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생명의 내적 흐름: 새 예루살렘에 나타난 교회 생활의 방면들 (43방면)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새 예루살렘
2010-02-11 , 조회 (13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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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생명의 내적 흐름: 새 예루살렘에 나타난 교회 생활의 방면들 (43방면)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한국복음서원

                                         

 

제목 : 신약의 결론

1. 하나님

2. 그리스도

3. 성령

4. 믿는이들

5. 교회

6. 왕국

7. 예루살렘

7.1 최종완성

7.2 예루살렘에 나타난 교회 생활의 방면들 (43방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왕국을 나타내는

        질서 있게 건축된

        성막

        신부

        하나님의 권위의 중심

       

        등잔대 (촛대)

        생명의 흐름

        생명나무

       

        흐름, 나무,

        정금

        성의 문들

        거듭남의 진주

16       신성한 본성의 체험

17    생명의 내적 흐름

 

  생명의 내적 흐름

 
열일곱째 항목은 어떤 방향에서 왔든지 간에 우리는 성에 이를 것이고, 어떤 문을 사용하든 우리는 오직 한 길 위에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계 22:2). 새 예루살렘은 성의 기초가 정사각형인 산과 같은 모양임을 기억하라. 이 ‘산’은 모두 같은 크기인 삼차원으로 되어 있다. 그것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는 각각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다. 성의 한 길이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나선형으로 감아 내려온다. 그것은 정상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시작하며 나선형 길의 마지막은 바닥에 있는 열두 문들을 지난다. 그래서 어떤 방향에서 왔고, 어느 문으로 들어왔든 당신은 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 같은 길 위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한 길, 한 흐름 안에 있다.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단지 같은 길이 아니고 한 길이다. 한 성에 아주 비슷한 두 길이 있을지 모르나 이 길은 한 길이다. 이것은 거기에 오직 한 흐름만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내적인 흐름만 주의한다면 얼마나 놀랍겠는가? 내가 일본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러 온 한 중국인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해 보자. 중국 사람은 일본 사람과 아주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외적인 것들을 잊어버리고 단지 내적인 느낌과 내적인 흐름만을 주의할 때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거기에는 같은 맛과 같은 감정과 같은 느낌이 있다. 모든 것이 같다. 이 원칙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 온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 문제는 비록 내적 흐름이 하나이고 우리가 그러한 한 흐름 안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너무 많은 외적인 것들을 주의한다는 것이다.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있어 놀라운 교통을 갖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들은 모두 생명의 한 흐름 안에 있다. 그러나 그때 어떤 그리스도인이 대화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어느 교회에 속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상대편 사람은 아마 자기가 감리교인이라고 대답할지 모르며 질문을 던진 첫째 사람은 아마 좀 경직된 채 자기를 침례교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우리 중 대부분은 이러한 체험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함께 교통할 때, 거기에는 놀라운 흐름이 있지만, 교파에 관하여 말할 때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길어진다. 결국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흐름, 한 길 안에 있을 것이며, 모두 같은 음식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 늦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출처 : 한국복음서원, 진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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