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법의 표현
간추린말씀
2010-03-24 , 조회 (25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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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점을 더 실제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한 바 있다.    심지어 오래된 그리스도인도 의지가 그들의 생활에서 얼마나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아직 모른다.

이것 또한 로마서 7장의 어려움 중 일부이다.   그의 원함은 선한 것이나 그의 모든 행함은 그의 원함과 상반된다.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얼마나 큰 결심을 하든  그의 원함은 그로 더 큰 어두움을 거치게 할 뿐이다. 그는 "원함은 내게 있으나,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아래 팔렸도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기름이 없는 자가용같이 누가 밀어 주어야 간다. 언제든지 누가 밀지 않을 때에는. 즉시 멈추고 만다. 그들은 의지로 자신을 밀어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아주 고생스럽다고 생각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고 힘이 빠지게 한다. 어떤 사람들이 할렐루야를 외치기 때문에 자기도 억지로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들이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들은 자기 답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강요한다.  이것은 물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이는 의지가 이를 수있는 최고점이 원함까지 이기 때문이다.(마 26:41. 참조)

만일 우리가 많은 힘을 들여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야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생활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아님을 말해줄 뿐이다. 우리는 자기의 고향 이야기는 억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 천성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의 의지력을 사용하게 된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뜻을 세울 수 있으나, 결국은 죄와 사망의 법에 의해 패배당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원함이 내게 있어서 내가 이 주 동안 선을 행했다". 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뜻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미 그런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행하려고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당신은 왜 사람이 의지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거듭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취할 새 생명이 없거나 이미 거듭나서 생명을 소유하였으나 그 생명을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점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재삼재사  실패하고 범죄하며 자신들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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