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불신에 의한 생명의 고난
요한복음
2014-03-05 , 조회 (229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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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그 사람은 참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습니다.(요 7:18)
He who speaks from himself seeks his own glory; but He who seeks the glory of Him who sent Him, this One is true, and unrighteousness is not in Him.(John. 7:18)

종교인들은 명절을 갖는 동안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했다(7:1-2). 원칙적으로 종교는 오늘날에도 똑같기 때문에 이것은 오늘날 종교에 대한 정확한 그림이다. 한면으로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다른 면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사람들을 죽일 음모를 한다. 만일 당신이 진실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종교가 당신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것에 당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1세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어 왔다. 매세기마다 진정으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종교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아 왔다. 예를 들어, 마담 기용(Madame Guyon, 1648-1717)은 그 시대의 종교인들에 의해 감옥에 갇혔었다. 당신이 밖의 것들을 따르지 않고 속의 생명을 따라 주님과 함께 가는 한 당신은 종교적인 사람들에 의해 핍박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창조자 하나님이시다(1:1, 10).

그러나 사람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피조물들의 핍박을 받으셨다(7:1). 창조자가 그분의 피조물들에 의해 핍박을 받으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분이 핍박을 받으셔야 했던 것은 어떤 인내인가! 그것은 어떤 수치였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셨다. 심지어 종교적인 명절도 이 핍박의 기회를 제공했다(7:2, 11). 종교인들은 주 예수님을 핍박하기 위해 종교적인 명절을 이용했다. 핍박하는 유대인들은 주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찾고 있었다(7:1, 21, 25, 30, 32, 34). 유대 종교인들이 주 예수님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은 조심하셔야 했다. 만일 그분이 약간만 부주의했었다면 그들의 손에 붙잡혔을 것이다. 그분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은 핍박받는 사람으로서 활동에 제한을 받으셨다.

한면으로 종교인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찾고 있었고, 다른 면으로 그분의 믿지 않는 형제들은 세상적인 영광을 추구하라고 그분께 요구하고 있었다(7:3-4). 그분의 형제들은 마치 그분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당신은 자신을 위해 큰 명성을 얻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핍박과 그분의 형제들의 요구는 둘 다 한 대적자인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사탄은 유대인들을 충동하여 주님을 죽이기 위해 찾게 했고 그분의 믿지 않는 형제들을 충동하여 그분이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가서 이름을 내라고 요구하게 했다. 상황은 오늘날도 똑같다. 가끔 어떤 형제들은 우리에게 이름을 내고, 선전이 되는 어떤 것을 하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선전이 되고 이름을 내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름을 내려고 한다면 나쁜 이름을 얻는 것이 더 좋다.


7장 6절부터 9절에서 우리는 주님이 시간 안에서 제한되셨음을 본다. 주님은 육신의 형제들에게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7:6)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영원하고 무한하고 제한 받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롬 9:5) 그분은 사람으로서 땅에 사셨고 심지어 시간 안에 제한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생수를 분배할 수 있기 위해 기꺼이 그분의 자유를 잃으셨고, 기꺼이 시간에 묶이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다. 7장 전체는 모든 면에서 제한된 사람으로서 주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셨는가를 계시한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사 9:6) 핍박받는 사람으로서 그분은 활동에 제한을 받으셨다(요 7:10). 그분은 자유롭게 행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비천한 사람으로서 그분은 배우지 않은 사람으로 나타났다.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말하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7:15). 주님은 배우지 않으셨지만 그분은 모든 것을 아셨다. 그분은 글을 아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과 영을 아셨다. 주님은 그분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했다(7:17-18). 주님의 근원과 기원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7:25-36, 13:3). 그분의 근원이 아버지 하나님이었으나 그분은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사람으로 오셨다(7:27, 42, 52, 1:45-46). 꽤 얼마동안 나는 요한복음 7장에서 주님의 솔직함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여 기뻐하지 않았다. 내게는 주님이 약간 내밀한 것처럼 보였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근원이 아버지 하나님이었다고 말씀하셨으나 그분은 나사렛에서 오셨다. 여기에 필수적인 원칙이 있다. 주님과 관계된 모든 것은 외형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으나 안의 내용은 놀라운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주의 회복에서도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외형을 따라 회복을 본다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외형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 예수님을 외모로 본 사람들은 그분을 다만 나사렛 사람으로 보았다. 그분은 풍채나 고운 모양이나 아름다움이나 매력이 없으셨다. 그러나 안으로는 그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여러 번 나는 주님께 『주여, 당신이 이 나라에서 회복 안으로 이끈 사람 중에는 외모가 좋은 사람이 왜 이처럼 적습니까?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집회에 합당한 옷을 입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질그릇 안에 보화가 있음을 보았다. 주님은 내게 외형을 좋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사렛 사람의 외모는 매력이 없으나 그분은 뛰어나고 하늘에 속한 내용을 가지고 계신다.(요 LS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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