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거룩케 됨 : 믿는이들-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체험함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믿는이들
2010-01-25 , 조회 (168)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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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거룩케 : 믿는이들-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체험함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제목 : 신약의 결론

1. 하나님

2. 그리스도

3. 성령

4. 믿는이들

4.1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체험함

4.1.1 사람의 부분

4.1.2 인생의 의미

4.1.3 구원의 확신

4.1.4 죄사함 죄들을 용서함

4.1.5 화해와 화목

4.1.6 거룩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누린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자신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누리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풍성을 함께 나누고 있을 때 간교한 자가 와서 “너 자신을 보아라. 너는 오늘 아침에 너의 아내에게 어떻게 대했는가를 생각해 보아라.”고 말한다. 이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하늘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나는 크게 실망하고 만다. 어느 날 내가 방에서 주님을 찬송하고 있을 때 아내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사탄은 그 날 아침에 아내를 어떻게 대했느냐고 질문을 걸어왔으며 나는 혹시 아내가 나의 찬송 소리를 듣고 들어와서, “찬송은 그만 해요. 오늘 아침에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잊어버렸어요?”하며 내가 찬송하는 것을 막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 우리에게는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것을 차(茶)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만일 한 컵의 맑은 물에 차를 넣는다면 그 맑은 물은 ‘찻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사실 그렇게 깨끗하지 못하지만 좋게 말해서 맑은 물이라고 하자. 그러나 우리를 맑은 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차의 맛과 차의 향기가 없다. 우리에게는 차가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 자신은 바로 하늘에 속한 차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로마서를 통해서 자신을 점진적으로 나타내셨다. 1장에서 그분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3장에서는 구속의 하나님이시며, 4장에서는 의롭게 됨의 하나님이시며, 5장에서는 화목의 하나님이시며, 6장에서는 우리와 연합한 하나님이시다. 8장에 올 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이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롬 8:10)! 그분은 이제 창조와 구속과 의롭게 됨과 화목과 연합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지금 우리의 영 안에, 우리 속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셔서 마치 차가 물속에 넣어졌을 때 차의 성분이 물속에서 작용하듯 우리 속에서 변화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역사를 하고 계신다. 결국 그 물은 완전히 ‘찻물’이 될 것이다. 그 물은 참 차의 빛깔과 향기와 맛을 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이 음료수를 줄 때 나는 당신에게 물이 아닌 차를 주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의롭다 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묻는다면 여러분은 모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는 지금 그분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거룩하게 됨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당신은 거룩해졌는가? 결혼한 형제들 가운데 자기가 거룩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의 아내 되는 분들은 이렇게 대답을 달리할 것이다. “형제들은 분명히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룩해졌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형제들이여, 당신의 아내는 거룩해졌는가? 아내들이여, 당신의 남편은 거룩해졌는가? 아내들 중에는 그들의 남편이 어느 정도 거룩해졌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른다. 다른 분들은 또 그들의 남편이 다소 나아졌다고 느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아진 것이 아니라 거룩해진 것을 말하고 있다. 즉 거룩해진다는 것은 차의 성분과 맛과 빛깔이 물속에 녹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바로 우리 속에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거룩하게 됨이다.
 
 

 
위치적인 거룩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구원의 법적인 방면에 속함
 
먼저 우리는 위치적인 거룩하게 됨과 성질상의 거룩하게 됨 사이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전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법적인 방면에 속하는 반면, 후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유기적인 방면에 속한다.
 
구원받기 전 우리는 전적으로 세상에 속했었다. 구원받고 거듭난 후, 주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완전히 분별하셨다. 믿는 이들이 세상에서 분별되어 하나님께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위치적인 거룩하게 됨이다(고전 1:2, 롬 1:7). 마태복음 23장에 언급된 것과 같이 금(金)이 시장에 있을 때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성전에 있을 때는 거룩하게 된 것이다(17절). 이런 종류의 거룩하게 됨은 내적인 성질을 바꾸지는 못 한다. 이는 다만 외적인 위치만을 바꿀 뿐이다. 거듭난 사람들은 모두 다소가 이런 종류의 체험을 가지고 있다. 구원받고 난 후 즉시 우리는 단순히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섞이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그들과 분별되었다. 이것이 위치적인 거룩하게 됨 곧 분별이다. 이 위치적인 거룩하게 됨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로 말미암은 것으로 (히10:29, 13:12)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되기 위한 것이다(벧전 2:9-10절과 주석).
 
성질상의 거룩하게 됨은 믿는 이들의 성질이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기 위한 것임
 
그러나 위치적으로 분별되어 하나님께로 거룩하게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위치적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과 화목 된 후에 생명 안에서 추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어떤 것을 느끼는데 그것은 우리의 성질이 아닌 하나님의 본성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 본성은 우리의 천연적인 성질, 특별한 기질, 성격을 철저하게 다루어 신성한 본성이 우리의 성질이 되게 한다. 이것은 믿는 이들을 성질상으로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여 그분의 이 본성에 있어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함이다(롬 15:16). 이런 종류의 거룩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생명을 재료로 사용하며, 생명의 영에 의한 거룩하게 하는 역사를 통하여 믿는 이들 안에서 이루어진다(롬 8:2).
 
이것이 바로 나의 체험이다. 구원받은 후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생명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분이 점차적으로 내 안에서 거룩하게 하는 역사를 수행했다. 백화점에 갔을 때, 나는 어떤 것을 보았지만, 그것을 입을 수는 없었다. 또 다른 것을 보았지만 그것도 사용할 수 없었다. 내가 처음 서양 옷을 입는 것으로 바꾸었을 때, 넥타이를 사는 것이 큰 문제였다. 어떤 넥타이는 아주 넓었고, 어떤 것들은 너무 좁았으며, 다른 것들은 너무 화려했다. 오늘 나의 넥타이는 넓지도 좁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이것은 내가 넥타이를 사러 갈 때, 내 안에서 이런 종류의 넥타이를 사기를 원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우리 생활의 척도와 옷 입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본성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신성한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 생활의 척도이다. 찬송가 381장 1절은 “내 생명 된 주님 내 안에 사셔 하나님의 모든 충만 주시네 주의 신성으로 날 거룩게 해 주의 부활 내게 승리 주시네”라고 말한다. 주님의 거룩한 본성으로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거룩하게 하심은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위치적인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말하기보다 성질상의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말한다.
 
우리 생활의 척도는 외적인 규칙이나 법이 아니라 내적인 신성한 본성이다. 펜실베니아와 오하이오의 어떤 곳에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도록 많은 기준을 정해 놓은 기독교 종파가 있는데, 그 기준은 주로 믿는 이들이 옷을 입는 것이나 모자를 쓰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여자들의 옷을 흰색, 검정색, 짙은 청색의 세 가지 색으로 제한한다. 그들은 또한 남자들이 넓은 챙이 있는 모자를 써야 한다고 정해 놓았다. 유행을 따르는 몇몇 사람들은 넓은 챙이 있는 모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은밀하게 챙이 좁은 모자를 마련한다. 그러나 그들의 목사는 좁은 챙이 세상적이라고 정죄한다. 결국, 그들 중에는 집에 두 종류의 모자를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는 넓은 챙으로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좁은 챙으로 된 것이다. 목사가 왔을 때는 넒은 챙으로 된 모자를 쓰고, 목사가 떠난 후에는 좁은 챙으로 된 모자를 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외적인 규칙들로 우리 자신을 통제해야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따라 살고 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바깥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에겐 이러한 외적인 규칙이 필요없다. 우리에겐 다만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 필요할 뿐인데, 그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 예를 들어 여자들의 옷차림에 대하여 성경은 단지 여자들은 아담한 옷을 입으라고 말한다(딤전 2:9). 그러나 어떤 류의 옷이 합당하게 여겨질 수 있는가? 당신 안에 있는 거룩한 본성이 당신에게 말해 줄 것이다. 이것이 성질상의 거룩하게 함이다. 이것이 그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고 계시는 유기적인 역사이다. 이것은 법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유기적인 것이다. 이 거룩하게 함의 방면은 변화를 함축하는데(롬 6:19, 22), 이것은 믿는 이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엡 1:4). 결국,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중 법적인 방면의 위치적인 거룩하게 하심과 유기적인 방면의 성질상의 거룩하게 하심은 모두 궁극적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것은 거룩한 성이 될 것이다(계 21:2, 10, 22:19).

 

/출처 : 한국복음서원, 진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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