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에 있어 기억될 만한 훌륭한 목회자들중 설교가로서 명성을 남긴 19세기의 목회자를 대라면 아마 영국인 찰스 스펄젼일 것이다. 그는 불타는 진실성과 굽힐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 열정을 가진 "복음의 전파자"였다. 1837년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면서 영국의 안정과 인구의 증가, 철도의 발달, 해외 식민지의 건설등 국가 발전의 기초를 놓았다. 또 뉴톤식 과학주의, 로크식 합리주의등 신사조가 등장하였고 다윈의 진화론과 성경의 고등비평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인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이 새로운 시대의 물결에 도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1834년 에섹스의 지방도시인 캘버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교도 신앙으로 무장한 복음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성경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신앙심이 투철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자주 무릎을 끓고 스펄젼의 품에 꼭 안아서 자주 기도했다. 아들이 늘 주님안에서만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는 어머니였다. 이러한 가정환경하에서 어릴때부터 성경과 많은 청교도 서적을 읽어나갔다.
1849년 여름에 찰스는 뉴마켓 마을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결정적인 구원을 받게되었다. 그는 정직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눈에 비쳐지는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이 너무 힘든 죄의 짐을 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는 끝없는 율법의 요구로 죄의식은 깊어만갔으며 늘 울부짖는 생화을 하기도 했다. 번민의 밤이 지나고 아침에 깨어 나면 청교도 서적을 집어 들곤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깊은 죄의식으로 차라리 개구리나 두꺼비가 되기를 원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둠과 절망속에서, 그것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날 시골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찬송소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컸으며,그날 눈 때문에 목사가 오지 않아 한 구두 수선공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말씀은 "나를 바라보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이었다. "보는 것은 고통이 따르지 않습니다. 손과 발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지금 현재 예수님은 "나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스펄젼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바라보며 사는 것뿐입니다." 그는 바로 그 순간 구원받았음을 확신하였다. 그는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한량없는 은총이여! 죄인이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영혼은 쇠사슬이 끊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느꼈습니다. 나는 자유로워진 영혼이요, 천국의 상속자이며 용서받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며 더러운 진흙과 끔찍한 지옥으로부터 건져올림을 받았고 나의 발은 단단한 바위위에 서 있으며 나의 앞길도 탄탄히 다져졌다는 것을 " 그는 이러한 고백을 그 자리에서 하나님앞에 하였고, 그동안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씻기었다. 그 즉시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가 격었던 시련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죄의 사악함에 대한 인식은 그의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져서 그로 하여금 경건한 모든 것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한 모습처럼 복음을 가장 진실되고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는 캠브리지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13개 마을을 돌며 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몇명의 순진한 농장 지도자들과 그들의 아내들에게 설교하였다.
1851년 10월 스펄젼은 17세의 나이에 워터비치 마을의 침례교회에서 정식목사가 되었다. 조지 골드라는 사람이 당시 캠브리지 회합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스펄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는 깊은 감명을 받고 런던의 뉴파크 스트릿 침례교회에 그를 추천하였다. 그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동명이인을 초청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지 않으려 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1953년 12월 뉴파크 스트릿 교회의 설교를 위해 런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그 교회의 크기에 압도 당하였고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단에 섰을 때 그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꼈고 그의 설교는 청중의 마음들을 사로잡기 위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 워터비치의 시골 청중들에게 했던 설교와 똑 같았다. 그는 단지 말씀을 말씀으로 영접하고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단했다. 예배는 너무나 엄숙했고 그 전의 어떠한 설교가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은 기쁨을느끼기 시작하였고 아침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후 예배에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같이 참석하였다. 그들은 예배가 마쳤음에도 돌아가지 않고 기쁨에 넘쳐 있었다. 저녁 예배때의 회중은 더 많았다. 집사들은 그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스펄젼에게 목사가 되어 달라는 청탁을 하였다.
1854년 2월 19세의 젊은 시골 목사가 런던 강단에 서게 되었다. 스펄젼이 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자 교회는 증축공사를 해야 할만큼 성도의 수가 늘었다. 2천명의 좌석을 만들었지만 군중은 더 늘었다. 이제는 더 넓은 음악회장을 구하여 설교를 하게 되었다. 설교가 있는 날은 그 곳의 교통이 마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무 의미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전심을 쏟았다. 그의 설교는 이러하였다. 그는 예배가 시작되기 전 골방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며 복음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단상앞에 서서는 아주 진실한 기도로 회중을 이끌었다. "이제 당신의 종은 가장 신실한 모습으로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그의 구세주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다시 한 번 축복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스펄젼에게는 설교중 회중을 웃고 울게 하는 탁월한 기질이 있었다. 그는 모노드라마의 천재처럼 자연스러운 제스츄어와 적절한 예화를 사용하여 그가 전하는 복음의 주제에 회중을 몰입하게 하였다. 그리고 열정과 영혼을 토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죄는 장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가 사단과 같이 검을지라도, 죄와 친구일지라도, 이 밤에 믿기만 한다면 모든 죄가 용서 받을 것이며 모든 악이 없어질 것이며, 모든 불경스러움이 씻어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는 종반부에 가서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의 힘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거의 액센트도 들리지 않았다. " 설교가 끝난 뒤 그는 다시 은밀한 골방에 들어와 산고의 고통과 하나님앞에서 실패감에 한탄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성직수여식도 받지 않았고 대학도 나오지 않은 것에 주위로 부터 비판을 받았다. 특히 그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이룩할 수 없다는 청교도 사상을 절박하게 믿었을 때 그에게 무수한 시련이 다가왔다. 각 기독교 종파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그에게 압박을 가해 왔을 때도 그는 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후의 청교도" 처럼 억척스럽게 싸워나갔다. 1861년 그는 10,000명 이상이 모이는 메트로폴리탄의 테버네클 교회를 세우게 된다. 또 목회자 훈련학교인 페스터즈 칼리지를 세워 순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였다. 스펄젼은 이 대학의 학생 전원을 1:1로 상담하면서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와주었다. 1866년 런던에서만 그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가 18개나 되었다. 그는 또 "The Sword and the Trowel" 월간 잡지와 1,900편 이상의 설교문들과 시편 주석 등도 발간하였다.
찰스 스펄젼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복음의 설교자였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못박히심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그의 모든 재능을 바쳤다. 그의 기쁨은 구세주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 영혼들을 인도하는 데에서만 존재다. 일찍이 그는 자신을 위한 영욕을 버렸고 그의 기도는 그의 가슴의 최고의 목표를 발견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찰스 스펄젼을 쓰시고 19세기 영국에서 복음이 한낱 도덕이나 윤리 종교의 한 영역으로 추락하는 것에 맞서게 하셨다. 또 그의 순수함과 열정적인 믿음을 받으시고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하셨으며 그를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목회자로 세우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