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교회 – 하나님의 전사 : 교회- 교회의 신분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교회
2010-02-03 , 조회 (21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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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교회 하나님의 전사 : 교회- 교회의 신분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제목 : 신약의 결론

1. 하나님

2. 그리스도

3. 성령

4. 믿는이들

5. 교회

5.1 교회의 신분

5.1.1 교회 에클레시아

5.1.2 교회 - 하나님의

5.1.3 교회 - 하나님의 왕국

5.1.4 교회 - 그리스도의

5.1.5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

5.1.6 교회 새사람

5.1.7 교회 하나님의 전사

 

 

에베소서 6장에서 우리는 여전히 또 다른 방면의 교회를 본다. 이장에 있는 교회는 몸이나 건축이나 가족이나 왕국이나 새 사람 또는 신부가 아니다. 여기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전사이다. 교회는 비단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몸과 하나님이 거주하시기 위한 처소와 하나님의 경륜의 완성을 위한 새 사람이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는 전사 곧 군인이어야 한다.
 
계시록 19장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신부인 동시에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하여 그분과 함께 싸우는 전사이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주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신부를 맞이하실 것이다. 신부를 영접한 후에 그리스도와 이기는 자들은 원수를 대항하는 싸움에 들어갈 것이다. 계시록 19장 11절에 따르면 주님은 백마를 타실 것이며, 희고 순수한 고운 세마포를 입은 하늘에 있는 군사들이 백마를 타신 그분을 따를 것이다(14절). 계시록 17장 14절 역시 이것을 언급한다. 『이들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겠으나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것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선택함을 얻고 신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시록 19장 7절과 8절에서는 신부가 『빛나고 순수한 고운 세마포』를 입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14절에서는 전쟁에 참가하려고 주님을 따르는 군대들이 「희고 순수한 세마포」를 입었음을 볼 수 있다. 이 구절들은 신부의 혼인 예복이 또한 그분의 원수를 대항하여 싸우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입는 제복이기도 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혼인 예복을 입는 것은 또한 제복을 입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에서 우리는 신부이며 전사인 교회를 본다. 계시록 19장에서 또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면의 교회를 본다. 교회인 우리는 다만 몸이요, 하나님의 거처요, 하나님의 왕국이요, 하나님의 가족이요, 새 사람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신부와 전사이기도 하다. 신부로서 우리는 응당 티나 주름이 없이 아름다와야 하며 고운 세마포를 입어야 한다. 전사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필히 장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는 단체적인 전사로 구성된 하나의 군대가 있다. 이것은 에베소서 6장에 있는 전사가 하나의 단체적인 실체임을 뜻한다. 오직 하나의 단체적인 실체인 몸으로서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다.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이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다는 관념과 정반대된다. 에베소서 6장에 있는 갑주는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몸인 교회를 위한 것이다. 이 장이 계시하는 것은 믿는이들의 개인적인 싸움이 아니라 땅 위에서 하나님의 이익을 위해 단체적인 군대가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하여 전쟁을 하는 몸, 곧 단체적인 실체의 문제이다. 현대적인 군대 안에 있는 어떤 군인도 혼자서 전투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잘 훈련되고 완전 무장된 군대의 일부로서 싸울 것이다. 우리가 단체적으로 하나의 군대로 편성된 다음에라야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를 대항하여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전략은 원수를 대항하여 싸우도록 그분의 군대인 교회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를 떠나 고립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오직 군대 안에 남아 있어야만 우리는 필요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여러 해 전 주님의 백성들은 영적 전쟁을 개인적인 문제로 여겼었다. 그러나 여러 해를 통하여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단체적인 군대인 교회의 문제임을 보게 되었다. 만일 당신이 교회를 떠나 스스로 분리된다면 당신은 패배당할 것이다. 사탄의 전략은 단순히 당신을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이 몸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알고 교회와 함께 머문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전쟁은 개별적인 믿는이들인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전사인 교회는 자신의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에베소서 6장 10절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싸우지 말아야함을 분명히 가리킨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반드시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어야 한다. 『강건하게 되다(empowered)』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1장 19절에 있는 능력이란 말과 어근이 같다. 하나님의 대적을 처리하고 어둠의 악한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려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공중에 있는 모든 악한 영들보다 훨씬 높은 하늘에 앉히신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으로 강건케 되어야 한다. 사탄과 그의 악한 왕국을 대항해서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자신들 안에서가 아닌 주님 안에서만 싸울 수 있다. 자신들 안에 있을 때마다 우리는 패배하게 된다.
 
 
 
 
에베소서 6장에 따르면 강력을 갖고 있는 주님이 우리가 보호를 위해서 입어야 하는 바로 그 갑주이다. 이것은 몸인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의 갑주로 입어야 함을 뜻한다. 영적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서 그리스도를 가져야 한다.
 
6 장 14절부터 17절까지에는 갑주이신 그리스도의 여섯 가지 측면-진리 혹은 실제의 허리띠, 의(義)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견고한 기초(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 영의 검-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허리띠, 흉배, 신발, 방패, 투구, 검 등으로 이루어진다. 방패는 방어를 위한 것인 반면에 검은 공격을 위한 것이다. 사실상 검은 갑주 중 공격적인 전쟁을 위한 유일한 항목이다.
 

 
 
 
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실상 영적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다. 단순히 우리는 그것을 누린다. 전투 안에서 싸우는 대신 그 전투가 누림이 된다. 우리는 갑주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측면들을 적용하기 위해 영 안에서 기도하기 때문에 영적 싸움이 하나의 누림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허리를 동이는 실제로서, 우리 양심을 덮고 보호하는 의로서 누린다. 더욱이 우리는 그분을 평안의 복음의 견고한 기초로서, 믿음의 방패로서 누린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믿음(faith)이시다. 히브리서 12장 2절이 말하듯이 그분은 믿음의 창시자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방패인 그리스도를 가짐으로 우리는 악한 자의 화전(火箭)들로부터 방어된다. 더욱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를 가리는 구원의 투구로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그 영의 검으로서 누린다. 시편 23편 5절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目前)에서 내게 상(床)을 베푸시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전쟁터가 잔치가 베풀어지는 장소임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실제와 의와 평강과 구원과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누리면서 원수의 목전에서 잔치를 누린다. 우리는 영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그분을 누리며 적용한다.

 
 
 
우리가 지적했듯이 검은 갑주 중에서 공격적인 전쟁을 위한 유일한 측면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갑주 중 원수를 공격하는 데 쓰이는 유일한 항목이다. 아마도 당신은 말씀의 죽이는 능력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체험과 이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영적 전쟁 안에서 객관적인 원수뿐만 아니라 더욱 주관적인 대적까지도 처리해야함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사탄은 우리 밖에 있는 원수일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대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외적인 원수보다는 내적인 대적에 대한 훨씬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밖으로부터 오는 원수의 공격은 안으로부터 오는 대적의 공격만큼 심각하지 않다. 이런 내적인 대적을 처리하려면 말씀의 죽이는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그렇다. 원수는 우리 밖에 있지만, 그의 요소들은 바로 우리 존재 속에 있다. 원수의 요소들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말씀의 죽이는 능력이 주관적으로 우리 존재에 적용되는 것이 필요하다. 원수가 그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주입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원수의 요소들을 처리하기 위해 말씀의 죽이는 능력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출처 : 한국복음서원 진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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