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 10절
[그분은 이같이 절박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출하셨고 또 구출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소망을 두었으니, 그분은 앞으로도 우리를 구출하실 것입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Who has delivered us out of so great a death, and will deliver us; in whom we have hoped that He will also yet deliver us,)
고린도후서 1장 11절
[여러분도 이 일에 있어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로 돕는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간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감사를 드리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If you also help om this by petition on our behalf, that for the gift to us through many, thanks may be given by any persons on our behalf.)
11절의 은사는 고린도전서에서의 은사와 매우 다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 은혜는 부활 생명이요 부활한 그리스도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은혜로서 사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사도들을 죽음 가운데에서 부활의 체험을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부활 생명 안에서 생활하는 간증을 보여줍니다. 사도들은 부활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실지로 죽음의 특별한 상황 안에도 놓았습니다. 인간으로서는 그러한 죽음의 상황을 벗어날 길이 없었고 또한 그것을 이길 능력이 없었습니다. 오직 부활의 하나님 그분 자신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상황으로부터 사도들을 구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한 구출은 부활의 체험이었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어떻게 사도들이 위로받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는지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체험과 부활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그러한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필요한 영적 자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체험은 그들을 은혜의 사역자들인 새 언약의 사역자들로 조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린도후서에서 가진 것은 은사가 아닌 사역입니다. 더욱이 사역은 사실상 고통의 체험을 통해서 은혜로 조성되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