요.
라고 말했다.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받았을 지라도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로 부터 건져지는 더
전진된구원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