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흘러 나가시게 하여 그들을 공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먼저 주님과 교통을 가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도록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흘러 나가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교통은 집 안에 틀어박혀서 성경을 읽고 기도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항상 영 안에서 하나님과 접촉하며, 바쁜 일들이나 사람들고 교류하는 중에도 안에서는 여전히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들만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번 우리가 주님과 교통할 때 주님은 항상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통.의 체.험.을 가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더 많이 요.구.하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얻었고, 하나님으로 충만되었다는 느낌만 있고, 한 번도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무언가를 요.구.하신다는 느낌을 가져 보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통할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를 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치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는 주님 외의 많은 것들이 주님을 대치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환경, 생활 및 인생에서 주님의 성분은 너무나 적고 오히려 주님 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하여 무언가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지.위.를 드릴 수록 주님은 우리에게 더 많이 요구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위험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너무 낡았다고 느껴진다면, 그의 체험이 낡은 체험이고, 간증도 낡은 간증이며, 낡은 교리를 전한다면, 그와 주님 사에에 교통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야 하고, 몇 년 전에는 주님과 교통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교통을 잃어버렸거나 교통이 줄어든 관계로 새로운 느낌과 체험이 거의 없어져서 새로운 용도가 거의 없어진 것입니다. (교통과 하나님-사람의 연합, 2장)
*주님과의 참된 교통의 결과는 우리 안에 많은 대치물들에 대한 주님의 요구를 듣는 것이고, 우리의 응답은 주님께 얼마나 지위를 내어드리는 가 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니라 주님과 우리의 교통이 끊어졌다는 표시이고 우리는 낡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 지금, 우리와 주님과의 교통의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가서 솔직히 고하고 점검받고 치료받는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