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교회의 터 : 신약의 결론 –교회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교회
2010-02-03 , 조회 (232)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5.5 교회의 : 신약의 결론 교회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제목 : 신약의 결론

1. 하나님

2. 그리스도

3. 성령

4. 믿는이들

5. 교회

5.1 교회의 신분

5.2 교회의 양면성 (우주적인 , 지방적인 )

5.3 교회 안의 봉사

5.4 주님의

5.5 교회의

 



교회에는 두 방면이 있는데, 하나는 유일무이한 교회이고 또 하나는 각 지방에 있는 교회이다. 하나는 교회요 다른 하나는 교회들이다. 교회는 무형적(無形的)인 것이고 교회들은 유형적(有形的)인 것이다. 보편적 교회는 조직이 없고 지방적 교회는 조직이 있다. 우리는 다 보편적 교회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보편적 교회가 어떤 모양인지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보편적 교회는 영적이고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적 교회는 볼 수 있고 형체가 있는 것이다. 보편적 교회는 생명에 속하고 유기적으로 연합된 것이다. 지방 교회들은 형체가 있기 때문에 장로가 있고 집사가 있어, 형식상의 조직이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그 유일한 교회가 여러 교회들로 나누어진 이유는, 바로 지방이 다르기 때문임을 볼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교회를 지방에 따라 여러 교회들로 나누었다. 지방을 따라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경의 유일한 방법이며 나눈 이유이고 유일하게 허락된 이유이다. 성경 안의 교회들은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가? 예를 들어, 계시록 2장과 3장의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와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와 사데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방적인 원인으로(믿는 이들이 있는 지방이 다르므로) 일곱 교회들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 교회들은 지방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에베소… 라오디게아는 다 지방 이름이다. 이것들은 다 서로 다른 지방이므로 일곱 개의 다른 교회들인 것이다. 지방, 지방들이 교회를 일곱 개로 나눈 것이다. 계시록 2장, 3장의 일곱 교회들이 지방에 근거하여 세워졌을 뿐 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나, 루스드라에 있는 교회, 고린도에 있는 교회, 더베에 있는 교회, 골로새에 있는 교회, 드로아에 있는 교회, 빌립보에 있는 교회, 로마에 있는 교회,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 안디옥에 있는 교회 등 성경에 기록된 기타 모든 교회들이 다 지방으로 나누어졌다.
 
 
 


지방으로 교회를 나누는 이런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이다. 만일 나라를 교회의 범위로 삼았다면 교회의 경계를 항상 바꾸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항상 멸할 수 있고 나라가 망할 때 교회의 경계도 뒤따라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도(道)를 교회의 경계로 삼았다면 도의 경계도 항상 변하기 때문에 도의 한계가 변할 때 교회의 경계도 따라 변해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왕조(王朝)나 나라나 도(道)는 쉽게 변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도를 교회의 단위로 삼지 않으시고 나라나 기타 정치 구역으로도 교회 단위의 경계로 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성(城)으로 둘러싸인 시와 읍과 면을 교회의 경계로 삼으신 원인은 그 지방의 범위와 명칭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 교회의 범위는 도대체 얼마나 큰가? 어느 정도로 큰 지방이어야 비로소 한 지방 교회가 될 수 있는가? 형제 자매들이 주의해야 할 한 가지 일은, 성경에서는 결코 교회를 구역으로 나누어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또 몇 개의 교회를 하나의 구(區:중국의 華北區와 같이 시(市 )보다는 큰 단위를 가리킴-역자 주) 아래둔 적도 없다. 비록 아시아에 일곱 교회가 있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에베소나 빌라델비아를 세워 다른 여섯 교회를 관리하라고 한 것을 결코 볼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일곱 교회와 일곱 금등대만 본다. 이 일곱 금등대는 일곱 교회를 대표한다(계 1:12, 20). 구약에서 한 등대는 일곱 개의 가지로 나누어져 함께 연결되어 있다. 여기의 일곱 금등대는 한 등대가 일곱 가지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뜻인즉, 일곱 개의 다른 교회가 각자 빛을 발하고 각자 그리스도를 향하여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이든지 그리스도의 관리만 받지 다른 교회의 관리는 받지 않는다. 각 등대는 행정상으로 독립되었으며, 다른 등대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교회들 각각은 일곱 금등대 사이를 오가는 인자를 향해 책임을 지며, 그들의 대제사장에게 책임을 진다 다른 교회를 향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없다. 비록 그들이 일곱 교회이지만, 합해져 하나의 연합된 교회가 되어 그들보다 한 단계 더높은 소위 구회(區會)나 연회(年會)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 각각은 하나의 소위[당회(堂會)], 즉 지방을 경계선으로 한 모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은 하나의 도시 혹은 가장 작은 행정구를 지방 교회의 경계로 삼는다. 한 지방 교회가 성경에서 교회의 단위이다. 그것들은 결코 다른 교회와 연합하여 그 중에 비교적 큰 교회를 중앙의 교회로 삼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눈에서 볼 때, 그분은 결코 로마를 중앙의 교회로 세우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한 지방을 교회의 중앙으로 삼아 다른 교회를 관리하거나 제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조직에는 결코 지상(地上)에 있는 중앙이 없다. 예루살렘은 결코 그 당시의 중앙 교회가 아니다.

 



이것은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다른 지방에 있는 교회와 왕래하지 말고 서로 돌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들 사이에 조직에 있어서 연합하여 하나의 큰 단체를 이루지는 말아야 하지만, 마땅히 다른 교회들과 주 안의 하나를 함께 지키며 일치된 방향의 추구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의 우리의 하나는 지방으로 나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힘을 다하여 부축하며 구제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교회가 빛 비춤을 얻었다면 다른 교회는 그 교회를 본으로 삼아 배워야 한다. 그러나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여전히 독립된 것이다. 행정과 단체에 있어서 독립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주님 앞에서 다른 교회들인 얻은 빛 비춤과 명령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들을 본 받으며 부축해야 한다.
 
모든 교회들은 다 직접 주님에게 책임을 지고 주님의 제한을 받는다. 동시에 성경은 또한 성령이 모든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계 2:7, 11, 17, 29, 3:6, 13, 22). 이것은 진리의 균형이다. 성경은 한 방면에서 에베소 교회 사자에게 말씀하셨지만, 말씀을 마칠 때는 또한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말한다.
 
어떤 교회에게 장점이 있을 때 다른 교회들은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살전 2:14) 데살로니가의 형제들과 같다. 그들이 주 안에 있어 온 날들이 많기 때문에 후에 일어난 교회들은 마땅히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은 매우 균형적이다. 한면으로,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다른 지방 교회와 각각 독립되어 있고 서로 연합되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면으로,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다른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본받고 그들의 본을 배우고 그들과 일치된 행동을 취해야 한다. 동시에 모든 행동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어서도 안 되고 성경의 본을 따르지 않아서도 안 된다.
 
 
 
 


교회 안의 지방의 성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를 방지해야 한다.
 
교회는 지방적인 것이고 일꾼들과 관계를 갖지 않는다. 일꾼은 어떤 지방에서도 사립(私立)적인 교회를 가질 수 없다. 일꾼이 한 지방에서 구원한 사람은 그 지방 교회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일꾼의 모든 일은 지방 교회만을 위할 수 있다. … 교회가 종파를 이루지 않도록 보호받으려면 영원히 한 일꾼이 교회에게 영향(영적인 방면이 아닌 공식적인 방면을 가리킴)을 주지 않게 하는 일을 반드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도는 지방을 초월한 일종의 직분이다. 하나님은 한 사도가 한 교회를 돌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언제든지 사도가 한 교회를 돌볼 때 그 교회는 교회의 지방적 성질을 잃어버리고 그 교회를 돌보는 사도의 색깔을 띠게 된다. 어떤 교회가 어느 한 일꾼에게 속할 때 곧 종파로 변해버린다. 사도가 다스리는 교회는 지방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사도는 각지에 가서 일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것은 그가 일하여 사람을 얻은 후에는 형제들 중에서 비교적 좋고 성장한 자를 택하여 감독들로 세우는 것이다. 한 지방에 장로들이 있은 후에는 사도들은 즉시 손을 놓아야 한다. 만일 사도들이 손을 놓지 않으면 이 교회는 지방의 성질을 지니지 않고 사도의 성질을 띠게 된다.
 
교회의 지방적인 성질을 지키기 위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교회의 범위가 지방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게 하는 것이다. 현재 매우 유행되는 방법은 각 지방의 신조가 같은 단체를 하나의 ‘교회’로 조직화하거나 하나의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삼아 여러 지방의 단체들을 포함한 선교단체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교회’는 다 지방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지방의 성질이 없다. 그들은 다 신조나 선교 단체를 범위로 삼은 것이다. 그들의 경계는 성경이 말한 경계를 넘어섰다.
 
어떠한 중심(신조, 교리, 사람 등)으로 각지의 믿는 이들의 단체들을 연결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의 큰 ‘연합 교회’를 이루게 할 때, 자연히 이 중심이 범위가 되어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그분을 완전히 떠났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여전히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중심이 곧 범위임을 기억해야 한다. … 그러므로 사람이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을 각지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으는 중심으로 삼을 때에는 자연히 그 어떤 것이 나누는 경계가 되고 누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고 누가 밖에 있는 사람인가 구분하게 된다. 이 경계는 즉시 지방의 경계를 파괴하고 취소하게 된다.
 
 
 
 
 


하나님은 매시대 특별히 어떠한 특별한 사역자들을 일으키셨다. 과거 몇 세기 동안의 교회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신 사람들이 일으켜 세운 것이다. 나는 모든 형제를 사랑한다. 나는 루터를 사랑하며 웨슬레를 사랑하며, 다비를 사랑한다. 영적인 위대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하나님에 의해 쓰임받았으나 결국에는 종파를 형성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말씀을 거절할 수 없지만, 그들의 교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지방 교회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역으로 교회를 세우고 나서 교회를 지배했다. 성경에서 복음의 사역자가 한 교회, 혹은 몇 교회의 일을 다스린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지방 교회가 사역자보다 큰 것이다(고전 3:21-23 참조). 이 원칙을 뒤집으면 당신은 즉시 종파가 나옴을 본다. 한 모임이 한 사역자와 사명에 복종한다면 그것이 곧 종파인 것이다. 침례는 진리이다. 우리는 그것을 전파할 필요가 있고 실행할 필요가 있으며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어 주님의 제자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명령으로 교회를 세우고 교회로 하여금 이 진리의 사명 아래 복종케 한다면, 이것은 곧 종파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상해의 형제이지만 나는 진여에서 사역한다. 많은 사람이 사역으로 교회를 대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역은 영원히 교회를 대치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에게 속하지 않기를 바라는데,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 사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상해의 형제이지만, 네가 만일 내일 남경에 간다면 나는 즉시 남경의 형제이지 상해의 형제가 아니다.
 
상해의 믿는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은 그들로 하여금 소극적으로 이것에서 벗어나고 저것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그들 자신의 일이므로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지방 교회를 말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은 다 상해에 있는 교회이며 서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커야 한다. 우리는, 상해에 있는 모든 믿는이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역하는 여러분은 우리의 간증의 성질과 지방 교회의 실행을 분명히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 한국복음서원 진리100


트랙백:  수신불가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