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교회 – 그리스도의 신부 : 교회- 교회의 신분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교회
2010-02-03 , 조회 (27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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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 : 교회- 교회의 신분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제목 : 신약의 결론

1. 하나님

2. 그리스도

3. 성령

4. 믿는이들

5. 교회

5.1 교회의 신분

5.1.1 교회 에클레시아

5.1.2 교회 - 하나님의

5.1.3 교회 - 하나님의 왕국

5.1.4 교회 - 그리스도의

5.1.5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33절까지에 있는 그의 권고에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배필로 제시한다. 이것은 사실상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분임을 계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와 아담에게로 돌아갔듯이(창 2:21-23)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성경 안의 첫째 쌍인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하나의 그림이다. 창조 안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먼저 남자를 창조하셨고 그 다음 남자로부터 그를 도와 줄 배필을 창조하셨다(창 2:18). 조류나 짐승들이나 가축들이 아담 앞으로 데려와졌을 때 아담은 그것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아담에게는 “돕는 배필이 없었다”(창 2:20). 아담은 배필을 갖기를 갈망했었다. 즉 그를 상대해 줄 누군가를 갖기를 갈망했었다. 그러나 조류나 짐승들이나 가축들 가운데서는 그의 배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한 배필을 산출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창 2:21) 아담으로부터 갈빗대를 취하여 그 갈빗대로 여자를 건축하셨다(창 2:22). 여자의 이름은 하와였다. 하와는 생명과 본성과 형태 안에서 아담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의 배필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 이끌어 왔을 때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선포했다(창 2:33). 마침내 아담은 그의 배필이 될 수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창세기 2장 24절은 남자와 그 아내가 한 육체가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놀라운 그림이다. 하와는 아담이 가졌던 동일한 생명과 본성을 가졌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가 가진 동일한 생명과 본성을 가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더 나아가 하와는 사실상 아담과 동일한 형상과 거의 동일한 신장을 가졌다.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는 사랑 안에서의 만족과 안식을 포함한다. 모든 남편은 만족과 안식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사랑 안에서 발견된다. 남편들인 형제들은 우리의 만족과 안식이 오직 우리 아내들에게만 있음을 간증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그분의 안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어떤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교회라고 주장하는 데에 그렇게 빨라서는 안 된다. 교회인 것은 사랑 안에서 충분한 만족과 안식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배필을 필요로 하신다. 교회는 단지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자들의 모임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는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께 일종의 만족과 안식이다.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며 에베소서 3장 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 에베소서 5장 32절에서 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말한다. 남편과 아내가 한 육신이 되는 것에 의해 예표되듯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영이라는 사실은(고전 6:17) 커다란 비밀이다.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가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과 본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하나라는 것은 분명히 커다란 비밀이다.
 
 
 
 
교회는, 신랑이자 남편인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이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 있는 침례자 요한의 말은 그리스도가 신랑임을 가리킨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신랑은 가장 즐거운 사람으로, 신부를 얻기 위해 온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비된 단체적인 신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분은 매혹과 기쁨과 만족이 되셔야 한다. 그리스도의 배필을 구성하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그분을 그러한 즐거운 신랑으로 누려야 한다.
 
고린도 후서 11장 2절에서 바울은 남편인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믿는 이들의 남편, 즉 우리가 사랑해야 할 유일한 남편임을 본다. 우리는 그분께만 속해야 하며 그분을 감상하며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남편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매혹시키시고, 우리는 그분께 정결한 처녀로 드려졌다. 이제 우리는 그분만을 관심해야 하며 아무것도 우리 마음에서 그분을 대치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순수해야 하며 우리의 온 존재는 그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와가 아담의 증가였듯이 신랑이자 남편이신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인 교회도 그리스도의 증가이다. 침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언급한 후에 계속해서, “그는 증가하여야 하겠고 나는 감소하여야 하리라”고 말했다(요 3:30, 원문 참조). 30절의 증가는 29절의 신부이다. 주님이 증가하셔야 한다는 뜻은 그분이 신부를 가지셔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그분께 가야 한다.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증가인 신부가 되기 위해 그분을 따라야 한다.
 
 
계시록 19장 7절과 8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배필인 그분의 신부가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결혼하게 되리라는 것을 본다. 7절은,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라고 말한다. 어린양의 혼인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완성의 결과이다.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구속과 신성한 생명을 통하여 신부, 곧 교회를 얻는 것이다. 전세기를 통하여 계속적인 성령의 운행하심을 통해서 이 목표는 이 시대 말에 성취될 것이다. 그럴 때 신부가 예비될 것이다.
 
계시록 19장에 있는 ‘그의 아내’라는 단어는 교회(엡 5:24-25, 31-32), 곧 그리스도의 신부를 언급한다. 그러나 계시록 19장 8절과 9절에 따르면 아내, 곧 그리스도의 신부는 여기에서 천년 왕국 기간 동안 이기는 믿는 이들로만 구성되는 반면, 계시록 21장 2절에 있는 신부 곧 아내는 천년 왕국 후 영원토록 구원받은 모든 믿는 이들로 구성된다.
 
어린양으로서 그리스도는 결혼을 필요로 한다. 요한의 복음은 그리스도가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 오신 어린양이시며(1:29) 또한 신부를 소유하시기 위해 오신 신랑이심을 계시한다. 그리스도의 목표는 죄를 제거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목표는 신부를 얻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린양이시며 장차 오시는 신랑임을 본다. 신랑으로서 그분은 결혼을 하셔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가 신부의 위치이며 장차 오시는 그리스도의 위치가 신랑의 위치임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의 위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땅에서 그분을 맞이하는 신부가 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분은 삼층천에 있는 보좌에서 우리를 맞이할 신랑으로 오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랑으로서 오고 계시며 우리는 신부로 가고 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그분을 만나 혼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
 
계시록 19장 7절 하반절은, ‘그의 아내가 예비되었고’라고 말한다. 신부의 예비는 이기는 이들의 생명 성숙에 달려 있다. 더 나아가 이기는 이들은 분리된 개인들이 아니라 단체적인 신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이 필요하다. 이기는 이들은 생명 안에서 성숙할 뿐 아니라 또한 한 신부로서 함께 건축된다.
 
계시록 19장 8절은,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순수한)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말한다. ‘순수하다’는 것은 본성과 관계되는 반면, ‘빛나는’이란 표현과 관계된다. ‘의’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의로운 행실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이러한 의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받은 의(그것은 그리스도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전 1:30).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받은 의는 우리가 의로운 하나님의 요구를 채울 수 있기 위한 객관적인 것이다. 계시록 19장 8절에서 신부를 구성하는 이기는 믿는 이들의 의는 이기는 그리스도의 요구를 채우기 위한 주관적인 것이다. 따라서 깨끗한 세마포는 우리의 이기는 생활, 우리의 이기는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실상 우리가 우리의 존재로부터 살아내는 그리스도이다.
 
계시록 19장에서 신부가 입고 있는 깨끗한 세마포는 마태복음 22장 11절과 12절의 혼인 예복과 같다.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믿는 이들은 두 가지 옷-하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신부로 예비되기 위한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는 덮는 옷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누가복음 15장 22절에서 탕자가 입었던 옷이다. 그러한 옷은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우리는 그분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은 이 옷, 즉 첫째 옷을 소유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우리의 의롭게 됨으로 소유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로 의로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둘째 옷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22장 11절과 12절의 혼인 예복이며 계시록 19장 8절에 있는 깨끗한 세마포이다. 첫째 옷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인해 하나님을 만날 자격을 갖게 해 주며, 둘째 옷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갖게 해준다. 둘째 옷은 우리 안의 성령의 역사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며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표현되는 바로 그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계시록 19장 8절에 있는 성도들의 의이다.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의 최종 완성은 영원 동안 새 하늘과 새 땅 안의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계시록 21장 2절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한다. 새 예루살렘은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에 의해 구속된 모든 성도들의 살아 있는 구성체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배필인 그분의 신부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며 그분의 배필이 된다.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의 풍성에 참여함으로써 예비된다.

계시록 21장 9절 하반절과 10절은,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고 말한다. 신부는 주로 혼인 날을 위한 반면 아내는 전 생애를 위한다. 새 예루살렘은 하루와 같은 천 년 동안 천년왕국 안에서 신부가 될 것이며(벧후 3:8), 아내는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 있게 될 것이다. 천년 왕국 안에서 신부는 이기는 성도들만을 포함할 것이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아내는 모든 하나님의 구속받고 거듭난 아들들을 포함할 것이다(계 21:7).
 
 
계시록 22장 17절 상반절은, “그 영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배필인 교회가 영원 안에서 한 쌍이 될 것임을 계시한다. 그 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총체로서 지금은 신부가 될 만큼 완전히 성숙한 믿는 이들과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그 영은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표현이며 신부는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궁극적인 표현이다. 계시록 22장17절의 때까지도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그 영-과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신부-은 하나가 될 것이며 하나로 말할 것이다.
 
계시록 22장 17절에서 그 영과 신부는 한 부부처럼 함께 ‘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이 신랑과 신부가 함께 말한다고 하지 않고 그 영과 신부가 말한다고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신약의 끝이 결국은 신부를 소유한 분이 그 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줌을 의미한다. 이 영은 계시록 22장에서 신부와 하나가 된,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성인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시다.
 
계시록 22장 17절에는 두 가지 완성이 있는데, 과정을 거쳐 분배되는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성인 그 영과, 하나님의 거듭나고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들의 최종 완성이자 총체인 신부이다. 첫째로 삼일 하나님은 하나의 과정-성육신, 인생, 십자가, 부활, 승천-을 통과해 신랑이 되기 위해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총체이자 최종 완성인 그 영이 되셨다. 둘째, 신부를 구성하는 믿는 이들은 하나의 과정-구속, 거듭남, 변형-을 통과해 신부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되고, 구속되고,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들의 최종 완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성과 하나님의 선택되고, 구속받고,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들의 최종 완성은 우주적인 결혼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며 영원 안에서 한 쌍이 될 것이다.
 
이 쌍은 성경에 계시된 신성한 로맨스의 궁극적인 최종 완성이다. 전 성경에 따르면 남성인 창조자이자 구속주인 하나님과, 여성인 그분의 구속된 백성들 사이에 신성한 로맨스가 있다. 이것이 성경에 계시된 기본적인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구속된 백성들인 이스라엘에게 그분이 그들의 남편이요, 그들이 그분의 아내임을 알리셨다(사 54:5, 렘 3:14, 31:32, 호 2:19).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인 신부를 취하러 오시는 신랑으로 계시된다. 에베소서 5장에서 바울은 교회가 아내로 예표되며 그리스도는 남편으로 예표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남편이요, 교회는 아내이다. 계시록 19장 7절에서 이 아내는 이기는 성도들의 총체이다. 결국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배필의 최종 완성이요, 모든 그분의 구속되고 온전케 된 백성들의 총체가 될 것이다.
 
성경은 결혼으로 시작하여 결혼으로 끝난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으로 시작하여 계시록에서 그 영과 신부의 결혼으로 끝난다. 이 최종적인 결혼은 과정을 거치시고, 최종 완성되시고, 분배된 남편이신 삼일 하나님과 신부인 그분의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들과의 결혼이다. 영원토록 이 우주적인 쌍은 모든 그분의 영광 안에서 표현될 삼일 하나님의 완전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은 그분의 완전한 표현과 만족을 위하여 영원토록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짝이 될 것이다. 이것이 신약의 결론이며 또한 전 성경의 결론이다.
 
성경의 결론에 한 쌍의 부부가 있는데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성인 그 영과 구속되고, 거듭나고, 변화되고, 영화롭게 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총체이자 최종 완성인 신부로 구성된다. 여기에 영원토록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영원하고 우주적인 한 쌍이 있다.

 

/출처 : 한국복음서원 진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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