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집회와 관련하여 (제6장 우리의 실행들)-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시리즈 / 지방교회,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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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2 , 조회 (32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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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집회와 관련하여 (6장 우리의 실행들)-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시리즈 / 지방교회,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6. 우리의 실행들

  6.3 집회와 관련하여

 가정 집회 : 저희의 가장 간단한 집회는 가정집회입니다. 이러한 집회들은 새신자들을 양육하기 위해 성도들이나 새로 구원받은 믿는 이의 집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친척, 친구, 이웃, 동료들로 하여금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이끌기 위하여 적어도 일주일 에 한 번씩은 모입니다. 일단 그들이 구원을 받으면 그들을 양육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서 자라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가정에서 그들과 모이기를 계속합니다. 이러한 집회들은 대개 한두 명의 양육하는 성도들과 새신자들로 이루어지는 작은 집회입니다. 이러한 집회를 할 때 우리는 새신자들로 하여금 기도, 찬송, 교통, 성경 읽기, 성경 공부를 통해 주님을 누리도록 도와 줍니다.

 온전케 하는 집회: 우리는 모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각자의 기능을 다할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이를 위하여 에베소서 4 12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도들을 온전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들에게 자신의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자주 주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온전케 하는 집회를 갖습니다. 이러한 집회는 열 명 내지 열 다섯 명의 형제 자매들로 이루지며 역시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입니다. 이러한 집회는 많은 상호성 안에서 가르치고, 묻고, 대답하고, 목양하고, 중보 기도하고, 돌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입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그들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집회를 통해 우리는 기능에 있어서 온전케 되도록 사랑 안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 24-25절의 말씀처럼, 이러한 집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서로 권면합니다.

 교회집회: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딤전 3:15)는 그 지방에서 단체적으로 주님을 표현하기 위해 함께 모입니다. 교회 집회는 믿는 이들의 다른 집회와는 다른 특별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집회는 ‘만찬집회’ 즉 ‘떡을 떼는 집회’(고전 10:14-22, 11:17-34)입니다. 이 집회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주님의 피와 몸의 교통 에 참여하며(고전 10:16-17) 또한 주님의 누림을 위해 주님을 기념합니다(고전 11:24-25). 우리가 참여하는 떡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부서진 주님의 몸을 상징할 뿐 아니라 많은 지체들로 이뤄진 주님의 비밀한 몸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상에 참여할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몸을 분변합니다”(고전 11:29).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몸에 관해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아 우리가 개인적으로 분열되었거나 우리의 집회가 분열된 것인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교회인 우리의 입장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찬집회를 통해 이 하나에 참여하고, 이 하나를 누리며, 이 하나를 공개적으로 보여 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또 다른 종류의 교회 집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 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건축 을 위하여 하라"(14:26 원문참조). 이것은 모든 형제 자매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그들의 말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집회입니다. 이런 실행을 사도 바울은 신언(예언, prophesying)이라고 부릅니다. 이 구절에서 신언의 주된 의미는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내는 것”으로서, 믿는이들을 가르치고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위해, 그리스도를 말해내는 것입니다(고전 14:3-4). 이렇게 "모든 성도들이 신언하는 집회"는 그 지방에 있는 한 교회인 형제 자매들에게 필요한 가르침과, 계시와, 위로와, 권면을 주 는데, 이것은 은사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지체들에 의해서 상호적으로 행해집니다(고전 14:1, 31). 우리는 또한 교회로서 함께 기도하기 위해 모입니다. 신약에는 성도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인 예가 많이 있습니다( 2:42, 4:23-31, 12:5).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대적의 활동을 묶기 위해, 지방 교회들의 필요들을 위해 기도할 목적으로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모입니다. 이러한 집회에서 모든 성도들은 교회를 통한 주님의 움직이심을 위해 자신의 부담을 쏟아내는 짧고 해방된 기도를 함으로써 하나씩 하나 씩 기능을 발휘합니다. 큰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기능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더 갖도록 오십 명 내외의 성도들이 지역별로 모여 집회를 합니다. 만찬 집회, 신언 집회, 기도 집회도 가끔씩 지역별로 모입니다.

 사역 집회: 신약의 본을 따라 저희에게는 말씀을 전하는 집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집회에서는 은사있는 지체들이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며, 성도들을 훈련시키고, 성경의 어떤 진리를 전하거나 성경의 어떤 부분의 연구를 인도합니다. 베드로의 전파( 2:14, 3:12, 10:34)나 바울의 가르침( 19:9-10, 20:7, 28:30, 31)을 위해 열렸던 집회들은 이러한 사역 집회의 본입니다. 이러한 사역 집회의 주된 역할은 이 방면에 은사있는 몇몇 사람들이 감당하지만 이런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에 의한 추가적인 나눔(sharing)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집회에서도 상호적인 말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역 집회에서 성도들은, 다른 어떤 집회에서 보다 더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단체적인 생활이며 우리의 단체성의 대부분은 집회에서 표현됩니다. 성경에서 권면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모 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여야 합니다( 1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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