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2 , 조회수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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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사가 아프리카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했는데 이 마을에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향한 젊은 청녕이 있었다. 이 청년은 선진 영농 기법과 축산 기술을 배워 이 마을에서도 가장 부유한 축에 끼웠고, 장차 커다란 기업을 일으켜 빈곤에 허덕이던 조국의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꿈을 지닌 그야말로 장fork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마을에서는 결혼을 하려는 청년이 가축을 이끌고 처녀의 집에 가서 그 부모에게 “ 이거 받으시고 딸을 주십시오.” 라고 청혼을 해야하는 풍습이 있었다. 정말 훌륭한 신부감에게 살진 암소 세 마리를 주는데 이 암소 세 마리는 이 마을이 생겨난 이후로 단 두 사람 뿐이었다. 좋은 신부감에게는 보통 암소 두 마리면 청혼이 승낙되고 보통 신부감은 암소 한 마리 정도면 승낙이 되는데 그 암소가 살진 암소냐 아니면 늙은 암소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청년이 사모하는 정도에 달렸다. 대개의 아낙네들은 빨래터나 우물가에 모여 앉아서 “누구는 염소 두 마리에 시집 온 주제에 잘난 체를 한다.” “내가 이래뵈도 암소 두 마리였어”라는 등 입방아를 찧었는데, 이렇듯 시집 올 때의 청혼 선물의 과다에 따라 여인의 몸값이 정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느 날 이 의사는 그 청년이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 둘러싸여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청년은 누군가에게 청혼을 하러 가는 길이었고, 게다가 이 청년이 몰고 나온 청혼 선물은 놀랍게도 살진 암소 아홉 마리였다. 아홉 마리 암소면 그 동네에선 당장이라도 팔자가 늘어진 축에 낄만한 재산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연 그 처녀가 누구인지에 대해 술렁이기 시작했다. 청년은 마을 촌장의 집도 지나가고 , 바나나 농장 주인 지역 유지의 집도 그냥 지나치고, 이 마을 학교 여섢생의 집도 그냥 지나치면서 흙먼지 일어나는 길을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 걷더니 어느 노인의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서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촌장과 날라리 딸, 바나나 갑부의 오동통한 셋째 딸, 눈물을 철철 흘리는 여선생 등등의 놀라 둥그레진 눈동자 앞에서 그 집 기둥에 아홉 마리 암소의 고삐를 매었다. 그리고는 노인의 딸에게 청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의 딸은 말라깽이에다가 키가 너무 크고 병약한 외모에다가 마음까지 심약해 늘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자기 그림자에도 깜짝 놀라곤 하는 전형적인 염소 두어 마리짜리 처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청년이 미쳤다고 수군대기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린 것이 틀림없다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다. 이 의사는 본국에 돌아온 의에도 그 청년이 왜 아홉 마리의 암소를 몰고 그 보잘것 없는 처녀에게 청혼을 하였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 중년이 된 의사는 다시 한번 그 마을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그 마을에서 이젠 어엿한 기업자가 된 그 청년을 다시 만나게 되어 정답게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면서 의사는 그에게 아홉 마리의 암소라는 과도한 청혼 선물의 이유를 물었다. 그는 방긋이 웃을 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이 의사의 궁금증만 더욱 커져 갈 즈음에 찻물을 가지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의사는 많은 여자를 보았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흑인 여인을 본 일이 없었다. 그 우아한 자태와 유창한 영어,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까지... 의사는 속으로 ‘ 아, 이 사람이 그 때의 말라깽이 처녀 말고 또 다른 아내를 맞이 했구나,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이 사람과 어울리지‘라고 생각 하였다. 그런데 청년 사업가가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사람이 그때의 그 심약했던 처녀입니다.” “정말로요?”의사는 아연실색하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의사를 바라보면서 청년 사업가는 말을 계속해 나갔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고 당연히 저 사람과의 결혼을 꿈 꿔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마을에선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여자들의 세계에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런 관습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저도 청혼을 위해서 가축을 몰고 가야만 했지요, 사실 제 아내는 한 마리의 암소면 충분히 혼인 승낙을 얻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청혼의 순간에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평생의 자기가치를 결정 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정말 소중하게 사랑했기 때문에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한 두 마리의 암소 값에 한정하고 평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세 마리를 선물하면 그 옛날 세 마리를 받았던 훌륭했던 사람들과 비교될 것이고, 그러면 제 아내는 또 움츠려 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저는 세 마리를 훨씬 뛰어넘는 아홉 마리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아내는 무척 놀랐지만 차츰 제 사랑의 진정함을 느끼게 되자 아홉 마리의 암소의 가치가 자신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제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저는 너무도 부족하지만 아홉 마리 암소의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아요’ 아내는 그 후로 자신의 가치를 그에 걸맞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공부를 하거나 외모를 꾸미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점점 아름다워져 갔습니다. 저는 아내의 예전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똑같이 사랑하지만 아마도 아내는 그전의 모습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더욱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홉 마리의 암소를 몰고 간 것은 아홉 마리의 가치를 주고자 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 또한 하나의 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가치 부여의 틀을 뛰어 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내를 이 세상 어는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마음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수군거리던 아낙들도 제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자신의 일인 것 처럼 아내의 밝은 미소를 사랑해 줍니다. 언젠가는 이러한 관습이 사라지겠지만 이런 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최고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 아홉 마리 암소의 이유였습니다. (웹진 ‘뉴튼과 다빈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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